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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황도유학의 잔재인 충효교육과 충효관에 대하여 드리는 고언
서흥 김씨 대종회에서 주관하는 서흥인 자녀를 위한 '제1회 청소년 충효교육' 개최를 앞두고 충효교육의 문제점과 충효교육 장소인 도동서원 부근의 충효관에 대하여 고언을 드리오며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조선침략과 조선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하나로 이루어진 일본 식민통치문화가 조국의 8.15 광복 후에도 단절되지 않고 그대로 전승되어 오면서 국사학계와 국어학계가 고스란히 일제의 식민사관, 일본 어문화 정책을 지금까지 학교에서 그대로 가르치고 있는바, 유학(유교) 역시 일본의 조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조선인을 황국신민화하기 위한 전체주의적 지배이념인 황도유학(皇道儒學)이 단절되지 않은 채 친일 황도 유학파에 의하여 아직 그대로 전승되어 오면서 우리 유학계를 혼돈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 정신문화를 여지없이 파괴하고 있습니다. 여기 카페에서 충효사상과 충효교육의 문제점에 대하여 댓글로 제 졸견을 올린 바 있습니다만 충효사상 교육인 충효교육은 일본 황도유학의 잔재임을 말씀드립니다.
정통유교가 충과 효를 분리해 효를 강조한 것이라면, 황도유교는 충효 일치가 그 기반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충효인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사람이 국가에 충성한다.’라는 논리가 논어에는 없습니다. 충과 효를 하나로 묶는 충효는 논어의 사상이 아니며 일본식 사무라이 전통에 뿌리를 둔 일본 사상입니다. 이는 일본학자가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 대한 효도는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가르침은 실제로 유교에 근거가 없는 일본이 만들어낸 황도유교(皇道儒敎) 논리입니다. 이런 황도유학 충효 논리가 조선에 주입되면서 충효사상이 마치 우리 정통유교 논리인양 행세하면서 많은 사람이 우리 정통유교 논리로 알고 있습니다. 일찍이 일본은 에도시대(1603~1868)에 충효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했는데, 이것이 식민지 조선에서 뿌리내리면서 유교는 곧 충효라는 개념이 널리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본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충효 논리가 식민지 조선에 그대로 주입되면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일 뿐만 아니라 심히 부끄럽고 서글픈 일이기도 합니다.
논어와 맹자에 의하면 인(仁)과 의(義)가 유교 국가의 핵심인데, 상명하복(上命下服)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일본 군국주의 문화는 결코 유교문화가 아닙니다. 유교 문화권이 아닌 군국주의 국가 일본에서 변종 유교로 형성된 황도유학의 충효교육 논리는 일본에서의 메이지 유신, 제국헌법, 군인칙유, 교육칙어 등과, 한국에서는 박종홍과 박정희의 합작품인 10월 유신과 전체주의 교육 핵심 사상을 강요하던 국민교육헌장 그리고 가정의례준칙 등과 사상적으로 그 맥락을 같이 합니다. 삼일운동 후에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고토(齋藤實)는 조선 민족정신 문화 말살정책의 하나로 조선 유생의 친일화 공작을 전개하였는바, 황도유학은 경성제국대학 설립 간사와 교수로서 식민지 조선의 교육정책과 방향을 주도했던 일본 철학자 다카하시 도루(高橋 亭)가 만든 일본식 유교 철학체계인데, 황도유학 주창자인 조선 총독부 어용학자 다카하시 도루의 황도 유교는 일본 일왕(천황)의 절대적 위계 지배질서 구조를 바탕으로 한 충효 일체의 전체주의적 논리로 조선을 황국신민화하기 위한 일제의 전체주의적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입니다. 그 다카하시의 직계 제자이자 후에 서울대 교수와 성균관대 유학대 학장을 역임한 황도 유학자 박종홍(朴鍾鴻)은 골수 친일 학자로서 우리 배달겨레의 정신을 여지없이 파괴한 역적과 같은 인물입니다. 또한, 그는 일본 전체주의 사상이 뼛속 깊이 스며있는 황도 유학의 조선인 핵심 인물기도 합니다.
이제 8.15 광복 70주년이 가까워져 오고 있는 이때에 지금도 일제의 군국주의 식민잔재 이데올로기 문화인 황도유학 충효사상이 충효교육이라는 형태로 우리 생활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바, 이는 마치 충효가 우리 정통유교 사상인 듯 보이지만 황국신민으로서 충성을 다 하라는 일본 식민 지배정신이 녹아있는 왜의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이번에 우리 대종회에서 실시하고자 하는 '청소년 충효교육'은 일본이 우리에게 심어준 황도유학 충효사상 충효교육으로 오해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서라도 순수한 우리 선비 정신문화 교육인 '청소년 선비교육'으로 명칭 변경함이 마땅하며 바르다고 사료됩니다.
다음은 충효교육 장소인 도동서원 부근에 위치한 충효관(忠孝館)에 대하여입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충효관은 도동서원이나 우리 문중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는 서원이나 향교 그 외 기관에서 인성교육 예절교육을 위하여 충효라는 이름으로 충효관 충효교육원 따위의 건물을 건립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충효관이라 할 것 같으면 효충관이라 해야 맞는데 효충관은 전국에서 한곳에서만 발견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예전에는 흔치 않던 일로 우리 정신문화와 민족 정체성의 관점에서 볼 때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불길한 사례입니다. 문화재 주변 지역은 문화재를 보호하고 민족문화 보존차원에서, 문화재와 우리 정신문화를 해치는 상이한 건축물은 제한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우리 선비문화를 주도해야 할 수위 서원인 도동서원 옆에 비록 한옥 건축물이기는 하나 황도유학 잔재의 인상을 주는 충효관이 건립되었다는 것은, 우리 정통유학과 선비정신이 일제의 황도유학과 절대 함께 공존할 수 없듯이, 도동서원의 우리 고유 선비정신과도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충효관이 도동서원과 직접 관련이 없는 건물이라 할지라도 도동서원 부근에 위치한 건물로 그 명칭이 도동서원 선비문화와는 상이하므로, 서원 문화와 어울리게 충효관이 아니라 한훤당 선생의 한빙계 선비정신과 상통할 수 있는 명칭의 건물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새로운 명칭으로 한빙관(寒氷館)보다는 차별화하여 한빙당(寒氷堂)이나 한빙재(寒氷齋)와 같은 명칭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이번 충효교육은 우리 서흥 문중으로서는 처음으로 시행되는 일이기에 우리 문중사나 한훤당 선생의 위상으로 보나 역사적인 의의가 크다 하겠습니다. 이에 한훤당 선생의 올곧은 선비정신이 흐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충정에서 진심으로 드리는 고언이오니 깊이 혜량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누대에 걸쳐 변함없이 한빙계 선비 정신을 이어온 우리 서흥 문중으로서는 한훤당 선생의 위상과 선비정신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또한 우리 배달겨레의 정신을 지키기 위하여, 나라 잃은 실국시대에 일제의 황도유학으로 말미암은 민족정신 말살정책에 한빙계 선비 정신으로 두려움 없이 저항하였던 창녕 계팔 출신 유학자이며 애국지사인 영남 중파 간취 김희봉(澗翠 金熙琫 1875~1927) 선조의 기개와 한빙계 선비 정신이 후대에 와서 흐려지거나 변질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대종회는 충효교육을 준비하면서 이번 충효교육 강의자료가 길이 후손에게 전해질 것인즉 해당 강사로부터 강의 원고를 미리 제출받아 충분히 점검 검토하였으리라 믿어지나, 이번 충효교육 명칭만은 반드시 선비교육 명칭으로 바꿔 시행할 수 있기를 감히 제안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충효관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예컨대 한빙당(寒氷堂)이나 한빙재(寒氷齋)와 같은 다른 명칭으로 변경 요구하기 바랍니다. 하오나 도동서원이나 한훤당 기념사업회 또는 우리 종가나 문중에서 앞으로 이런 건물을 건립할 것을 예상하여 한빙당이나 한빙제로의 명칭 변경 요구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제 의견입니다. 아쉬운 점은 도동서원 주변 건물로 도동서원의 정신문화인 선비문화와 맞지 않는 건물인 충효관이 들어설 때, 왜 우리 문중에서는 적절치 않은 충효관 명칭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는지 외람되지만, 식견이 넓지 못한 저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에 천학비재하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 두서없는 졸문을 올리오니 혹시 보시기에 미숙한 표현이 있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종회를 위한 문중 어른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오며 이번 선비교육이 순조로이 잘 진행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태신이 적었습니다.
아랫글은 서흥김씨대종보(제62호) '서흥인 자녀들을 위한 충효교육'이라는 제하의 대종회 카페 기사를 보고 지난 2013년 5월 1일과 5월 8일에 충효사상에 관하여 제가 댓글과 답글로 올린 글입니다. 내용을 일부 수정 요약하여 그대로 여기에 옮깁니다. 참고 바랍니다.
충효(忠孝)가 진정 유교사상일까요?
부모에게 효도하듯이 나라에 충성하라는 논조가 논어에는 단 한 군데도 없습니다. 충효(忠孝)라는 말은 법가사상인 한비자 제20편의 제목으로 처음 등장하여 전제군주권 강화를 목적으로 관습적으로 쓰이기는 하였으나, 충효 사상은 특별히 일본의 에도시대 지배 이념으로 등장하여 무시무시한 일본 군국주의적 언어로 분화되어 우리 조선에 유입되면서 35년간 우리 조선이 일제 지배통치를 받는 동안 충효 사상이 마치 우리 전통 유교사상인 양 행세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유교의 핵심 덕목인 효제충신(孝悌忠信)을 효제충순(孝悌忠順)으로, 아주 다른 뜻으로 효와 충을 함께 묶어 그것도 효충(孝忠)이 아니라 충효(忠孝)라 하였습니다. 일본의 효 개념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일본에는 우리와 같은 효 개념이 없습니다. 효자(孝子)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우리와 다른 일본의 '이에(家)' 개념에서 형성된 충과 효가 통합된 충효 사상은 '도쿠가와 막부'에서 발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유입된 일본의 충효 사상으로 말미암아 유교의 본질과 내용은 흐트러지고 엉뚱한 돌연변이 유교사상으로 충효 사상이 마치 유교의 본질과 중심 사상인 양 행세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 이념적으로 체계화 한 사람이 일본 유학자 산록소행((山鹿素行 야마가 소꼬오1662~1685)입니다. 물론 공자와 그의 제자의 문답록인 효경(孝經)의 경행록의 성심 편에 충효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보화(寶貨)는 용지유진(用之有盡)이요 효충(孝忠)은 향지무궁(享之無窮)이니라"라는 내용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는 충효 사상이 아니라 효충(孝忠) 사상 즉 충서(忠恕) 사상입니다. 공자나 맹자도 효는 충보다 더 중요함을 수도 없이 가르쳤지만, 후세에 집권자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나라에 충성을 먼저 하는 길이 곧 효라고 하여 충효 사상으로 가르치게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모든 유교 국가들은 효를 중시했지만 유일하게 일본은 효보다 충을 강요하면서 일제 조선 지배시대에 효충 사상을 충효 사상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이는 조선 민족문화 말살정책과 자기 나라 천황폐하에게 충성맹세가 맞물려 있지요. 현재 지방 향교에서나 성균관 유도회 지부, 관공서 또는 각 문중에서 충효관을 건립하고 예절교육 인성교육 충효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 감히 제 의견을 올립니다. 이런 글을 올리게 된 배경에는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어서입니다.
부언하건대 제 선친은 출생 후 유아시절부터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공부(기계공학)하셨는데 우리 민족정신과 선비정신에 집념이 강하여 일본의 사무라이 문화인 무용과 주종관계에서의 충(忠)을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무라이(武士)의 명예를 지키는 수단으로 성행했던 사무라이들의 셋뿌꾸(切腹 배 가르기) 이야기 등을 아주 흥미롭게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선친이 하신 말씀은 일본의 충효 사상이 조선에 흘러들어오면서 괴상한 돌연변이 유교문화가 형성되었다고, 일본의 충효 사상은 유교 사상이 아니며 심지어 '유교에는 그런 충효가 없다.' 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더 자세한 설명이 요구되나 작금의 우리나라 충효교육의 문제점에 관하여 제 나름의 심중 소회가 있어 두서없는 글이지만 감히 몇 자 올립니다.
소개하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충효사상(忠孝思想) 항목 집필자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태생과 해당 집필자의 논조에 대하여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추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학 항목 집필자는 8.15 광복 후 이승만 정권 때부터 주도적으로 활동한 황도유학파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백과사전에는 '황도유학'이라는 항목이 없습니다,) 충효사상에 대한 참고의 글을 친절히 소개하여 주셨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충효교육에 관한 제 소회를 조금이나마 밝히고자 합니다.
문맹인이 아닌 이상 충효(忠孝)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충효를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충효를 제대로 모르면서 충효교육을 합니다. 충효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정신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문 좀 배웠다고 아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정신을 모르는 사람이 충효교육을 하니 횡설수설합니다. 저는 학문이 짧아서인지 어릴 때부터 충효교육을 받아봤지만, 아직 충효를 제대로 가르치는 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오늘날 우리 정신문화는 이미 자취를 감춘 바나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충효교육은 정통유교(유학)에서 말하는 충효교육이 아니며, 아직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채 과거 친일 황도유학자와 유림단체가 주장한 전체주의적 지배이념 논리인 황도유학(유교)이 우리나라 동양 철학계와 한국 유교의 주류 세력을 형성하면서, 오늘날의 학교나 사회 교육기관, 서원, 향교, 및 유림 관련 기관이나 단체 등에서 시행하는 충효교육 논리는 대부분 정통유학(유교)의 충효논리가 아닙니다. 이는 '한훤당 선생 기념사업회' 발행 國譯景賢錄(국역경현록)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국역경현록에 관하여는 우리 서흥 문중의 정체성과 위상에도 깊은 연관이 있기에 매우 민감한 사안일 수도 있어 여기 문중 공식 카페에 비판의 글을 올리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사료됩니다. 깊은 관심과 사랑 고맙습니다.

첫댓글 보내주신 의견, 임원들과 심의하여 참고하겠습니다.
올려주신 장문의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 대종회사무실에서 회의 중에 뜻밖에 태신종원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소통의 기회가 이루어진 것이 지금 생각해도
내 뜻이 아니고 조상님의 뜻이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님께서는 우리 문중에 忠孝사상에 대해 전혀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고언 부탁드립니다.
차제에 우리 카페회원분들에게도 충효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카페에 자유롭개 올려주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훌륭하신분이 우리 문중에 계셔서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고견 주심에 문중의 일원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도 논어는 몇번 읽은적이 있지만
충효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된 사상 이면에
이런 음흉함이 숨어 있다는 사릴은 몰랐습니다.
제 아들 두놈을 이번 교육에 참여 시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