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꿈과 환생 그리고 참회
조 용길(동국대 교수)
초록빛속에 박힌 빨간 앵두나 까만 버찌 마냥 싱그러운 여름에 영그는
만상이 곱고 아름답다.
누가 있어 인생을 죄악이라 하고 죄인이라고 낙인찍었는가! 인간은 착각
과 무지와 집착에 의한 잘못을 저질렀을 뿐, 근원적으로 죄업을 지은 것은
아니다.
본래부터 부처님과 같이 밝고 맑고 고운 심성과 태양과 같은 무량 자비
희사의 원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 데도 숲 속에 감춰진 보석처럼 내어 쓰질
못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잘못을 참회하고 본성을 밝히는 수행만 한다면 천
하의 주인공이 바로 되는 것이리라.
어떤 사람이 심심하여 돼지꿈을 꾸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꿈 해몽가는
자네 오늘 잘 얻어먹겠네 하였다. 애초부터 거짓말이라 잘 얻어먹을 것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집에 오니 이웃집에서 잔치라고 오란단다. 잘 얻어먹게
되어 거짓 돼지꿈도 희한하게 맞추게 되었다.
이 친구 또 심심하여 그 뒷날도 꿈 해몽가를 찾아가 또 어젯밤에 돼지꿈
을 꾸었노라 하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 친구의 말을 들은 꿈해몽가는 자네
오늘 새 옷 갈아입겠네 하였다. 그러나 새 옷 갈아입을 일이 없는 이 친구가
집에 가니 마누라가 조카 돌잔치 가자고 옷 갈아입으란다. 귀신 같이 맞춘
다.
이 친구 속으로 놀랐으나 내친김에 그 다음날도 꿈 해몽가를 찾아가 선
생님 말씀대로 꿈이 잘 맞아 잘 얻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또 돼지
꿈을 꾸었습니다. 오늘은 어찌 될 것 같습니까? 하였다. 꿈 해몽가가 말하
기를 어허 자네 돼지꿈도 잘 꾸네 그러나 오늘은 조심하게 얻어맞겠네 하였
다. 두 번씩이나 거짓말하여 잘 맞췄으나 설마 오늘의 거짓말은 맞을 수가
있을까 의심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나오는데, 골목 길 건너에서 이 동
네에서 포악하기로 유명한 삼돌이란 녀석이 오고 있다. 그래서 다른 골목으
로 피신하는데 기어코 쫒아 와서는 사람을 보고 도망간다고 흠씬 얻어맞았
다. 가만히 생각하니 심심하여 거짓말로 돼지 꿈 꾸었다고 세 번 한 이야기
가 꼭 들어맞으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하여 꿈해몽
가를 또 찾아갔다.
선생님! 실은 제가 연속 3일 돼지꿈 꾸었다는 것은 심심해서 제가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거짓도 기가 막히게 맞추게 되는 것은 왜 입니까? 제
가 잘못했습니다. 그 연유를 알고자 합니다. 하니 그 해몽가는 어려울 것 없
네 원래 돼지란 놈은 배가 고프면 꿀꿀거리네 그러니 주인이 먹을 것을 주
게 되니 자네의 첫 번째 돼지꿈은 잘먹게 되어 있네,
다음 번의 꿈은 돼지란 놈은 또 꿀꿀거리면 주인이 돼지우리에 새 짚을
깔아 주거나 새 톱밥 등을 넣어 주는데 이것이 바로 새 옷 갈아입는 것이네
하였다. 그러면 세 번째 꿈은 어떤 것입니까 하니까, 그 꿈해몽가 왈, 돼지
가 또 꿀꿀거리면 주인장은 이제 몽둥이를 들고 와서 먹이도 주고 새 짚도
넣어 주었는데 또 시끄럽게 꿀꿀거린다고 사정없이 내리치네 이것이 자네가
삼일째 사정없이 얻어 맞게된 연유일세 이 세상은 거짓을 하든 진실을 하든
인과가 있는 것이네 하였다.
이 이야기는 한낱 인과의 한 보기이지만 구업을 통한 자업 자득과 자작
자수를 일깨워 주는 것이니 참회하는 자기 성찰의 길을 은연중으로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해인사에 세 학인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가을이 되어 잣나무에 잣을 따려
잣나무에 올라가게 되었다. 오래된 잣나무라 한번 올라가면 잣나무에서 잣
나무로 건너뛰게 되었는데 한 학인이 뛰다가 잘못 뛰어 떨어지게 되었다.
떨어진 이 학인은 본인이 떨어져 죽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두 학인은
이 학인이 숨을 쉬지 않으므로 열반당에 모셔 독경염불하고 있는데, 이 떨
어져 죽은 학인은 떨어지는 그 즉시로 자기가 낳아서 길러진 자기 고향집으
로 단번에 유체 이동(잔류의식)을 하게 되었다.
수구초심이라 여우는 죽으면, 머리를 자기가 낳아서 길러준 굴을 향해 둔
다는 고사가 있듯이, 업성에 끌려 고향에 왔으나 식구 등 부모 형제가 다들
머리가 아프다하고는 다들 방안에 머리를 싸메고 눕고 자기를 피한다. 이
학인 스님 생각하기를 하긴 내가 출가한 몸이지 내가 이 놈의 집구석을 왜
왔나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랬더니 그 동네 무당할미가 찬물에 찬밥을 말
아 김치 국물을 끼얹어서는 획 뿌리면서 이 놈의 객귀야 썩 물러가라 하면
서 식칼을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너무도 어이가 없고 기분이 나빠서 그만
제2의 고향인 해인사로 휑하니 오게 되었다.
해인사에 날아오니 열반당에서 자기 도반 친구 두 학인이 염불을 하는데
한 학인은 목탁을 치면서 살구나무 발우떼! 살구나무 발우떼! 하고 이상한
염불을 하고 또 한 학인은 제경요집! 제경요집! 하고 요령을 흔들고 있는 처
음 듣는 염불이어서 의아해 하고 있게 되었다.
또 보니 누가 누워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다. 바로 자기와 많이
닮아서 내려다 보다가 발로 찼더니 그 안으로 쏙 들어가게 되어 다시 살아
나게 되었다.
긴 숨을 쉬고 일어났더니 두 학인이 놀라 기절 초풍할 정도이다. 그런데
이 죽었던 학인은 본인이 죽었다 다시 살아 난 것은 도통 모르고 두 학인
스님에게 따진다. 아까보니 두 스님이 하는 염불은 처음 들어 보는데 무슨
염불인가 하니 두 스님이 얼굴이 빨개지며 미안해! 자네가 죽었었지 않나.
그래서 평소에 자네가 가지고 있던 살구나무 발우와 제경요집 책을 나눠 가
지려고 그런 것이네. 미안하네. 이렇게 다시 환생할 줄 몰랐네 하였다.
이 두 가지 이야기 가운데 우리는 참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예를 본 것이다.
거짓말로 인과가 사실로 드어나는데, 진실로 진정으로 최선을 다해 정성
을 기울이는 노력과 기도의 인과를 불보살님들이 외면할 리 없는 것이며 복
은 복대로 화는 화대로 진리는 진리대로 반야는 반야대로 나타나는 우주법
계임을 자각하여야 하겠다.
그리고 산자가 산자가 아니고 죽은 자가 죽은 자가 아님을 우리는 잘 살
펴보아야 한다.
교만과 자만과 치졸한 용기는 죽음을 불러 오지만 무량 자비의 원력은
누구에게나 행복과 안정과 반야의 지혜와 무아의 실천으로, 기도하는 삶 참
회하는 삶 모두에게 덕이 되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시켜 주는 것이기에 마하
반야의 큰 삶으로 무량공덕 쌓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불보살은 무한대의 시공을 살지만 중생은 무지하고 박복하고 교만하고
인색하고 덕을 쌓지 않으므로 무한 생명의 자비를 내어 살지 못하고 자기
한계의 업을 만들어 자업자득 공업공득의 윤회에서 끝끝내는 벗어 나지 못
하고 만다.
부처님의 경을 읽읍시다. 불보살님들의 무량자비를 실천합시다. 복과 지
혜의 태양의 빛을 온누리에 펼쳐 어두운 마음의 그림자를 물리칩시다.
시간 공간은 사는 자의 시간 공간이요 우주도 쓰는 자의 것이다. 시방세계
불보살님이 계시는 한 우리의 무량공덕의 샘은 마를 수 없고 업보 윤회의
쇠사슬은 감로 자비의 단비와 자유와 행복의 세계를 창출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 경전을 읽고 독경하고 기도 합시다. 이 길만이 이 세상의 행운을
실어오는 봄날의 훈풍이요 가을의 신선한 바람입니다.
만물은 춤추고 우리는 그 속에서 기뻐하고 부처님의 크고 환한 미소를
언제나 잊지 맙시다. 생명의 무한성을 생각하며 학업에 기술연마에 이웃돕기
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보람된 인생을 창출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증일 아함경 제 51. 대애도 열반품 2-827
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큰 죄업을 지었더라도 뉘우치면 허물은 엷어지리니 악의 근본은
사라지느니라.
자신이 지은 악업을 벗어나게 할 사람은 부모도 아니요 형제도 아니며
재물도 아니니라, 하셨다.
참회야 말로 이 세상의 새 생명을 잉태시키는 최고의 선물임을 우리는 넌
지시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무지장보살마하살
<2002년 여름 해탈의 첫걸음>
첫댓글 그동안 교정에 너무 게으름을 피웠어요. 열심히 하시는 운영자 분들 뵐 낯이 없네요.
수고 많으셨어요...저도 요즘 네이버 공사하느라 좀 바쁘네요...명경지수님...천천히 하죠...쉬엄쉬엄...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