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 어머님의 병환으로
1994년 어머님의 병환으로 시내에 있는 점포를 정리하게 되었다.
살아가야 할 적절한 방법을 고민하였고, A대학교 근처의 대지를 구입하게 되었다.
대지는 4미터 도로를 전면으로 길쭉한 부메랑모양의 생김새로 허름한 슬레트지붕의 건물 두 채와 향나무, 감나무 한 그루씩을 품고 있었다.
매일 저녁 상을 물리고 나면 가족들은 어떤 집을 지을까라는 얘기로 늦은 밤을 채워나갔다. 가장(家長)인 나로선 여간 고민이 아니었고 어떤 모습으로 어떤 프로그램으로 채워 넣어야 할 지 고민이었다. 우선 외모는 인근 A대학교의 경상대학을 닮고 속내는 학생들을 위한 원룸과 독립된 기능의 주택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당의 향나무는 이 땅의 흔적으로 살려두기로 하였고, 앞마당은 어머님을 위한 텃밭으로 뒷마당은 향후 증축가능성과 주차를 위하여 넉넉한 여유공간을 두었다

1995년 먼 인척되시는 어른의 도움으로
1995년 먼 인척되시는 어른의 도움으로 건축을 하게 되었다. 초기의 의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어머님을 비롯한 가족들은 집을 갖게 된다는 기쁨으로 공사도중 매일 밤잠을 설치었다.
어린 시절부터 시골 외조부님 밑에서 자란 덕에 퇴계선생 할아버지의 일대기는 나의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외조부님의 엄한 교육-낮에는 밭에 김을 매고 저녁엔 한자공부를 하였다. 가끔은 호롱불에 머리를 그슬린 적이 있었다. 사촌동생은 언제부턴가 방학때면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촌동생은 친할아버지댁에서 방학을 보내었다. 신나게 맘껏 놀았다한다.-은 어머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하여 집의 이름을 ‘독학당(篤學堂)’으로 지었고, 기념으로 온혜리 원촌 마을에서 퇴계 선생님사당의 오죽 두 어그루를 옮겨다 심었다.
물론 마을어른의 허락을 득하였다.
개강을 앞두고 학생들을 입당(入堂)시킴에 조금은 신중을 기하며 면접을 보았다. 개강이 시작되면서 매달 1회의 독학당 모임을 가져 학우들간의 친목도모와 건전한 교제의 장이 되도록 하고, 학기가 끝나면 ‘도서상품권’을 준비하여 성실한 학생에게 선물하기도 하였다. 나름대로 좋은 뜻을 갖고 행한 것이 주변의 오해를 사지는 않을까하는 노파심도 없지는 않았으나 졸업 후 찾아오는 학생들로 기쁨 두 배 행복 두 배였다.
*篤學;퇴계선생할배의 가훈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1년 가을.
우연히 옥상에 올라 단상에 잠겼다.
동네집들의 옥상에는 제각기 노랗고 파란 통을 이고 있었다. 건물의 혹이다. 동그란 혹도 있고, 네모난 혹도 있다.
겨울만 되면 낡은 이불이나 포대기로 칭칭 둘러메어 그 모양새가 우습기도 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가끔씩 동네할머니들이 고추나 무우 말랭이를 말리기도 하고, 인근 대학생들의 몰래 데이트 장소로 애용되기도 하는 이 옥상……
이 곳을 학생들의 놀이터이자 공부터로 활용해 보기로 결심을 한다.
*89년 대학시절...학교주변의 카페 다락방에서 선후배님들과 토론도 하고 식사도 했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초기스케치안...
무엇보다도 적은 예산과 정해진 인력으로 공사를 마감해야만 했다.
다양한 공간속에서 학생들이 맘껏 토론할 수 있는 장소로서 손색이 없어야 겠고,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1.무선 인터넷망을 통한 정보교환과 주변기기 확보
2.독립된 세미나룸
3. 전시할 수 있는 벽
4. 프로젝터를 통한 강의공간 등등...

초기 모델링안...
외부마감은 가격이 저렴한 아연골강판(4,000원/M2)을 주재료로 정하였다. 경제적인 면도 있었지만 직접시공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내부는 주로 합판자체로 마감을 하였고 파벽돌의 거친면을 배경으로 전시공간을 의도했다.
먼저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애쓴 이후석 소장, 임재영 대리, 친구 정대형, 권익기씨, 모델링과 CAD작업을 도왔던 이 기웅군, 말없이 뒤에서 응원을 해 준 최이사님과 선희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특별히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일하시는 분들의 식사와 참을 챙겨주신 어머님께 감사한다.
도와주신 협력업체는 다음과 같다.
설비;진솔설비
전기;고려전기
조명;무지개조명
철골;제일건업
씽크;한샘씽크
도장;청솔건업
건자재;경북건재사

2001년 10월14일 …
현장에서 실측을 통한 도면작업과 수정작업이 이루어졌다.
옥상파라펫을 철거하고 도면을 확인하는 이 기웅군
*향후 이 자리는 야외데크로 바뀐다.

2001년 11월 12일…
조촐한 상량식이 있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이 집의 빨래는 어디서 너느냐' 걱정반 궁금반이다. '동네에 이 집 옥상만큼 고추도 말리고 삼도 말릴 수 있는 좋은 데는 없는 데..'하시며 아쉬운 맘을 드러내신다

2001년 12월 1일…
조적작업이 시작되었다.
파벽돌은 협력업체(호산적벽돌)에서 외상으로 구입하였고, 조적사장님은 파격적인 노임으로 서비스해 주셨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 뿐이다.

2002년 4월 1일…
수장작업이 마무리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공사가 중단되었었다. 재정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이 공사를 도와주던 협력업체팀들이 다른 공사건과 겹쳐 일이 순조롭지 못했다. 거의 무상으로 해주다시피 하는 작업이라 무어라 말할 처지가 못되었다.

2002년 5월 13일…
대충 정리를 끝내고…
아삶공가족들의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전시벽엔 건축가 마리오보타의 판넬만이 목을 메고 있다...

야외데크…
시원한 바람에 심신이 상쾌함을 느끼며 ...친구를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무선랜 노트북이 있으면 더 더욱 좋겠지…
*여기는 무료로 유무선인터넷이 가능한 공간이다.

글라스룸…
지붕과 벽은 글라스로 처리되어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이면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그 해 겨울은 벽난로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메뉴판에 군밤이나 군고구마는 없었지만 분위기는 짱…^^

전시공간과 글라스룸의 복도이다. 물고기 키우는 것이 장난이 아니네...ㅠㅠ

야경...
저녁 늦게라도 모여 발전적인 얘기와 토론이 활발해지기를 바라며 함께 사는 사회의 한 부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아.삶.공의 진정한 기대이다.

전체외관…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싶다.
학생들이 졸업작품전이나 개인 전시회를 원하면 언제든지 무료로 임대를 해준다.
많은 관심과 용기를 가져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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