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네(본심)와 다테마에(명분)
최근 일련의 사태, 곧 새누리당의 국민공천을 둘러싼 친박과 비박 사이의 공천싸움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일본말을 떠올리게 된다.
혼네(本音 : 본음)는 본심, 속내를 말하고, 다테마에(建前 : 건전)는 명분, 표면적인 주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인의 경우 외교와 상거래에서는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혼네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예를 들면 발을 밟히고서도 속(혼네)으로는 아프고 화나지만 겉(다테마에)으로는 괜찮다고 말하는 게 일본 사람이다. 그렇다고 다테마에만 믿고 그냥 가버리면 욕먹는다. 괜찮다고 해도 정중히 사과해야 하는 게 예의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인의 다테마에만 믿고 거래하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혼네와 다테마에는 일본인의 전유물만은 아닌 듯하다. 옛날 우리네 선비들도 속으로는 하고 싶고, 먹고 싶은 데도 밖으로는 안 그런 척 참는 게 미덕이었다. 남자가 속마음으로는 추우면서도 여자 앞이라 겉으로는 안 추운 척하는 것이 사나이다운 매력이기도 한 것이다.
이 정도라면 인간적인 면도 있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혼네와 다테마에가 혼동이 되어 현실로 나타나거나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될 때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새누리당 김 무성 대표가 전략공천은 안되다면서 내년 총선에 나설 새누리당 후보를 오픈프라이머리나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경선으로 뽑겠다고 하자 친박이 들고 일어났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겠다는 말은 겉으로 드러나는 명분만은 그럴 듯해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도 명분싸움에서 김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가 유리하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언론과 전문가가 김 대표가 내건 사탕발림의 명분만 보고 속셈은 간과했거나 몰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럼 김 대표의 속내는 뭔가? 바로 친박계나 박 대통령의 전략공천을 막아 현상유지 내지는 현역의원 물갈이를 말자는 얘기다. 국민공천제는 겉으로는 아주 민주적인 것 같지만 신인에게는 불리하고 현역의원이나 기성 정치인에게 절대 유리한 제도이다.
김 대표와 비박계로서는 국민공천제를 통해 19대 국회에서 우세한 비박계의 의석분포를 20대 국회에서도 그대로 유지하자는 속셈이다. 실제로 19대 국회에 들어와 국회의장, 당 대표,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박계가 모조리 승리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반해 친박계는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전략공천이든 상향공천이든 이를 통해 물갈이 하자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친박과 비박의 공천싸움의 혼네는 신인과 실력자를 영입해 현역의원을 물갈이 하자는 주장과 현상유지, 기득권 확보를 위해 물갈이를 하지 말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주장이 언뜻 보기에는 명분싸움에서 유리한 듯하다. 과연 그럴까? 언론에서는 지금의 19대 국회가 역대 국회 가운데 최악이라고 평하고 있다. 신문에는 국회해산과 국회개혁을 요구하는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있다. 거기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걸 보면 물갈이 하자는 쪽에 힘이 더 실리고 있다 하겠다.
따지고 보면 국민공천이란 용어도 잘못된 말이다. 정당이 당내경선을 통해 국회의원 후보를 공천하고 유권자는 투표를 통해 이를 뽑으면 되는 것이다. 공천마저 국민이 한다면 연간 수 백 억 원의 국고보조를 받는 정당이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되고 이는 바로 정당의 직무유기로 이어진다. 국회의원 한 명 뽑는데 투표 한 번이면 족하지 막대한 비용이 드는 투표를 두 번 하게 되는 국민공천제는 시간과 노력, 돈의 낭비다.
이런 면에서는 20% 전략공천을 통해 물갈이를 하겠다는 새정치연합이 더 솔직하다 하겠다. 전략공천이라면 무조건 나쁘다고 거부반응부터 보이지만 어느 면에서 전략공천은 필요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전략공천을 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야합과 독단이 난무하는 밀실공천은 안되지만 신인등용과 인재영입을 위해서는 전략공천은 필요한 제도이다. 물론 두 번이나 탈락한 김 대표로서는 전략공천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겠지만 말이다.
이념논쟁으로 번져 국론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보수우파와 진보좌파간의 혼네와 다테마에 싸움이다. 진보좌파는 다양성 확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기득권 유지를 통한 좌파이념의 확산, 전파가 목적인 것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우파는 전교조 교과서나 다름없는 좌편향의 역사교과서를 바로 잡자는 것이 그들의 명분이요 속내인 것이다.
정부가 2003년 자율성과 다양성 확보를 위해 역사교과서 검정제도를 도입했지만 결과는 자율을 파괴하는 세력이 그 공간을 독차지 해 다양성은 커녕 오히려 획일화 된 좌편향의 역사교과서가 교단을 점령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선 역사교과서 집필진이 좌편향으로 기울어져 있고 회전문 집필을 하고 있어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7종의 역사교과서 근현대사 분야를 22명이 집필했는데 그 중 18명이 진보좌파 성향이라는 것이 언론 보도다. 그런가 하면 2011년 교과서 집필진 37명 중 28명이, 다시 2014년 집필진에 참여, 특정 집필진이 교과서를 독과점하는 회전문 집필을 하고 있음도 밝혀졌다.
거기다 집필진 5명중 4명이 科同門(과동문)인 경우도 있고, 작년에 출간된 한국사 검정교과서에서 현대사 단원을 쓴 교사 12명 중 6명은 전교조 소속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다양한 시각이나 견해를 가진 집필자가 아닌 특정 학파와 학맥, 전교조 같은 좌파집단이 검정교과서를 만들어 내니 한 사람의 생각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교과서가 나오게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이 심어지리라는 건 불을 보듯 번한 사실이다. 그래서 북한은 자주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반면, 남한은 외세 의존적인데다 불의로 점철된 양 서술하고 있다. 또 6.25 전쟁은 남북공동책임이며 이런 면에서 인민공화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교과서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노동운동의 대부인 전 태일은 있어도 산업보국의 이 병철은 없고, 유 관순은 빼고 김 일성의 항일 보천보 전투는 넣어 놓은 검정교과서가 활개치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다양성을 주장하는 진보좌파들이 보수우파의 출판사인 교학사 진입을 막아버린 건 자기 모순이다. 지난 해 초, 보수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려던 상당수의 학교가 결정을 번복해야만 했다.
전교조를 비롯한 좌파단체의 학교 앞 시위, 대자보 게시, 공갈, 협박 전화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좌파 세력이 자신들과 다른 성향의 교과서는 발도 못 붙이도록 하는 행태를 태연히 저지르고 있는 현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 결과 2014년 10월 기준으로 전국 2,285개교 가운데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0.1%인 3개 학교에 불과하고 90%이상의 고등학교는 좌편향 교과서를 채택했던 것이다.
이렇게 좌파성향의 필진이 집필한 좌파성향의 역사교과서가 10년 이상 판을 치고 있는 데도 담당 부서인 교육부는 물론 범정부 차원에서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 바람에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의 말대로, “다양성의 가면을 쓴 한 종의 편향교과서”만의 굿판만 더 키워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정부가 지난 2013년 8종의 역사교과서를 검토한 끝에 7종 41건에 대해 수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자 일부 집필진은 마지못해 땜질수정을 하고, 나머지는 자율권 침해라며 교육부 명령을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1, 2심에서 모두 패소하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 중이지만 수정명령이 언제 시행될지 그저 하자 세월이다.
검정체제로는 좌편향을 바로잡기 힘들다고 판단한 정부가 뒤늦게 국정체제로 전환하려 하자 진보좌파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고 야당도 때를 만난 듯 역사교과서 문제를 이념논쟁에다 정치투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체제를 두고, 새정치연합 이 종걸 원내대표는 “아버지는 군사쿠데타, 딸은 역사쿠데타”라고 말하는가 하면, 나오지도 않은 역사교과서를 놓고 “국정교과서는 독재교과서”, “친일, 유신독재 미화하는 교과서”라고 매도하고 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말이다.
그런가 하면 제일 야당의 문재인 대표는 박대통령과 김 무성 대표를 겨냥,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려는 것이 이번 교과서 사태의 발단”이라고 개인 가족사를 들먹이며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일부 대학교수들도 국정화 반대성명을 내고 집필을 거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보소우파와 정부, 진보좌파와 야당 사이의 국정화를 둘러싼 논란에 온 사회가 이념전쟁, 진영싸움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데, 교수들마저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정화가 잘못 됐다면 오히려 적극 참여해서 잘못을 바로 잡도록 해야지 집필거부는 교수로서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만에 하나 교수들의 집단행동이 다양한 논의를 가로 막거나 이탈자를 막으려는 행동은 아닌지 의심케 해서는 곤란한 일이다.
국정체제하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펴는 등 일제지배를 미화하고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선 좌파세력을 소홀히 다뤄 검정체제를 불러오게 한 보수우파나, 그렇다고 검정체제 아래에서 좌편향 일변도의 획일화된 역사교과서를 펴내 다시 국정체제로의 전환을 초래케 한 진보좌파나 자업자득의 측면이 없지 않다.
요는 국정이냐, 검정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문제이다.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해서도 좌우를 아우르는 객관적인 역사인식을 통한 올바른 교과서를 만든다면 국정교과서가 검정교과서보다 못하라는 법은 없다.
국정, 검정을 따질 게 아니라 2세 들에게 바람직한 역사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정부에서도 역사교과서 초안이 완성되면 온라인에 공개해서 국민검증을 받겠다고 하니까 무조건 국정체제를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정부를 한 번 믿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기득권 수호와 좌파의 굿판유지, 좌편향사관을 전파하려는 혼네는 숨기고, 국민공천이다, 다양화, 자율화다 해서 羊頭狗肉(양두구육)식에, 糖衣錠(당의정)의 다테마에를 내세워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단기 4348년 10월 21일 대구에서 抱民 徐昌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