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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북한산 둘레길 14구간 산너머길 원각사: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사패산 자락에 있는 한국불교 법륜종 소속 사찰. 한국불교 법륜종은 종조를 고려 말의 승려인 태고(太古) 보우(普愚)로 하고 있으며, 소의 경전은 『금강경(金剛經)』과 『화엄경(華嚴經)』이다. 연례 주요 행사로 석가탄신일과 우란분절, 성도절, 열반절, 출가일 등이 있다. 원각사에서는 현재의 절 위쪽에 원각사 절터가 있어 창건 시기를 고려 시대라고 전하고 있으나, 이와 관련한 문헌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 없다. 주지인 승려 법흥에 따르면, 원각사는 약 1900년대에 원래 절터 밑에 세워졌으며, 1980년대 중반에 대웅전이 다시 중창되었다고 한다. 원각사에서는 각종 법회와 기도 도량 등을 열고 있다. 시설로는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등을 갖추고 있으며, 대웅전 앞마당에는 청동좌불상이 있다. 범종은 원각사의 주지였던 고(故) 호암(虎巖) 대종사(大宗師)에 의해 불사가 이루어졌다. 대웅전 뒤쪽으로도 불상이 세워져 있고, 부도 2기가 있다. 그중 1기는 원응당(圓應堂) 호암 대종사의 것이다. 원각사를 거쳐 사패산과 도봉산 등을 오르는 등산 코스가 개발되어 있어 원각사에는 등산객과 참배객 등이 끊이지 않는다. 인근에는 원각폭포가 있다. 2014년 현재 주지는 승려 법흥이다.
이곳에서 우측 비탐방길로 치고 올라 사패산 정상을 밟고 되돌아 왔다 ♥♠사패산 오름 중에 의정부,수락산, 양주일원,불곡산等 조망
양주시 광주산맥 말단에 속하고 서울과 원산을 잇는 추가령지구대가 시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지나고 있어 동쪽과 서쪽에는 400∼500m의 높은 산이 솟아 있고 중앙에는 넓은 곡저평야가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다. 동쪽에는 천보산맥(天寶山脈)이 동북∼서남 방향으로 지나고 왕방산(旺方山, 737m)·천보산(天寶山, 337m)이 각각 동두천시와 포천시·의정부시, 앵무봉(鸚武峰, 622m)이 파주시, 남쪽에는 노고산(456m)·상장봉(534m)·만장봉(740m)이 각각 고양시와 서울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쪽에는 감악산(紺嶽山, 675m)이 연천군과 접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도락산(441m)·불곡산(佛谷山, 460m)·한강봉(436m)·일영봉(444m)이 있다. 동서 산지에서 흐르는 청담천(淸潭川)·신천(莘川)·곡룡천·홍죽천 등이 북쪽으로 흘러 한탄강에 합류한다. 이들 하천 주변에는 넓은 곡저평야가 곳곳에 발달하고 있다. 내륙분지에 있어 기후는 한서의 차가 심하고 강수량은 많은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10.8°C, 1월 평균기온 ·6°C, 8월 평균기온 26°C이며, 연강수량은 1,300㎜이다. 서울과 인접한 이 시는 고대부터 한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항상 국토의 요충이 되어왔다. 이 시는 서울의 상당부분과 남양주시·구리시·의정부시·동두천시 등을 포괄하는 큰 시였지만 지금은 모두 분리되어 경기도에서도 크지 않는 시에 속한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은현면 운암리에서 다각면원구(多角面圓球)와 긁개 등이 발견되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옥정동, 유양동·마전동, 은현면 선암리·하패리, 남면 한산리 등지에 고인돌이 있다. 은현면 용암리와 남면 신산리, 광적면 덕도리에서 민무늬토기편과 마제석기류가 발견되어 청동기시대에는 인구가 크게 증가했음을 말해준다. 이 시는 한강이북에 위치한 점으로 미루어 서기전 1세기 초에는 낙랑군에 속하였고, 3세기 초에는 대방군의 강역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에는 먼저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백제에 속했고, 이어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으로 고구려 영토가 되어 이곳에 매성군(買省郡, 일명 창화군)이 설치되었다 . 551년(진흥왕 12, 성왕 29) 이른바 나·제동맹으로 신라는 죽령 이북, 백제는 남한성·북한성 일대를 취하게 되어 이곳은 잠시 백제의 영토가 되었으나, 신라가 나·제동맹을 파기하자 다시 신라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757년(경덕왕 16) 지금의 서울이 한양군(漢陽郡)으로, 이곳이 내소군(來蘇郡)으로 개칭되었다. 이곳 읍치(邑治)에서 가까운 대모산성(大母山城)에서 출토된 백제토기편과 신라와 통일신라의 유물들, 그리고 천보산맥과 불곡산·도락산 일대에 산재하는 고구려의 군사용 보루유적을 포함한 28개소의 관방유적이 분포되어 있음은 이 지역이 남북을 연결하는 관문으로서 전략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 양주의 지명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고려 태조 때부터이다. 한양군이 양주로 바뀌고 본래 양주 땅이었던 내소군은 견주(見州)로 바뀌었다. 이 때 지주사(知州事)가 양주에 설치되면서 견주는 양주의 관할지가 되었다. 995년(성종 14) 전국 12주에 절도사가 두어질 때 양주는 해주(海州)의 우신책군(右神策軍)과 아울러 좌신책군절도사(左神策軍節度使)의 부임지로 광릉(廣陵)으로 호칭되기도 하였다. 1010년(현종 1)에는 물밀듯 쳐들어오는 40만의 거란병을 피해 왕이 송도를 버리고 멀리 나주까지 몽진할 때, 양주에 며칠간 머문 일도 있다. 당시 남진하던 거란군이 장단에 이르렀을 때 이곳의 서북단 천험의 요새지 감악산에 군대의 정기(旌旗)와 군마가 있는 것 같이 보여 더 이상 남진하지 못하고 퇴각하게 한 사실을 기록한 완문(完文)이 감악산사당(紺岳山祠堂)에 전해온다. 1012년 양주의 절도사가 폐지되고 안무사로 개편되었으며, 1018년 지양주사(知楊州事)로 강등되었고 견주·사천현(沙川縣 : 지금의 동두천시, 양주군 회천면·은현면 일원)· 풍양현(豊壤縣 : 지금의 남양주시 진건면·진접읍 일원)이 양주의 속현이 되었다. 문종은 양주를 남경(南京)이라 하여 신궁(新宮)을 조영했는데, 이 때 견주감무를 별도로 둔 일이 있다. 1308년(충렬왕 34)에는 양주가 한양부(漢陽府)로 개칭되었다. 조선왕조가 한양부에 도읍을 정하면서 한성부(漢城府)라 개칭하고 그 전의 한양부 부치(府治)를 대동리(지금의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 부근)로 옮기고 지주사로 강등시켰다. 1395년(태조 4) 양주부로 승격되었고, 1397년에 다시 부치가 견주(지금의 주내면 고읍리)로 이전되었고 그 뒤 계속 양주라 불리다가, 1413년(태종 13)에 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66년(세조 12)에 목(牧)으로 승격되었다. 1504년(연산군 10)에 잠시 양주목이 없어졌다가 1506년(중종 1)양주목이 부활되면서 지금의 유양동에 새로운 도시가 마련되었다. 이곳의 해유령(게너미고개)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부원수 신각이 육전에서는 최초로 전승을 거둔 전첩지이다. 1895년에는 한성부 소속 양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경기도 양주군이 되었다. 1922년 군청사가 주내면 유양리에서 시둔면(柴芚面 : 지금의 의정부시)으로 이전됨에 따라 양주면이라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한 윤인순(尹仁淳)·정용대(鄭用大)가 있다. 교육자로는 민족항일기인 1926년 브나로드운동으로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했으며, 광복 후 추계학원(중앙여자중·고등학교)을 설립한 임봉순(任鳳淳)과 1906년 엄비(嚴妃)의 후원을 얻어 명신학교(明新學校)와 숙명학교(淑明學校)를 설립한 이정숙(李貞淑)이 있다. 1946년 파주군 남면이 이 군에 편입되었으며, 1963년 2월 24일에 와부면 조안출장소가 설치되었다. 그 해 이담면(伊淡面)이 동두천읍으로 승격되었고, 의정부읍이 시로 승격, 분리되었다. 화도면의 3개 리와 진접면의 1개 리 및 가평군 외서면의 3개 리가 병합되면서, 수동면이 신설되었고, 노해면(蘆海面)과 구리면 5개 리가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1966년 7월 1일에 별내면 퇴계원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 2월 14일에 동두천읍 광암출장소가 설치되었고, 7월 1일에는 포천군의 탑동리가 동두천읍에 편입되었으며, 구리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9년 4월 30일에 동두천읍 생연·보산·소요출장소와 구리읍 갈매·수택출장소가 설치되었고, 미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 4월 1일에 양주군 관할구역 중 구리읍·미금읍·별내면·진접면·진건면·수동면· 화도면·와부면이 분리되어 남양주군이 신설되었고, 별내면의 고산리와 산곡리가 의정부시에 편입되었다. 1981년 7월 1일에 동두천읍이 시로 승격, 분리되었고, 1983년 2월 15일은현면 상패리가 동두천시로, 백석면 영장리와 기산리가 파주군 광탄면으로 편입, 1985년 10월 1일회천면이 읍으로 승격, 1987년 1월 1일에 광탄면 기산리 일부가 백석면으로 편입되었다. 2000년 9월 25일 군청사를 의정부에서 현 남방동으로 이전하였고, 그해 10월 1일주내면이 양주읍으로 승격하여 2개 읍 5개 면이 되었다. 다시 2001년 10월 1일백석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3개 읍 4개 면으로 되었다가, 2003년 10월 19일양주군이 도농복합시인 양주시로 승격하여 현재의 1개 읍 4개 면 6개 행정동이 되었다.
남근바위를 여러조각으로... 남근바위
갓바위를 여러 조각으로...
갓바위 북한산국립공원 북단의 사패산에서 울대고개 쪽으로 내려오는 해발 530m 지점에 있다. 갓바위는 사패산 정상에서 보면 그 모양이 삿갓을 쓴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달라져서 거북바위, 쪽두리바위, 남근석, 빵바위 등으로도 불린다. 사패산은 북한산 국립공원 북쪽에 위치하며 정상에서의 전망이 좋고 울창한 숲과 계곡이 사철 신선하다. 주변에 안골, 범골, 회룡골 등을 품고 있다.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동남단에 있으며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의 오봉산 및 서울특별시 도봉구의 도봉산, 선인봉, 만장봉 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그 연봉의 하나로 사패산이 있다. 사패산 봉우리 남쪽에 동서 방향으로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 사패산터널이 지나가고 있으며 서남 방향에는 상장봉과 노고산 등 북한산 국립공원 내의 연봉들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다. 또 서북 방향에는 파주시 광탄면과 양주시 장흥읍의 높은 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으며 평지로 열린 북동 방향은 의정부시 일대이다. 남고북저형의 지형이 양주시 백석읍과 남면으로 이어진다. ♥♠사패산 정상에서의 사방 확 트인 조망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원래 이름은 사패산(賜牌山)이 아니었다. 산의 전체적인 모양, 혹은 큰 봉우리의 바위 모양이 삿갓처럼 생겨서 갓바위산 또는 삿갓산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조개껍질처럼 생겼다 해서 일부에서 사패산이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대부분의 지도가 이것을 따라 쓰는 바람에 사패산이 되었다고 한다. 혹은 조선 시대 선조(宣祖)가 딸 정휘옹주(貞徽翁主)에게 하사한 산이어서 사패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사패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면서 옛 이름을 밀어내 버렸지만 원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양주시 일대에서 갓바위산이라는 지명은 이외에 은현면 하패리에도 있다. 양주시 은현면 하패리 산52-1번지와 의정부시 가능동 산81-2번지, 의정부시 호원동 92-15번지가 서로 맞닿은 곳에 갓바위산이 있다.
사패산:사패산의 높이는 552m이며, 양주시와 의정부시의 경계에 걸쳐 있다. 크게 보아 북한산 국립공원 북단의 한 봉우리이다. 연중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사패산에서 울티(울대)고개를 따라 내려가 홍복산, 호명산, 한강봉, 불곡산, 도락산 등으로 오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서울 근교에서 조건에 맞춰 다양한 산행 코스를 등산할 수 있으므로 사철 인기가 있다. 안골, 범골, 송추계곡, 원각사(圓覺寺) 계곡에서도 오를 수 있다. 의정부시 가릉동, 회룡동, 호원동 등지에서도 오를 수 있다. 의정부 광주산맥의 말단부에 속하고 있어 잔구성 산지가 동쪽과 서쪽에 높이 발달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추가령구조곡이 지나고 있는데 이곳에는 길고 좁은 곡저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해발고도 100m 이하의 저지대가 전체 면적의 60%를 차지하고 100∼500m의 구릉지가 전체 면적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동쪽에는 수락산(水落山, 638m)·부용산(芙容山, 211m)·용암산(龍巖山, 477m)·깃대봉(289m) 등이 있고, 서쪽에는 도봉산(道峰山, 717m)·사패산(賜牌山, 552m), 북쪽에는 천보산(天寶山, 337m)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는 주상절리가 발달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산지는 노두가 나타나 주변 경관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부용천(芙容川)·백석천(白石川)·화룡천(畵龍川) 등이 서류(西流) 또는 동류(東流)하여 중랑천(中浪川)에 합류하면서 남류하고 있다. 하천 주변지에 하안 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수락산
사패능선 앞쪽의 상장능선 송추쪽 오봉과 북한상을 당겨 보고 사패산은 북한산국립공원의 북쪽 끝에 있는 산으로, 동쪽으로 수락산, 서남쪽으로 도봉산을 끼고 있다. 도봉산과는 포대능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사이에 회룡골계곡이 있다. 사패(賜牌)이란 이름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왕이 공을 세운 왕족이나 신하에게 땅이나 노비를 하사할 때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문서를 사패라고 했다.
도봉산이나 북한산의 유명세에 가린 덕분에 자연이 잘 보존되었다. 2001년 사패산 터널 공사를 두고 불교계와 환경단체에서 환경파괴를 우려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암봉이지만 도봉산의 날카로운 암봉과는 대조적으로 정상은 넓은 암장으로 되어 있고 거대한 제단 모양을 이룬다. 백두대간 추가령지구대에서 뻗은 한북정맥이다. 한북정맥은 내려오면서 백암산, 적근산, 대성산,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불곡산을 이루고 도봉산에 닿기 전 사패산으로 솟아 올랐다.
사패산 갔다 되돌아 온 둘레길
♥♠산너머길 전망대에서의 조망 사패산 1보루와 2보루峰(우) 수락산 정상(중앙)과 기차바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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