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삼매경
캐나다 뮤즈 한국 청소년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수필가 박혜정
이번 여름방학 동안에는 그동안 보고 싶었던 드라마를 보기로 했다. 평상시에는 드라마를 보고 싶어도 궁금해서 계속 보아야 하기 때문에 너무 시간을 빼앗기는 것 같아 볼 수가 없었다. 전에 ‘대장금’이 나왔을 때 비디오로 본 적이 있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이라 처음부터 보려니 비디오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비디오로 보는 것은 장점과 동시에 단점이 있다. 전부 다 빌려 놓으면 1주일을 기다리지 않고도 볼 수 있지만 반면에 궁금해서 계속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나는 여태 밤을 새 본 적이 없다. 하루 밤을 새면 그 다음날 일에 지장을 받기 때문에 시험 공부를 하든, 놀러 가든 꼭 잠을 잔다. 그런데 대장금을 보았을 때는 너무 궁금해서 하나 끝나면 다음 것을 비디오 기계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창밖이 훤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다 밤을 새다니!” 그 이후로는 가급적 드라마를 보는 일을 자제하고 있었다. 비디오 가게 사장님이 “어떤 할아버지께서 ‘불멸의 이순신’ 이라는 드라마를 계속 3일 낮 밤을 보시다가 응급실에 실려 가셨어요.”라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번에는 인터넷을 통해 보다 보니(정식으로 돈을 지불하고) 1주일을 기다리며 드라마를 보았다. 월 화 드라마로는 ‘동이’와 ‘자이언트’를, 수 목 드라마로는‘제빵왕 김탁구’와 ‘로드 넘버1’, 주말엔 ‘전우’를 보았다. 금요일에는 그동안 계속 보아왔던 쇼 프로를 보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일일 드라마 ‘엄마도 예쁘다’까지. 하루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모처럼 신나는 방학 같다.
‘동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 역사 공부도 하게 되었다. 조선 21대 왕인 ‘영조’의 생모이며 숙종의 후궁인 ‘숙빈 최’ 씨의 이야기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권력의 허망함도 느끼게 되고, 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모함을 보면서 “권력을 가지기 전에 자유로웠을 때가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드라마 전반에 흐르는 우리 악기인 해금의 아름다운 소리.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동이에 등장하는 세 여주인공을 인물 별로 커플 매니저가 꼽은 신부 감 순위도 흥미롭다. 1위는 수동적이기보다는 자기 의사가 분명하고 톡톡 튀는 매력의 능력 있는 여성인 ‘장희빈’. 2위는 단아하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부모 세대에 어필하는 현모양처 형의 ‘인현왕후’. 3위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조언을 주는 친구 같은 애인으로 편안함을 주는 ‘동이’.
이젠 역사와 고전 문학도 달리 해석되는 시대이다. 장희빈만 해도 악독한 사람으로 표현되다가 이젠 신부 감 1위라니! 이전에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더니 이제는 능력이 있고 없고로 구분이 된다. 예를 들면 ‘흥부와 놀부전’도 흥부는 착하고 놀부는 나쁘다는 평가에서 흥부는 대책 없이 아이만 낳은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드라마 ‘자이언트’를 보면 사업을 하는 것이, 지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특히 건설업의 경우에는 정치를 끼고 해야 하는 것임을 알았다. 도로 공사, 지하철 공사 등등. “큰 규모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머리가 아플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불법 정치자금, 위장 전입, 땅 투기 등등. 정치인들 청문회를 하는 것을 보면 그런 내용이구나!” 하는 것도 대충 짐작이 갔다.
‘로드 넘버원’을 보면서 리더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 가지 예로 강을 건너는데 두 사람의 소대장이 다른 방법을 썼다. 한 소대장은 적의 눈에 띄지 않게 빨리 건너야하므로 강폭이 좁은 상류를 택했고, 다른 소대장은 강폭은 넓지만 강물의 속도가 느린 하류를 택했다. 거기 에다 적의 공격에 대비해서 잠수해서 물속으로도 갈 수 있도록 배낭에 돌까지 넣고, 총은 물이 들어가지 않게 잘 싸매고 강을 건넜다. 결국 상류로 건넌 군인들은 적의 공격을 받아 거의 다 죽었고 하류 쪽으로 건너던 군인들은 다 살아서 무사히 강을 건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정치에서도, 사회에서도, 기업에서도. 작은 단체라 해도.
‘제빵왕 김탁구’ 인터넷에 자주 오르내리고 일본에서도 인기가 대단하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다. 시청률이 40%가 넘게 나오는 것 답게 재미있고 유익하다. 이 드라마에는 멘토인 스승님의 한마디 한 마디가 귀에 쏙쏙 들어와서 좋다. “만나야 하는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 원수도 엄마도. “선(善)이 결국은 악(惡)을 이긴다.”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면 사람을 변화시킨다.” 라는 생각으로 모든 악인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탁구. 역경에 처했어도 ‘이 없으면 잇몸으로’ 라는 생각으로 -예를 들면 나쁜 마음을 가진 동생으로 인해 후각과 미각이 마비되어 빵 만들기가 힘들었지만 손의 촉감으로 빵 반죽을 알아내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시시각각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 ‘탁구’가 있어서 이 드라마가 좋다.
이젠 방학도 거의 끝나가기 때문에 드라마도 거의 끝나기를 바라며 보고 있다. 몇 부작 드라마니까 얼마 남았고 계산하면서 스토리까지 미리 예상하며 보게 된다. 물론 방학이라고 연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인문화의날, 밴쿠버 동물원 40주년 기념 연주, 리치몬드 연주 등- 그래도 드라마를 기다리는 즐거움에 더위까지도 가뿐히 지나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