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산시기 | 생산품목 | 용 도 및 효 용 | 주 생 산 지 |
---|---|---|---|
봄 | 생미역 건미역 | 동맥경화, 고혈압, 위암, 비만 피부를 곱게하며, 보혈제 | 중.통리, 예송리 등 동부지역 |
여름 | 톳, 청각, 다시마 우무 | 톳은 전량 일본 수출 - 고혈압, 당뇨, 변비, 김장용, 여름철 냉채 | 중.통리, 예송리 등 보길도 전지역 |
가을 | 멸치 | 칼슘, 심장병, 골다공증 예방 | 보옥리, 선창리가 주 생산지 |
겨울 | 김 | 비타민, 위궤양, 소혈전, 심근경색, 아미노산, 미네랄 포함 | 보길도 전 지역 |
사계 | 전복 | 산모의 젖, 고혈압, 피부노화방지,담석 용해, 간장 해독 | 보길도 전 지역 |
관광지별 | 판매소 명칭 | 품명 | 포장단위 | 단가 | 대표자 | 전 화 |
---|---|---|---|---|---|---|
예송리 상록수림 | 송림회관 | 가닥미역 | 1손 | 20,000 | 조정숙 | 554-9624 |
그린수산 | 생다시마 | 300g | 5,000 | 고성록 | 553-6837 011)9604-683 | |
건다시마 | 750g | 5,000 | ||||
토박이 가든 | 미역 | 싯가 | 김종주 | 553-7011 011)541-7011 | ||
쇠미역 | 싯가 | |||||
다시마 | 싯가 | |||||
김 | 싯가 | |||||
전복 | 싯가 | |||||
보옥리 뾰족산 | 청정식품 | 멸치액젖 | 5kg | 15,000 | 정춘배 | 554-1602 011)886-7714 (청정 바다에서 직접 잡은 멸치로 생산에서판매까지) |
멸치젖 | 5kg | 10,000 | ||||
멸치(上品) | 2kg | 30,000 | ||||
멸치(中品) | 2kg | 25,000 | ||||
멸치(下品) | 2kg | 20,000 | ||||
보옥민박 | 멸치(上品) | 2kg | 30,000 | 김옥동 | 553-6650 | |
멸치(中品) | 2kg | 25,000 | ||||
멸치(下品) | 2kg | 20,000 | ||||
보길도 식품 | 멸치액젖 | 2kg | 5,000 | 김중근 | 061)554-7791 011-615-4750 (보길도 해역에서 직접잡고 생산한 모든 특산품을 판매함) | |
멸치액젖 | 4.7kg | 10,000 | ||||
멸치액젖 | 10kg | 20,000 | ||||
전어젓 | 3kg | 10,000 | ||||
밴댕이젖 | 2kg | 8,000 | ||||
갈치속젖 | 1.5kg | 10,000 | ||||
새우젖 (보리새우) | 1.5kg | 10,000 | ||||
선창리 | 일등수산 | 멸치(上品) | 2kg | 30,000 | 전영민 | 553-6788 011)629-6778 |
멸치(中品) | 2kg | 25,000 | ||||
멸치(下品) | 2kg | 20,000 | ||||
건새우 | 1kg | 15,000 | ||||
다시마 | 1kg | 5,000 | ||||
미 역 | 1kg | 5,000 | ||||
중리 해수욕장 | 태성수산 | 황어, 농어, 도미, 우럭, 낙지, 장어, 전복, 소라 | 싯가 | 김건식 | 553-1894 019)605-1894 (직접 고기잡는 집, 중리해수욕장에서 송시열 글씐바위 가는 길) | |
통리 해수욕장 | 이슬민박 | 미 역 | 1kg | 5,000 | 전필환 | 553-6386 011)632-6392 |
다시마 | 1kg | 5,000 | ||||
부자네민박 | 성게젓 | 250g | 20,000 | 곽명례 | 553-6276 016)656-6276 | |
여항리 해수욕장 | 숲속의집 민박 | 전 복 | 1개 | 7,000 | 김시재 | 553-6574 019)607-6574 |
다시마 | 1kg | 5,000 | ||||
월송리 | 관광민박 | 미 역 | 400g | 4,000 | 이원동 | 553-6383 016)783-6383 |
다시마 | 500g | 4,000 | ||||
톳 | 2kg | 5,000 | ||||
전 복 | 1kg | 60,000 |
보길도는 하나의 커다란 자연공원이다. 동서12km 남북 8km로 15개의 부속도서를 거느리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숨겨둔 보석으로 남아있는 섬이다. 그 중심에 적자봉(425m)이 있다, 실질적으로 보길도를 이루는 섬이 적자봉이다. 적자봉이라는 이름은 산 자체가 상록활엽수로 이루어져 해가 비추면 나뭇잎이 햇볕을 반사해 산이 붉은색을 띤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적자봉을 중심으로 광대봉(廣大峰 311m), 망월봉(望月峰 350m)이 둥근 원을 그리듯 펼쳐져 있고 안쪽으로 고산 윤선도의 적거지였던 부용동이 있다.
적자봉은 난대림 지역으로 동백을 비롯해 200여종 이상의 난대림(상록활엽수)이 자생하는 곳이다, 산의 대부분이 난대림으로 덮여 있지만 8부능선부터는 섬회양목과 소사나무가 90% 이상으로 주종을 이룬다. 특히 능선에는 이끼식물과 덩굴식물이 가득해 마치 원시림에 들어온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동백꽃과 군락지가 좋은 곳이 많이 있지만 적자봉 만큼 많은 동백나무가 있고 붉은 꽃이 피는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11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동백은 이듬해 4월까지 꽃을 피우며 손님들을 맞는다. 쉽게 말해 적자봉은 제주에서 온 봄소식을 육지에 전해주는 전령사로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이 길은 원점회귀 산행으로 적자봉을 종주하는 길이다. 먼저 부용동의 고산 적거지였던 낙서재가 산행의 기점이다. 낙서재는 고산의 생활공간으로 지금은 돌담과 함께 터만이 덩그렇게 남아있다. 낙서재의 바로 옆으로 곡수당이 있는데 곡수당 옆을 흐르는 조금한 개울이 차낭골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차낭골을 따라 큰길 재를 오르는 산길은 대낮에도 어두울 만치 울창한 숲이 터널을 이룬다. 경사는 완만한 편이나 다소 답답함이 있다. 20여분을 오르면 큰길재 정상이 나온다. 큰길재는 부용동과 예송리를 연결하는 재로 옛날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이곳 사람들이 이용했던 길이다. 여기서 곧장 가면 예송리이고 좌측으로 오르면 광대봉이다.
광대봉을 뒤로하고 우측으로 접어들어 수리봉 능선으로 들어선다. 길이 가파르다 종주길에서 가장 어려운 가파른 길이다. 군데군데 바다를 볼 수 있는 바위가 있지만 온통 울창한 숲이 능선길을 이룬다. 50여분을 걸어 수리봉 정상에 오르니 보길도가 사방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남쪽의 해안이 아름답다. 능선을 바라보니 정상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시 정상을 향한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40여분이 소요된다. 지극히 평범하고 순탄한 길이다. 주변으로는 회양목과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몇 년전 까지만 해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태고의 신비를 간직, 이끼와 콩란으로 가득했던 원시림이 어느 때부터 인가 사람의 발길이 닿기 시작해 지금은 고속도로가 되어버렸다.
흐트러진 머릿속을 정리하며 적자봉 정상에 선다. 여기도 표지석이 없다면 정상인지 아닌지 아리송할 정도로 적자봉 능선은 전체가 완만하고 밋밋하다. 여기도 조망은 괜찮지만 잠시 숨을 돌리고 바로 옆의 누룩바위로 향한다, 적자봉 능선에서 전망이 가장 두드러진 곳이다. 바위에 대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높이가 10여m이상은 족히 되는 커다란 바위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광을 볼려면 여기서 담력시험에 들어야 한다. 누룩바위에 오를려면 한길쯤 되는 수직벽을 건너뛰어야 한다. 평상시 산행을 많이 했다면 모르지만 초보자라면 쉽지가 않다. 누룩바위 정상에 오르니 전망이 압권이다. 이런 다이내믹한 풍경이 대한민국 섬 어디에 또 있을까..... 동쪽을 보니 부드러운 능선위로 소안도가 솟아있고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예작, 당사, 사수,제주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는 추자군도와 진도의 조도군도가 북쪽으로는 넙도, 서넙도, 마안, 죽굴도등 셀수도 없이 많은 섬과 함께 땅끝 전망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발아래는 연꽃이 피는 형국이어서 고산이 이름을 붙였다는 부용동이 펼쳐진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누룩바위를 내려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뽀래기재를 향해 또다시 숲속으로 빠져든다. 계속되는 나무터널을 지나 425봉을 넘으니 뽀래기재로 향하는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좌측으로 보옥마을의 컬러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선명하게 빛난다. 종주산행 중 두 번째로 지나는 뽀래기재는 20여년전까지 보옥리 사람들이 부용동으로 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보길에서도 가장 외진곳인 보옥리는 20여년전까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뱃길을 이용하거나 이 길을 통해 도회지로 나갔다. 이곳 사람들은 지금도 보옥리를 뽀래기라 부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뽀래기재에서 망월봉 능선으로 오른다. 산줄기는 서북능선으로 이어진다, 서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선창리 앞 바다가 쏟아지는 햇살에 은빛으로 일렁인다. 망월봉을 버리고 한참을 가니 선창리재가 나온다 오늘의 마지막 고개이다, 이곳도 옛날 선창리 사람들이 부용동으로 넘어올 때 사용되었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오프로드 차를 이용한다면 부용동에서 선창리로 넘을 수 있게 길이 나있다. 선창리재에서 부용동 쪽으로 500여m를 내려오면 남은사로 오르는 길이 있다, 초입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무사안녕을 빌며 하나 둘 모아둔 돌탑이 있다. 30여분을 오르면 조금한 절집이 나타난다. 남은사다. 이곳은 물맛이 좋고 뒷산의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남은사를 들르고 싶지 않다면 선창리재에서 비포장 도로를 따라 부용동으로 바로 오면된다.
이 길은 최근 들어 산악인들로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길이다. 부용동의 반대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바다가를 끼고도는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따라 보옥리에 도착하여 보죽산(뾰쪽산)을 등반하고 마을 뒤 골짜기로 접어들면 등산이 시작된다. 보죽산은 국립지리원이 사용하는 공식 이름이나 이곳 사람들은 지금도 뾰쪽산이라 부른다.
보옥리 마을앞에 우뚝 선 보죽산은 초입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비록 봉우리는 낮으나 경사가 가파르고 정상까지 나무 터널로 이어져 있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과 함께 가뿐 숨을 몰아쉬면 정상의 상쾌함이 여러분을 반길 것이다, 이후는 상상속에 맞긴다.
보죽산 등반을 마치고 마을 가운데 길을 통해 오솔길로 접어들면 보옥리재로 가는 등반이 시작된다. 곳곳에 크고 작은 바위가 널려있다. 25분여를 오르면 폐사지가 나타난다. 백련사지다. 주변에 넓은 바위가 있는데 너럭바위라 부른다. 50여명은 넉넉하게 않을 수 있는 바위인데 이곳에서 보옥리 마을과 함께 추자도가 훤히 내려 다 보인다. 너럭바위에서 10여분을 오르면 뽀래기재고 이후부터는 425봉을 거쳐 적자봉, 수리봉, 큰길재를 거쳐 부용동(낙서재)으로 내려서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중에 하나인 예송리 마을 뒤편에서 시작된다. 마을뒤편에 예송마을 당집이 있다, 여기가 산행의 기점이다. 초입에 보옥리 10km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나 실질적인 거리인지 도상거리인지는 알 수 없다. 초입부터 나무계단이 시작된다. 이곳도 낙서재에서 오르는 길처럼 숲이 울창하다.
나무만 바라보며 30여분을 오르면 큰길재와 만난다. 이후 수리봉, 정상, 누룩바위, 뽀래기재를 거쳐 망월봉 능선으로 오른 뒤 망월봉으로 올라서면 된다. 망월봉 능선은 짧지만 곳곳에 바위가 있어 좌우로 바다를 바라보며 망월봉으로 갈 수 있다. 망월봉에 올라서면 선창리와 걸매도, 미역섬, 모래섬, 닭섬, 넙도, 서넙도등, 아름다운 다도해를 볼 수 있다. 하산은 선창리로 하면 된다.
보길도 [甫吉島]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속한 섬.
완도 남서쪽에 있는 노화도에서 약 3.8㎞ 떨어져 있다. 주위에는 노화도·소안도를 비롯한 큰 섬과 예작도·장사도 등의 작은 섬들이 있다. 섬의 명칭은 섬 내에 명당자리가 있다는 뜻(十用十一口[甫吉])으로 보길도라 했다.
최고봉인 적자봉(425m) 이외에 광대봉(311m)·망월봉(364m) 등 300m 내외의 산이 사방에 솟아 있으며, 중앙에 있는 좁은 저지는 농경지로 이용된다. 해안은 소규모의 만이 발달한 북동쪽을 제외하면 드나듦이 대체로 단조로우며, 암석해안이 대부분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 속하며, 동백나무·후박나무·곰솔나무·팽나무 등 250여 종의 식물이 자라며, 예송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예송리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40호)과 예송리 감탕나무(천연기념물 제338호)가 있다. 주민은 대부분 어업과 농업을 겸하며, 농산물로 쌀·보리·콩·고구마·마늘·무 등이 생산된다.
특히 마늘·보리·쌀 등은 생산량이 많아 농협수매가 이루어진다. 연근해에서는 도미·삼치·멸치 등이 잡히며, 전복·소라 등의 채취와 굴·미역·김 등의 양식이 이루어진다.
유물·유적으로 부용동정원(芙蓉洞庭園:전라남도 기념물 제37호)을 비롯하여 윤선도가 세운 세연정(洗然亭), 선백도 바위에 새겨진 송시열비(宋時烈碑), 보길나루에서 발견된 조개더미, 예송리에서 채집된 유경역자식석촉(有莖逆刺式石鏃) 등이 있다.
매년 음력 12월 30일 각 마을에서는 당제와 지신밟기를 하며, 큰 나무와 바위에 고사를 지내기도 하는 등 마을의 안녕과 무사고를 비는 풍습이 있다. 중앙의 저지대와 연안을 따라 취락이 분포하며, 북쪽 노화도와 마주한 간척지에 행정관서와 상가가 들어서 있다.
능선과 해안선을 따라 소도로가 동서방향으로 나 있으며, 해남군 토말과 완도에서 각각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섬의 남동쪽에 중리·예송리 해수욕장이 있다. 면적 19.32㎢, 해안선 길이 41㎞, 인구 2,978, 가구 1,113(2004).[백과사전]
보길도의 유래
'보길도' 라는 표기는 「동국여지승람」(1481년)에 등장하고 있어 그 구전 명칭은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간혹 고산(孤山)을 한자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길'이라는 글자는 전래 고유어로 된 지명이기 때문에 이러한 설명은 잘못된 것이다. '보길'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은 학설이 있다.
'뵈골두~배골두'라 부르는 학설 : 바구리의 옛말 ‘보고리’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것은 보길도 섬을 백도 쪽을 제외하고 바구니 모양 형태와 비슷하고, 인근 주민들은 이 곳을 '바구리 섬'이라고도 칭하기 때문이다.
'보고래'라 부르는 학설 : 보+가래’로 분석될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보'는 나무와 관련된 형태소로 짐작되고 '삽'을 뜻하는 고어로 보인다. 즉, 나무로 만든 보습의 방언형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일설에 의하면 옛날 영암지역의 한 부자가 선친의 묫자리를 잡기 위해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렀는데 이 지관이 '십용십일구 보길(十用十一口, 甫吉)'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부자가 이 글을 가지고 월출산에 있는 한 스님에게 뜻을 풀어줄 것을 요청하자 스님이 "섬 내에 명당자리가 11군데가 있는데 10군데는 이미 사용되었고 나머지 1군데도 이미 쓸 사람이 정해졌다"고 풀었다고 하며, 이 때문에 이 섬을 보길도라 불렀다고 한다.[위키백과]
보길도
보길도는 대표적인 남도의 섬 여행지로서 완도 남서쪽 32km 해상에 위치한 동서 12km 남북 8km의 아담한 섬으로 온대상록수림이 섬 전체를 융단처럼 감싸 이색적인 분위기가 짙은 곳이다. 완도군에 속해 있으나 해남 땅끝에서 가까워 여객선을 타면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보길도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생애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8세 때 큰집에 양자로 가게 되어 해남윤씨 집안 대종을 잇는다. 그는 30세 되던 해 이이첨 일파에 대한 탄핵으로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유배와 은둔으로 이어지는 일생을 보낸다.
그는 1637년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하고 제주도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중간에 머문 보길도의 수려한 풍광에 매료되어 이곳에 정착하기로 하고 부용동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고산은 자연을 노래한 많은 작품을 창작했고, 풍수지리, 천문, 음악 등에도 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와 ‘오우가(五友歌)’ 등 교과서에 등장하는 윤선도의 주옥같은 한시를 이곳에서 지었다고 한다. 그는 85세에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격자봉으로 오르는 도중에 조망되는 부용리 일원의 조망.
윤선도가 기거했다고 알려진 부용동 원림유적(사적 제368호)에는 조선조 전형적인 정원 양식을 취한 낙서재(樂書齋), 세연지(洗然池), 동천석실 등이 남아 있다. 또한 송시열의 글이 쓰인 바위, 천연기념물 40호 예송리 상록수림과 해변 등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여행지로 오래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보길도는 섬 중앙에 대형 운동장을 연상케 하는 분지가 형성돼 있고, 분지 한가운데에 부용리 주민들의 식수원인 수원지가 자리하고 있다. 섬의 최고봉인 격자봉(格子峰·430m)은 이 분지 남쪽에 솟아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황소가 드러누운 듯한 산세를 지닌 격자봉은 산 전체가 온통 상록수인 동백나무로 우거져 있다.
예송리 상록수림과는 다른 밀림 속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주능선에 올라서면 암봉이 줄지어 나타나며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어 산행하는 재미가 남다르다. 특히 격자봉 정상에서 북쪽으로 윤선도 유적지가 남아 있는 부용리 일원과 쪽빛 바다, 바다 건너 해남 땅끝과 달마산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정상 오른쪽엔 추자도와 작은 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격자봉의 의미
고산선생이 보길도의 주 봉우리를 격자봉(格紫)이라 명명한 것은 섬의 주봉을 성리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 :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후천적인 지식을 명확히 함) 개념과 주자의 자양서원(紫陽書院)을 연결시켜 격자봉이라 이름하였다.
적자봉(격자봉)
적자봉(433m)은 보길도의 주봉으로 산 이름은 고산 윤선도가 명명하였다. 원래 이름은 격자봉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적자봉으로 변하였다. 완만한 등산코스에 습지인 듯 칙칙한 느낌이 들지만, 능선에 올라서면 다도해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맑은 날이면 추자도, 제주도를 조망할 수 있다.
한편 적자산에는 황칠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기도 하다. 보길도의 주산이며, 해발 433m의 정상으로 큰기미계곡, 작은기미계곡, 부용리 마을에 접해 있으며 정상에서 제주도, 땅끝, 진도, 거문도, 추자도, 다도해, 남은사, 부용, 부황 마을, 주변의 작은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정상까지 부용리 곡수당에서 출발하면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며, 중간중간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들이 있으며 황칠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가막살나무 등 난대성 수종들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경치에 남해의 짙푸른 바다가 발아래 조화를 더하니 윤선도는 '선계인가 불계인가 인간이 아니로다. '라고 표현했다.[지식백과]
적자산(격자봉)
높이 425m이다. 격자봉이라고도 한다. 보길도의 주산으로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은둔지로도 유명하다. 사적 제368호인 윤선도유적지가 남아 있다.
그리 높지 않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정상인 격자봉에서는 다도해의 작은 섬들은 물론, 날씨가 맑은 날에는 남쪽 멀리 한라산까지 보인다. 한겨울에도 바닷바람이 따뜻해 겨울산행에 적합하며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산행의 묘미가 남다르다.
산행은 예송리에서 출발하여 격자봉에 오른 뒤 북바위 능선을 따라 부용동으로 내려온다. 산행 시간은 3시간 정도 걸린다.[두산백과]
적자산(격자봉)
보길도는 연평균 섭씨 15도를 보이는 난대성기후로 상록수림과 동백나무로 덮여있다. 보길도의 주산으로 아름다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둘러싸인 보길도에 소재한 산으로 지금까지 관광의 관심을 끌어온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를 이 곳 부용동 격자봉 산자락에 품고 있다.
해발 435m의 '격자봉'이란 이름도 고산선생이 명명하였다. 원래 이름은 ‘격자봉’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적자봉’으로 변하였다. 보길도 주봉인 격자봉은 아침 해가 떠오를 때 산 전면이 붉은색으로 변한다고 하여 적자봉 또는 격자봉이라 했다고 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황소가 드러누운 듯한 산세를 지닌 격자봉은 온통 동백나무로 우거져 있다.
소요시간은 왕복 3시간정도 걸린다. 중간 중간에 올라가다보면 조망할 수 있는 명소들이 있으며, 황칠나무, 종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가막살나무, 육박나무, 생달나무, 붉가시나무 등 난지성 수종들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경치에 남해의 바다가 발알 조화를 더하니 가이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할만하다.
정상에 서면 날씨가 맑은 날에는 남쪽으로 제주도와 추자도를 조망할 수 있다. 수리봉에서 약 500m 떨어진 8부능선에 위치한 천연의 돼지약수터에서 신선한 자연의 물맛도 맛볼 수 있다.
격자봉에 오르는 코스는 두 가지로 예송리에서 오르거나 부용동에서 오르는 방법이 있다. 예송리 코스는 마을 뒤쪽으로 골짜기에 길이 나있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올라가면 고목으로 줄지어진 둥근 터널이 나온다. 1㎞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길로 1시간정도 가면 정상에 오른다. 북바위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반대편 부용동이 나온다.
부용동 코스는 낙서재 뒤쪽으로 길이 나있다. 동백나무 숲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이 세 갈림길이 나온다. 이 중 한길은 격자봉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나머지 두 길은 예송리와 부용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정표가 없어 처음 오르는 등산객들은 잘못하면 격자봉이 아닌마을로 내려가게 될 수도 있다. 올라가는 내내 이정표가 없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보길도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곳 격자봉에 꼭 한번은 오르는 곳이다. 윤선도 유적지가 분포되어있고 올라가다 보면 중간 중간에 쉬면서 멋진 풍경도 보고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곳이 많다. 맑은날에는 정상에서 제주도와 추자도를 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쉴 수 있는 벤츠가 있고 이정표가 보인다. 뽀래기재 1.6km, 예송리 2.8km, 수리봉 0.9km 이렇게 표시가 되어있다.
이정표 뒤로는 돌탑이 쌓여 있다. 사람들이 정상에 올라 하나하나 올리다 만들어진 돌탑이다.
산행할 때 주의할 점은 요즘 날은 춥고 먹을 것이 없다보니 산에서 멧돼지가 많이 나오고 있다. 절에 사는 스님도 내려오기 무서울 정도로 멧돼지가 많다고 한다. 등산을 할 때는 꼭 지팡이나 막대기, 큰 우산을 꼭 챙겨서 올라가야 안전하다.[지역정보포털 향토자원]
적자산
윤선도의 흔적, 그리고 보길도 보길도는 조선조의 탁월한 가객 윤선도의 유배지로서 그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그러나 윤선도는 어디까지나 윤선도일 뿐, 보길도는 스스로도 그 자 태를 뽐낸다.
널리 알려진 보길도의 멋은 부용동과 예송리 해수욕장이다. 해송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이 곳은 한겨울에도 온화한 바닷바람을 일으켜 나그네의 여정을 깊게 해준다.
보길도에서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멋은 적자산 산행이다. 멀리 바다를 바라 보며 걷는 산행은 그 자체만으로 고즈넉하고 신비롭다. 적자봉에 오르는 코스는 두 가지로, 예송리에서 출발하거나 부용동에서 오르는 방법이 있다.
예송리 코스는 마을 뒤편 골짜기에 길이 나 있다. 살갑게 하늘을 가리고 뻗은 동백나무숲을 지나 올라가면 고목이 줄을 지어 늘어선 동근나무 터널이 나온다. 1km를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길로 1시간을 가면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다도해의 꼬마섬들이 산행객을 손짓한다. 요즘은 연무 현상이 일상적이지만, 맑은 날에는 운이 좋으면 한라산도 보인다고 한다. 북바위능선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반대편 부용동이 나온다. 소요시간은 3시간. 완도에서 보길도행 배가 많다.[한국의 산하]
시간이 멈춘 그곳은 자연품은 무릉도원
보길도 (甫吉島) 고산 윤선도가 머문 19.32㎢ 큰섬 통리·중리·예송리 해수욕장 눈길 상록수림·감탕나무 천연기념물 지정 공룡알해변·글씐바위도 꼭 둘러봐야
내 버디 몃치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밧긔 또 더 하야 머 엇 하리…. 윤선도 시조문학의 백미라 불리는 오우가(五友歌)는 이렇게 시작한다. 물과 바위, 소나무와 대나무, 거기에 달을 얹어 다섯을 벗으로 노래한 이 시조는 지은이가 보길도에 머물면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자호란 뒤끝의 피폐한 백성들의 삶과는 전혀 다르게 보길도 멋진 풍광을 배경 삼아 호사스러운 원림을 꾸몄고, 학자요 문필가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조정의 권력 투쟁에 초연하지 못했던 걸 감안하면 그의 평가가 간단하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리라. 누군가를 한 부분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니 평가는 각자에게 맡기고, 이쯤해서 윤선도와 보길도의 인연을 적어야 되겠다.
해남에 낙향해 있을 때 병자호란을 맞은 윤선도는 집안 노비와 주민 등 수백 명을 모아 의병을 조직해 강화도가 청나라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되돌아온다. 배가 해남 부근에 왔을 때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제주도에 은둔하기 위해 뱃머리를 돌린다.
그러다 바람에 막혀 보길도에서 잠시 기항하던 중 섬의 뻬어난 경치에 반해 거기다 정착지를 정한다. 쉰한 살 때였다. 윤선도가 정착지로 정한 곳은 산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인 지형이 아름다운 꽃을 닮았다 해서 마을이름도 부용동이라 지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이상향을 가꾸었다.
담양의 소쇄원, 진도의 운림산방과 더불어 한국의 3대 원림으로 불리는 부용동원림(芙蓉洞園林:전라남도 기념물 제37호)은 세 공간으로 나뉜다. 우선 누정(樓亭)공간인 세연정 주변이다. 흐르는 계곡물로 연못을 만들고 그 가운데 세연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 회수담, 동대, 서대, 옥소대 등의 유적이 있는데 동대는 가무가 가능한 야외무대였다. 세연정에 앉아 동대에 오른 기생의 춤과 노래를 즐긴 것이다.
다음은 주거공간으로 낙서재를 비롯해 곡수당, 곡수대, 동와, 서와, 연못 등으로 이루어졌다. 마지막 공간은 선계(仙界)공간인데 산중턱에 동천석실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골짜기 빗물을 모을 수 있는 작은 연못도 만들었다. 동천석실은 낙서재 맞은 편 능선 7부 능선쯤에 자리잡고 있다. 부용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이다. 여기에서 차를 마시고 도르래까지 설치해 음식물을 날라다 먹었다니 당시 형편에서는 그야말로 별천지의 삶을 산 것이리라.
양반이며 갑부였던 윤선도가 원림을 만들며 동원한 사람들에게 타당한 임금을 지불했을까? 술을 마시며 노래와 춤을 즐기도록 준비하고 시중을 든 건 누구였을까?
옆집 주민은 하루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뙤약볕 아래에서 김을 매고 있는데 부용동 주인은 시조나 읊고 있는 상상을 하는 건 당시의 상황을 곡해한 것일까?
지배자의 힘으로 건설한 웅장한 건축물, 예를 들면 앙코르왓트, 만리장성 등등에서는 그게 아무리 세계의 불가사의라 해도 나는 결코 큰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그걸 만들기 위해 숨져갔을 수많은 서민의 피와 눈물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왕권체제에서 그건 잘못도 비난받을 일도 아닐 것이다. 그냥 그 당시 체제의 한 단면일 테니까. 그래도 나는 거기에 전혀 마음이 가지 않는다. 부용동원림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훌륭한 장원이요, 거기서 국문학의 정수가 창작되었다 해도 내게 별 감동이 없는 건 그런 취향 때문이리라. 하지만 내 취향과는 관계없이 이 부용동원림은 보길도를 대표하는 유적지요 관광지가 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부용동원림이 이처럼 명성을 얻게 되자 보길도 가는 배도 많아졌다. 두 곳에서 갈 수 있다. 완도 화흥포항에서 출항하는 배는 노화도 동천항으로, 땅끝선착장에서 출항하는 배는 노화도 산양항으로 간다. 양쪽 다 들어가는 배편이 하루 열 번도 넘는다. 노화도에 내려 보길대교를 거쳐 보길도로 가게 된다.
이젠 보길도를 간략하게 소개해야 되겠다. 이 섬은 전남 완도군에 속하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도 속해 있다. 면적이 19.32㎢로 큰 섬에 속한다. 버스나 택시 등의 교통수단이 있지만 가능하다면 자가용을 갖고 가기를 권한다. 그게 편하고 시간과 경비 절약에도 좋기 때문이다.
완도군은 전국에서 유명한 전복 생산지다. 국내 생산량의 80%내외를 완도에서 생산하는데 보길도에서도 섬 주변 곳곳에서 전복양식장을 만난다. 소득이 높아 도시에서 어촌으로 돌아오는 인구가 많은 것도 완도군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는 인근의 노화도가 가장 주목 받고 있지만 보길대교로 이어져 생활권이 같아진 보길도도 비슷한 양상이다.
섬의 최고봉인 격자봉은 해발 425m로 여느 섬의 산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기는 부담스러운 높이다. 이 섬에서 이름 있는 해수욕장이라면 셋을 꼽을 수 있다. 모래가 고운 통리 해수욕장과 중리 해수욕장, 해변이 콩돌이라는 작은 돌로 된 예송리 해수욕장 등이다. 특히 예송리 해수욕장의 돌들은 파도가 드나들 때마다 돌 구르는 소리가 자르르자르르 나서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이 해수욕장을 둘러싸고 있는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40호로 지정돼 있고 인근에 천연기념물 338호의 감탕나무도 있다. 보옥리에는 공룡알해변이 있는데 이름 그대로 직경 10㎝ 내외의 둥근돌로 해변이 가득 차있다. 인근의 보죽산과 어우러져 경치가 그만이다. 땅거미가 짙어지는 즈음의 고즈넉한 해변을 걷는 순간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장자리 솔섬 앞바다는 여름철 일몰 명소로, 망끝전망대는 겨울철 일몰 명소로 이름이 나 있다.
보길도에 갔으면 글씐바위도 봐야 한다. 송시열의 시를 바위에 새긴 곳인데, 시보다도 경치가 절경이라서 그렇다. 송시열은 제주도로 귀양 가다 풍랑으로 완도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읊은 시를 새긴 것이란다. 송시열은 윤선도와 스무 살의 나이차가 있지만 정적으로 유명한데 보길도는 그렇게 둘을 이어주는 다리 구실을 하고 있다.[충청투데이]
등산코스
땅끝선착장 ~ 배로 이동, 보길도 청별항 ~ 버스로 이동, 망끝전망대 ~ 망월봉(364m) ~ 뽀래기재 ~ 425봉 ~ 격자봉(433m) ~ 누룩바위 ~ 수리봉(406m) 큰길재 ~ 209봉 ~ 광대봉(310.5m) ~ 열녀숙인 김씨비각 ~ 보길면사무소 ~ 보길도 청별항 ~ 배로 이동, 땅끝선착장
첫댓글 일정은 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