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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Issue)와 시(詩) / 박승류
인간의 혀는 묘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묘한 마력이 인간의 지혜로부터 발현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간은 종종 혀로 마력을 표출한다. 그 마력이 각종 메뉴를 뜨겁게 달구어, 어떨 때는 폭염을 달래고 또한 혹한을 잊게 하기도 한다. 싱그럽지만 뜨거운 이 여름, 그러께 겨울 혹한을 잊게 할 만큼 매스컴을 달구었던 메뉴들을 돌이켜보며 이열치열을 맛보면 어떨까? 시를 쓰는 사람들이라 해서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도 아니니 세상일을 조금 비틀어 재음미해 본다고 크게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다.
먼저 성性이다. 뜨겁지만 은밀한 성, 그것이 일정한 ‘틀’을 벗어나면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일전에 불거진 ‘상하이 스캔들’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재 점화되었던 ‘여배우 성접대 사건’ 역시 은밀한 공간을 벗어났기에 시끄러웠다. 은밀한 공간을 벗어난다고 만사가 다 시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오·남용된 성이었기에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당사자들의 주장과는 별개로 또한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세상을 더욱 시끄럽고도 뜨겁게 달구지 않았나 싶다.
정액에 항우울제가 듬뿍 들어있다 하네 이것으로
정자를 생산할 수 있는 모든 남성은 GMP시설을 가졌음이 확인된 셈이네
특정 환자엔 의료시술이 가능한 의사면허도 가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군 고마워라 사업자등록증과 의사면허증이여
드디어 모두 가난을 벗어날 수 있겠네
신분은 급상승하고 멀지 않아 열쇠꾸러미를 든 뚜쟁이도 만날 수 있겠네
모든 것은 태초에 신이 내린 결정이지만
삽시간에 인터넷을 점령하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연구팀의 주장에 많은 카사노바의 소견은 달랐네
언제 들통 났느냐에 따라 불륜과 로맨스로 구분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한다 우기는 그들, 한편으론
오르가즘은 엔도르핀을 불러 통증을 완화한다는 주장 굳게 믿는다며 환호했지만
특정 환자에게만 시술 가능하다는 규범에는 동의하지 못함을 행동으로 증명하려 했고 전문가는 민간요법과 의료행위의 차이에 유념해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잊지 말라 강조했네
우울증 환자의 발생빈도가 줄었다는 실생활의 증언은 알려진 바 없고
가위나 라이터 들고 다투는 배우자 분쟁이 늘었다는 기사는 간간이 매체에 등장했지만 무디어진 가위 휘발유 빠진 라이터쯤은 안중에 없네
부자가 된다면야 무슨 상관인가
365일 공장 풀가동하고 24시간 의료행위 멈추지 말아야겠네 부자가 되기 위해, 나 열심히 해야겠네
- 졸시, 「오남용 학습」 전문
타인의 불륜이나 로맨스에 대해선 간섭할 마음이 전혀 없다. 하지만 ‘상하이 스캔들’과 ‘여배우 성접대’의 경우는 다르다. 어느 직업보다 더 많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공무원이 국익과 국격을 훼손했다는 점, 그리고 우월적지위의 한 당사자가 약자인 다른 당사자에게 강요함으로서 발생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국가나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공무원의 행위에 책임을 묻지 못한다면 희망이 없다. 또한 부당한 행위가 묵인되고 용서된다면 세상은 희망이 점점 사라질 것이다. 이는 진정성과 순수성을 담보로 하는 무보수 명예직인 특정 단체의 경우도 그렇다.
인체의 뜨거움을 조절하기 위한 오·남용 공부는 이쯤에서 끝내지만, 뜨거운 이야기는 감추려 하면 더욱 뜨거워지고 시끄러워지는 속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쉬쉬하면 입과 귀, 코뿐만 아니라 몸 전체가 뜨거움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구제역 이야기이다. 청정국 지위에 목을 매다가 목이 졸려 겨우 숨을 쉬며 목숨을 연명한 우제류 나라가 동방에 있다. 수많은 백성이 목숨만 탕진하고 지켜내지 못한 지위가 바로 목숨으로 지켜낸 체면이라고 착각하며 살고자 하는 아둔한 무리가 우제류국偶蹄類國에 있다.
가족과 함께 서래봉 오르기 위해
정읍시 내장동으로 들어가는 도중
길 가운데 놓인 방역분사기를 지나는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마스크 쓴 소들이
가축우리에 갇힌 축산농민을 끌고 나와
커다란 트럭의 짐칸에 아무렇게나 던져 넣어
어디론가 사라지고
발굽이 심하게 갈라진 채
피가 질질 흐르는 돼지들이 꿀꿀거리면서
비쩍 마른 아이와 노인들을
깊이 파놓은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자
살아도 죽은 목숨, 죽여라 죽여
동학농민군처럼 소리를 지르는 여자들
트랙터 몰고 나와 전봉준처럼 누런 보리밭을
갈아엎는 남자들
어둠이 검은 것은 슬픔 때문이다
탈레반 모자를 쓴 소년들이
부르카 입은 소녀들의 손을 끌어
이어달리기하듯 들어간 숲 속
축제 벌이듯
푸드득 푸드득 날아다니는 닭과 오리들
당황한 관계당국에서는 휴교령을 내리고
방역을 더욱 강화했지만
먼 조상이 난생이었으며
초식동물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불출봉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내장산을 뒤돌아 내려오는 유월
- 고성만, 「구제역」 전문
백신접종을 미루었던 것은 오직 백성을 위한 것이었으므로, 일이 잘못되거나 다급하면 백성이 살처분되거나 생매장당하는 것으로 책임진다는 것쯤은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나라가 偶蹄類國이 아닌 愚啼劉國으로 통치된다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순하고도 힘없는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제류와 인간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도 존재한다. 위 「구제역」 2연에서 “마스크 쓴 소들”이란 ‘인간답지 못한 인간’이나 ‘마스크(인두겁)를 쓴 짐승’을 말함이리라.
힘없는 이들의 아수라장이 또 있다. 비율이 30%를 넘는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의 터전이다. 이는 미국 일본 독일의 약 3~4배 수치이고, OECD 평균인 16%에는 2배 정도 되는 셈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자영업은 상대적으로 숨 막히는 경쟁을 치룰 수밖에 없다. 또한 그로인해 망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마땅히 일자리가 없는 실업·실직자들이 계속 신규로 진입한다고 하니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을지 짐작이 된다. 그런 자영업 중에서 대표적인 업종이 튀김닭 사업이 아닌가 싶다. 이미 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경쟁을 뜻하는 ‘치킨게임’이라는 말이 이 분야의 무한경쟁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엔 불닭집이 문을 열었다
닭 초상이 활활 타오르는 사각 화장지가
집집마다 배달되었다
더 이상 느끼한 입맛을 방치하지 않겠습니다
공익적 문구를 실은 행사용 트럭이 학교 입구에서
닭튀김 한 조각씩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불닭집 주인의 화끈한 기대를
와와, 맛깔나게 뜯어 먹는다
삽시간에 매운바람이 불고 꿈은 이리저리 뜬구름으로 떠다닌다
낙엽, 전단지처럼 어지럽게 쌓여가는 십일월
벌써 여러 치킨 집들이 문을 닫았다
패션쇼 같은 동네였다 가게는 부지런히 새 간판을 걸었고
새 주인은 늘 친절했고 건강한 모험심이 가득했으므로
동네 입맛은 자주 바뀌어 갔다
다음은 어느 집 차례
다음은 어느 집 차례
질문이 꼬리를 물고 꼬꼬댁거렸다
졸음으로 파삭하게 튀겨진 아이들은 종종 묻는다
아버지는 왜 아직 안 와
파다닥 지붕에서 다리 따로 날개 따로
경쾌하게 굴러 떨어지는 소리
아버진 저 높은 하늘을 훨훨 나는 신기술을 개발 중이란다
어둠의 두 눈가에 올리브유 쭈르르 흐르고
일수쟁이처럼 떠오르는 해가
새벽의 모가질 사정없이 비튼다
온 동네가 푸다닥,
홰를 친다.
- 이명윤, 「안녕, 치킨」 전문
이 시의 “새 주인은 늘 친절했고 건강한 모험심이 가득했으므로 / 동네 입맛은 자주 바뀌어 갔다” “일수쟁이처럼 떠오르는 해가 / 새벽의 모가질 사정없이 비튼다”라는 구절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아무리 모험심이 많고 동네 입맛을 잘 안다고 해도 개선될 기미가 없는 구조적 문제를 감안할 때 희망의 목은 각종 어려움에 질식될 것만 같은 걱정이 앞선다. 이런 업계에 매우 통이 크고 뜨거운 메뉴를 앞 다퉈 발설한 착한 공룡들이 있었고 그 입김에 화상을 입은 골목들과 은혜를 입은 골목들이 또한 있었다.
마지막으로 자연환경에 잠시 말을 건넨다. 구제역에 대한 대응에서도 그렇지만, 뜨거운 뉴스를 넘어 아직도 두려움으로 남아있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야기이다. 지진과 해일은 천재天災였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인재人災라고들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의 편익을 위해 동원되었던 원자력 발전소가 언제든지 인간을 황폐화하는 무기로 돌변될 수 있음을 또 한 번 경험했다. 부실공사와 부실한 관리 그리고 무리한 수명연장은 탐욕에서 비롯된다. 탐욕은 뿌리치기 힘든 혜택과 이익을 줄지 모르지만 이는 마약과도 같은 결과로 귀결되며 때로는 전쟁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참개구리, 무지치, 뻐꾹새, 종달새
우리나라 기상청이 지정한 계절 관측 동물들
봄이 되면 제일 먼저 나타나 봄을 알려주는 동물들
그러나 이제 서울에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서울 공기, 서울 물, 서울 땅에 못 견뎌
1981년 이후 아주 사라졌다고 한다
나를 보라,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도 얼마나 튼튼한가
아황산가스, 산성비, 발암 물질 수돗물이 무차별 쏟아져도
양복 뜯어지도록 사람들을 밀쳐 지하철을 타고
두 계단 세 계단씩 지하도 뛰어오르며 출근길을 누빈다
드링크제로 피로를 푼 간장
스포츠 신문으로 스트레스를 몰아낸 머리통
알약으로 두근거리는 불안까지 없앤 심장이 있으므로
새벽부터 밤까지 넥타이 더 조여지도록 뛰어다녀도 끄떡없다
멸종 후에 남는 폐허 같은 이름들
갈 곳이 없는 이젠 이름이 될 필요도 없는
단지 사전 속에 글씨로만 남아 있는 이름들
그렇게 땅 위에서 영영 사라져도
울음이나 절규는커녕 슬픔조차 없는 동물들
없어져 아주 조용해진 그들의 소리가 몸 속에서 들린다
침묵보다도 더 낮은 그들 소리에 귀기울이며 걷다가
귀를 찢을 것 같은 자동차 경적 소리를 놓친다
야 이자식아, 죽고 싶어 환장했어
성질 난 운전사가 아무리 거품을 물고 소리질러대도
그렇다, 너무나 튼튼하고 뻔뻔스러워서
나는 아직 죽는 법을 모른다
- 김기택, 「계절 관측 동물」
스스로 그대로인 자연에 힘을 가하여 변형시키는 것은, 사람에게 메스를 대고 수술하는 것과도 같다. 치료목적이 아닌 아름다움을 위한 성형수술 같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연 파괴행위로 간주된다. 그나마도 성형수술은 자신을 통제하고 강요하는 것이지만, 환경파괴는 자自가 아닌 타他에게 가하는 통제이며 강요이다. 무지나 실수에서 비롯된 충격이라 해서 그것이 인간이나 자연으로부터 모두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시 「계절 관측 동물」에서, “나는 아직 죽는 법을 모른다”는 마지막행이 메아리로 다가온다. 계절 관측 동물이 자꾸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다음 사라질 대상은 무엇이며 과연 인간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자연보호에 대한 궁극적 이유를 생각해 보면 분명해진다.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며 그런 삶에는 모든 구성원이 포함된다. 그럼에도 눈앞의 이익만을 탐한다면 재난이나 재앙은 피할 수 없다. 또한 본분을 잊은 채 직위까지 이용하여 탐욕을 쫓거나 강자의 그릇된 인식이 방치되고 승자독식과 같은 행위들이 당연시되고 장려된다면, 세상은 더욱 각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월간 <우리詩> 칼럼 / 201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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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인은 보통사람들보다도 예민하고, 또한 긴 안목을 지닌 비평가이기도 합니다.
선생님, 말씀을 주셨군요.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옵니다. 건강에 더 유념해야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