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금제 관 꾸미개
왕의 관 꾸미개(국보 154호)는 얇은 금판에 인동당초무늬와 불꽃무늬를 기본 문양으로 하여 맞새김하였다. 인동당초무늬는 전체적으로 중앙으로 모아지며 올라가고 타오르는 불꽃의 모습을 이룬다. 관 꾸미개의 전면에는 둥근 모양의 작은 달개가 금실에 매달려 있어 장식성이 강하고 화려하다. 왕비의 관 꾸미개(국보 155호) 역시 인동당초무늬와 불꽃무늬 장식을 맞새김하였다. 그러나 왕의 것에 비해 도식화 되었으며 좌우 대칭구도로 되어 있다는 점, 둥근 달개가 매달려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관 꾸미개 중앙에는 7장의 연꽃잎으로 장식된 대좌 위에 활짝 핀 꽃을 꽂은 화병이 있으며, 그 주위로 인동당초무늬와 불꽃무늬 장식이 배치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왕은 검은 비단관에 금꽃을 장식하고, 6품 나솔(奈率) 이상의 관리들은 은꽃을 장식하였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관 꾸미개는 문헌기록이나 출토위치 등으로 미루어 검은 비단으로 만든 관모에 꽂았던 장식품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구려와 비슷하다 전해지는 백제의 복식
관 꾸미개에 대한 내용은 문헌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紀) 고이왕조에는 ‘2월에 명을 내려 6품 이상은 자주색 옷을 입고 은꽃으로 관을 장식하고, 11품 이상은 다홍색 옷을 입으며 16품 이상은 푸른색 옷을 입게 하였다. 28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소매가 큰 자주색 두루마기와 푸른색 비단 바지를 입고, 금꽃으로 장식한 검은 비단관을 쓰고, 흰 가죽 띠를 두르고, 검은 가죽신을 신고 남당(南堂)에 앉아 정사를 보았다.’라는 기사가 있다. 이러한 내용은 [구당서(舊唐書)]를 비롯하여 [신당서(新唐書)], [북사(北史)], [수서(隋書)]등에서도 확인된다. 한편 관을 비롯한 백제의 복식은 고구려와 비슷하다고 전해지는데,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확인되는 조우관의 전통이 백제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북사]에는 “백제의 의복은 고구려와 대략 같다. 조정에서 절을 한다거나 제사를 지낸다면 그 관 양 옆에 날개를 덧붙이고, 전쟁 때는 붙이지 않는다.”라 전한다.
백제 문화의 보고, 공주 무령왕릉
무령왕릉은 백제 제25대왕 무령왕(武寧王, 재위 501~523년)의 무덤이며,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공이 밝혀진 무덤이기도 하다. 공주 송산리고분군 중의 하나인 무령왕릉은 1971년 7월 송산리 6호분의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으며 발견 직후 긴급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공주시 금성동에 위치한 송산리고분군은 백제 왕들의 무덤으로 20여기 이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현재 7기가 복원되어 있다. 이 중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 아치형의 천장을 한 무덤방과 무덤길을 갖춘 구조이다. 무덤 내부에서는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묘지석을 비롯하여 금과 은으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 금동신발, 청동거울, 중국제 도자기 등 4,6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중 17점이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중국 남조와 관련된 것이나 신라, 왜와의 교류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도 있어 백제 문화의 개방성과 국제성을 잘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