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모든 저녁에 우리는
구례군 문척면 섬진강변의 한 식당에서 종덕 형님, 해화 형, 인호 형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종덕 형님은 생협과 한살림의 유래와 전망에 대해, 해화 형은 안동소주 45도짜리를 사서 어성초 등 각종 약초로 술을 담근 얘기, 이런저런 약초들로 담근 효소 얘기, 인호 형은 요즘 저녁놀의 아름다움에 대한 얘기들을 했다. 나는 묵묵히 삼겹살을 집어 먹다가 추석 쇠고 종덕 형님과 섬진강 자전거도로의 종점인 배알도까지 가 보자고 한 마디를 하였다. 가을 저녁의 순한 바람 속에서 모두들 제 놀이에 흠뻑 빠진 아이들이 돼 있었다. 돌아와 마루에 모깃불을 피우고 저녁 하늘을 바라본다. 저 앞집 개가 짖으니 옆집 개가 따라 짖는다. 옆집 개는 유배 와 위리안치된 사람처럼 잔뜩 쉰 목소리로 자신의 불우를 한탄하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컹컹! 맑은 소리로 저녁하늘에 퍼져 나가지 못하고 끅끅! 하며 끝이 꺾인 소리를 내는 걸까. 나는 그 개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상황에 짓눌려 있는지 가 보고 싶었지만 이사 와 4개월이나 지난 아직까지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그 개의 표정 속에서 내 눈빛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불편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을은 추사에게 당도하는 초의의 서신처럼 누군가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의 눈빛으로 오는가. 추사가 그랬다던가. 그대 나를 걱정하는 편지 더는 보내지 말라고. 언불진의(言不盡意). 초의가 보내온 차 한 줌을 우려 마시면서 추사는 뭍에 사는 이의 뜻을 다 알아챘으리. 마루에 홀로 앉아 여기 내려앉는 고요를 다 마시듯이. 가을 저녁은 사막처럼 적막하다. 하지만 한 점 바람이 상사화의 얼굴을 흔들리게 해서 마당 앞의 대추나무 미친 듯 춤추게 하는 회오리바람도 왔다 가리라. 처마에 반쪽 잘린 달이 빙긋이 웃는다. 마루에 깍지 끼고 누운 나도 그 달을 보며 실실 웃어 주었다.
첫댓글 정말 좋네요..구석태기에 낑겨서라도 한잔 기울일 수있다면... 쩝~~~ 먼 타향에서 고향쪽 하늘을 보며 입맛만 다십니다..
추석에 내려오시면 한잔 하죠. 저는 추석날 근무에 걸려서 꼼짝도 할 수 없답니다.
달이 놀랐겠어요~^^
이상한 사람이 실실 웃어서리~~~ㅋ
자연과 더불어
달빛과 더불어
노니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네요.
달이 웃으니 저도 웃었죠. 실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쁨은 구례에 사는 사람들의 특권이죠. ㅎㅎ
위리안치라..덕분에 오랫만에 송강 정철이 생각났어요^^
자주자주 만나는 섬진강 자전거 도로의 종점이 배알도라는 것도 첨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
정철은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암튼 고마워요
때는 한가위를 앞둔지라 반쯤 차오른 달님이 "이보게 그만 웃고 드가세. 감기 드네." 카네유.ㅎ
가을밤분위기깨는소리 죄송^^
하긴 그러고 난 다음날 콧물 훌쩍훌쩍...
아야~ 꽃무릇을 상사화로 착각한 것 아니냐?
가을엔 상사화가 피지 않습니다
너 나 따라댕김서 야생화나 나무들 배울래 안배울래?
수강료는 막걸리 한병이다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글이네요. 내마음도 따라서 시골마을 가을밤으로. 글씨체가 요상해서 뭍에서사는지 물에서사는지 잘 안보여욤.ㅠ
뭍이지요.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섬진강 바라보며 마시는술은 정다운이들이 마셨으니 얼마나 맛있엇을까
입맛만 다십니다 언젠간 한잔 하죠.
그럴 시간이 분명 있겠지요. 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