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산행기
일시: 12월 6일(토) 09:40-16:00
코스: 갈령-형제봉-피앗재-천왕봉-헬기장삼거리-비로봉-입석대-신선대-청법대-문수봉-문장대-냉천휴게소-중사자암-세심정-법주사-주차장)19.9km
<자연속>카페와 함께 황악산을 산행한지가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그런데 좀처럼 모객이 되지 않아 가고팠던 대구 팔공산도 못 가고, 경기 오악 중 하나인 운악산 산행도 물거품이 되었다. 이번까지 세 번 연속 파토가 될 것 같아 다람쥐 제집 드나들 듯 카페에 자주 들락날락 거리며 동정을 살피기도 했고, 이번에도 파토가 되면 타 산악회 프로그램이라도 이용해야지 하는 생각에 올 처음으로 타산악회 홈피에도 기웃거려 보았다. 타 산악회도 불황인가 싶었는데, 그렇지가 않은 듯했다. 다들 거의 만석으로 출발하는 것처럼 보여 우리 카페의 처지가 더욱 안타깝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다행이도 극적으로 성사되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가는 것이 확정되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은 반대로 안 가는 것도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거꾸로 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참으로 “이번에도 파투웨다”라는 말이 듣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유는 은근히 주말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이는 마누라의 조심스러운 산행 여부의 재확인도 그렇고, 몹시 춥다는 일기예보가 다가오는 주말 산행을 머리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든 12월 첫산행이라 복장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장갑과 신발은 뭘 신고 끼면 더 좋은지, 아이젠과 스페츠는 가져가야 하는지, 먹을 것은 또 어떻게 얼마나 가져 가야할지... 온통 사소한 준비물들도 선택을 강요하는 고심의 대상이 된다. 겨울 산행은 이중 하나라도 선택이 만족치 않으면 산행 내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왠지 이번 산행은 뒤꼭지가 당긴다.
찬 바람 불어오는 양재역에는 11월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산악회 버스로 인산인해다. 우리 카페의 열성 회원이신 ‘오르다보니님’을 만나 저 앞쪽으로 지나는 세계관광을 보고 승차했다.산삼님과 천년초 대장이 인원을 파악하고 서둘러 죽전을 향해 출발해서, 예정된 시간 09:30분에 딱 맞춰 들머리 ‘갈령’에 도착했다.큼직막한 칡갈(葛)자의 ‘갈령’이란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고갯길을 닦을 때 칡이 하도 무성해서 칡갈(葛)자를 썼나 보다. 여름날 서울의 수많은 공지(空地)에서나 야산에서 왕성하게 번식하던 칡들의 모습이 떠오른다.“그 많던 칡들은 다 어디 갔지?” 올 한해 수없이 우리 카페를 다녀갔던 회원들의 모습, 그러나 지금은 소식조차 듣기 힘든 여러 회원분들의 모습이 왕성했던 칡들의 모습인 양 한 분씩 한 분씩 떠오른다. 이미 파토난 운악산 산행 댓글에서 임꺽정 대장님이 산행 신청하며 외치던 사자후(獅子吼)가 귓전에 생생하게 울린다.
“등산하는 사람들 다 어디 갔나요?”
서울에도 12월 되자마자 눈이 왔지만 겨우 발자국이 날 정도로 적게 내린 자국눈이었기에, 속리산에도 눈소식이 있다고 들었지만 대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그런데 내려서 보니 그 깊이가 한 자는 되는 ‘잣눈’이다. 눈 위에서 천대장 리딩 하에 다소 재미있는 스트레칭을 해본 뒤에 출발했다. 이 스트레칭이 앞으로 ‘자연속’ 카페의 명물이 되지 않을까 라는 예감이 든다. 스트레칭하면 북극성 대장이신데, 제 처지엔 북대장님은 저 하늘의 북극성만큼이나 이젠 뵙기 힘든 분이 되셨으니 천대장의 스트레칭으로 그때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를 지어본다.
갈령에서 형제봉 가는 길은 언제 눈이 왔는지 모르지만 눈이 내린 이후로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오르지 않은 숫눈길이다. 스트레칭을 리딩하던 천대장을 앞서 두 분이 먼저 숫눈길을 올랐다. 마치 눈석임물 때문에 질척질척해진 눈석잇길이 아니기에 봄날같은 따스한 날씨에 숫눈을 밟고 가는 기분이 참 좋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생각은 잠시뿐이었다. 계속 잣눈의 오름길이 연속되고, 해가 없는 산의 뒤편을 돌아서 갈 때는 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산행을 힘들게 한다.마치 히말라야의 한 구석쯤에 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게다가 “눈 위에 서리친다”는 속담처럼 무거운 아이젠이 눅눅한 습설에는 잘 먹히지도 않고 바닥에 눈들이 뭉쳐서 천근만근의 무게로 우리의 다리를 너무도 무겁게 한다. 얼마 가지도 못했건만 오름길에 한 발씩 떼어놓는 일이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큰 바위보다 좀 더 커 보이는 형제봉도 귀찮아서 오르지 않고 피앗재로 내려가는 길로 그냥 지나친다. 눈이 내려 쌓인 산은 이미 한 달 전에 봤던 가을 산의 모습이 이미 아니다.안면을 바꿔도 이렇게 바꾸다니! 나무들은 털갈이하는 짐승들처럼 몸에 붙은 잎들을 귀찮은 듯 거의 다 떨어냈고, 양탄자 같던 낙옆들은 눈 밑에서 보이지 않은 채 밟히면서 내 발을 더욱 미끄럽게 할 뿐이다.
이곳은 국립공원 경내가 아닌지 팻말이 너무도 없다. 갈령 이후 피앗재에서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났다.아직도 천왕봉까지 5.3km나 남았다.시간은 11시인데 13시까지는 천왕봉을 통과해야 한다는 지시가 있었다.마음이 좀 급해진다.천왕봉을 향해 오르다 우리보다 앞장서던 두 분과 합류해서 천대장이 앞장서다 러셀하며 가다보니 지쳤 보인다.닉을 알 수 없는 어떤 분이 앞장서서 가고 천대장은 휴식과 식사를 하고 오기로 해서 나는 그분의 발자국을 따라 천황봉으로 향했다.길은 계속 오름길이고 천황봉을 앞두고는 그 경사가 대단했다. 금일 산행 중 누구나 최고의 고비를 겪게 된 구간이었다.갈령에서 천황봉 코스는 눈이 없어도 상당히 힘든 코스일텐데 첫 겨울 산행으로 눈 쌓인 길을 아이젠을 하고 올라가야 하기에 너무도 힘이 들었다.천황봉 근처는 전라도나 충청도 산에서(울릉도에도 많다고 들었다.강원도에도 일부 눈에 띄고)흔히 볼 수 있는 속리산 최대의 산죽(조릿대) 군락지인 것 같다.눈 쌓인 산죽길을 통과하는 낭만도 피곤함 앞에는 무색해졌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천황봉(1075m)에서 사방으로 보이는 풍광의 모습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고 장쾌하다. 사방의 겹겹이 늘어선 크고 작은 산으로 이루어진 산줄기들은 병사들처럼 천황을 향해 늘어서 있고 천황 주변에 굵직한 암봉들은 줄지어 천황을 호위하는 장수들처럼 늠름하게 보인다. 마치 진시황의 무덤 속의 토용들같은 느낌으로 천황을 에워싸고 천황의 명령을 기다리는 듯 도열하고 있다. 속리산의 제일 봉은 문장대라기보다 천황봉이 이름처럼 제일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스로 13:00시에 천황봉에 섰지만 문장대거쳐 법주사 주차장까지 4시간에 갈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아 먼저 오르신 아까 그분에게 물었더니 반반이란다. 내 뒤를 이어 어느 틈에 오르신 또 한 분은 충분하다고 한다.(오늘 드림팀 종주는 결국 세 사람이 했다.)천황봉까지 하도 고생스러워서 문장대까지 거리가 4km가 안 되지만 적이 고민이 되어 물었던 것이다.그리고 문장대까지 길은 암봉들의 연속으로 보였기에 더욱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실제 걸어 보니 예전에도 걸었던 기억이 나는 길이다. 천황봉에서 주로 하행하는 코스가 더 많고 실제 암봉사이로 길이 잘 되어 있어서 체력이 소진된 것을 제외하고는 걸을 만한 코스였다. 걸으면서 보이는 수많은 암봉들의 모습이 또한 장쾌하다. 게다가 사람들이 여기서부터는 많이 왕래하는 것을 봐도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한 시간 20분만에 세조가 글을 읽었다는 문장대에 도착해서 소백산 바람을 연상케 하는 문장대에 올라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지나온 길들의 자취도 돌아보고 저 서북쪽 언젠가 꼭 가봐야하는 숙제로 남겨진 묘봉과 상학봉을 바라보기도 하고 경북 상주쪽 오늘 우리팀의 들머리였던 화북오송쪽 방면도 쳐다보았다. 하도 바람이 차기에 정상에선 오랜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문장대의 내력은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세조 임금이 요양을 위해 속리산을 찾아왔을 때 어느 날 꿈속에 귀공 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 일러 주었고, 다음 날 세조가 이곳에 올라 오륜삼강(五倫三綱)을 명시한 책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고 해서 문장대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이후로 구름에 감춰진 봉우리 운장대(雲藏臺)가 글이 숨겨진 봉우리라는 뜻의 문장대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문장대에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간다는 말이 있다. 난 각기 다른 코스로 이번에 드디에 문장대에 세 번 오르게 되었다.세 번 오름 중에 이 번이 가장 힘들었다. 오랜만에 산행을 해서인지 뒤꿈치가 까져서 디딜 때마다 아리고, 허벅지 안 쪽이 내려올 때 쥐가 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 2:30분부터 4:00시까지 천천히 내려왔다. 법주사에도 다시 들러서 부처님께 인사도 올리고 팔상전도 다시 보고, 금동 불상은 보수 중이라 멀리서 쳐다 보기만 하고 나왔다.정말 죽어서 극락에 간다면 이 정도 고생이 고생이겠는가? 극락에 갈 수 있는 자격증을 딴 것처럼 마음이 후련하다. 아울러 첫 겨울 산행에서 뜻하지 않게 좋은 경험을 했다. 지금은 아직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덕유산 구육종주를 위한 선행학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