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2026.4.25.토요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1베드5,5ㄴ-14 마르16,15-20ㄴ
복음 선포자의 삶의 자세
“겸손, 깨어있음, 정주”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시편89,2)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AI 에게 성경과 불경을 동시에 읽힌 이후 대답한 충격적인 한마디는 “지금 네 앞에 있는 사람을 네 자신처럼 대하라.”란 말마디였다 합니다. 나름대로 힘겹게 연옥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서 연옥고통을 겪는 분들 직 천국행이라 감히 말합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판단은 금물이요 무한한 침묵과 인내, 이해와 수용의 자세가 긴요합니다. 정말 많은 이들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연옥고통을 받고 있는 듯 생각됩니다.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세월의 더께가 쌓인 나이테는 어떤 재주로도 흉내 낼 수 없다. 사람들은 그의 성과에 감탄하지만 그의 노력은 따라하지 않는다.”<다산>
“중간에 그만두지 않으면 쇠와 돌에도 무늬를 새길 수 있다.”<순자>
힘들어도 내 “삶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끝까지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 마르코 복음 사가는 바오로 사도의 조력자이자 오늘 베드로 사도의 충실한 제자였습니다. 오늘 제1독서 베드로 전서 후반부 다음 구절은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선택된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1베드5,13) 오늘 다루는 마르코 복음서는 아마도 60년 이전에 로마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며, 당시 요한 마르코가 로마에 있었다는 증거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복음서는 그리스어로 쓰였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마르코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의 요청으로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록했다합니다. 이 복음서에서 베드로의 위치를 보면 이러한 전승을 뒷받침한다 싶습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세대의 신자들에게 주는 부활하신 주님의 선교 사명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영광의 파스카의 주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복음 선포의 대상이 됩니다. 복음 선포는 교회 신자들의 존재이유요, 그 삶 자체가 복음 선포의 삶이어야 합니다. 복음 선포를 명령하신 주 예수님은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고, 동시에 복음을 선포하는 제자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심으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면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니 말 그대로 초월과 내재의 주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마다 복음 선포의 사명 수행의 모습은 다 다르지만 바로 내 삶의 자리가 복음 선포의 장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존재론적 복음 선포의 삶이라 정의합니다. 제 행복기도 한 대목도 이를 입증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바로 복음 선포의 꽃자리, 하느님 나라 천국이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꽃자리가 내 복음 선포의 장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바로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해 답을 줍니다. 복음 선포 자는 동시에 영적 전쟁 중의 주님의 전사도 됩니다. 죽어야 끝나는 영적전쟁이니 믿는 이들은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입니다.
첫째, “겸손하여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지도자들의 의무 부여에 이어 젊은이들을, 바로 우리 모두를 대상으로 명령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도 단숨에 읽혀지는 겸손의 요구입니다.
“젊은이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강한 손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때가 되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겸자무적, 아무도 겸손한 자들을 이기지 못합니다. 겸손과 지혜는 함께 갑니다.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겸손한 자들이 바로 지혜로운 이들입니다. 이런 겸손한 자들에 대한 주님의 축복이요 겸손한 삶 자체가 최고의 복음 선포입니다.
둘째, “깨어 있어라”입니다.
예나 이제나 영적전쟁 치열한 현실입니다. 안팎의 적도 유혹도 많습니다. 이래서 주님의 기도에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해 달라”는 청원과 더불어 깨어 있는 삶이 절실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이 참 적절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를 대항하십시오.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믿는 이들을 양상이나 정도는 달라도 나름대로 제 삶의 자리에서 영적전투중이요 서로는 주님의 전사에 영적 전우가 됩니다. 진짜 믿음의 전사들은 겸손하고 깨어 있기 마련입니다.
셋째, “정주하여라!”입니다.
제 삶의 자리에서 종신불퇴의 정신으로, 믿음으로 버텨내고 견뎌내는 정주의 인내와 믿음입니다. 베드로의 간곡한 권고입니다.
“여러분이 잠시 고난을 겪고 나면,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신 그분께서 몸소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시고 굳세게 하시며 든든하게 하시고 굳건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은총 안에 굳건히 서있도록 하십시오.”
초지일관, 시종여일, 제자리에서 은총 안에 굳건히 서 있는 정주의 자세는 그대로 진인사대천명, 믿음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각자 복음 선포의 삶의 제자리에서 겸손히, 깨어, 정주의 삶에 최선의 노력을 하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축제의 기쁨을 아는 백성!
주님, 그들은 당신 얼굴 그 빛 속을 걷나이다.”(시편89,16).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첫댓글 아멘.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환회 평화 님 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