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남산(終南山) 송광사(松廣寺)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대흥리 569-2)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
송광사 창건 및 연혁
완주 송광사는 종남산 남쪽 기슭에 위치하며, 성보문화유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평지형 가람이다.
창건 시기는 자료마다 내용이 달라서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우선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종남산 남쪽에 영험 있는 샘물이 솟아나서 그 옆에 절을 짓고 백련사라고 했다. 이후 보조 체징선사(804~880)가 설악산 억성사에서 수행하다 선법을 구하려 중국에 유학 가던 길에 백련사가 영험 도량이라는 소문을 듣고 이곳에 잠시 머물렀다. 귀국해서도 가지산 보림사와 종남산 백련사에 번갈아 거주하면서 도의국사의 선법으로 널리 교화했다. 이때 체징선사는 백련사를 송광사로 개칭했다.
<<송광사사적비>>(1636년)에 의하면, 보조국사 지눌스님(1158∼1210)이 점지하였다가 1622년부터 불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7칸 중층의 대웅전을 건립함으로써 창건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으로 사액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여러 법당이 신축 또는 중건되었다.
* 체징스님과 지눌스님이 ‘보조’라는 동일한 호를 지니고 있으로 신라 체징스님이 창건 또는 점지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신라 시대 창건설은 뚜렷한 문헌 근거가 없고, 사찰 일대에는 신라, 고려 시대로 추정되는 유물, 유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성보문화재
일주문(一柱門)
(1971년 12월 2일 전북 유형문화재 제4호 지정)
금강문(金剛門)
(1999년 7월 9일 전북 유형문화재 제173호 지정)
금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역사를 모시는 문이다. 중앙 통로 좌우로 두 명의 금강역사와 동자 모습의 사자를 탄 문수보살상과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보살상이 배치되어 있다.
천왕문(天王門)
천왕문은 사천왕을 모시는 곳이다.
송광사는 사천왕을 모신 곳을 천왕문으로 하지 않고 천왕전으로 건축하여 이곳은 여닫는 문으로 되어있다. 현판도 사찰에 들어오는 쪽에는 천왕문으로, 대웅전 쪽에는 천왕전으로 현판을 달았다.
서방 광목천왕상 왼쪽 머리끝 뒷면에는 조선 인조 27년(1649)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는 글이 있으며, 왼손에 얹어놓은 보탑 밑면에는 정조 10년(1786)에 새로이 보탑을 만들어 봉안한 기록이 있다.
종루(鐘樓)
(1996년 5월 29일 보물 지정)
종루는 범종(梵鐘)·법고(法鼓)·목어(木魚)·운판(雲板) 등 사찰에서 의식 때 사용하는 불전사물을 봉안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종루나 종각이 사각형으로 지어지는데, 송광사 종루는 보궁(寶宮)에 주로 채택되는 십자형[아(亞)자형]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1814년 혹은 1857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종루에 걸린 범종·법고·목어·운판 등은 1977년에 조성된 것이고, 바닥에 놓인 범종은 1716년(숙종 42)에 무등산 증심사에서 조성되어 1769년(영조 45)에 중수된 것이다.
대웅전(大雄殿)
(1996년 5월29일 보물 지정)
송광사 대웅전에는 조선 후기에 유행한 석가여래·약사여래·아미타여래 즉 삼세불상(三世佛像)이 봉안되어 있다.
불단에는 왕· 왕비· 세자의 축원을 위한 용도로 제작된 조선 후기 최대의 목공예품인 삼전패(三殿牌)가 있다.
<<송광사사적기>>에 의하면, 초창 당시인 1622년에는 2층 건물이었다. 1857년에 건물이 기울어졌는데 중수되면서 단층이 된 것으로 추정한다.
대웅전 현판의 글씨는 선조의 아들인 의창군(義昌君)이 썼다. 구례 화엄사 대웅전 현판 역시 의창군의 글씨여서 두 사찰과 의창군 그리고 벽암각성대사(1575∼1660)의 관계가 주목된다.
나한전(羅漢殿)
(1999년 7월 9일 전북 유형문화재 제172호 지정)
나한전은 깨달은 성자인 아라한(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송광사 나한전에는 석가삼존상(제화갈라보살, 석가여래, 미륵보살)과 16나한 및 500나한을 모시고 있다. 오백나한전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금강역사, 동자상, 사자상 등도 자리하고 있다. 송광사 나한전은 1656년(효종7)에 벽암각성대사가 송광사를 중창할 당시 건립되었으며, 1934년 해광스님이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송광사 나한전은 영험한 나한기도처로 유명하다.
송광사 사적비
(1971년 12월 2일 전북 유형문화재 제5호 지정)
송광사 약사전에서 승탑원 가는 길목에 있다. 절의 개창(開創)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높이 240cm, 폭 94㎝이다.
비의 앞면에는 비 이름과 비문이 새겨 있다. 고려 보조국사가 전주 종남산을 지나다가 절터를 잡아놓고 제자들에게 절을 지을 것을 당부하였다는 내용, 보조국사 지눌스님부터 벽암각성 대사에 이르는 스승과 제자의 계보가 주된 내용이다.
뒷면에는 송광사를 짓는 데 참여했던 승명스님의 말을 인용하여 절을 짓게 된 경위, 벽암각성 대사의 제자와 시주한 사람, 개창 당시 장인(匠人)들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조선 인조 14년(1636)에 세운 비로, 신익성이 비문을 짓고, 선조의 아들인 의창군 광이 글씨를 썼다.
송광사 승탑원[부도전]
(‘송광사 벽암대사 승탑’은 1999년 4월 23일 전북 문화재자료 제144호 지정)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을 불탑이라 하고, 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를 승탑이라고 한다. 승탑원은 대웅전에서 북쪽으로 약 130m 떨어진 곳에 있다. 16구의 승탑과 2기의 비가 있다.
명문이 있는 승탑은 조선 후기 어떤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행했는지를 알 수 있어 귀중한 역사 자료이다. 특히 승병장으로 유명하였던 벽암 각성대사의 승탑[부도]가 있다. 벽암각성 대사는 조선 현종 원년인 1660년에 완주 송광사에서 돌아가셨다고 전하고 있어 승탑을 세운 것도 그 무렵으로 본다.
참고 : 완주 송광사 홈페이지 http://songgwang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