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때에 만난 색소포니스트 김원용과 이정식
지금은 국내에서 최고의 색소포니스트로 자리잡고 있는 이 두 색소포니스트는 그들이 청소년 시절일 때 카페지기와 만나 같이 연
주활동을 했던 적이 있었기에 당시의 이야기를 펼쳐보려고 한다.
우리 속담에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 본다" 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이 바로 그런 걸출한 인물들이었다.
이들이 걸어 온 길을 보면 두사람 모두 음악을 시작할 때에 대중음악 부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고 이른 나이에 대중음악 연주자로
서 재즈의 중요성과 필수성을 빠르게 터득하여 재즈를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이다.
그러했기에 두 사람이 활동무대는 약간 달라도 대중음악계와 재즈계에서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 김원용 (Tenor Saxophone - 팝 재즈)
1971년 겨울, 필자는 KBS경음악단(현재의 KBS관현악단 - 단장 김강섭)에 근무하면서 밤에는 미8군 연예회사인 유니버설 소
속 Modern Cats 밴드의 리더로서 부평 Escom 관할인 Br#9 (김포공항 내의 미군클럽)에서 하우스밴드로 활동할 때였다.
테너 색소폰 주자가 그만 두게 되어 종로2가의 낙원상가(당시 연주인들의 소통 장소)에서 연주자를 구하고 있었는데 어느 지인의
소개로 김원용군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소개하는 사람 말이 현재 고등학교 학생이라는 거다. 나팔은 잘 분단다.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어서 원효로에 있는 우리의 소속사인 유니버설 근처의 아는 집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악기를 불어보
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테너색소폰 솔로로 일본인이 작곡한 "Forever with you"가 유행할 때였는데 김군은 그 곡을 연주했다.
곡 처음에 곧바로 나오는 아래 "Bb" 음의 Sub tone을 아주 세련되게 잘 내면서 그 다음 멜로디도 아주 멋있게 전개시키는 거였다.
자신의 악기도 아닌 것으로 연주를 했는데도 소리를 잘 낸다는 것은 평범한 직업연주자보다 낫다고 평을 할 수밖에 없는 결론이
었다.
당시에는 미국 음반에서 듣는 악기소리와 비슷하게 세련된 소리를 내는 연주자 보고 빠다(Butter =버터의 일본식 발음)소리를 낸
다고 했었는데 고등학생이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물어보니 서라벌예고 2학년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되며 그동안에 몇달
동안 일반무대 쇼밴드(써니악단)에서 지방 다니면서 일했었다고 했다. 확실히 어린 나이에 천재성이 엿보였다.
그 즉시 필자가 일하는 김포공항에 있는 미군 NCO(부사관)클럽으로 갔다.
쉬운 악보는 초견으로 잘 보았고 곡중에 딕시랜드 재즈 넘버인 "Muskrat Ramble" 악보를 보여주니 어렵다고하며 악보를 가져가
서 내일 해 오겠다고 한다. 그 다음 날 고교생으로는 리듬을 이해하기도 힘드는 빠른 템포의 그 곡의 연습을 잘 해와서 자연스럽게
연주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필자는 김원용군의 재능을 더 확장시켜 주려고 당시 재즈계의 신인으로서 유명했던 테너색소폰의 정
성조가 KBS경음악단에 카페지기와 같이 일할 때였기에 김원용군을 그에게 레슨을 받도록 주선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름쯤 지나자 먼저 일하던 일반무대쇼에서 같이 하자고 연락이 왔다며 그리로 가야겠다고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서 한 7~8년이 지난 후에 국도극장의 남 진 쇼에서 만났다. 그때는 이미 일반무대쇼밴드에서 베테랑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
었다. 또 얼마 지나서는 레코딩 세션맨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과 MBC라디오 악단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가능성이 보이던 뛰어난 능력자이기에 연주자로서 반드시 가야 할 큰 길로 바르게 들어선 것이다. 나름대로 재즈공부도 했
고 타고난 재능으로 승부의 세계에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놓지지 않고 정진했던 것이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후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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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딩세션에서는 그동안 테너색소폰의 스타 최인재(1934~ KBS관현악단 출신)님이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석권하
고 있었는데 그분의 뒤를 이어 새로운 대중음악계의 흐름(재즈 분위기의 멜로디 페이크)을 리드하며 가수들의 노래를 더욱 빛나
게 하는 역할을 잘 이루어 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국내의 일반인들에게서 색소폰 연주 붐이 일어나면서 그의 색소폰 실력은 아마츄어 동호인들에게 최고
의 우상이 되었고 2011년에는 한국색소폰협회 회장직도 맡았었다.
현재에도 그의 연주스타일은 건재하고 있고 솔리스트로서 많은 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의 솔로 독집음반도 다수 발매되었
다.
2016년부터는 레코딩세션맨들의 저작인접권 집중관리 단체인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약칭 음실련)의 4년 임기 회장으로서 연임
중에 있다. 또한 외국 색소폰 제조회사의 브랜드 홍보모델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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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식 (1961~ Tenor Saxophone - 리얼 재즈)
1980년은 카페지기가 속해 있던 김강섭(KBS-TV관현악단장)악단이 장충동의 타워호텔의 타워클럽에서 1976년부터 계속 연주활
동을 하고 있을때였다. 국내 최고의 고급 클럽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테너색소폰 주자가 그만 둔 관계로 연주자를 구하고 있을때
드럼주자였던 박희근군이 나이는 20세인데 테너색소폰을 잘 분다며 당시 악단총무였던 필자에게 알려준다. 청량리에 있는 모클
럽의 김세열악단에서 일하는데 자기가 데려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데려오라고 했더니 약속 날짜에 왔다. 그가 이정식이였다. 그때에는 마침 무용반주곡이 아라비안 댄스곡이었고 중간에 테
너색소폰 Adlib.이 32소절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스케일도 맞지않고 애드립라인도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그 긴 소절을 다 메꾸는
것이었다. 그 나이에 그렇게 처리한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모두들 칭찬을 했고 며칠 두고보니 크게 될 가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정식이 오기 전에는 재즈색소폰의 전설로 되어있는 김수열(1939~ KBS,MBC관현악단 출신)님이 수개월 전까지 연주하던 포지
션이었고 트럼펫에는 모던재즈의 스타 플레이어인 강대관(1934~ TBC,KBS관현악단 출신)님이 있었다. 모두들 "너는 재능이 있
으니 재즈를 공부해라" 고 권했고 강대관님은 재즈이론가인 이판근(1934~ 재즈이론가)님을 소개했고 필자는 테너 색소폰 김수열
님에게 소개해서 재즈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낮에는 클럽 악단 대기실에 일찍 나와서 개인연습을 꾸준히 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게 느껴질 정도로 실력이 변하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에 연습 코스를 제대로 잡으니 일취월장 -
김강섭단장님도 이정식의 그런 학구적인 모습을 보고 대견해 하며 좋아하셨고 외부행사가 있을때에는 이정식을 데리고 다니고
음악세계의 범위를 넓게 보도록 배려해 주시기도 했다. 당대의 최고 인기 색소폰주자인 이봉조님과 길옥윤님을 만나게 되면
꼭 이정식을 불러 인사를 드리게 하고 그분들에게 소개를 할때에는 "얘가 앞으로 당신을 잡아먹을 놈이요" 하고 농담을 하며 웃곤
했다.
1984년3월부터는 KBS-TV관현악단이 아닌 김강섭악단 자체로 팝오케스트라 콘서트를 소공동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열게 되었다. 이때에 이정식은 신관웅재즈캄보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고 이 팀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1986년에는 자신
의 재즈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하게 되면서 급속도로 이정식=재즈 라는 공식(?)이 성립되기 시작하는데 과거의 그 어떤 재즈계의
선배들 보다도 더 빠르게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88올림픽 기간중에는 대단히 많은 공연의 기회가 주어졌고 외국 재즈맨들
도 관심을 갖게 되면서 1991년에는 한국인 처음으로 일본 도쿄의 세계적인 재즈 클럽 "Blue Note"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카페지기는 한국의 재즈를 서술할 때에,
제1세대라고 할 수 있는 故이정식(1932~1970 Ten.Sax.) 이판근(1934~ bs-재즈 이론가) 강대관(1934~2017 Trumpet) 김수열
(1939~ Ten.Sax.) 등의 재즈맨들이 1960~70년대에 가난을 벗삼아 재즈에 미쳐 살면서 한국에 재즈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다
져 놓았다면 그 다음
제2세대가 되는 故정성조(1946~2014 Ten.Sax. 대학교수, KBS관현악단장) 신관웅(1946~ Piano 제1세대 재즈밴드 리더 ) 등은
1980년대에 한국의 재즈가 잘 자라도록 재즈나무를 심어서 가지가 무성하고 잎이 푸르게 자라도록 돌보았고 그 다음
제3세대인 이정식(1961~ Ten.Sax. 대학교수) 과 유학파 재즈맨들은 2000년을 전후하여 한국재즈라는 나무에 꽃과 열매를 주렁
주렁 열게 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특히 이정식이 돋보이는 것은 과거의 누구도 해보지 못한 방송 - 1990년대에는 재즈맨 이정식에 대해 지상파방송을 비롯한 여러
TV방송에서 1시간 분량의 단독 프로그램으로 다루었다는 것과 기독교방송(CBS-FM)의 늦은 밤 프로인 "All that Jazz" 의 재즈해
설과 진행을 맡아 1995~ 2009년까지 14년간을 이어 왔다는 것이다.
1998년에는 미국의 유명 재즈맨들과 뉴욕에서 레코딩하여 "이정식 in New York" 이란 타이틀로 재즈앨범을 발매했고 그외에도
민요와 가요를 재즈화 하여 레코딩한 음반도 많이 있다.
1999년 수원여대에 대중음악과(현재의 실용음악과)가 신설될 때부터 전임교수로 재직 중에 있으며
2005년 CBS재즈오케스트라(빅밴드)를 창단하여 활동하는 등 쉬지 않고 많은 재즈 관련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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