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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태'라는 사람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마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이란 의미입니다. 유다 지파 중 가장 거룩한 레위지파에 속했던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기 저에는 그 이름도 '레위'였습니다(회심 후에 마태로 불리웠음, 눅5:27-28). 그는 알패오의 아들로서(막2:14)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한 명이며, 그의 원래 직업은 가버나움 세관의 세리였습니다(막2:1,14). 당시 세리는 어부와는 달리 교육을 제법 받은 계층이었습니다. 계산능력과 경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했으며 당시 통용되는 모든 언어인 아람어, 헬라어, 라틴어까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세리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손가락질 받는 대표적인 죄인들이었습니다.
곧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미워하는 대상이 곧 세리였습니다. 그래서 복음서 곳곳에는 ‘세리와 창기와 죄인’을 같은 부류, 즉 죄인이요 인간쓰레기 같은 자들로 구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교육받은 계층인 세리가 그 당시 왜 유대인들이 가장 미워하는 대상이 되었을까요?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세금을 걷는 일은 로마를 위한 일이므로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요, 민족의 반역자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로마의 세금 제도 자체가 유대 사람들에게 세리들이 미움을 받도록 만들었습니다. 로마는 워낙 큰 대국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관리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세금을 거둬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대리 수납제도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 방법은 입찰식으로 해서 한 지역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거둬들이겠다는 사람에게 세금 징수권이 맡겨졌습니다. 하여간 정해진 액수를 로마의 국고에 수납하고 나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액수를 백성들에게 거둬들이든지 크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정직한 세리라는 것은 기념비를 세워줄 만큼 찾기 힘든 세태였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철저하고 악랄하게 세금을 거두었는지 당시 유대인들 가운에 이런 속담까지 있었다고 합니다("산에 가면 사자가 있고, 동네에 가면 세리가 있다”).
세리란 이렇게 사자처럼 동족을 움켜쥐고 뜯어먹는 존재요 더러운 매국노로 몰린 것이고 따라서 법정에서도 세리는 증인이 될 수 없고 나아가 회당 출입도 금지되고 이들이 낸 헌금이나 자선금도 더럽다고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당시 최대의 욕이 ‘이 세리 같은 놈’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알만 합니다. 유대인들은 세리와는 혼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이들은 죄인이요, 도둑놈에 민족 반역자라는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직 돈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된 '마태'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는 '헤롯 안디바'의 지배 하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까운 한 세관에 근무하였습니다(눅 5:27). 다메섹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뻗은 도로에 있는 한 세관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을 통과하는 화물의 징세에 종사했으며, 로마 제국의 징세 청구 대리자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물질적으로는 상당히 부유했습니다. 그 후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생명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사도로서의 훈련을 쌓아갔습니다.
1.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눅5:27-28,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리 '레위'라고도 하는 '마태'가 세관에 앉았을 때 그는 퍽 고독했을 것입니다. 참 평안을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런 심정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부르시고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마태가 구원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실은 그 당시에 매우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리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모든 고정관념을 깨뜨리시고 '마태'를 그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마9:9)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나를 좇으라"는 말씀을 듣자마자 그는 지체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마태'는 그의 이 순종과 결단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답할 정도로 적극적이며 결단력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세금을 억척스럽게 모으던 세리가 이제 모든 수단과 노력을 다 기울여, 아니 목숨까지 바쳐 사람을 모으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같은 어부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부르심을 받아 물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된 것처럼 '마태'도 세금 모으는 세리에서 사람을 모으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의 옛사람은 남의 등을 치고, 가진 것 다 빼앗고 긁어모아 내 배를 채우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새사람 되어 복음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돈만 알고 재산만 바라며 살던 레위는 죽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먹고사는 마태로 새롭게 거듭난 것입니다. 눅5:28에 보면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았다.”고 합니다. 같은 내용을 다룬 마9장이나 막2장에는 이 말이 안 나오고 오직 누가복음에만 강조된 내용입니다. 어부였던 제자들이 가진 모든 것은 고기 잡는 그물과 배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 '세배대'와 삯군까지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리 '마태'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세관 앞에서 돈을 거두던 돈상을 버렸을 것입니다. 세리라는 직업도 버리고 또 그동안 모았던 큰 재산도 버렸을 것입니다. 어떻게 모은 재산입니까? 아무리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난해도 꾹 참고 오로지 이 돈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인생입니다. 이 돈은 그가 누리던 모든 기득권과 편안한 삶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귀한 돈을, 그 피 같은 재산을 이제 다 포기하고, 모든 기득권과 편안한 삶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는 재물이 많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로서의 부르심을 포기한 부자 청년의 경우와 너무나 대조가 됩니다.
막10:17-31,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마태'가 주님의 부르심을 이처럼 받았을 때 자신이 그처럼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가치들을 포기하지 못했다면 그의 이름은 다만 ‘더럽고 비열한 세리 레위’라고만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있는 모든 기득권과 이익을 주님의 부르심을 위하여 다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좇아갔을 때 그의 이름은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로 영원히 아름답고도 영광스럽게 남게 되었습니다.
2. 부르심의 은혜를 감사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벌렸습니다.
눅5: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고....... 세리들에게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세리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세리가 되면 돈은 벌 수 있었지만, 한없이 고독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찾아갈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리 '마태'를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사시다가 공생애를 시작할 무렵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셨는데,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신 후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눈여겨보셨을 것입니다. 그의 두 어깨에 내려앉은 무거운 고독의 짐을 보셨을 것입니다.
아마 '마태'도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예수'란 선생이 이사를 왔는데, 그가 특별한 선생이며, 능력과 기사를 많이 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시몬'이란 한 동네 어부가 그의 제자가 된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시몬'이 깊은 데 그물을 내려서 엄청난 고기를 잡은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 '안드레'와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까지 제자가 된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한 동네에 사는 문둥병자도 '예수'에게 고침을 받았고, 지붕에서 달아 내리워진 중풍병자도 나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게 있었습니다. 그 '예수'란 선생님이 자신을 몸소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시에도 랍비라고 불리운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세리를 공격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기에 '마태'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기대를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오신 것입니다. 자신이 찾아간 것도 아니고, 그 분이 몸소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게다가 그 '예수' 선생님은 자신을 찾아오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을 제자로 삼고자 오신 것입니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자기 아들을 삼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파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맞서서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는 자신을 찾아와 제자를 삼으려는 예수님! 그 예수님은 '마태'를 감격시켰습니다. 이런 감격은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마태'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자신을 특별 대접하셔서 제자가 되게 하신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는 생각 끝에 잔치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 잔치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내 집에서도 잔치가 열린다. 나를 세리라고 깔보고 무시한 사람들은 잘 보라! 당신들이 그렇게 존경하는 선생님, 능력이 많으신 그 분이 나를 찾아오셨고, 나를 제자로 삼고자 하신다. 그 분이 지금 내 집에 오셨다. 내 집에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이렇게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가 베푼 잔치는 예수님을 만난 기쁨으로 연 잔치입니다. 고독한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감격으로 베푼 잔치였습니다. 죄인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은 감격으로 베푼 잔치였습니다. 무가치한 존재가 쓸모 있는 존재로 인정받아 제자가 된 데 대한 감격으로 베푼 잔치였습니다. 유대 사회 한 모퉁이에 버려졌던 한 사람의 인생에 구원의 빛이 비추어진 감격으로 베푼 잔치였습니다.
3. 동료 세리들을 예수님께 인도하였습니다.
눅 5: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로마 황제의 창고를 채우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세관에 앉아 동족의 고혈을 짜내는데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던 '마태'가 이제는 회개한 의인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전까지 그를 주장하던 육신의 안목과 가치관이 주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자 세상 재물을 좇았던 그의 열심은 주님께로 향했습니다. 그가 헌신하기로 결심했을 때 많은 사람을 자기 집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는 착복하여 쌓아 두었던 재물로 큰 잔치를 벌여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구원을 증거하며 주님께로 인도하는 이웃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그가 베푼 잔치에는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비난에 대해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0∼13)고 말씀하셨습니다.
4. 자신의 달란트(재능)를 복음선교를 위하여 선용했습니다.
'마태'는 관리출신으로 지식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후로 예수님의 교훈과 일생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는 직접 선교지에 나가서 복음 전하는 전도도 귀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예수님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보고 겪은 예수님의 모습을 그의 지식적이고도 문학적인 재능을 선용하여 낱낱이 기록하여 위대한 마태복음의 저자가 됩니다. 그래서 그가 기록한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교훈이 가장 많이 수록되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산상보훈은 다른 어떤 복음보다도 자세하고 체계 있게 기록되어 있으며 유대인 기독교도를 위해 히브리어로 썼습니다.
그런고로 마태복음은 4개의 복음서 중에도 ‘유대인을 위한 복음서’입니다. 전에는 동족 유대인들을 팔아먹던 매국노 '마태'가 이제 동족인 유대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서를 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부인 다른 제자들보다 글을 쓸 줄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재능을 가지고 십분 예수님을 위해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자세한 역사와 교훈의 내용과 기사 및 이적을 자세히 전해 준 것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에 가장 빛난 금자탑을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과연 그가 남긴 마태복음은 오늘도 이렇게 찬란하게 남아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탁구 여왕' 양영자 선교사의 경우입니다.
양영자 선교사는 1964년생. 명지대 영문과 졸업. 1983년 도쿄 세계탁구선수권 여자 단식 준우승. 86년 서울 아시아 경기 단체전 우승. 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 여자 복식 우승, 단식 준우승. 88년 서울올림픽 여자 복식 우승. 92년 결혼 후 선교사로 제2인생. 현 한국 WEC국제선교회 선교사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행복해요. 15년간 몽골 선교 사역은 주님의 철저한 인도하심을 체험한 감동적인 시간들이었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탁구 여왕’으로 불렸던 양영자(48세) 씨는 잘 훈련된 선교사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안식년을 맞아 지난 달(2012년 3월) 고국을 찾은 양 선교사는 오랜 해외선교생활로 지쳐있을 법도 했지만 영적 기쁨과 보람 때문인지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16(2012년 4월)일 서울 방배동 한 교회에서 만난 그에게 몽골에서의 선교사 생활을 물어봤습니다. 그는 “탁구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소외 이웃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는 몽골이 제2의 고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주특기인 탁구도 선교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2004년 사역지를 중국 네이멍구 지역으로 옯겼습니다. 지난 해 이 지역 여자탁구 유망주 2명을 국내로 데려왔습니다. 전국체전에서 준우승한 이은혜(17·안산 단원고)와 이시은(17·귀화 예정)이 그 주인공. 이 둘을 한국 국가대표로 키울 예정입니다. “선수 시절엔 오직 성적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살아가고 있어요. 사람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고통을 치유해 주고 있지요. 인생의 목적이 달라진 거예요. 제가 체험한 예수 사랑을 나눌 수 있고 남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요.”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의 크고 작음이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달란트(재능)를 무엇(누구)을 위해 사용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5. 성령을 받은 이후는 평생을 흔들림이 없이 주님의 제자요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만나 그를 따른 순간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이 되어 생명을 건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자가 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열심과 능력은 주님이 받으시는 고난의 자리를 회피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던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날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사도로서 직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행 1:13). 성령이 충만하여진 마태는 복음을 전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마태복음’을 기록하여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랑의 빚을 갚는 헌신된 삶을 살다가 말년에는 아라비아와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