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가 단돈 오만 육천팔백 원
남상선 / 수필가
한여름이 가기 전에 지인들 식사 모임 한 번 갖자는 마음으로 <자미>에 예약을 했다. <자미> 음식점은 부담이 안가는 가격대로 음식도 맛있고 주인아주머니 아저씨가 순수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있어 정감이 가는 집이다. 거기다 두 분은 아침마다 도솔체육관에서 실내 배드민턴을 같이 해서 그런지 아침 운동 때 만나지 못하면 다음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기에 손이 자주 가게 하는 분들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부류를 보면 한 번 만나고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늘 함께 있어도 좋을 만큼 호감이 가는 사람도 있다. 또 만남 자체가 무덤덤한 사람으로 만나지 않는 것 자체가 서운할 게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잠시라도 못 보면 궁금하고 보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용건이 없어도 목소리 한 번 듣고 싶은 마음에 수화기를 들게 하는 위력이 있다.
또 사람 중에는 은연중 마음속에 늘 함께하는 분이어서 잠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없는 시간 만들어 식사 한 끼라도 같이 하고 싶고, 차 한 잔이라도 함께 나누고픈 생각이 나게 하는 사람이리라.
한편 자주 만나기는 해도 사무적인 만남으로 정감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잊으려 애를 써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도배하는 사람도 있다. 만났다가 헤어진 사람이 오히려 앓는 이 빠진 것보다 더 시원하게 생각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우리 자신들은 상대방이 어떤 느낌으로 만나 주는 삶을 살고 있을까?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것도 아니라면 중량 10g도 안 되는 함량 미달의 삶을 살고 있지나 않은지 자성(自省)에 빠져 보았으면 한다.
이것은 바로 내가 사는 삶의 그늘이 상대에게 얼마나 시원하게 하는지 그 여부가 될 것이며, 아니라면 반 점 그늘도 없이 상대방을 덥게만 하는 삶이었을 것이다.
가슴 체온으로 친다면 따뜻한 가슴으로 산 사람 아니면 가슴이 없는 강장동물의 냉혈로 산 사람일 것이다. 그 바로메타는 사람냄새를 얼마나 풍기며 살았느냐가 될 것이다.
시내 시가지 군데군데마다에는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평가표만 없을 뿐이지 사람들의 머릿속엔 어느 집의 음식이 맛이 있고 없는지, 가격대는 어떠한지, 주인이 어떤 사람이며 친절한지 아니한지에 따라 서열이 매겨져 있다. 그 결과로 어떤 집은 단골손님이 많아 종업원이 몸살 날까봐 걱정되는 집도 있고, 혹자의 가게는 사람의 그림자가 그리울 정도 파리만 날려 안타까운 집도 있다.
오늘 가는 <자미>는 음식 맛도 있지만 주인 내외분이 사심 없이 좋은 분들이라서 그 사람 냄새 때문에 회식 모임이 있을 때면 내가 으레껏 자주 가는 집이기도 했다.
모임 시간을 12시 30분으로 예약을 해 놓았다. 지인들 7인의 발걸음이 빨라질 것 같은 시간이었다. 나도 시간이 촉박해서 평상시에 집에 모셔만 두었던 승용차를 끌고 나갔다. <자미>의 위치가 언덕 밑에 있고 복잡한 골목인데다가 도로가 비좁았다. 주차할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아 주택가 블록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다가 도로 옆에 주차해 놓은 아반테 승용차와 경미하게 부딪치는 접촉사고가 발생했다.
순간 당황한 마음으로 살펴보니 상대방 왼쪽 백미러와 내차 오른쪽 백미러가 약간 흠집이 생겼다.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다. 상대방 차량에는 승차한 사람 그 누구도 없는 것 같았다. 목격한 사람도 없고 경미한 접촉이어서 그냥 모르는 척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다소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다 돼 가고 마음이 급해졌다. 때 마침 학교 끝나고 하교하는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이는 가방 멘 꼬마가 걸어가고 있었다. 꼬마를 불렀다. 꼬마에게 사실대로 얘기하고 전화번호 써 놓을 메모지와 연필 좀 달라고 했다.
가방 속에는 틀림없이 종이와 필기 용구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던지 희끗 쳐다보며‘ 없어요.’하면서 도망가다시피 달아났다. 각박한 세상에 유괴범과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학교에서 선생님들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꼬마한테서까지 의심과 냉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살벌한 세상이 겁이 나고 한숨이 나왔다.
차주가 없어 연락처만 써놓고 가려던 생각은 허사가 되었다. 약속시간이 다 됐다. <자미>에 먼저 온 지인들이 기다릴 것 같아 전화로 사고 경위를 얘기하고 식사를 먼저 하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주변을 둘레둘레 살피며 아반테 차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수색견처럼 눈을 번쩍이다 보니 2층 건물에서 이삿짐 정리를 하는 사람이 보였다. 혹시나 해서 여기 주차한 아반테 주인을 모르느냐고 했더니 자기가 차주라고 말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고 경위를 이실직고했다.
내 과실로 댁의 차 왼쪽 백미러가 약간 손상이 됐으니 카 센터에 가서 고치고 연락해 주면 소요 비용을 바로 입금해 줄 테니 선처해 달라고 했다. 반응이 나왔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자신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으로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젊은이지만 배려하는 마음씀씀이가 배려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 같았다. 물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 같으면 그걸 미끼로 돈을 뜯어내려 한다거나 비굴한 행동을 하는 것이 일쑤인데 이 젊은이는 그런 게 아니었다.
젊은이의 선처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집에 왔다. 그날 해가 질 무렵에 문자가 왔다. 백미러 교체 비용이 오만 육천 팔백 원이 지불 됐으니 문자 계좌번호로 입금해 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입금해 주었다.
내가 좋아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많지만 늘 함께 있어도 좋을 만큼 호감이 가는 젊은이였다. 종종 생각날 때 만나서 밥 한 끼라도, 차 한 잔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었다.
백미러 값 오만 육천팔백 원 !
마음의 평화가 단돈 오만 육천팔백 원으로 내 것이 되다니… !
마음의 시력을 밝게 해 주시어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바람이 심한 세상에 마음의 눈이 시력을 잃지 않게 헤 주소서
양심의 시력이 눈멀지 않아 마음의 평화가 내 것으로…
마음의 평화가 단돈 오만 육천팔백 원으로 !
첫댓글 56,800원~~ 참 진실된 젊은이네요 ~
요즘 경기가 어려워 어떻게 하면 이득을볼까? 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살이고,각박해지기만 하는데~ 같이 운전하는 입장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꼭 수리비만 받으니 실수로 가벼운 차고를 냈던 선생님 마음도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갔지만 아깝지 않은 돈이라 ~는 생각이 드네요
난 다른사람에게 기억되는 사람일까?
만나고픈 사람일까? 다시금 생각해하는 목요일 아침입니다.
정겨운 글 잘 읽었습니다.
자미 식당은 어디에 있는 곳인지요?
한번 들려보고 싶네요~
서미라님 댓글 응원 감사합니다. 삭막한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주변에는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
사람이 있어 훈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젊은이 ,생각할수록 그리워지는 사람입니다.
서미라님도 젊은이도 모두 가슴이 따뜻한 분들이어서 만년 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큰 사고가 아니라 다행이네요^^ 한사람의 정직함이 선생님께 마음의 평화를 선물해준거 같네요^^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저도 다른이에게 마음의 평화를 선물해줄 수 있는 사람인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김정아님 글로 공감할 수 있는 시간 할애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정직함이 순수함이 배려심이 돋보이는 젊은이!
인간성 부활 차원에서 더욱 짙은 사람냄새를 풍기며 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루비나 다이아몬드만이 보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아님 감사합니다.
"중량 10g도 안 되는 함량 미달의 삶을 살고 있지나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는 아침입니다.
양심의 시력이 2.0 이상일 남 작가님!
긁어먹은 차 주인 애타게 골목길에서 찾고 기다리셨을 작가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도 덕분에 영육 간의 시력 확보 & 마음의 평화 얻어갑니다.
늘
마음의 平和가 함께 하시길...!
높들꽃님 변함없는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도 졸작 집필하며 자성에 빠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가시적인 체구의 중량보다는 내면의 중량과 시력이 사람 냄새를 짙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짐승 냄새를
풍긴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그날 차 한잔이라도 같이 나누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행운이었습니다.
높들꽃님 많이 감사합니다.
ㅎㅎㅎ 역시 다우십니다
다운 분들만 있다면 세상 삐그덕 거리지않겠죠!
부모다운. 선생다운. 학생다운. ..... .....
정직함 모범을 보여주셔서 꽃피는 이봄
희망을 봅니다 좋은 글 잘보았습니다
색종이님 응원에 감시드립니다. 임의 말씀대로 아무리 삭막한 세상이라도 다운 사람만 있으면 상생하는
밝은 세상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말은 쉬운데 답게 사는 실천의 길을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니니 이거
어떡하죠? 색종이님 분에 넘치는 찬사 감사합니다. 보다 향기 짙은 글을 써서 보은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늘 재미난 이야기 풀이를 해 주시어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을 갖게 되고 또한 마음 속에 잔잔한 가르침이 남아 있게 됩니다. 늘 차분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으라 아이들에게 가르치지만 정작 제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선생님 ~^0^
이동현 선생님 졸작의 내용에 공감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교단에서 학생들 바른 사람 만드는데 열정을 다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많이 흐뭇해 하는 심정입니다. 열정을 기울인 만큼 교육의 보람을 느끼는 날이
온 다는 것을 확신하시고 보다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인성교육에 땀흘려 주셨으면 하는 바람 가져봅니다.
이동현 선생님 성원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정직하고 따뜻한 분이라서 선생님 주변에 있는 분들께도 사람 향기가 전파되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은은한 향기를 머금고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도록 노력하며 생활해보겠다 다짐해 봅니다^^
팡세님 제 졸작 속에서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주시어 감사합니다. 칭찬으로 힘을 주시는 팡세님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서로가 따뜻한 가슴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 함께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팡세님 감사합니다..
요즘 보기드문 훈훈한 일입니다. 접촉한 차량을 찾아 꼭이 배상해주어 고치게 하는 분과 또 사실 있는 그대로 고친 착한 가격 그대로 변상하게하는 일...감동입니다 언젠가 저도 그런일 있는데 병원치료 받고 보험사에서 받아간 금액이 검사비 45만원이었어요 요즘 무조건 150만원정도 받아간다는데 얼마나 고마웠는지요...서로 진실은 통하게 되나 봅니다.
두분같은 분만 있어도 아니 제가 말한분 세분만 같아도 아름다운 사회가 될터인데요..ㅎㅎ 글 감동으로 음미해 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ahrghk 님 찬사로 보약의 힘을 실어 주시니 좀 겸연쩍은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살이가 떳떳하지 못하면 늘 불안하고 마음이 편칠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정직하게 살려하는 마음입니다. 세인들 모두가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삶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ahrghk님 댓글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