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정음시조문학상
별의 기록문 외 4편
표문순
달 속에서 자라던 꽃잎이 떨어지면
엄마는 모달에서 채집한 별을 오려
열세 살 시트 위에다 감쪽같이 수를 놓았다
달이 필 때마다 늘어나던 붉은 별
먼 잠을 덮고 있던 촘촘한 실밥들이
미숙한 나의 우주를 경영하곤 했었다
하마터면 잊을 뻔한
공전하는 아이를
엄마의 기록으로
빛나게 일궈놓아
슈퍼문
그것이 와도 까딱없이 밤을 차렵했다
- 《가히》 2023. 창간호
자화상
앞 이빨이 새까맣게 닳아 빠진 노인의
주름 많은 웃음에서 환희를 보았다
무작정 물들어 있다가 덩달아 환해졌다
불불대는, 잇몸으로 조음된 언어들이
자꾸만 오므라드는 말허리를 툭툭 치며
몰라도 알것만 같은 마음을 오물거렸다
느슨한 움직임이 처져있는 눈빛과
광대뼈가 괴고 있는 단단한 노동들
짙어서 더 깊어지는 오래된 곡선의 힘
- 《현대시학》 2022. 5/6월호
디그레이드Degrade
사방이 길이라도 나는 늘 일방이었다
일순간 잘못 탔던 방향에서 당황스레
새로운 길 하나를 만나 벚꽃에 취했던 날
경험만한 지시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비밀처럼 만났었던 꽃날花日을 부풀리며
내 뒤만 따라와 보라고 오른손을 깜박였지
언제나 그렇듯이 애먼 쪽으로 들어서며
억양 높은 기계적 지시어에 빠졌다가
아주 긴 방향을 타는 점멸적 모녀 사이
- 《정음시조》 2022. 제4호
네 이름은 '탱고'
낙엽이 자꾸 떨어져서 개 한 마리 입양했다
외로움을 타지 않는 개라고 좀 더 불렀다
얼굴이 증명서처럼 명랑하고 반반했다
개는 기척에 주파수를 맞춰놓고
저와 나의 거리를 아코디언처럼 연주하며
창 앞에 엎드려 있는 햇볕과 대치 중이다
잘근잘근 물어뜯은
나의 웃음과 잡담과
음악과 커피향과
방치된 마당의 시간
외로움 타지 않는 개
그딴 건 세상에 없다
- 《정형시학》 2022. 가을호
단 소금
얇상한 엉덩이에 사발 하나 괴어놓고
동여맨 나이롱 끝 풀어볼 생각도 말고
잊은 듯
몇 해 놔두면
단맛이 들거라네
든다는 건 기다리는 것 오래도록 버리는 것
짠 것과 쓴 것들 일테면 눈물 같은
억장들
다 내리고 나면
혀끝에서 만나는
- 《오늘의시조》 오늘의시조시인회의 2023.
- 《정음시조》 2023.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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