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책당국은 시장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강력한 정책을 처방하면 시장은 언제든지 그리
고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런 일은 외한시장에서 자주 벌어진다. 특히 국제수지가
흑자일 경우, 그래서 환율이 줄기차게 떨어질 경우, 정부가 달러를 충분하게 사들이면 환율 하락은 얼마
든지 막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정책을 펼치더라도 떨어질 환율은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곤 했던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었다.
물론 환율방어 정책이 성공을 거둔 적은 있다. 특히 2000년과 2008년 등 두 차례는 정책이 시장을 이겨
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도 있다. 2000년의 경우에는 정책당국이 무려 220억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사들임으로써 연초 1,140원 수준이던 환율을 연말에는 1,260원 대까지 끌어올렸다. 2008년의 경우에
는 달러를 사들이지 않고도 연초 940원 대이던 환율을 11월 한 때 1,500원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럼
그 당시에는 환율방어 정책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경제의 대표적인 건강성 지표 중 하나인 환율이 상승하자, 우리 경제의 건강성에 대한 의문이
일어났고, 결국 각종 경제 위기설이 난무하며 불안감이 확산되었다. 그러자 미래에 달러가 필요한 사람
들까지 수요를 현재로 이동시켰고, 이에 따라 가수요가 발생하자 환율은 폭등했다. 2000년에도 그랬고
2008년에도 그랬다. 정책이 직접 환율을 상승시킨 것이 아니라, 외환시장의 불안 심리와 그에 따른 수
요의 시간이동이 환율을 상승시킨 것이다.
그럼 그 결과라도 좋았을까? 아니다. 두 차례 모두 경기가 빠르게 하강했다. 2000년에는 1/4분기에 1
0%를 훌쩍 넘었던 전기비 성장률이 4/4분기에는 -4%를 기록했고, 2008년에는 1/4분기에 4%를 넘었
던 전기비 성장률이 4/4분기에는 -21%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환율을 상승시켰던 정책의 목적은 수출
을 늘려서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었는데, 경기는 오히려 급강하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환율정책은 처절
하게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환율방어 정책은 환율의 하락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특히 2002년과 2005년에
는 각각 무려 110억 달러 이상을 정책당국이 외환시장에서 사들였으나 환율 하락을 막아내지 못했다. 2
002년에는 연초 1,300원 대에서 연말에는 1,200원까지 떨어졌고, 2005년에는 연초 1,030원 대에서
1,010원 대로 떨어졌다. 그 밖의 해에도 30~50억 달러를 정책당국이 매년 사들였으나 환율은 줄기차게
떨어지기만 했다.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질까? 달러를 시장에서 사들이면 환율은 오르는 것이 정상일
것 같은데, 오히려 왜 떨어지기만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보자. 강물이 너무 많이 흐른다고 보를 쌓으면 어떤 일
이 벌어질까? 그 보에 물이 찰 때까지는 강물이 일시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위에서 흘
러온 수량만큼 다시 흐르게 된다. 그 밑에 또 보를 쌓더라도 강물이 그 보를 채우는 동안만 일시적으로
줄어들 뿐 곧 수량은 다시 더 많아진다. 오히려 보를 쌓고 관리하는 비용만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따름이
다. 환율방어 정책이란 일시적인 효과만 가지고 있을 뿐 장기적으로는 관리비용만 쌓이게 하는 셈이다.
따라서 환율방어 정책은 환율이 짧은 기간에 너무 큰 폭으로 하락하여, 매우 심각한 경제 불안을 조성할
우려가 있을 경우에만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의 환율방어 역시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봐도 무
방할 것이다. 외환당국이 지난 4월에 62억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사들였지만, 환율은 4월 초 1,370원 대
에서 월말에는 1,282원으로 떨어졌다. 5월에는 불과 한 달 동안에 무려 143억 달러를 사들였지만 환율
은 5월 말에 1,250원대로 떨어졌고, 6월 1일에는 1,234원까지 떨어졌다. 5월 한 달 동안에 정책당국이
달러를 매입한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가는 역사상 달러 매입이 최고를 기록했던 2000년의 경우조차 1년
동안에 기록한 실적이 200억 달러였다는 사실로 쉽게 알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달러가 유로나 엔화에 대해 약세를 보일 때에 정책당국이 환율 방어에 나섰다는 데에
있다. 달러 환율은 한 달 사이에 3.7% 하락했지만, 엔화 환율은 거의 그대로이고, 유로 환율은 약 3%
상승했다. 우리 돈이 엔화와 유로에 대해 그만큼 평가절하된 것이다. 외국계 금융회사는 이런 환율 격차
를 이용하여 엄청난 차익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국민이 피땀 흘려 벌어들인 외환을 고
스란히 외국계 금융회사에 바쳐야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장차 환율이 더 떨어질 경우(6월 말에는 1,200원 선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비쌀
때 사들인 달러는 환차손을 입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정부뿐만 아니라 은행 등의 금융회사들과 기업들
역시 비슷한 환차손을 입어야 한다. 손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환율이 안정되면 물가가 안정되고,
물가가 안정되면 같은 소득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경기가 더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
또한 물가가 안정되면 국제경쟁력은 물론이고 성장잠재력까지 살아날 수 있다. 이런 효과를 정책당국
의 환율방어가 가로막고 있다. 제발 정책당국이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