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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읽기 스크랩 벽보 붙이는 밤 / 정성화
김근혜 추천 0 조회 23 14.06.15 10:4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벽보 붙이는 밤 

 

                             / 정성화



집나간 강아지를 찾는다는 벽보가 어느새 치워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다른 벽보가 붙어 있었다.

“칠 년 전 반여동 S아파트에 살았던 영어 선생님을 찾습니다.”

이번에는 강아지 대신 사람을 찾는구나 생각하며 무심코 사연을 읽어 내려갔다. 한 순간 내 귀가 저절로 쫑긋 섰다. 그것은 분명 나를 찾는 벽보였다.

 

벽보에 적힌 연락처로 바로 전화를 했다. 짐작한 대로 내가 이전에 가르쳤던 학생의 어머니였다. 아이가 부산 시내의 중학교에 교사 발령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옛 선생님께 꼭 전하고 싶었다면서, 정확한 주소를 몰라 선생님이 살고 있다는 아파트 게시판에다 벽보를 붙이게 되었다고 했다. 벽보를 만들어 여기까지 들고 와 붙인 그분의 마음을 생각하니, 내가 한 것에 비해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는구나 싶었다. 벽보는 어느덧 내 마음을 싣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양탄자가 되었다. 기분 좋게 속이 울렁거렸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나는 벽보를 손에 꽉 움켜쥐었다.

 

잊어버리고 싶은 벽보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방학을 기다리지 않는 아이였다. 방학이 되면 나는 늘 서울에 있는 외삼촌 댁으로 보내졌다. 많은 식구에 한 입이라도 덜어 보기 위해 내린 부모님의 결정이었다. 마치 배추를 솎아내듯 나를 ‘솎아내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안 가겠다고 떼를 쓸 분위기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가끔 늦은 밤에 서울로 전화를 하셨다. 외숙모와 통화를 한 뒤에는 이어서 나를 바꾸게 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늘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외숙모가 들을까 봐 그러는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아무 소리 말고 잘 붙어 있어야 한데이, 엄마가 데리러 갈 때까지는. 알겠제.”

나는 어머니가 서울에 붙여 놓은 벽보였다. 하얀 쌀밥에다 쇠고기 장조림을 먹고 또 매일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면서도 나는 집에 돌아갈 날만 기다렸다. 남루하고 좁아 터지고 고함소리가 가득한 우리 집이 그리워, 밤이면 아무도 몰래 눈물에 젖는 벽보였다.

 

벽을 등에 지고 엎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벽에서 떨어져서는 안 되는 게 벽보다. 풀기를 잃으면 찢어지기 쉽고, 바람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허락하면 이내 벽에서 떨려 나가는 게 그것의 운명이다. 어머니가 나를 ‘떼러’ 올 때까지, 나는 그때 비교적 착실한 벽보 생활을 했다.

 

‘잘 붙어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었다. 내 마음이 심하게 펄럭거리고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 시절 딴생각을 하며 방황하고 있었을 때, 직장 생활이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을 때, 남편과 크게 다툰 뒤 어디론가 휑하니 가고 싶었을 때 등. 어쩌면 어머니의 그 말에 배여 있는 간절한 모성이 이제껏 나를 지켜 온 게 아니었을까 싶다.

 

세상이란 벽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 또한 한 장의 벽보인 셈이다. ‘나’라는 벽보로 인해 이 세상 벽의 표정이 어두워지거나 벽의 한숨이 더 늘어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도, 내게 드리운 모든 것이 헐값의 운명 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서슴없이 벽에다 대고 내 머리를 쿵쿵 찧는 나는 그야말로 ‘못난 벽보’다.

 

내가 울고 화내고 애태우는 것은 나의 벽보가 남들의 것보다 더 번듯하길 바라서일 것이다. 내 마음이 어지러운 것은 내가 등을 대고 있는 벽이 더 따뜻하고 아늑하길 바라서일 게다. 모든 게 벽보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 하겠다.

벽은 한때 햇살로 가득했다가 조금씩 그늘이 지고 때가 되면 어둠에 묻혀 버린다. 그것이 벽의 하루다. 이 세상에 온종일 햇살이 비쳐드는 벽이란 원래 없는 법. 그래서 해가 다시 뜰 때까지는 어떤 벽보든지 벽의 냉기를 묵묵히 견뎌내어야 한다. ‘견딘다는 것’은 쓸쓸한 일, 혼자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곧잘 운명이 가혹하고 비정하다며 수군댄다. 그러나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에게는 운명도 무심치 않으리라고 나는 믿고 싶다.

 

자신의 벽보 한 장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죽을 때까지 끌어안은 채 고치고 손질하다 가는 게 우리네 인생인 것 같다.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곧장 떨어지고 말 벽보인데도 말이다. 다들 자신의 벽보에 대한 집착 때문에 다른 이의 벽보에는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또 이 세상의 아름다운 벽을 제대로 둘러볼 새도 없이 허겁지겁 살다 가는 것은 아닌지.

 

이 세상에 내가 진정 붙이고 싶은 벽보는 무엇인가. 나의 손때가 묻은 벽보 앞에서 나는 나를 보려고 애쓴다. 그러면서 너풀거리는 나의 귀퉁이에 다시 풀칠을 하고, 찢겨진 부분에는 종이를 덧대어 바르며, 지워진 글씨는 다시 선명하게 써넣는다. 그래서 벽보 붙이는 밤은 조금도 졸리지 않는다.

국제전화를 걸어 온 남편이 대뜸 말한다.

“어, 요즘은 집에 잘 붙어 있네.”

은근슬쩍 내게 풀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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