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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얼음 병사가 없으면 한여름 땡볕에 신체가 동작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하루 7-8개를 사용하는데 한 여름에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고
전국의 수많은 편의점(6만-7만개)이 있었기에 걷는 이에게는 축복을 안겨주는 천사가 사는 집처럼 느껴졌다.
3부는 서울에서 천안까지 이야기입니다.
원지동 석불입상과 석탑
예전에는 한양에서 경기도 땅으로 넘어가는 여우가 살만한 고개였겠지만 도시개발로 인해 그저 평지 같은 곳이다. 숱한 길손이 지나가는 곳에 자리 잡은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해보지만 지금은 길가에 얼마 안 되는 터에 미륵당(彌勒堂)과 함께 나그네들이 소원을 빌면 들어주던 석탑만 반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듯 석탑 네 귀퉁이는 훼손되었고 상층부는 어디 가고 없는데 아마도 돌을 갈아 마시면 아들 낳는다는 속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맞배지붕의 미륵당은 문이 닫혀있어 어떤 모습의 미륵불인지 확인이 안 된다. 다만 인자하신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해보며,원터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라 하여 매년 마을에서 동제(洞祭)를 지낸다고 한다.
가다 보니 방보다 더 좋은 쉼터가 있어 들어와 열기를 식히고...
세상 참 많이 좋아졌음이로다
너무 오래앉아 있으면 몸이 땡볕에 반응하는데 지장이 있어 금방 일어난다
양재동으로 들어와
주변으로 대규모 화해단지인데 부자들만 산다는 서초구다
서초구 도심을 지나며
여염집 규수들이 어딘가 많이 닮았는데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닮았다 표현하기 힘들지만,아무튼 많이 닮아 있어 서울 사는 지인께 여쭈어보니 강남은 성형하는 곳이 많아 성형미인이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강남에 왔으면 커피한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어느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점잖게 앉아 게눈 감추듯 하고 밖으로 나와
강남대로를 지나며
출근 시간이라 다들 바쁘고
한남대교를 건너간다
한강
멀리 강원도 태백산 금대봉 북쪽 계곡에서 발원해 수많은 하천과 합류하며 굽이굽이 돌아 이곳까지 흘러온 한강으로 남한에서 유역면적으로는 낙동강 보다 넓고 물은 낙동강이나 한강이나 더럽기는 매한가지다
용산구 이태원과 어전 앞을 지나
편의점에서 각얼음은 생략하고
숭례문에 12시에 도착
영남대로와 삼남대로를 걸어오면 그 종착지가 바로 이곳이고 전국의 모든 대도시와 거리를 젤때 이곳 남대문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자면 서울 -대구 거리를 표시할때 남대문을 기준으로 하는데 어떤이는 양재동 톨게이트,혹은 서울시청이라고 하는데
이건 틀린것임
이제 주상전하께서 사셨던 경복궁으로 걸음한다
평화로운 세상일 때는 먹고살기 위해 드나드는 삶의 숨구멍이요
전란이 일어나면 죽음의 구멍으로 통하는 문이다
이제 도성안에 들어왔으니 저잣거리 구경하며 지난다
도성을 지키는 성벽 안으로 들어오며 500년 동안 왕들이야 잘 먹고 사셨을 테고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궁궐로 시집온 처자들 가운데 가장 불쌍한 왕비는 누구일까?
어느 대왕께서 부인과 심하게 다퉜고 그로 인해 억울했던 부인이 이판사판으로 왕의 얼굴인 용안(龍顔)에 손톱자국을 내서 폐비가 되었고 결국 사약을 받아 죽음을 맞았다
그의 아들 역시 생모 때문에 패륜을 저지르다 용상에서 끌려 내려왔는데 조선 왕조에서 가장 불쌍한 모자(母子) 지간인 성종,연산군 때의 이야기다.
그리고 6대 단종의 비 정순왕후께서는 남편이던 단종께서 16세에 영월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고 81세까지 사셨다가 생을 마감하셨고, 조선 역사 최초의 반정이었던 11대 중종의 부인인 단경왕후 거창신씨 가장 짧은 왕비로 단 7일간 왕후였다
그리고 21대 영조의 부인 정성왕후 서 씨 33년간 내명부 수장이었으나 정작 영조한테 철저히 버림받은 여인이었고
궁궐로 시집온건 좋았을지라도 이후의 삶을 보면 애잔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일반인과 결혼 했더라면 이보다 더 행복했을것 같다
그리고 임금들께서 대부분 운동부족으로 당뇨와 소갈병으로 고생한 반면 일반 백성들은 부자병으로 알려진 당뇨와 소갈병에는 고생하지 않았지만 굶어 죽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
도심의 저잣거리를 지나며 수많은 백성들이 어딜 가는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다들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서울도 덥기는 어느 도심과 다르지 않으니
온통 아스팔트에 콘크리트 흙땅이라고는 금보다 귀한 곳이 서울땅으로 보인다
이 땡볕 더위에 장군께서도 더위를 못 참으시겠다며 갑옷과 칼을 내려놓으시고 물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뛰어 내려오실 것만 같다
광화문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더니 반토막으로 만들어 주시는 쎈스에 감탄할 뿐이다.
땀에 젖은 몸 그리고 홀쭉한 배
피죽도 한 그릇 못 먹은 몰골이니... 양반집 머슴도 이보다 더 불쌍할 수가 있을까
흥례문을 통과하니
수많은 여인들이 들락 거리고
근정문을 지나며
조선은 유교나라지만 무학대사는 부처를 모시는 조선의 처음이자 마지막 왕사로 조선 건국의 초석을 두신 분이다. 이성계와 대단한 친분이 있으셨는데 이 자리에 서고 보니 무학대사 그분이 생각난다
그리고 전란이 일어났을 때 신하들은 도망가고
백성이 구한나라 어찌 보면 정치인들은 몸은 어른인데 뇌는 애인 상태가 아닐까 하는...
빛과 그림자 같은 군신과 백성
결국 하나인데 그걸 어둠이란 표현으로 자리매김한 백성들 살기 힘든 시절을 이겨낸 조선의 백성들
그때 태어났으면 주인께 맞짱 뜨다가 골로 갔거나 아니면 무남독녀 여식을 등에 업고 야반도주했거나
...
대구에서 316KM 지점
이곳까지 4일 하고 반나절 걸려 도착
이제 동작대교ㅡ 남태령ㅡ과천ㅡ수원ㅡ평택ㅡ천안ㅡ조치원ㅡ신탄진ㅡ대전ㅡ옥천ㅡ영동ㅡ괘방령ㅡ김천ㅡ왜관ㅡ대구 ㅡ팔조령ㅡ청도ㅡ밀양ㅡ삼랑진ㅡ양산ㅡ부산 동래읍성까지 7일간 450km 길을 걸어야 하는데 더위를 식혀줄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용상에는 아무도 없으시고
어디 출타 가신 듯
용상에 앉으면 가장 걱정해야 할게 뭘까
외세의 침략. 민란. 죽지 않고 오래사는것,아니면 농경사회에 가장 필요한 비(雨)
전란이야 싸우거나 도망가면 그뿐이지만 아마도 비(雨)일 것 같다.
용비어천가에도 나오듯 용은 물을 관장하고 비를 내리게 하는 동물로써 농경사회에서 비는 꼭 필요한 절대적인 것
홍수가 나서 모든 게 떠내려 가거나 세상이 잠겨도 문제겠지만 가뭄이 들면 온 나라가 걱정했는데 음력 5월10일 하지 무렵에 보리를 추수하고 모내기철에 그때 단비가 내린다 일명 태종우(太宗雨)라고 하는데
임금께서 임종직전에 "내 죽어 하늘에 올라 상제와 단판을 벌려 비를 내리게 할 것이니 그리 알라"며 승하하셨고 그때 (음력 5월 10일) 비가 세차게 내렸다는 전설이 있다.
그로 인해 해마다 5월 초에 비가 내리는걸 태종우라고 한다고
가뭄이 들면 조정대신들 모두 근심했으며 임금은 모두가 본인의 "부덕의 소치"라 여겼고 비오라며 기우제를 지내는 건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이니 조정에서 하는 행사로 가장 큰 행사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그 외 동네에서 지내던 기우제가 있는데 용이 산다는 용소에서 짐승을 잡아 머리를 물속에 던져 넣거나 성황당이나 당나무에 짐승 피를 뿌리거나, 합천 허굴산 용바위에 물을 퍼내고 기우제를 지내고 돼지 피를 뿌린 뒤 마을 사람들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경북 의성 금성산 같은 경우에 묘로 쓰지 말아야 할 곳에 묘를 쓴 곳을 찾아 파헤치거나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비를 내리게 했다
농경사회에서 꼭 필요한 비
어릴 적에 하천이 메마르면 동네사람들이 모여 하천 바닥은 파서 겨우 흐르던 물까지 논으로 끌고 와 농사를 짓던 게 생각난다
그나저나 더워도 너무 더우니 비라도 좀 내렸으면 좋겠다
가자 부산으로...
다시 긴 걸음이 기다린다
궁궐 안에는 대부분 베트남분들로 궁궐 구경 중이시고
길을 걷다가 뜻하지 않게 국토종주 하시는 젊은 친구분들을 만나면 왜 이걸 하는지 물어보는데 저마다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목적의식은 분명했다,취직을 앞두고,군대에 가기전에 걸음해보고 싶다는 젊은 친구들...
여행으로 견문을 넓히려면 목적이 분명하고 지나는길에 만나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미리 공부하고 지나는 길에 현지인과 교류하며 그동안 낯설었던 문화를 거리감 없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돼야 한다
베트남분들이 와서 한복 입고 놀다가는 모습 보니 좋긴 한데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여행에 대해 조금 적어본다.
수문장 교대식 행사가 시작되는데 잠시 구경하다가
인왕산과 북악이 보이는곳에서
"경복궁 잘 지키라!아니면 딱밤이다"
다시 숭례문으로 나와 서울역 맞은편으로 걸어 가며
한남대교로 가려면 이태원으로
동작대교로 가려면 삼각지로와 용산역 방향으로 간다
깨끗한 도심
삼각지로를 지나
공자와 부처와 예수
6세기에서 7세기경
인류를 구원할 몇몇 분의 지도자가 태어나죠
도덕경의 노자
유교의 공자
불교의 부처
유럽에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
마지막으로 예수
모두가 인류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다
세분 사이좋은 듯... 각자 내한테 달려 오라고 팔을 벌리고 계시는데 어느분 품으로 안겨야 하나
국립중앙 박물관 앞을 지나
박물관으로 가려는 차들이 도로에 끝없이 밀려있다
동작대교에 들어서서
하늘 보니 얼마나 더운지
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 금대봉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아래로 흐르며 한반도의 강 중에서 유역 면적( 2만 6,219㎢)으로는 압록강,두만강 다음으로 넓고 길이는 압록강.두만강,낙동강 다음으로 긴 강이다.
한강에 합류하는 제법 이름있는 81개의 지류중에서 100km 이상의 강으로는 북쪽으로 북한강.홍천강,소양강.평창강,섬강이 있고,
한강 남쪽으로 국립공원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괴산을 거처 충주에서 남한강과 합류하는 달천이 있다.
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백두대간 금대봉 북쪽계곡에서 발원 하지만,하루 2천톤 정도 물이솟는 검룡소를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검룡소에서 골지천이란 이름으로 흐르다가 정선군 여량면 아우라지에 이르러 오대산 국립공원에서 발원한 남대천 물과 합류하면서 조양강이라 부른다
정선읍 아래부터 잠시동안 桐江(동강) 그리고 정성군 가수리에 이르러 지장천을 만나면서 동강(東江)이란 이름으로 영월까지
이어 오다가 동강은 조선조 단종이 유배되었던 평창강(서강)과 만나면서 본격적인 남한강 이름으로 흘러 단양-충주-여주-양평-
하남-서울-인천-김포 서해 바다까지 494km를 지난다
한강은 서울 특별시,인천시와 강원도.춘천,태백 2개 시, 9개군 (고성,양구.철원,영월,정선,평창,홍천,횡성)
충청북도,충주,청주,제천 3개 시, 7개군 (단양,음성,괴산,증평,보은,)
경기도:김포,성남,광명,용인,안양,광주,군포,시흥,의왕,과천,이천,하남,여주,고양,구리,남양주,양주, 17개 시, 인근의 2개군
(가평군,양평군), 서해로 흘러들기전 22개시와 18개 군을 지난다.
동작대교와 멀리 관악산
동작역에서 멀리서 찾아주신 노송님을 만나서
부자들이 산다는 방배동
사당역에서 노송님과 같이 말복이라 하여 닭 한 마리 잡아 식사를 하고
예전에 여우가 나타나 사람을 홀렸다는 여우고개
남태령에서 노송님이 까만 다리가 보기 싫었나 깔끔하게 잘라버렸고
노송님
살이 많이 빠지신듯하고
날씨가 더워 진행 상황보고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국 수자원 공사 앞을 지나고
과천으로 앞서 가시는 노송님
길을 걸으면 늘 앞에 보내드리는데
이유는 제가 뒤에 서서 따라가야 안심하고 따라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덕원에 들어와
조선시대 때 여행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원(院)이 있던 자리이며 궁에서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셨던 내시들이 덕(德)을 베풀었다는 인덕(仁德)원 비록 남자 구실 못하는 고자로써 벼슬은 했지만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고 말년을 보내 곳이다. 안양시 인덕원(仁德院)에 들어와 허름한 모텔에서 모처럼 노송님과 함께 자고 한 시간 더자고 새벽 2시 넘어 밖으로 나온다.
새벽에도 덥고 7월 31일 새벽 4시 30분 무렵
더위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알뜰살뜰 찾아가며 따뜻함을 선사하시니 이고마움을 어찌 말로 다할까
후덥지근한 날 새벽부터 정신줄 놓고
날씨가 뜨겁고 발바닥 열기에 그동안 천사가 토목공사를 하지 않았던 발가락에 미더덕표 물집을 여러 채 만들었다
이 발로 부산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모락 중학교 앞을 지나며
모락 약수터에서 물 보충하고
얼굴에 물도 묻혀본다
어느 친절한 분의 글귀
눈 오는 날 조심하시고
물의 도시인 수원시에 입성하며
오늘은 넓은 땅을 가진 평택시까지 가야 할 것 같다
한남정맥 지지대고개를 지나 편의점에서 몇 가지 보충하고 전체 350KM 지점
지지대고개는 한양에서 남태령. 인덕원을 지나면 만나는 고개로써 22대 왕인 정조께서 아버지 묘를 찾아 제(祭)를 지내기 위해 11년간 12차례 지났던 고개이며 그의 둘째 아들인 23대 순조 그리고 24대 헌종과 마지왕인 고종도 화성 행궁으로 가려고 지났던 왕의 길이다
수원 화성
한양에 경복궁이 있다면 수원에는 화성행궁이 있고
그 외 지방에 별도의 행궁을 만들었으니 전란이나 비상사태 때 사용하던 행궁으로 강화 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행궁이 있고
온양 행궁처럼 임금이 휴양차 찾던 행궁도 있다
이곳 행궁은 왕께서 참배하던 행궁이다
돈 안 줘서 구르지 않지만 횡단보도에 의자대신 앉아 기다리기에는 충분하다.
창룡문
수원은 경기도 최대의 도시이자 인구 백만이 넘는 도시이며 조선시대 최초의 계획도시로 경기도 중남부에 있으며 바로 옆에는 용인시와 위에는 과천시가 있다
도로는 1번 국도가 남에서 북으로 이어지는데 목포-광주-정읍-전주 논산-계룡-세종-천안-평택-수원-서울로 이어지고
42번 국도는 동에서 서로 이어지니 동해-평창-원주-여주-수원-인천까지 이어지고 경기도 핵심도시로 성장했다
창룡문 앞에 무인 라면 가게가 있는데 아주 생쑈를 한다.
라면 자판기는 있는데 뭘 어쩌라는 거야!
어찌어찌해서 라면 한 개 꺼내는데 성공
그다음 또 한 개 꺼내야 하는데 앞서 뭘 눌렀는지 까먹었다
생쑈는 계속되고 이제
라면 담을 그릇은 또 어딨는 거야?
노송님께서 라면 그릇 찾으신다고 선반과 문 여는 곳은 모두 열었는데 못 찾아서 결국 길 가는 학생 불러 세 사람이 같이 찾았는데 못 찾음
그러다 결국 노송님이 비닐봉지에 담겨있던 종이 그릇 찾으심
머임
물은 어떻게 해야 나오는 거임
이리 누르고, 저리 눌러 결국 뜨거운 물 나오게 해서 한 끼 해결하는데 먹을 준비까지 해서 40분 이상 걸렸다.
두 번 다시 이런데 안 간다며 천장에 달린 매의 눈 카메라보고 라면 그릇 눈에 보이는데 두라고 몇 마디하고 밖으로 나왔다
둘 다 좀 '어리하다"고 생각이 드는 날이다
평택역에서 포근한 빛님을 만나서 360KM 지점 (7월 31일 09시 30분)
처음 뵙는데 인상이 선하고 착한 분이시다
시원한 주스가 목구멍 속으로 쭈르르 흘러드니 뱃속에서 수박 들어왔다고 야단이다
이런 것도 사주셨고
포도며 몇 가지 과일과 음료수를 가지고 오셔서 배낭에 넣어간다
만나서 반가웠고요
지맥길 안전하게 걸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쉴 만큼 쉬었으니 평택역으로 향한다.
아무 힘없는 새끼발가락에는 천사표 미더덕이 점점 자라고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닌데
오늘도 35도라며 야외활동 하지 말란 경기도청. 화성시청. 오산시에서 문자가 날아온다.
하이디 누님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착한 가게
누님이 오기 전에 닭볶음탕을 시켜놓고 계산은 미리 해둔다
점잖게 기다리시는 노송님
잠시 후 하이디 누님이 오셨고
함께 식사합니다
닭고기 몇 점으로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누님께서 봉투 하나를 주셨는데 누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누님 사진을 담지 못했네요
오산시 유엔군 초전 기념관 앞을 지나며
잠시 바람 부는 그늘에 누워 있으니 자가용이 쪼르르 오더니 바람 부는 곳을 막으며 주차한다
밉상도 밉상도 이런 밉상이 있을까
바람길을 막았으니 이제 그만 다시 일어나 걷는다
오산천을 지나
어느 마트에서 국토종주하는 저희에게 음료수 사주신다고 해서 들어가 잠시 이야기 나누고 헤어진다
음료수 잘 마셨고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평택 14Km
천안 37Km
내일은 조치원까지 가야 하는데
물집이 몇 개 더 생겨 일정이 어찌 될지
앞서 가시는 노송님
잠시 그늘도 있고
평택 지제역 앞을 지나며
이곳에 클럽 회원분이 편의점 하시는데
그냥 지나치고
평택시 세교로 인근 도로가에
백로가 사는 서식지로 도심에 숲에 집을 짓고 사는 걸 보니 이 녀석들도 시골 고향을 버리고 도시에 적응한듯하다
평택시에 들어와
며느리 밥풀꽃의 주인공인 살았다는 평택이다
"밥이 잘되었나" 가마솥뚜껑을 열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알 몇 개 맛보는데 하필 그때 시어머니가 부엌에 들어오다가 이광경을 보시고 "감히 니가 시어머니를 놔두고 먼저 밥 처먹냐"며 시어머니께 끌려 나와 맞아 죽은 어느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다들 이 이야기는 아실 테고
작은 하천을 건너 숙소로 찾아간다
평택(平䕪)은 인근으로 대부분 평지뿐이기에 넓은 땅에는 곡창 지대가 있으며 북, 동쪽에 무봉산(208m)을 제하고 나면 특이할만한 산이 없다
저 짝아래 논산에도 산보다 평지가 넓은 곳이니 두 곳 다 비슷한 환경이라 보면 되겠다
8월 1일 2시 50분
새벽에 밖으로 나와
편의점에 들러 각 얼음 병사 한놈을 끄집어내 목마 태우고
평택 신평로 따라가며
다행히 도로에는 차가 다니지 않아 마음 편하게 걷고
경기도 땅을 벗어나 충청남도 천안시로 진입한다 (400km)
천안은 천안삼거리, 호두과자. 독립기념관 아우내 장터와 유관순 열사로 유명한 곳이다
산으로는 독립기념관 뒤편의 금북정맥 줄기인 흑성산, 태조산, 성거산과 위례산이 있고
하천으로는 곡교천이 흐른다.
봉선홍경사 갈기비
국보로써 고려 현종의 명으로 제작된 비석인데 봉선 홍경사의 건립경위를 기록
최충이 글을 짓고 백현례가 글씨를 썼다
참고 (우리가 잘 아는 노래 중 한국을 빛낸100명의 위인 해동공자 최충이 바로 이분이다.)
내용은 사찰을 건립하는 이유로 불법을 전파하는 게 목적이지만 나그네의 숙소로 사용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직산현(현 천안)은 교통의 요지이기는 하나 강도의 출몰이 잦아 사람들이 다니기 어렵다... 이러한 내용이다. 지나는 길에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 듯하다.
아참!~~ 고려 명종 때 망이, 망소이가 민난(民亂)을 일으켰을 때 불타 없어져 지금은 갈기비만 도로가 옆에 서있다
성환역으로 가는 길에 해는 뜨고
오늘도 확실하게 더울 듯
천안대로 옆 버스 승강장에서
가장 약한 새끼발가락에만 천사가 예쁜 미더덕집을 만들었는데 바늘로 찔러 물을 빼고 바르는 반장고로 발라둔다
이후에 새끼 발가락에만 집중적으로 천사가 토목공사를 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8월 1일 아침 06시 40분경 413km 지점
24시간 하는 식당에 들러 노송님은 국밥을 드시고
저는 시원한 냉면으로
식사를 하면서 오늘도 날씨가 뜨거워 노송님은 천안에서 댁으로 가시라 말씀드린다.
피곤 피곤..
여름에는 그저 천사가 쉬러온다는 마트에 장 보러 가는 게 최고
그냥 들어와 한 바퀴 쉬~~ 돌아보고 밖으로 나간다.
날씨가 사람 잡을듯하여 천안역에 노송님을 댁으로 보내드리고
이제 다시 혼자 걷는다.
할배 고생 많으셨습니다.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
대한민국 사람들은 누구나 독립운동가들에게 빚을 안고 있으니
천안은 홍성과 함께 독립운동가들의 성지이며
이곳 천안 인근에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한용운 선생과 같은 분들의 생가가 있다
각얼음 병사를 목마 태우고
날씨가 더우니 2시간 정도 되기전에 거의 다 녹는다.
충절 오거리에서
오늘 아침부터 30도를 기분 좋게 달리고 아침 09시 36분 무렵
날씨가 더우니 사진 찍어 달라는 사람마다 꼭 어디 한 곳은 잘라먹는다.
부채는 어디에 두고 왔는지 언제 없어졌는지 모르고 등에 달고 다니던 깃발도 잊어먹고
편의점에 가면 물건을 사고 그냥 나왔다가 편의점 주인장이 뛰어와서 주고 가곤 한다
날씨가 더우니 정신이 땀과 함께 사라지는 듯
천안삼거리 주막집
천안은 교통의 중심이라 해남에서 올라오는 삼남길
그리고 천안 -청주 -문경새재를 거처 부산으로 가는 영남길
다시 천안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교통의 중심이며 요지다
딱 한잔만 하고 걸으면 좋은 주막집
주모는 건장한 머슴과 바람나서 먼 길 떠나고 빈집이다
김시민 장군
천안 삼거리 공원을 지나
선문 대학교 앞을 지나며
고개 넘어 도리티 삼거리 편의점에서 각얼음과 얼음꽁꽁을 몇 개 사고
더운 날씨에 내 영혼 털리기 전에 들어가 본다.
멸치는 뼈대 있는 가문이라 어지간한 양반님네 보다 더 지체 높은 가문의 생선?이다
문어나 오징어는 몸이 휠지언정 꺾이지 않으니 두녀석다 모범적인 생선이라 하겠다.
멸치란 녀석은 등골뼈가 44개, 볼기뼈가 46개 합 90개의 뼈대로 이루어져 있으니 어디 가서 큰소리치는 건 당연지사인데
그 뼈대 높은 가문의 자식들을 잡아다 영혼을 탈탈 털었다는 집에 들어가 멸치 영혼은 어떤 맛인지
음!~~ 지나는 길에 찾으시면 아주 좋을듯한 국수 기행집
참고하시기 바란다. 국수기행 주인분이 아주 친절하셨고 제가 국수를 다 먹을 동안 각얼음을 냉동고에 보관도 해주셨습니다.
지나온길이고 오전 11시 무렵 기온 35도
걸어가야 할 길인데 뚜껑 열리기 직전이다.
가지고 간 각얼음은 모두 전사했고 아이스크림 몇 개는 먹기도 전에 물이 되어 그냥 마시기 좋게 되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천안 삼거리에서 1번 국도와 옛 국도 2 차선길을 병행하면서
가야 할 길
지나온길
오늘은 감자, 옥수수도 아닌 사람 잡는 날인 듯
대곡 삼거리 편의점에 들러 각얼음병사와 목구멍까지 시원한 쭈쭈바 2개 사서
세종시 소종면 대곡 삼거리에서 지난날 걸었던 소정면으로 가지 않고 이번에는 처음 가보는 길인 금북정맥이 지나는 대곡터널로가본다.
참고로 소정면 행정 삼거리에서 직진길은 공주로 향하는 차령고개가 나오고 차령고개 넘어가면 삼남(三南) 길이니 저 아래 동네 전남 땅끝으로 가는 길이고
좌측길은 전의면을 통해서 조치원으로 가는 길이다.
차령고개는 금북정맥길에 만날 수 있는 고개인데 삼남지방으로 내려가는 고개다.
오래전 고려 초대왕이던 왕건이 죽기 전에 훈요십조에 남겼다는 10가지 조항으로 어찌 보면 지역 갈등 조항일 수도 있다.
예로 "거란의 풍습을 배우지 말라!"는 조항이나 서울과 호남을 이어주는 고개 차령 이남 즉 금강 아래 지역인 "호남지역의 사람에게는 벼슬을 주지 말라"는 글 즉 지역차별에 관한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배워서 남 주냐"며 학문에 힘쓰라 하셨고
견훤과 싸우면서 어지간히 골병든 모양이었기에 죽으면서도 "가들하고 놀지말라"며 유언을 남기셨다
깔끔하게 정리하셨는데 "뒤끝이 있으시네 "
금북정맥 길인 대곡터널이 기다리고
갑자기 앞에 차가 한대 서고 아저씨께서 지나가시다가 "눈물 나게 멋진 모습"이라며 말씀하셨고
시원한 커피와 물한병을 건네주시고 사라지셨습니다.
멀어지는 차를 보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드립니다
이고마움을 어찌할까
받았으니 누군가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각얼음은 벌써 다 녹았지만 아직 차가워 머리와 발바닥 열기부터 식힌다.

첫댓글 각얼음 병사가 그래도 큰 임무를 했습니다.^^ 비록 태양과 맞짱 뜨다가 항상 전사 하지만요!!
노송선배님이 방장님 뒷모습을 보며 오만가지 심경을 느끼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멋진 포빛선배도 만나섰군요! 하이디 고문님도요!
길따라 구름따라? 태양피해? 여유롭지만 더운 길! 낭만있지만 미더덕이 신발안에서 자라는 그길~ 그럼에도 클럽분들이 하나둘 방장님 뵈러 찾아와 주시니~ 또 같이 걸어주시고~ 2부에서 맥가이버님도요!
결국 사람이 그 길을 걷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멋진 길 저도 같이 걸어보고 싶네요!^^ 후기 잘 봤습니다. 다음 후기 기대하겠습니다.^^
각얼음 병사들이끈기가 없어 한두시간이면 전멸이었지만
보급기지가 많아서 목덜미는 늘 시원하게 해서 걸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곡 연락해야 할 분들께만 연락을 하는데
늘 신세를 집니다.
대간길 언제 가시나요?
@배병만 마음 같아서는 바로 가고 싶지만~ 휴가를 잡아둔게... 9월1.2.3일, 9월19일(금)과 10월말입니다. 11월달은 매주(금)요일 휴가!
휴가를 후반기에 쓰려구 거의 안 썼습니다.ㅎㅎ
9월초는 지리왕복숙제!
9월19일은 부산지부에서 설악산 온다기에 놀려갈 생각이라~(이날 대간 할까도 생각중입니다. 망설여집니다.)
암튼 계획은 10월말에 말씀하신 구간까지만 쓱 다녀올까 생각중입니다. 그 전에 시간이 나면 가구요!
11월쯤에 타키님 연락드려 팔공산 소능종주 부탁하려고 합니다.ㅎㅎ
이렇게 보니 산행계획이 많습니다.ㅠㅠ 와이프 눈치 많이 볼 듯 합니다.ㅋㅋ
정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대한민국
방장님 걷는다고 노송님, 하이디님, 포근한빛님...
이렇게 먼 걸음 마다않고 찾아와주시고
노송님은 오랜만의 환상의 짝꿍으로 같이 걸음하셔서 좋았겠습니다.
방장님이 늘 말씀하셨죠. 같기 걷기에 노송님만한 분이 없다고...
모르는 분들께서 물이며 음료수도...
방장님은 늘 보면 덕이 있으십니다.^^
이제 천안까지 내려왔으니... 곧 이짝 동네 후기.
각얼음 쭈쭈바와 함께하는 방장님 다음 후기도 기대해 봅니다.
그렇죠ㅛ
저와 먼길을 갈때 검증 된 분이시죠
이제는 말안해도 서로가 잘 알아보는데 노송님께서도 연세가 많으셨어 앞으로 어찌될지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양으로간 배도령은 과거에 급제하고 내려오는 길이 너무 힘들어도 집에 계시는 가족에게 알릴길은없고
마음만 급하니 그래도 가야하니 힘내서 걸어보지만 하루 걸음걸이는 정해져 있으니 심히 괴로운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하이튼 이더위에 경복궁을 인증하고
돌아서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였을까요
노송님 포근한빛님 그리고 하이디님
모두 한마음일것 입니다
이제 다음에 진행하실땐 각얼음
전사시키지 말고 좋은날 택하여 진행하세요
4부엔 어떤 이야기들이 기다려 집니다
저도 올해가기전에 지리를 지나쳐야 할것 같습니다.
하천 이야기도 늦가을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 갈곳이 마땅히 없네요
지리화대 종주 글 과 사진 잘봤습니다.
각얼음 방장님 팁으로 사용해 봤는데 효과 최고입니다만 지맥길에서는 편의점 찾기가 쉽지 않아 아쉽습니다.
강남 지나다 보면 비슷한 여인들은
같은 성형외과에서 수술한 것이라 합니다.
광화문에서 찍은 사진에 복근이 부럽습니다.
무인 라면 가게에서 두분처럼 저도 가끔 난감한 일 겪곤 합니다 ㅎ
방장님 처음 뵈었지만 사진으로 본 것처럼 구리빛 피부에 카르스마 넘치는 멋진 상남자 포스였고 만나보니 부드럽게 대화도 잘 되었고 제 나와바리 오셨으니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그냥 지나지 않으시고 전화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노송 선배님은 예전에 광교산에서 우연히 마주쳐 인사드렸지만 당연히 저를 모르셨을 것이기에 말없이 지나갔었고 이번에 두번째 뵈었는데
연세에 비해 젊어 보이셨습니다.
천안 주변에 애국지사 분들의 생가가 많군요.
차를 세워 커피와 물을 주신 아저씨 눈에도 방장님의 뿜어져 나오는 포스도 그 더운날 국토종주 하는 모습도 멋져 보였나 봅니다^^
ㅎㅎㅎ 무인 라면 가게에서 아주 생쑈를 했구요
두번 다시 그런데 안간다고 맹세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나저나 자전거는 잘 고치셨나요
빛님의 후기 잘 보고 있는 1인이니 몸조심해서 다녀 오시기 바랍니다
더위 대피소 대형마트, 한가지 배웠습니다.
누구는 정차된 버스 출입문에 머리를 집어 넣었다 금새 원위치 하던데, 그것 보다는 더 효율적인 겻 같습니다...^^
더위와의 사투가 처절합니다.
금북정맥 1구간 날머리 대곡터널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임금도 없고 번잡한 한양은 자연을 벗 삼는 자에게 있을 곳이 못되니 빨리 경상감영으로 내려오세요.
더운날 최고의 피서지는 대형 마트죠
무조건 들어가서 음료수 하나 들고 나오는데
가끔 날파리 군대도 같이 들어가곤 합니다.
오늘도 열심히 민원 해결 하시기 바라며 ...어디가서 낮잠 주무시면 큰일 납니다.
지방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올라간다는 것은
이미 '초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중시(또는 복시)'를 보러 간다는 뜻입니다.
초시는 각 지방 감영에서 보았는데, 거기만 합격해도 대단한 영광으로 여겼지요.
중시는 한양에서 치러졌고, 경서에 관한 논술 시험을 보는 생원시와
주제에 맞게 시를 짓는 진사시로 나뉘는데 합격 경쟁률이 대략 15:1 정도였어요.
중시에 합격하면 벼슬에 나갈 수도 있고
여유가 있는 명문가의 경우에는 성균관에 입학하여 약 3년 정도 수학할 수도 있었지요.
성균관 유생들이 보는 시험이 '대과'였고, 임금을 모시고 보는 경우에 '전시'라 하였지요.
3~5년마다('별시'도 있고, 당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치러지는 대과에서
33명 가량을 뽑았습니다.
대과에서 1등을 하면 이를 '장원급제'라 하였고, 본인 뿐만 아니라 집안이 일어날 수 있었지요.
방장님이 여러 차례 경복궁에 올라가서 임금을 알현하지 못하고 내려오심에
과거가 얼마나 힘든 일이었나 생각하며 몇 자 적었고요
과거를 보지 못하였거나 임금을 뵙지 못하였어도
방장님은 수많은 산꾼들이 모여사는 제삼리 마을의 촌주이시니 그깟 과거가 대수이겠습니까.
가거보러 영남,삼남,괘방령,통용 강릉에서 다녔는데
모두 다 떨어지고 이제 강화도에서 한양가는 강화대로길 한번 남아있습니다.
떨어지면 양반댁 무남독녀 외동딸이라도 보쌈해서 올 생각입니다.
글 감사드리며 훗날 왜관 석적 오실때 연락 주시면 한번 찾아가겠습니다.
소금이 된 땀의 서걱거림, 미더덕된 고통의 발꼬락, 바짝바짝 말라가는 목구멍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어쩌자고 야속하게 비는 안오고 엉뚱한곳에만 퍼부었을까요
ㅎㅎㅎ 다음판부터 비가 옵니다.
저의 기돗발이 하늘을 울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글 감사드리구요 후기 잘 보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정류장에서 찍힌..
고개숙인 방장님 모습, 그 사진 한장에..
잠시 당시 그 날의 공기를 상상해봅니다..
지독하게도 뜨거웠던 날씨..
숨조차 쉬기 어려웠을 뜨거운 공기..
겁도 없이 내민 발 깊숙히.. 훈장이라곤 하시나..
제가 기억하는 그 훈장은 쓰리고 아렸던 고통의 기억 뿐인데..
대체 뭣이 방장님을 즐겁게 했기에..
방장님 기억속엔 죽도록 힘들었던 기억보다..
이리 재미난 상상들로 가득한 건지..
어찌 이런 글들을 써내려 가실수가 있는 건지..
참.. 세상에 이런일이!! 입니다..
저야 뭐 재밌게 읽어 내려갔지만..
웃을일이 아닌것 같기도 하고.. ㅋㅋ
웃어도 되는건지.. 재밌어도 되는건지..
ㅋㅋ
암튼 여러분께서 짤라먹은 짧막한 사진들 덕분에..
글은 더 잼있어졌고..ㅋ
역시..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걸까요..?? ㅎㅎ
나만 아니면 되니까!! ㅋㅋㅋ
고생 많으셨습니다!!
음 재미있게 보셨다니 훗날 한번 가서 재미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모임 준비하시느라 바쁘실텐데 글까지 달아주시고
"성은이 앙극하옵니다"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눈물나게 불쌍해~(멋짐)
보였나봅니다ㅎ
저의 동네지나가실때~(과천~수원)
뜨거운 아스길 함께체험 해봤어야 되는데 아쉬움이 큽니다.
목표한 걸음 완보를하심 늦었지만 눈물나게 축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