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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파오’에 담긴 세 가지 의미 (06.11.2011)
본문: 요일 4:7-11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오늘은 사랑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한 주간 사랑에 대해서 설교하려고 말씀을 준비하는데, 아주 강하게 기억나는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교육 전도사로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하는데, 한 청년이 웃으면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도사님이 오시기 전에 다른 전도사님이 계셨었는데, 학생부 예배 때 진짜 희한한 설교를 한 번 하신 적 있어요”
그래 어떻게 설교를 하셨길래? 하고 물었더니
설교 시간이 되었는데 아이들에게 잠시 눈을 감으라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성경의 한 구절을 읽어줬습니다.
[고전13: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리고는 설교를 끝냈답니다. 아이들은 그날 아주 신났지요.
아주 뇌리에 깊이 박히는 설교입니다. 저는 직접 들은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설교 말씀이 종종 생각납니다.
성경을 보면 사랑이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우리말에는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가 ‘사랑’ 뿐이지만, 헬라어는 사랑을 네 가지 종류로 구분 합니다.
먼저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에로스’가 있습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할 때 쓰이는 용어입니다. 사실 젊은이 말고도 나이 든 사람들도 여전히 에로스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또 젊어서는 잘 모르다가 뒤늦게 사랑에 눈을 떠 어떤 이성에게 마음이 확 꽂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때로는 해서는 안될 사랑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남녀 간의 감정이나, 매력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 ‘에로스’ 사랑입니다.
두 번 째 사랑의 종류에는 ‘필리아’가 있습니다. 친구간의 사랑을 말합니다. 우정으로 표현 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 교회 형제, 자매들을 보면 제 마음이 참 좋습니다. 예배도 빠지지 않고 잘 나오고 자기들끼리도 얼마나 우애를 잘 나누는지 서로 지지배배 지지배배 하며 대화하고 어울리고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필리아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나누고 있는 이 필리아의 사랑을 평생 간직 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몇 년 후, 심지어 몇 개 월 후 헤어질 수 있는 우리 유학생들이고,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들 이지만 이 사랑과 우정을 간직하고 살 때 우리가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세 번째 사랑의 종류는 ‘스토르’ 입니다. 가족간의 사랑, 혈육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하는 사랑, 형제끼리 사랑하는 사랑, 부부간의 사랑 등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에 나오게 될 아가페의 사랑과 가장 많이 흡사합니다.
이 세가지 사랑, 에로스, 필리오, 스토르의 사랑 모두 아름답고 중요한 사랑임에 틀림 없으나, 한 가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불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애로스의 사랑을 볼까요?
사랑하는 남자가 지금은 직업도 없고 별볼일 없지만, 생긴 거 하나 보고 또, 앞으로는 잘 풀릴 것 같다는 믿음을 가지고 수 년간 교제를 하지만 끝까지 아무일 일어나지 않으면 많은 여자들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사랑하기에 만난 것이긴 하지만 환경에 따라 그 사랑에 변화가 생깁니다. 그러한 상태에 더 혹시라도 멋진 사람을 소개받는다면 사랑은 새로운 사람에게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친구간의 사랑 필리오 역시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서로의 생각의 차이에 따라, 심지어 자기들과 직접적으로 큰 관계 없는 정치적 선호 노선에 따라서도 얼마나 쉽게 깨어집니까?
가족간의 사랑인 스토르는 그리 쉽게 변하지는 않지만 이 역시 상황에 따라 분명히 변화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는데, 한 20대 여인이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주사기를 이용하여 남편의 눈을 실명시킨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보험금 때문이지요. 눈으로 보험금을 챙기더니 몇 개월 후에는 아예 살인을 해버리고 사망 보험금을 지급받았습니다. 남편 뿐 아니라 심지어 엄마와 남동생 에게 까지도 그러한 행동을 했다가 결국 나중에는 잡히게 되었습니다.
이 세가지 사랑은 모두 조건적이며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네 번째 사랑인 아가페는 다릅니다.
이 사랑에는 어떤 조건도 전제되지 않습니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성경이 말하며,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사랑이 바로 이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모두 이 아가페의 사랑을 말합니다.
다시 한번 더 본문을 읽어보도록 하지요. 무조건 적인 사랑의 이미지를 넣어서 읽으면 그 의미가 새로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고 우리도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는데,
그럼 아가페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데,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고, 나 역시도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헤랄어 아가페는 ‘사랑’이라는 명사이고, 오늘 우리는 ‘사랑한다’라는 동사인 ‘아가파오’의 원 뜻을 이용해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가파오 – ‘기뻐하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기쁩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기쁨이 가득합니다.
제가 총각으로 지낼 때 13평 짜리 아파트를 얻어서 전세로 살았습니다.
직장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없었는데, 어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김해 비행장에서 서산으로 전속을 오게 되면서, 저희 집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또 나중에는 직장 후배 중 하나도 우리와 함께 살고 싶다고 그러라고 했습니다. 완전 총각들만 가득한 남자냄새 가득한 집이었지요.
당시 제 친구는 부산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만난 자매와 교제 중에 있었는데, 전속을 오게 되면서 하루 아침에 떨어져 살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보고 싶은지 여자친구 이야기가 늘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별로 관심 없어하고 자기 여자친구 이야기 할 때는 눈이 반짝 반짝 거리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쁨이 넘치는 것이지요.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생각을 하면 기쁜 것입니다.
토요일이 되면 부산까지 긴 거리를 마다 않고 티코에 기름을 가득 넣어서는 부산까지 거의 매주 내려갔습니다. 결국 지금 그 자매와 슬하에 1남 3녀를 낳고 부산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가파오의 사랑도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를 생각만해도 기쁘고 너무 예쁜, 우리는 그분께 그런 존재들입니다.
사람이 힘들고 자포자기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또 나는 세상에서 사랑 받지 못하는 못난 존재라 생각하며 자살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기뻐하시는 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습3:17]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얼마나 우리를 기뻐하시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하십니까?
이런 경우 있습니까? 내가 아무게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할 정도로 가슴 벅찬 경우가 있습니까?
그러다면 그것이 바로 아가페 사랑이라는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분 앞으로 하나님과도 또 주변의 이웃과도 그러한 기쁨에 넘치는 사랑을 하시기 바랍니다.
2. 아가파오 – ‘잘되기를 바란다’
진실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새벽기도를 올리시는 부모님들이 피곤을 무릅쓰고 교회가서 빠지지 않고 기도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우리 자녀가 주 안에서 강건하고 형통한 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이나 처갓집 부모님들도 열심히 새벽기도 나가서 하시는 기도가 있습니다. 저희 부부의 영국에서의 목회가 늘 성령으로 충만하고 사랑이 가득한 사역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또 엑시터 민트교회 위해서도 정말 열심히 기도하십니다.
그러나 부모들이 옆집 자녀를 위해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렇게 열심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엄마 아빠들은 자기 자식과 남의 집 자식들을 비교하곤 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녀보다 최집사 자녀들이 더 잘되는 것 같으면 축하보다는 속으로 질투하고, 그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흠 나는 소식이 들리면 기다렸다는 듯 꼬소해 합니다.
예배 드릴 때 어떤 교회 가면 찬양 인도자나 목사님들이 옆 사람과 인사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주안에서 사랑합니다~’ 인사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쑥스러워 하며 사랑한다고 인사 하긴 하지만 그것이 다 진심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과 그 가정이 ‘예수님의 은혜로 잘되기 바라는 마음’을 함께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시고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요삼1:2]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아가파오 – ‘귀하게 여긴다’
사랑하는 대상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소유물을 귀하게 여기고 상대의 생각과 계획을 귀하게 여깁니다. 사랑하는 상대의 살아가는 방법과 일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유명한 영화감독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유대인 이었는데, 스필버그는 초등학교 때, 밖에서 지렁이나 도마뱀 등 이상한 것들을 잡아와서는 방에 두곤 했습니다.
보통 어머니라면 더러운 것이라고 다 갖다 버리고 아이를 혼낼텐데, 그러나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자기 자녀의 특성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우리아이에게 희한한 취미가 있구나’ 하며 오히려 지렁이든 도마뱀이든 병에 넣어서 잘 보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면 지렁이와 도마뱀은 물론이요, 별의별 희한한 것들이 등장하곤 합니다.
만일 어린 시절에 스필버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이런 취미와 특성을 인정해 주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감독으로서 매우 뛰어난 스필버그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이처럼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면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틀렸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인데, 틀렸다고 말하기 보다는 나와 당신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름의 깊이가 큼에도 불구하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귀히 여기는 것이 바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어느 상황에 처해있건 간에 하나님은 우리 자체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병이 들었다고 등을 돌리시는 분이 아니고, 심지어 믿음이 연약해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를 귀히 여기시고 다시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사49:5]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 다시 야곱을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자기에게로 모이게 하시려고 나를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자기 종을 삼으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 여호와 보기에 존귀한 자라. 내가 너의 힘이 되겠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시는지 우리의 힘이 되 주신다 합니다.
모든 불안과 위험으로부터 소중한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 힘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길을 가다가 건달을 만났을 때 누가 여자친구를 놔두고 혼자 도망가겠습니까?
물론 도망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자라면 여자를 혼자 두고 자기만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려움 중에 처해있을 때, 또 어떤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우리를 귀히 여기시고 우리의 힘이 되어주십니다.
결론
오늘 아가페적 사랑이 무엇인지 세 가지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기억 나시나요?
사랑은 기뻐하는 것, 잘되기를 바라는 것,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 진실로 우리를 기뻐하고, 잘되기를 바라고, 존귀히 여기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위대한 사랑을 꼭 기억하시고 어떤 어려움이 다가올지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이가 여러분 곁에 서서 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늘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본문의 마지막 절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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