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 소문도 없이 2018년 여름 열대아가 시작됐는지 24시간 푹푹 삶아대는
날씨 때문에 간헐적으로 내리쏟는 소낙비가 박카스 입니다. 과거에는 소풍 때
비 오는 것부터 행사 진행 중에 비가 오면 낭패를 보기 때문에 장마란
지긋지긋한 단어였습니다만 언제부터인가 날씨와 상관없이 사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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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오는 데로, 날씨가 나쁘면 나쁜 데로, 큰 반응 없이 말입니다.
미치게 좋을 것도, 절망적이게 나쁠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각박해졌다는
반증이 가능할 것이고 서프라이즈 할 감정이나 맨-탈이 무덤덤해진 것으로 자가
진단해봅니다. 지난번 대리 나갔다가 콜이 끊기는 바람에 강변 CGV를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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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고나왔다는 것 아닙니까? 이후로 제 조급증이 발동하여 안성, 평택,
왕십리, 그리고 다시 동 서울을 오가며 놓친 ‘변산‘을 접수하러 미친놈처럼 다닌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정신 나간 청춘이라고 해둡시다.
영화 ‘변산’ 은 변두리에 있는 산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전라북도에 ‘변산‘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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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이 있습니다. 지금은 채석강보다 사이즈가 적어졌지만 제가 청춘이었을 80년
대에는 ‘변산 해수욕장’이 전라도 권에서는 가장 핫 프레스 이었다는 것만 아시라.
누가 그랬다지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그가 보여준 진심이 그
사람의 천성이라고, 누구나 숨기고 싶은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사람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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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면서 또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영화
‘변산’속으로 빠져 들어가 봅시다. 야호! "젊어서 청춘이 아니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청춘이다"라는 말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학수(박정민)는 어머니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던 건달 아버지와 ‘보여줄 건 노을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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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래퍼의 꿈을 키웁니다. ‘쇼미더 머니’ 도전만 6번째,
계속된 탈락에 지칠 무렵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자신을 남몰래 좋아했던 선미(김 고은)는 작가가
되었고, 자기가 괴롭혔던 친구 용대(고준)는 건달이 되었으며, 자신의 시를 훔쳐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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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생 원준(김 준한)은 지역신문기자가 되어 나타납니다. 흑 역사와 차례로 마주한
학수는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소싯적에는 아버지가 학교에 오는 게 창피했습니다.
아버지가 특별한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우체국 트레이드마크였던 빨강색
자전거 때문에 내가 집배원의 아들이라는 것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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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도 그때도 제가 호래자식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니 그렇다고 저를 두
번 죽이지는 마시라. 좌우지간 난 울 아버지와 다르다고, 아니 다른 사람이 될
거라고 다짐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질풍노도의 시기를 넘기고 내가 정서
적으로 안정이 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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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창피해했던, 판단하고 비판을 쏟아낸 아버지의 모습들이 다양한 형태로
내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심한 성격, 행동 하나에도 내 안에 울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물론 완전히 똑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성장한 환경은 많은 면에서 아버지와 완전히 달랐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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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버지와 닮은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뜻입니다.
내가 미운 짓을 하면 울어머니는 “영 낙 없이 지 애비 닮았다”는 말을 하시곤 했어요.
그말이 어때서, 그러거나말거나 상관없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많이 야속할 만큼
제게 있어 아버지의 존재감은 바닥이었던 것을 고해성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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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제가 아버지를 연민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어쩌면 철인 인지도 모릅니다. 마하트마 간디말입니다.
동서남북이 다 막힌 환경 가운데서, 특히 어머니같은 천적 앞에서(성격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신 아버지에게 불효자식이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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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요양원에서 지독한 고독과 싸우고 계신 아버지께서 훌훌 털고 일어나시어
반드시 90세,100세를 넘기실 것을 응원합니다. 사실 우리는 내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누구도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것을 인식하고 벗어나려고 할수록 내가 그 안에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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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더 잘 들어오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문제는 그곳을 벗어 나려는 몸부림
속에서 내가 속한 환경의 단점만 보고, 장점을 보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곳은 없는데 내가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과정에서 이상하게 단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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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하게 되면서 그 주위에 있는 장점들은 보지 못한단 것입니다. 그렇게 몸부림침으로써
그곳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런 몸부림도 괜찮겠지만, 사실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과거,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변산'은 그에 대한 영화입니다.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는 잊고 고향을 십년간 등져버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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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 대한 얘기, 그런데 더 이상 아버지로 여기지도 않는 생물학적 아버지가 죽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고향에 내려와 이후 그곳에서 발이 묶여버립니다. 학수는 그렇게 발이 묶이면서
본의 아니게 자신의 친구들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는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당시에 보지 못했던 것들도, 몰랐던 것들도 너무 많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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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있습니다. 자신을 일방적으로 바라보던 선미도, 자신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장례식에
올수 없었던 상황도, 학수는 자신의 관점에서만 봤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학수의 과거도
10여년이 지나서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만나 과거의 사람들로 인하여 재해석 됩니다.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된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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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광주항쟁을 온 몸으로 치룬 저는 내장산과 김제를 오가며 철 장사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맡아 하셨던 ‘반도 여관‘에 특사로 보내졌는데 어머니가 졸지에 부재중이니
더 이상 학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녹색 하복을 입고 들어간 변산 해수욕장은 남도의
보라카이든지, 하와이일 것입니다. 맨하탄 나이트클럽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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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신 해변의 낭만과 맥주, 갓 잡아 올린 횟감, 여자, 없는 것 빼놓고 다 있습니다.
한 철 장사에 어머니께서 청파여관을 계약하였고 이모부가 해변에 상가 한 칸을 들어갔을
것입니다. 같은 시기 정읍에서 ‘금강여인숙’을 운영 하시던 어머니께서 영등 포 갈매기
(삼촌)가 조달해준 영 순이 누나때문에 시비에 휘말리는 바람에 우리들의 보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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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전주교도소로 수감되면서 우리 업소들은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됩니다.
물론 이 일은 어머니와 저밖에 알지 못할 것이나, 그나마 전체의 그림을 모두 아는 사람은
18살 소년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낱 꼬마에 불과했던 제가 감당해야할 삶의 무게는
데드 포인트 그 이상이었습니다. 진즉에 학교를 접수했고, 소년 가장에 식구들을 지켜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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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는 사명감으로 내 청춘은 질풍노도이었고 이글거리는 용암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내가 이런 쪽으로 경쟁력이 생긴 것은 순전히 환경 탓으로 봅니다.
저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5월 광주 때 도청 앞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였고 ‘변산‘에서 철 장사하면서 물어 빠져죽은 사람, 칼 맞고 죽은 사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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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직접 본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당시 ‘변산‘은 해변 가까이에 상가들이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멱을 감거나 일광욕을 하고 맨발로 바로 맥주를 먹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응답하라 1981변산이여!(계속)
2018.7.14.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