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마을당산제(풍암동 당산어린이공원)/ 서연정
2016년 6월 10일
전국이 활활 타오르는 한여름이다. 에어컨이나 선풍기에서 내뿜는 바람이 아니라 자연의 바람을 풀어 주는 나무가 그립다. 더구나 그 나무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당산나무 그늘이라면, 그늘의 깊이와 운치가 남다를 것은 자명하다.
우리 선조들은 마을을 지켜주는 신령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공경과 숭배는 제사라는 의식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제사는 일년에 한 번 대체로 정초나 정월열나흗날 밤 자정 무렵에 거행되었다.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행사였기에 마을 사람 모두가 참여하는 큰 행사였다. 신령한 나무라고 마을 구성원이 합의한 나무를 당산나무로 정하고 그 나무에 지내는 제를 당산제라고 하였다.
신암마을 당산나무는 풍암동 1129번지 당산어린이공원 내의 왕버들나무로 수령이 280년 되었다. 1982년 광주의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수고가 14m이고, 나무둘레는 6.2m이다. 한쪽이 혹시 무너질세라 지지대를 받치고는 있으나 한눈에 보아도 무척 잘생겼다. 어마어마한 몸에서 위풍당당함과 동시에 자애로움을 풍기는 이 나무는 이 마을의 할머니당산이다. 할아버지 당산은 마을 토박이 어르신 말씀에 의하면, “한국아델리움아파트 근처에 있었는데 아파트촌 건설 과정에서 고생을 해서인지 고사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당산제에는 할아버지당산을 새로 정해서 금줄을 둘렀다. 할머니당산이 홀로 서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짝을 구해준 주민들의 발상이 재미있다. 나무나 사람이나 짝을 이루는 것이 좋다는 생각, 얼마나 인간적인가.
한국토지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광주풍암지구 주거단지는 1987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당산어린이공원 맞은편의 주은모아아파트는 1997년 6월에 착공되었다. 그 이전의 이곳 풍경은 어떠하였을지 잘 모르겠지만 아파트들이 조성되고 신암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마을의 분위기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공동체의 와해가 시작되었을 텐데 마을 어르신 몇 분이 근근이 신암마을 당산제의 명맥을 지켜왔다. 2005년 신암마을당산제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그 이후에 당산제는 정월대보름의 주민축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해를 거듭할수록 제의 모습이 정교하게 갖춰지고 마을공동체의 복원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어 사람들의 참여도 늘어났을 것이다. 필자처럼 신암마을에 살지 않는 사람도 부러움 반 기대 반으로 내년의 정월대보름을 기다리게 되니 말이다.
2016년 2월 22일 월요일, 정월대보름 당산제에 참석하였다. 그날 오후5시30분부터 풍물패 길놀이가 시작되어 흥을 돋우었다. 공원 한쪽에 소원지를 적어 거는 탑이 마련되어 있었다. 흔히 ‘달집’이라고 부르는 것을 여기에서는 ‘소원지탑’이라고 명명하였다. 사람들은 한 해의 복을 비는 각종 덕담을 적어 걸었다. 잔치마당이 펼쳐지니 신이 난 아이들이 우르르 뛰어다녔다. 학원에 묶여 지내느라 공원에는 얼굴도 빼쭉하지 않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하다. 지전춤이 끝나자 당산제를 마치고 열린 소원지탑 태우기는 장관이었다. 불길이 모든 흉한 일들을 태워버리는 듯 검푸른 하늘을 향하여 타올랐다.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에는 간단한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
날씨는 무척 추웠다. 소원지탑을 태울 때 날아다니는 불티가 옷에 달라붙어 불구멍이 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도심에서 체험한 당산제는 감동적이었다. 필자는 한껏 뿌듯한 마음으로 시조를 한 수 써서 문예지에 발표하기도 하였다.
둘러보면 주변은 빙 둘러 거대한 아파트들이다. 정월에는 앙상하던 가지들에 푸른 너울을 풍성하게 늘어뜨리고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해 준다. 병풍처럼 당산나무를 둘러 있는 사람들의 숨결에 당산나무도 즐거운 모양이다. 사람은 나무를 보살피고 나무는 사람에게 그늘을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이미지, 도심에서 보기 어려운 무척 평화로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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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2일 당산제 사진 촬영
아파트숲 당산제/ 서 연 정
수백 살 함께 먹은 일월이 뚝, 끊겼네
아파트 들어서며 뿌리 뽑힌 지아비
해로를 꿈꾸던 나무 구새통이 되었네
꽹과리 장단 가락 땡볕으로 쏟은들
홀로 맞는 정월은 해마다 아픈 노래
가슴에 냉돌이 깔려 달구지 못 하였네
공방 액운 벗기느니 다산다복 점지하오
타는 달집 불길 속에 도투락 휘날리는 듯
나 어린 신랑을 맞아 시집가는 할매당산
- 2016년 5월호 한울문학 초대시조
(끝)
첫댓글 올해 신암마을 당산제는 각종 게시문에 2월 11일로 공지되었다. 그런데 AI와 구제역 발생으로
날짜가 오늘까지도 확정되지 못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