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아르케!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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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실천이란 무척 힘든 일이었어요.
화가는 벽화를 그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두려웠어요.
“해보는 거지! 맘에 들지 않으면 다시 고치고 또 그리면 되지!”
사람을 만나면 쉽게 말했지만 벽화를 그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유명한 벽화 마을을 다니면서 보고 또 봤지만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어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도 느껴야 했고 페인트와 유화 물감 차이도 생각해야 했어요.
“공간과 공간의 조화가 중요하겠지!”
화가는 그동안 캔버스에서 그리는 것과 다르게 벽화 그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화가는 벽화를 그릴 장소를 먼저 가봐야 했어요.
벽화 그릴 공간을 사진 찍고 또 주변의 환경도 고려할 사항을 찾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감할 수 있는 편안한 주제를 가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가슴 한 구석에 자리한 소녀의 오랜 꿈은 이제야 꽃을 피울 때가 된 것 같았어요.
“페인트를 사러 가자!”
화가는 거제도로 떠나기 전에 페인트 가게를 찾았어요
몇 가지
페인트를 사고 가서 벽화를 그릴 준비를 했어요.
“사다리도 가져가야지!”
화가는 사다리, 전기난로, 작업복 등을 차 트렁크에 가득 실었어요.
집을 나선 화가는 기분이 좋았어요.
벽화를 그린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어요.
“잘 그릴 수 있을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면서 또 시작도 안 한 걱정을 했어요.
“잘할 거야!”
화가는 가슴 깊이 다짐하며 호두과자를 하나 입에 넣었어요.
“호두과자처럼 달콤한 인생이란 뭘까?”
호두과자 안에 든 팥이 달콤하게 입안을 가득 채웠어요.
“여행은 이 맛이야!”
호두과자를 몇 개 먹으며 화가는 달콤한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요.
그동안 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지금처럼 들뜬 기분을 느낀 지 오래된 것 같았어요.
늦은 시간에 거제도 별장에 도착했어요.
별장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서 도착해서야 보일러를 켰어요.
“너무 춥다!”
겨울에 접어든 날씨 탓도 있었지만 별장은 정말 추웠어요.
“감기에 걸리면 안 되는 데!”
코로나 19가 3차 유행이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걱정을 했는데 거제도까지 와서 감기에 걸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별장 창고에는 전기난로가 있었어요.
보일러를 켜고 몇 시간이 지나도 오래 비어둔 별장은 쉽게 따뜻해지지 않았어요.
“난로를 하나 더 켜야겠어!”
화가는 차에 싣고 온 전기난로를 가지러 갔어요.
“와! 별이다.”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
멀리 바다에는 전등을 켜고 고기잡이를 하는 듯 배들이 많았어요.
“이렇게 추운 데 어떤 고기가 잡힐까!”
화가는 난로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어요.
난로를 두 개 켜고 이불을 둘둘 말아 추위를 이겨냈어요.
“이런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지!
난 너무나 편하게 길들여진 것을 멈춰야 해.
그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또 나아가야지!”
화가는 그동안 쉽게 살아온 삶의 여정을 추위 속에서 하나하나 찾아봤어요.
새벽이 돼서야 방안이 따뜻해지기 시작했어요.
바다 위로 붉은빛이 비치기 시작했어요.
“벌써 해가 뜨는구나!”
이불을 감싸고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봤어요.
아직도 고기를 잡고 있는 배들이 무척 많았어요.
아침이 되어서야 별장에 온기가 돌았어요.
“이렇게 따뜻하다니!”
보일라가 밤새 돌아가더니 방이 참 따뜻했어요.
“커피를 한 잔 마실까!”
화가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어요.
거실의 커튼을 열었더니 아름다운 바다가 눈에 들어왔어요.
“시작해 볼까!”
화가는 밖으로 나갔어요.
자동차 트렁크에서 가지고 온 페인트와 사다리를 꺼냈어요.
“무엇을 그릴까!”
화가는 공간을 이리저리 보면서 가슴이 뛰었어요.
하얀 벽은
캔버스 같이 화가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계단을 그리고
네모를 그리고 그 안에 풍경을 그려볼까!”
화가는 결심이 선 듯 페인트 통을 열었어요.
“윽!
역시 페인트 냄새는 지독해.”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듯 온통 페인트 물감 냄새가 진동했어요.
“이 정도면 되겠지!”
벽 위쪽에 15호 정도의 네모난 캔버스를 하나 그렸어요.
그리고 계단을 그리기 위해 테이프를 붙이기 시작했어요.
화가를 방해하는 것들이 없다 보니 그리는 속도가 빨랐어요.
“까악! 까악!”
전깃줄에 앉은 까마귀들이 울었어요.
“왜!
여기가 너희 집이라고!”
“까악! 까악!”
몇 마리 까마귀들은 이방인이 나타난 게 두려웠던지 계속 울었어요.
“하나도 안 무서워!”
화가는 계단을 그리면서 까마귀들에게 꼬박꼬박 대답했어요.
“까악! 까아악!”
“뭐!
잘 그리라고?”
화가는 까마귀들이 노래 부르는 게 싫지 않았어요.
별장 주인과
점심 약속을 한 화가는 거제도 시내를 향해 자동차를 몰았어요.
“작가님.
초밥 좋아하시죠?”
“네.
좋아합니다.”
별장 주인과 화가는 초밥 코스 요리를 맛있게 먹었어요.
오랜만에 먹는 초밥이라 화가는 너무 맛있었어요.
별장 주인과 헤어지고 화가는 다시 별장으로 향했어요.
별장에 도착한 뒤 해가 지기 전에 그림을 마무리하기 위해 열심히 작업했어요.
달콤한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시고 작업은 계속되었어요.
햇살이 보이지 않자 별장 주변은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했어요.
“어디 멀리서 한 번 볼까!”
화가는 벽화를 그리고 뒤로 물러서더니 그린 벽화를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계단은 되었고 이제 캔버스 안에 뭘 그릴까!”
화가는 제일 꼭대기 네모 안에 뭘 그릴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천상으로 가는 계단!>”
하고 작품 이름을 정하더니
화가는 네모 안에 별장 주변의 산과 하늘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좋아! 좋아!”
화가는 만족했어요.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많이 떠 있었어요.
“그렇지!”
화가는 사다리에 다시 오르더니 빛을 먹은 구름에 황금색 페인트를 살짝 칠해 주었어요.
하루가 꼬박 걸려 그린 작품은 정말 멋졌어요.
“별장 주인도 좋아하겠지!”
화가는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별장 주인에게 보냈어요.
“작가님 너무 좋아요!”
별장 주인도 맘에 들었는지 좋다는 문자를 보냈어요.
“내가 벽화를 그리다니! 꿈을 이뤘다.”
화가는 그동안 오랜 꿈을 이룬 것 같았어요.
“다음에는 더 잘 그릴 수 있겠어.”
화가는 시간 안에 과연 그릴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작품을 완성시켜서 기분이 좋았어요.
“까악! 까악!”
벽화를 완성시키고 바닥을 치우는 데 다시 까마귀가 울었어요.
“봐! 봐!
어떤지!”
화가는 전깃줄에 앉아 있는 까마귀를 향해 외쳤어요.
“까악! 까악! 까악!”
“뭐라고?”
화가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더러워진 바닥을 열심히 치웠어요.
“거제도 벽화 1호.「천상으로 가는 계단!」”
제법 그럴듯한 벽화를 완성시킨 화가는 기분이 좋았어요.
“<초동제>
별장 주인이 마음이 좋아!”
화가는 별장을 내주고 벽화를 그리게 허락해준 별장 주인이 고마웠어요.
“피곤하다!”
화가는 하루 종일 서서 작업을 해서 힘들었어요.
“내일은 또 뭘 그릴까!”
화가는 내일 갤러리 거제 야외 공원에서 두 번째 벽화를 그리기로 했어요.
“막걸리 한 잔 해야지!”
화가는 낮에 사 온 성포 막걸리를 한 잔 마시고 일찍 잠이 들었어요.
“아르케!”
화가는 생각의 아르케 시작점에 다시 섰어요.
그날 밤
달빛이 유난히 빛나고 많은 별들이 화가의 방을 찾아왔어요.
<초동제>
별장에 사는 동물들도 벽화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끝-
‘아르케’는 시간의 맨 처음을 뜻하며, 공간의 가장 앞자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종이에 선을 그을 때, 처음 연필 끝이 닿아 있는 지점이 아르케다. 그 앞에는 어떤 연필 자국도 없고 그 뒤로는 반드시 연필 자국이 이어진다. 그래서 아르케는 다른 모든 것을 이끌어가는 힘을 갖는다. 처음이므로 맨 앞에 서 있고, 그 뒤로 다른 것들이 생겨나 따라다니니 대장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