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랑
푸근한 겨울비가 새벽녘부터 마치 봄을 부르듯 부산스럽게 2월로 들어서던 날에 나는 밴쿠버 시온 선교합창단 지휘자님의 권유로 손양원 창작 오페라 밴쿠버 공연유치 준비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공연유치 준비팀은 목사님 세 분과 밴쿠버 시온 선교합창단 지휘장님과 총무님 그리고 나, 6명이었다. 그 당시 나는 손양원 창작 오페라에 대해 무지해서 타이틀로 내걸린 손양원조차 낯설고 생소했다. 생동감이 있는 현장을 좋아해서 오페라며 뮤지컬, 오케스트라, 심지어 발레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무대 공연장을 즐겨 찾던 나였지만, 오페라단의 이름 또한 생경했다. 더 더군다나 밴쿠버 교회협의회 주최로 고려 오페라단이 초청되었고, 공연작이 제6회 대한민국 오페라상 창작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며 제1회 대한민국 창작 오페라 페스티벌 선정 작품이라는 것 또한 준비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공연 준비 팀원으로 내가 처음 한 일은 공연에 관한 보험을 드는 일이었다. 단원이나 관객이 공연 중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파생될 여러 가지 상황을 간과해서 또 공연장 대여를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티켓 판매와 광고 협찬을 받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도 팔아야 했지만, 외국인 교회를 다니는 내게선 그다지 좋은 성과는 나오지 못했다. 굳이 그 이유를 들자면, 오페라에 관련된 홍보물이 아쉽게도 한글로만 인쇄되어 처음부터 우리 교회의 캐네디언 교인들은 홍보 대상에서 배제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안의 많은 소그룹 중의 하나인 한인 모임을 무작정 찾아 나섰다. 하지만 내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 역시 손양원 목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티켓 판매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밴쿠버에서 이틀 동안 한국오페라 공연단의 공연이 있다는 정보 역시 알지 못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본이 되는 좋은 내용이기에 교회뿐 아니라 내가 속한 문인 모임에서도 성심껏 열심을 내어 홍보해 보았지만 그다지 환대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행히 뮤지컬에 관심을 표하는 우리 교회 몇몇 외국인 지인들 덕분에 티켓은 나갈 수는 있었지만, 왠지 마음은 씁쓸했다. 사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향해 오페라 티켓을 파는 일은 내겐 무척 어려운 일이었는데, 손양원 목사님의 일대기를 읽고 난 후의 감동으로 꿋꿋하게 나설 수 있었던 거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현실의 벽은 내게 너무 높았고 무엇보다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외적 자아와 내적 자아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평소에 나의 밝고 명랑한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내가 수줍음을 몹시 타는 것을 의아해할 것이다. 기본적인 내 성향은 내성적인 면이 더 강하던 사람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의 기쁨을 표현하고 나누다 보니 점점 외향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는 있다. 그래도 여전히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은근히 부끄러운 마음마저 드는 나를, 담대히 낯선 사람들 앞에 서 있도록 용기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예전의 나였으면 감히 시도도 해 보지 않았을 일도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은혜의 기적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거나 생각조차 떠올려 본 적 없는 일도 하게끔 하실 때가 있는데 손양원 오페라와 관련된 모든 것이 그랬다. 한주 한주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공연 날이 다가오자 혼란스럽고 당혹스럽던 마음들은 사라지고 손양원 오페라는 오히려 스러져가는 내 안의 숨겨진 작은 불씨 한 톨을 찾아내고 있었다.
드디어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준비팀원들의 염원 속에 서서히 오페라의 막은 올라갔다. 희한한 것은 내가 무대 위의 배우도 연출가도 아닌데 긴장의 끈이 내려놓아지지 않는 거였다. 올라갔던 막이 내려올 때까지 숨 졸이고 지켜봤던 오페라는 기대 이상으로 많은 호응을 끌어내며 감동을 주었다. 절찬리에 첫 공연이 끝나자 입소문은 단 하루 만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튿날의 공연 역시 아쉬움과 환호 속에 성황리에 막이 내려졌다. 그런데…… 오페라의 여운이 깊고 넓은 파장으로 그 울림이 내 안에서 여전히 울려댄다. 아름다운 곡에 부르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음색으로 열창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정말 아름다운 건 곡도 부르는 성악가의 목소리도 아닌 아름다운 사랑을 주고 간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실존 인물과 실제 있었던 이야기로 독창, 중창, 합창 등으로 심금을 울리며 부르는 대사 속에 담긴 아름다운 사랑과 아름다운 사람 덕분에 지난 한 달 동안의 고되었던 시간이 배로 보상받는 것 같았다.
오페라의 주인공인 손양원 목사는 일제 강점기 때는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여수반란 사건 때(1948.10.21)는 두 아들 손동인과 동신을 인민군의 사상에 젖은 큰아들의 후배로부터 총탄에 잃는다. 두 아들을 잃고 비통에 빠져 절규하던 그가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의 참사랑을 깨닫고 인간관계로 얽힌 아버지의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십자가의 사랑 앞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두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안재선을 하늘 아버지의 마음으로 양아들로 받아들인다. 그 후, 6.25 동란이 일어나고 한국전쟁(1950~1953) 당시 손양원 목사는 피난을 거부하고 교회를 지키며 북한 괴뢰군들의 총탄에 그 역시도 순교한다. 이것이 손양원 뮤지컬의 줄거리이자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이다.
나는 오페라를 연이틀 두 차례 보았는데 첫날 관람 때는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내게 이입이 되었다. ‘나라면…’ ‘나였다면…’ ‘과연 내가 그들이었다면, 난 어찌했을까?’ 죽음이 두려워 총탄 앞에서 타협을 선택했을까? 아니면 나 역시도 그들처럼 기쁨으로 순교를 받아들였을까? 손양원의 큰아들 손동인은 권총을 들고 서 있는 후배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는 그 순간에도, 예수쟁이는 다 죽이라고 고함치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를 믿으오. 그러면 평화의 사람, 구원받고 기쁨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거요”라고 권한다. 권총을 겨누며 마지막 소원을 말해 보라는 후배 안재선에게 찬송가를 부르겠다며 순교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총탄에 쓰러지는 큰아들 손동인. 찬양하며 쓰러져가는 형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동생 동신도 “내 신앙은 형님과 똑같고 내 아버지 애양원의 손 목사님은 순교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고 했다며 총알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의 나이는 알려진 바 없으나 순천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고 하니 고작 열너댓 살밖에 더 되었겠나….
죽음 앞에서도 성령 충만으로 감사하는 두 형제의 모습은 성경 속의 첫 순교자 스데반이 오버랩 되었다. 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주님, 이 죄를 이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행전 7장 59, 60절)라고 외치며 순교한다. 극한의 공포가 엄습한 가운데 평온함을 유지하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그 마음. 감사로 순교를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라 기뻐하는 그 마음. 나 또한 그들과 다름없는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는 크리스천인데,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그 상황에 과연 나는 어떠한 모습일지… 두 형제가 남긴 진한 감동과 여운으로 숙연해졌다.
동인과 동신 형제에 이입된 채로 첫날의 공연을 보았다면, 둘째 날에는 두 아들을 잃은 손양원 목사와 순천사범학교 선배인 동인과 나이 어린 동신을 저격하고 살인자가 된 안재선으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앞에 자신을 용서하고 양아버지가 되어 주겠다는 손양원 목사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살인자 안재선의 혼란스럽고 괴로운 마음. 그는 어떻게 자기 같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느냐고 믿지 못하면서도 참회의 눈물과 회개를 통해 깨닫는 참사랑.
“걷잡을 수 없는 악에 휘감겨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고, 자신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도 알겠는데 나를 용서 하신다는 당신을 알 수 없다. 내 어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받을 수 있겠소. 그러나 묻히지 않는 용서의 힘 누를 수 없는 사랑의 힘 그 힘에 나 못 이겨 나 이제 당신을 아버지라 하리오. 끝없는 용서, 영원한 사랑, 죄에서 해방된 기쁨, 놀라우신 주 은혜, 구원받은 새 생명 주님의 은혜” 그가 쏟아내는 절규 속에 흘리는 눈물과 고백의 아리아는 마치 나를 대신해 이야기해주는 듯이 가슴이 저미고, 그가 느끼는 혼란스러운 갈등이 고스란히 내게도 느껴졌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음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울부짖는 살인자 안재선의 애절하고 절절한 목소리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에 그대로 녹아들어 쉼 없이 내 안에서도 그의 눈물과 뒤섞이고 있었다. 곧이어 뮤지컬의 대미였던 장례식 장면에서 손양원 목사는 애양원 교우들에게 인사말 대신 ‘아홉 가지 감사로’ 이야기하겠다 한다. 며칠 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불행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그의 감사 기도는 내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감동을 넘어 흐르는 눈물을 더는 막지 못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간결한 손양원 목사의 아리아는 숨소리조차 멈춘 듯한 객석을 향해 속삭이듯 흘러나왔다.
“사랑의 주님 내 주님께 찬송을 드리오니 이 죄인의 두 아들이 순교자가 됨이라. 한 명의 순교자도 한없는 축복인데 두 아들을 모두 다 순교자로 받으셨네. 사랑의 내 주님께 영광을 돌리오니 내 아들의 원수를 아들로 주심이라.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치신 말씀을 실천케 하셨으니 감사받으소서. 사랑의 내 주님께 간절히 비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게 축복해 주옵소서. 가인의 후예 위해 제물이 되오리니 순교자의 반열에 저를 세워 주옵소서. 아멘.” 손양원 목사의 간절하고 애잔한 눈물의 아리아가 끝나자, 장례식에 참석한 애양원 교우들의 흐느낌 속에 순교자의 찬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 알의 밀로 죽어 주의 나라 이루리……” 연이어진 찬송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끌지 않았음에도 관객 모두의 마음과 눈과 입술을 타고 나오기 시작했다. 작은 불씨 한 조각이 큰불을 일으키듯 삽시간에 공연장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마치 각본에 쓰여있었던 것처럼 관객과 배우와 무대가 하나 되어 부르는 감동적인 합창은 정말 아름다웠다. 샘솟는 눈물 속에 포효하는 엄청난 환호와 박수갈채를 둘러 입으며 무대의 막 또한 진한 여운을 삼키며 서서히 내려갔다.
공연이 끝나고 무슨 연유인지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빛이 났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이 나눠준 사랑이 고스란히 감동의 물결로 담겨있는 듯. 문득 요한복음 1장 9절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 순간만큼은 한 공간에서 함께 느끼고 함께 가졌던 착한 마음 착한 모습 모두가 좋은 사람을 지향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아니 나의 얼굴에도 생긴 미묘한 변화의 밝은 빛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나의 삶을 비춰주는 등대가 될 것 같다.
올봄에 내게 찾아온 아름다운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주고 간 아름다운 사랑의 기적. 그것은 소멸하여가고 있던 내 안의 작은 불씨 한 톨을 찾아내어 닫혀있던 귀와 눈을 열고 마음의 문 또한 활짝 열어젖히며 새로이 희망의 불길을 그어 놓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열을 내고 나를 드러내고자 하던 일들 모두 죽음을 초월한 사랑 앞에 다 내려놓고 겸손하게 사랑으로 감싸 안는 그런 믿음의 모습을 지녀야겠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 에베소서 4장 32절의 말씀을 불길 속에 불어 넣으며… 난 오늘도 마음에 감사의 행복을 지핀다.
-2018년 불쑥 찾아 든 칠월의 불볕더위 속에서 불현듯 떠오른 올봄이 생각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