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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MBC 「한밤의 음악편지」 그때 그 모습을 담은 임국희 아나운서다. MBC기자가 촬영해서 사진전시회에 출품했던 작품사진이다. 이 사진 얘기를 들은지 꾀 오래되었지만 2014년 12월 4일에야 볼 수 있었다. 액자로 된 전시회 작품 그대로 어딘가에 두었는데 찾지 못하다가 이제야 사진을 보여 주셨다. 아래 그 사진을 든 오늘의 임국희 아나운서, 50년, 반세기의 시차가 있는 그 모습과 그때의 목소리를 담어 2013년 12월 15일자 한국아나운서 클럽 「초대석」글을 함께 올렸다. 이 목소리를 듣는 분 들 가운데는 50년전의 추억을 되살리는 분도 계시고 때로는 임국희 아나운서가 지금도 20-30대 아나운서인것처럼 느껴지는 분도 계신다는 얘기를 듣는다.
인터뷰/ 김대호(MBC) 아나운서
임국희 선배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11월 안동에서 코이카협력부와 6․70년대에 입사 한 선배들과 함께한 워크숍 자리였다. 당시 공개 오디션을 거쳐 갓 입사했던 나는 갑자기 아나운서 대선배님들과 만나는 게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2년 후, 막연하게 대선배님이라고만 생각했던 분을 인터뷰 하자니 아는 것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둥대다가 결국 인터넷에 임국희 아나운서를 검색해봤다. 1934년생 (주: 1938년 생의 잘 못 기재된 인터냇 상의 연세), 1961년 KBS 입사, 64년 MBC 창사 멤버로 '한밤의 음악편지' DJ, ‘여성살롱’ MC……그렇게 인터뷰 당일,
나는 임국희 선배님과 만나자마자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뭔가를 질문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질문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실수한 건 빨리 잊고 다음 방송 기다렸지.’ 선배의 낙천적 방송관을 엿볼 수 있었다.
"선배님 원래 꿈이 아나운서였나요?"
"아니, 나는 원래 꿈이 없었어."
"아! 그럼 선배님 방송경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뭐가 있나요?"
"난 원래 지난 일들은 금방 잊는 성격이라 딱히 기억에 남는 일이 없네."
‘아,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당황했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 순간 임국희 선배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더니 말씀하시길,
"대호 씨 옛날이야기 잘 모르지? 인터뷰할 때 본인 이야기도 하면서 같이 대화하듯이 하면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어, 라디오처럼. 라디오 안 해봤지?"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갑자기 선배님이 가깝게 느껴지면서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인터뷰 요청을 받고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열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선배님 제가 입사 3년차인데 아직도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저에게 맞는 일인지 과연 잘 하고 있는지 고민이 되는데, 선배님께 서는 이런 고민 해보신 적 있으세요?"
선배님께서는 또 한 번 미소를 지으시고는 처음 방송을 접했을 때 일을 말씀해주시기 시작했다.
"서울대 떨어지고 성균관대학교에 들어간 나는 ‘뭘 해야겠다.’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어. 그러던 중 연극부에서 KBS에서 주최하는 라디오 연극에 여주인공역을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지. 난 당연히 거절했어. 당시에 여학생들은 간호사나 선생님 같은 직업을 가지려고 했지, 방송에 관련된 일은 창피하기도 하고 어른들도 좋아하지 않을 때였거든. 그런데 계속 조르기에 결국 경상도 술집마담 역으로 나가서 상을 받아 버린 거야. 그러더니 그 다음해는 KBS 성우들이 찾아와서 꼭 출연해달라고 따라다녀서 어쩔 수 없이 나갔는데 또 수상을 했지. 그 이후로 드라마를 해보라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난 싫었어."
"왜요? 배우가 싫어서요?"
"방송은 연습량이 너무 많아. 호호호! 나는 원래 연습에 약해. 하지만 이런 기회들이 자꾸 생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방송에 데뷔했지. 그래서인지 난 직업의식이 별로 없었어. 결혼을 하고 1961년에 KBS에 입사 후 64에 MBC 창사 멤버로 이직해 10년간 근무하다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했지. " 요즘에 많이 쓰는 말로 표현하자면 ‘쿨’ 그 자체였다. 한 평생을 아나운서라는 이름으로 살아 오신 선배님은 그만큼 직업의식이 투철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답변이었다.
"난 방송이 끝나고 항상 기뻤어요. 난 내가 항상 참 방송을 잘 한 것 같았어. 나한테 불리한건 금방 잊는 성격이라 실수한 일들을 빨리 잊고 다음 방송을 기다렸거든요." 이 말씀을 듣고 난 속으로 `아!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난 심각했던 거였다. 진지하되 방송을 즐길 줄 알아야 했는데, 과연 이 길이 맞는지 안 맞는지만 생각하다가 정작 방송을 즐기지 못했던 거였다. 이미 나 자신을 아나운서라고 내 입으로 말하고 다니면서도 아직도 진로 고민을 하고 있었으니 미련한 짓이었다. 난 의외의 매력을 가진 선배님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선배님 원래 성격이 낙천적이신 거예요?"
"아니, 훈련이지! 아까 말한 것처럼 이미 지난 일을 굳이 끄집어내서 고민하지 않았어요. 앞으로 올 일들을 즐기려고 노력했지." "선배님 그렇다면 방송생활을 하시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었겠네요?" "음, 있기는 했지. 두 번째 아이를 낳았을 때였지. 아이를 낳고 삼 주 정도를 쉬었어. 그리고 회사를 나가려니까 당시 내가 진행하던 프로그램들이 모두 없어진 상태였고 아나운서실에서는 ‘공부를 좀 더 하는 게 좋지 않겠어?’라는 말을 하더라고. 그 말은 ‘이제 아나운서를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라는 말이었던 것 같아."
난 개인적으로 다음에 이어질 말이 궁금해서 마치 손자가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듯이 빨리 말해달라고 했다.
DJ로 인기 절정이던 1970년 당시 스튜디오에서 ‘한밤의 음악편지’를 진행 중인 임국희 아나운서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만 두셨어요?“
"호호호, 내가 그때 좀 잘나갔거든. 사장님께 전화를 했지. 그리고 ‘이것이 최고경영자의 방침 입니까?’라고 물어봤어. 그리고 몇 시간 후 몸만 괜찮으면 내일부터 다시 나오라고 하더라고.” "와, 선배님! 정말 배짱까지 정말 대단하세요. 그렇다면 당시에 어떤 방송들을 했었나요?" "대호 씨, 정말 옛날이야기 잘 모르는구나. ‘한밤의 음악편지’ 몰라? 내가 1964년부터 72년까지 진행했지." "사실 찾아보고 알았어요. 죄송하지만 잘 몰라요." "호호호! 당시에는 오전 7시 전과 오후 10시 이후에는 여자 목소리가 전파를 타면 안 되는 시기였어." "네? 정말요? 왜요?"
"예전에는 그랬어. 그런데 ‘한밤의 음악편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밤 시간대에, 그것도 가요가 아닌 팝송이 나간 방송이었지. 당시에는 아나운서가 엔지니어와 작가의 일도 다했다고. 만능이 되어야 했지. 나는 음악도 많이 듣고 책도 많이 봤어. 그게 다 라디오 방송하는데 도움이 되었지. 다른 DJ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외국 앨범들도 많이 가지고 있었어. 그런 프로그램이었다고, 이 사람아!"
당시 선배님 방송 중 시낭송을 녹음해 만든 해적판 레코드가 날개 돋힌 듯 팔릴 정도였다고 한다. 선배님은 전성기를 기억하던 후배 방송인들의 요청으로 70세까지 나이를 무색케 하는 달콤한 목소리로 2003년 4월까지 tbs에서 DJ로 활동하셨다.
"죄송해요, 그런 것도 모르고. 하하하하! 그런데 선배님! 저는 뉴스, 예능, 시사교양 각 부문의 방송은 해봤는데 라디오를 못 해봤어요. 라디오 방송 정말 매력 있지만 어렵더라고요. 라디오 잘하는 비결이 있나요?"
"노력해야지, 노력! 책을 많이 읽고 교본 삼을만한 책을 만들어봐. 나도 많이 인용했어. 요즘에는 작가들이 있어서 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좋지 않은 점도 있어. 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말들도 간혹 있거든. 그래서 내 마음에 와 닿는 말들을 하기위해서라도 책을 많이 읽고 다시 내 말로 만들어서 전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방송은 순간 몰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체력소모가 심하거든. 체력이 좋아야해."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뭘 인터뷰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막막해 하던 내가 이제는 마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가까운 선배님같이 여겨져 뭔가 자꾸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나운서로서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했던 나를 일깨워주신 선배님이 한없이 감사했다. 그리고 이런 뻔한 질문은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결국 여쭤보고야 말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질문이야 말로 일생을 방송에 쏟아 부은 대선배님이 아니고는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이기에 임국희 선배님과 같은 분께 물어봐야 했던 것이다.
"선배님, 아나운서는 어때야 하나요?"
"아나운서는 표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표준이란 건 말이지, 보통 수준이라는 뜻이 아니라 남들이 따라와야 할 수준이라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올바른 도덕 기준을 갈고 닦아야 해. 나는 우리 아나운서 후배들이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본인의 도를 갈고 닦아서 끝까지 진실한 한 인간으로 남아줬으면 좋겠어. 그게 다야. 호호호!”
선배님의 말씀은 또 이렇게 쿨하게 끝났지만 나는 그 뒤에 환청마냥 이런 소리까지 들리는 듯 했다.`‘나는 우리 아나운서 후배들이 정말 좋아. 사랑스러워! 그리고 고마워! 앞으로도 우리 아나운서 후배들 승승장구하고 선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아나운서로서 굳건히 흔들리지 말아 줘요.’ 라고. 내가 현재 아나운서라는 이름 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사랑받는 이유는 선배님들의 덕임에도 불구하고 순간이나마 큰 부담을 가졌던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앞으로는 선배님들께서 닦아놓은 그 길을 더 아름답고 보기 좋게 가꾸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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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아리랑> 잡지가 주최한 연말 시상식에서 임국희 아나운서의 수상을 축하해준 김동건, 이영주, 최계환, 임국희, 박종세 아나운서(왼쪽부터)
2014년 mbc창사 53주년을 맞아 임국희 아나운서가 골드마우스 상을 받고 후배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는 모습이다. 상암 MBC 벽에는 골드마우스 상을 받은 임국희! 그 이름 영원히 올라 있을것이다,
윤후현(팔방미남) 선생님 글
한밤의 음악편지!를 진행 하셨던
명 아나운서 임국희님!... mbc 창사 53 주년을 맞이하여 골든 마우스 상,을 받으셨다니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오늘의 이 상을 수상 받기까지 갖은 고난과 노력을 해 오셨던 임국희 아나운서,의 화려한 이력을 떠 올려 봅니다. 담당자! 에게 엽서를 띠웠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 "내일을 기다리며, 한밤의 음악 편지,
유경환(유카리나)여사님 글
이제까지 아나운서로서의 임국희선생님을
좋아했었는데, 이 글을 통해 그분의 삶에대한 바르고, 낙천적인 면과, 때로는 대찬 실천의 자세가 제 마음에 많은 공감을 주는군요. 어떤 직업이든, 후배들이 바라보며 배울 수 있는 선배로 남을 수 있다는건, 성공한 사람입니다. 늘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후배 아나운서들의 귀감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정수 미주방송인협회 회장님 글
그립고 보고싶은 누나같은 임국회 선배님 참으로 반갑습니다. 방송 스튜디오에서 얼굴을 맞대고 방송하던 일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갑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선배님을 뵙고 너무 반가운 나머지 실럐를 무릎스고 소식을 전합니다. 미국 여행 오시면 저를 꼭 찾아주시면 영광이겟습니다. 아무조록 건강 하시고 다복다행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미주 방송인협회/여의도클럽, USA 회장 Robert Kim(말죽거리 김 정수) 재배
김무생(아나운서)선생님 글
★친 이모님 같으셨고, 무엇이든 다 챙겨주실 것만 같은 바로 이웃집 아줌마 같으셨던 임국희 대선배 아나운서님!! 결혼을 하신 후 61년 KBS에 입사하셨다가 64년 MBC 창사의 일원으로 자리를 옮기신 후 없어 남자 직원들이 소변 누는 소리가 다 들렸다고 방송프로그램 중 매일 팝송을 들려주는 있었지요! 그 방송멘트는 마치 티 없는 산골 소녀가 구름을 타고 산 중턱마루 나무 그늘에 앉아 한 편의 시를 읊는 그런 상큼한 소녀같았어요!
진행하셨던 프로그램은 여러가지가 있었지마는 저 개인적으로는 "MBC 여성살롱 임국희예요" 가 인상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당시에 이 방송시간만 되면 시골과 도시 할 것 없이 전국 곳곳에 라디오가 있는 곳이라면 다 함께 연합 합창이라도 하듯이 이 라디오 저 라디오에서 "MBC 여성살롱 임국희예요"가 메아리쳤습니다. 이 방송을 진행하실 때는 마치 포탄이 속사포로 발사되듯이 총탄이 자동 다연발로 날아 가듯이 방송하셨습니다. 처음 들을 때 "좀 빠르다"는 느낌을 주지만 조금만 듣고 있으면 빨려 들어가 버리고 계속 듣게되는 것이지요!
놓치지 않고 다 들린다는 얘기입니다. 시원히 뚫리는 듯한 기분을 주기도 했었으니까요! 생각합니다. 이런 방송의 마력으로 애청자 여러분의 수 없는 사연이 빗발쳤고 많은 청취자 여러분이 함께 하셨을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임 선배님께서 방송 하시는 모습을 먼발치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한 파도가 거슬러 올라오듯 넘실넘실! 거기다 얼굴은 새글새글 하면서도 상큼한 웃음이 쏟아지는 모습으로 방송하시고 계셨습니다. 그저 당시에 그러셨던 것처럼 그 속도감있으면서도 통쾌한 방송 멘트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권익 보호를 위해 결성된 "OB 초록회" 회장님직도 맡고 계시는 대 선배님! 2014년 MBC 창사 53주년을 맞아 "골든 마우스 상" 을 받으심을 축하드립니다. 후배 아나운서들이 아나운서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방송할 수 있는 것은 다
방송분야의 선배 방송인 여러분이 계셨기에 방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에게 방송의 지혜와 삶의 지혜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고맙게 배우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이렇게 뜻있는 대선배님에 관한 글을 올릴 수 있도록 "춘하추동 방송" 의 자료의 보고(寶庫)를 정성으로 이끌어 가시는 이장춘 이사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해 주시고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실 것을 부탁 드리며 글을 맺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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