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읽는 기쁨] <46> 제2편 제6장 현교와 밀교 ⑤
만다라회 기획, 박희택 집필
제6절 ‘현밀이원’을 독송하기로 한다. 제6장 ‘현교와 밀교’의 마지막 절로서, 가~다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당대종사께서는 가항에서 현밀이원(顯密二元)의 각 일원(一元)을 ‘전문’으로 표현하셨으며, 나항에서는 문답법으로 우리나라의 현밀 발달양상을 역사적으로 고찰하셨으며, 다항에서는 현교의 유상법과 밀교의 무상법을 설하셨다. 가항부터 독송한다.
“현교와 밀교를 각각 전문(專門)으로 세워서 세상에 크게 나타내는 데 최후에 불교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밀교가 밝아지면 현교도 밝아진다. 현교가 밝아지면 세계의 종교도 밝아진다. 밀교에는 체상용(體相用)이 있으니, 마치 몸 의복 행동과 같다(실행론 2-6-6-가).”
‘나타내는 데’는 ‘나타내는데’로 표기되어 있는데 고쳐 표기하였다. 현밀이원은 현교전문과 밀교전문을 각각 세워서 이원발달하게 하는 데 최후에 불교가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하셨으니, ‘최후의 불교’는 대승현교와 후기대승밀교가 상호반영(相互反映)하여 상호상승(相互相乘)한 ‘진승(眞乘)’을 지칭한다고 할 것이다.
밀교가 밝아지면 현교도 밝아진다고 말씀하신 것은 밀교 대아사리로서 밀교의 밝아짐을 자임(自任)하신 것이며, 세계의 불교의 대종(大宗)인 현교가 밝아지면 세계의 종교도 밝아진다고 확신하신 것이다. 세계의 불교와 세계의 종교를 이원으로 보고 계신 바이다. 밀교의 삼대 체상용이 인간생활의 삼대 필요충분조건인 몸과 의복과 행동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과 같은 소이(所以)에서, 밀교가 세계의 종교의 밝아짐의 실마리가 됨을 밝히셨다. 오늘날 티베트밀교가 징험해 주고 있기도 하다.
나항 문답법은 내세극락과 미래성불(왕생성불)의 현교보다 현세정화와 생전해탈(즉신성불)의 밀교가 의의가 클 것 같은데, 어찌하여 우리나라 불교는 현교 문호(門戶)만 열어 이 세간과 떨어진 불교를 만들어 왔는지를 【문】으로 제시하신 후, 이에 대한 【답】을 두 가지 초점으로 해 주신다.
첫째,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를 세우고 불교를 쇠하게 하기 위하여, 불교의 제 종파를 정치적으로 통합하면서 밀교 종파를 현교에 통합하였던 바, 이는 현세를 주로 하고 내세가 없는 유교가 발전하기 위하여 현세정화를 하는 밀교 종파의 존재를 부정하였다고 고찰하셨다. 현세정화를 하는 밀교가 발달하면 유교의 자리가 침식당함을 설득력 있게 말씀하신 것이다.
“불교의 문화가 왕성하던 신라 고려시대에는 현교와 밀교 두 종류의 불교가 각각 종파를 세워서 발전하여 왔습니다. 조선시대에 와서 유교를 세우고 불교를 쇠하게 하기 위하여, 불교의 제 종파도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유교의 전제정치를 하였습니다. 유교는 현세를 주로 하고 내세가 없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밀교가 서게 되면 유교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또 현교 밀교 두 문을 통합하면 밀교문은 닫히고 맙니다(실행론 2-6-6-나).”
둘째, 현교는 조선시대에 교민화속하던 유교의 이면에 체가 되어 존속하여 왔으나, 유교가 쇠한 지금에 밀교가 일어나는 것은 법계의 사명이고 당연한 이치이며, 현교와 밀교가 이원이 되어 사회악을 바루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고찰하셨다. 사회악을 현밀이원으로 바루는 법은 현밀이원의 불교흥왕으로 불교가 현실법의 구속과는 달리 국민들의 마음을 바로 잡고 행실을 착하게 함을 설득력 있게 말씀하신 것이다.
“조선시대 불교는 미래를 주로 하는 현교만을 세워서 현실적인 유교의 이면(裏面)에 체(體)가 되어 존속되어 왔고, 밀교는 전멸 상태가 되듯이 이어왔습니다. (…) 교민화속(敎民化俗)하던 유교가 쇠한 지금에 밀교가 일어나는 것은 법계의 사명이고 당연한 이치입니다. (…) 국민 대개가 나쁜 사람은 형법으로만 단속하는 줄 알고, 불교를 세워서 물질시대에 치성하는 사회악을 이원(二元)으로 바루는 법을 모릅니다(실행론 2-6-6-나).”
다항은 현교의 유상법과 밀교의 무상법을 현교의 보시와 밀교의 희사를 대비하여 대종사께서 교설하신 말씀이다. 현교의 보시는 승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부처님께 올려 중생들을 사후에 제도하기 위한 현실법이라면, 밀교의 희사는 밀교행자가 직접적으로 살아있는 중생들의 교화를 위한 진리법이라고 강설하셨다.
말씀 가운데 ‘유상법으로 보시하고 강도하는’은 ‘유상법으로 보시하고 발원하는’으로, ‘무상법으로 하는’은 ‘무상법으로 희사하고 강도하는’으로 맥락상 고치는 것이 타당하므로 고쳐서 독송하였다. 강도(講度)는 ‘강설[講]로 깨우쳐 제도[度]되기를 서원함’을 뜻하는 대종사 특유의 밀교용어이다.
“현교에서 보시(布施)는 승(僧)을 통하여 부처님께 올려 중생들을 사후에 제도하기 위하여 유상법(有相法)으로써 현실로 하는 것이요, 밀교에서 하는 희사(喜捨)는 직접 살아있는 중생들의 교화(敎化)를 위하여 무상법(無相法)으로써 진리로 하는 것이다. 유상법으로 보시하고 발원하는 것은 부처님께 인연을 거는 것이며 후세에 과보를 받고, 무상으로 희사하고 강도(講度)하는 것은 직지성불(直指成佛)이니 현세와 후세까지 과보를 받는다(실행론 2-6-6—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