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진우석의 우리산 기행 <45>청주 상당산성
<중부내륙의 고도인 청주, 충주, 보은 등은 삼국시대부터 영토다툼이 빈번했던 격전지였다. 그 흔적을
잘 보여주는 것이 정교하게 쌓은 산성이다. 치열한 전투의 현장은 오늘날 시민의 휴식처이자 걷기 명소로
바뀌었다. 중부내륙의 옛 산성들(삼년ㆍ상당ㆍ충주ㆍ덕주ㆍ미륵ㆍ온달ㆍ장미산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그중에서 자연과 조화가 아름답고, 우아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곳이 청주의 상당산성이다.>
상당산성을 한 바퀴 도는 길은 하늘을 걷는 것처럼 상쾌하고, 성곽에서 청주ㆍ증평ㆍ청원 등을 조망하는 맛은 구름 위에
올라탄 기분이다. 산행 코스는 공남문(남문)을 들머리로 시계 방향으로 돌아 산성마을에서 마침표를 찍고 뒤풀이 하는
코스가 인기 있다. 길이 순하고 걷기 좋아 아이들과 함께 걸어도 좋다. 거리는 약 5㎞, 2시간쯤 걸린다. 상당산성 둘레길의
출발점은 공남문(남문)이다. 공남문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드넓은 잔디광장이 나오고, 그 뒤로 고기비늘처럼 첩첩 쌓인
산성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광장은 청주 시민들의 단골 쉼터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축구를 하고,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있는
가족, 다과를 즐기면 웃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잔디밭을 가로질러 도도하게 선 공남문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가 길을 막는다.
꽃다운 풀 향기 짚신에 스며들고 /
활짝 갠 풍광 싱그럽기도 하여라 /
들꽃마다 벌이 와 꽃술 따 물었고 /
살진 고사리 비 갠 뒤라 더욱 향긋해라 /
멀리 바라보니 산하는 웅장하고 /
높이 오르니 의기는 드높아라/
사양을 말고 저녁내내 바라보게 /
내일이면 남방으로 떠나갈 것이니. (김시습 ‘유산성’)
우리 국토 순례자이자 걷기여행의 대선배 격인 김시습이 상당산성을 빼먹었을 리 없다. 꽃피는 5월에 상당산성을 찾은
김시습은 상당산성에 올라 ‘유산성(遊山城)’ 시를 남기고 낙가산 아래 보살사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전라도로 향했다.
상당산성의 정문 격인 공남문은 우아한 무지개 형태이고, 문짝에는 도깨비가 그려져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특이하게도
옹벽이 앞을 막는다. 성문 바깥쪽에 옹성을 쌓은 다른 성곽과 달리 성 안쪽으로 내옹성을 만든 것이다. 적군이 성 안으로
들어올 때 바로 들어갈 수 없도록 성벽 뒤에 숨어 공격하기 위해 만든 성문방어벽인 셈이다.
조상의 슬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문루에 오르니 청원군 낭성면 일대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이제 길은 성곽길과 숲 속 산길
두 갈래로 나뉜다. 두 길은 걷는 내내 이어지고 갈라지기를 반복한다. 성곽을 따라 휘파람 불며 느긋하게 걸으니 치성이
나온다. 치성은 성벽으로부터 돌출시켜 전방과 좌우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장치다. 높이 419m의 상당산
능선을 따라 쌓은 상당산성은 둘레가 4.2㎞에 이른다.
도청에서 10km쯤 떨어져 있는 것처럼 당시 청주읍성의 든든한 보루였다. 그 이름은 백제시대 이곳의 지명이 ‘상당현’이었던
것에서 비롯됐고 김유신의 셋째아들 원정공이 쌓았다는 얘기도 전한다. 백제시대에는 흙으로 쌓았고,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는
충남 서산 해미읍성에 있던 충청병마절도사영을 청주로 옮겨오면서 돌을 쌓아 석성으로 만들었다.
치성을 지나 언덕에 올라서면 문루도 없고 마치 개구멍처럼 뚫린 문이 나온다. 이곳이 남암문이다. 암문은 적의 눈을 피해 몰래
사람이 드나들거나 식량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비밀스런 문이다.
남암문을 지나 서문인 미호문을 향해 걷는 길은 눈 맛이 시원하다. 가까이는 청주 시내가, 멀리 미호천과 증평평야까지 펼쳐
진다.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철쭉길을 지나면 아름다운 미호문에 닿는다.
미호문은 거대한 2개의 무사석을 쌓고 그 위에 장대석을 올려놓았다. 바깥쪽으로 돌출된 성벽이 옹성의 형태를 띤 것이 이 문의
특징이다. 미호문을 지나면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의 곡선미가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모퉁이 돌아 언덕에 올라서면 다시 시원
하게 조망이 뚫린다. 풍성한 숲 속에서 산성 일부가 나온 모습은 참으로 정겹다. 북벽에서 정점을 이룬 산등성이는 완만하게
내리막으로 이어지면서 아담한 진동문에 이른다. 진동문에서 언덕 모퉁이를 돌면 1992년에 복원된 동장대가 나타난다. 장대는
보통 사방 조망하기 좋은 곳에 세워진다.
동장대를 마지막으로 산성은 도로와 저수지를 만나고 산성 마을의 구수한 두부냄새가 어서 오라고 유혹한다.
▨주변 명소
수암골 = 청주시 상당구 수암골목 1번지 ‘수암골’은 동화 속에 나오는 것처럼 예쁜 벽화마을이다. 본래는 한국전쟁 후에 피란민
이 정착하면서 만들어진 청주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달동네가 벽화마을로 변한 것은 2007년 충북 민예총의 공공미술 프로젝
트 사업의 일환으로 이홍원 화백을 비롯한 화가들과 청주대, 서원대 학생들이 ‘추억의 골목 여행’이라는 주제로 서민들의 생활
을 담은 벽화를 그린 덕분이다. 덕분에 ‘카인과 아벨’ TV 드라마도 이곳에서 촬영해 더욱 유명세를 탔다. 골목 담벼락을 따라
‘숨바꼭질’ ‘꽃을 사랑하는 호랑이’ ‘웃는 아이 삼남매’ 등 정겨운 그림들이 이어진다.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경부고속도로 청주IC으로 나와 찾아간다.
버스는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청주가는 버스가 오전 6시4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하루 12회 다닌다. 청주터미널에서
상당산성으로 직접 가는 버스가 없다. 도청에 내려 861번 버스로 환승한다. 산성으로 가는 유일한 버스인 861번은 상당산성~
박물관~도청~지하상가~체육관을 왕복한다. 산성 마을에는 많은 향토음식점이 있지만, 상당집(043-252-3291)이 가장 인기
있다. 어머니의 손맛 그대로 대를 이어 직접 두부를 빚고, 시끌벅적 장터 분위기도 흥겹다. 순두부와 비지백반 5천원.
<사진 설명>서문인 미호문을 지나면 산성은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요동치며 우아한 곡선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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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한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