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혁. 2000년대 이후 야구를 보기 시작한 이들에게 ‘임수혁’은 자주 들으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이다. ‘야구선수’로서의 모습보다는 병실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임수혁의 모습만을 10년째 접해온 탓일 게다.
하지만 1990년대 프로야구를 기억하는 팬들에겐 다르다. 그들에겐 두 눈을 굳게 닫은 채 잠든 임수혁의 모습이 오히려 낯설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임수혁은 언제나 하늘색 롯데 유니폼에 육중한 포수 장비를 착용한 모습이다. 눈을 부릅뜨고 입을 앙다문채 타석에 선 그의 모습이, 결정적인 순간마다 믿어지지 않는 ‘한 방’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던 그의 활약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동료들과 팬들에게 보여주던 한없이 선량하고 순수한 그의 미소도.
나는 사람들이 임수혁을 불의의 사고로 10년간 식물인간으로 지내다 생을 마감한 ‘비운의 선수’가 아닌, 그라운드에서 공포의 타자로 활약하던 그 때 그 모습으로 기억하길 원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그가 얼마나 무서운 타자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훌륭한 야구선수였는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고인이 된 임수혁을 추모하며, 그의 선수 생활에서 가장 빛난 10가지 장면을 선정해 보았다.
겁 없는 신입생
1988년 5월 10일 잠실에서 열린 대학야구 봄철대회 결승 단국대전. 초반 앞서가던 고려대는 중반부터 추격을 허용, 3-2로 턱밑까지 쫓겼다.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7회 2사 1, 3루의 찬스. 고려대 최남수 감독은 뜻밖에도 여기서 신입생 임수혁을 대타로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겁 없는 1학년 임수혁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고, 공은 멀리 뻗어 잠실 외야를 갈랐다. 승부를 결정짓는 2타점 2루타. 고려대에는 1년 반만의 대학야구 우승이자 7년만의 봄철 대회 우승이었다.
초특급 투수를 공략하다
1988년 10월에 열린 고려-연세 정기전. 초반 고려대 선발 박동희의 구위에 눌려 쩔쩔매던 연세대는 5회 이호성의 적시타로 2-1 역전에 성공한 뒤, 7회에도 역시 이호성의 안타로 4-1로 도망갔다. 그동안 연세대 마운드에서는 1회 구원등판한 2학년생 ‘특급 좌완’ 조규제가 완벽에 가까운 투구로 고대 타선을 틀어막았다.
뒤지고 있는 고려대의 8회초 공격. 주자가 출루하자 고려대는 또 다시 대타로 1학년 임수혁을 투입한다. 그리고 임수혁은 이번엔 아예 잠실 담장 너머로 타구를 날려 보냈다. 정기전 역사상 최초의 대타 홈런. 하지만 임수혁의 홈런에 정신이 번쩍 든 조규제는 남은 이닝을 다시 완벽하게 막아냈고, 경기는 4-3 연세대의 승리로 끝났다.
긴긴 승부의 끝
1995년 4월 20일 사직에서 열린 해태전. 양 팀 타자들의 극심한 빈타 속에 경기는 1-1 동점인 상태로 연장 15회까지 진행됐다. 해태 투수는 당대 최강의 ‘노예’ 송유석. 무승부로 끝나는 게 아닌가 싶을 때쯤, 롯데가 1사 3루 찬스를 잡았다. 그리고 임수혁의 차례. 임수혁은 볼카운트 2-1으로 몰린 상황에서, 빠르게 승부하러 들어오는 송유석의 공을 놓치지 않았다. 중견수 쪽으로 멀찍이 날아가는 끝내기 희생플라이. 롯데는 2-1로 이겼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프로 2년차 임수혁은 주전 포수 굳히기에 들어갔다.
만루홈런의 사나이, 5월의 사나이
1995년 5월 28일 잠실 LG전. 롯데는 7회초 주자 만루에서 LG 좌완 셋업맨 강봉수에 맞서 임수혁을 대타로 낸다. 임수혁의 방망이가 큰 호를 그리는 순간, 운동장 전체가 일순간 고요해진다. 뒤이어 3루측 관중석의 환호와 1루측 관중석의 탄식. 프로야구 통산 11번째 대타 만루홈런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롯데의 8-3 승리.
한편 임수혁은 1995년 5월 한 달 동안 홈런만 8개를 기록, 월간 최다홈런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이 해 대타홈런 부문에서도 3개로 삼성 김성현과 공동 1위에 올랐고, 6월 28일에는 김성현, 장종훈(한화)과 함께 ‘하루 만루홈런 3개’ 진기록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재회
1995년 LG와 롯데의 플레이오프 1차전. LG는 ‘20승 투수’ 이상훈을 내세워 1차전 승리를 노렸다. 하지만 롯데에는 비장의 무기, 임수혁이 있었다. 이상훈의 서울고-고려대 1년 선배인 임수혁은 이상훈이 초등학교 6학년일 때부터 그를 지켜봐온 막역한 사이. 게다가 고교와 대학에서 5년간 배터리를 이뤘으니, 이상훈의 공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게 당연했다.
임수혁은 벤치의 기대대로 6회초 승기를 잡는 2점 홈런을 쳐냈다. 경기는 연장 10회 끝에 LG 마무리 김용수를 무너뜨린 롯데의 8-7 승리. 당초 전력상 열세로 평가되던 롯데는 이 경기 승리를 발판으로 LG를 4승 2패로 제압하고 3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혈전을 끝내다
OB와 롯데의 1995년 한국시리즈 5차전은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승부다. 역전과 동점의 공방 끝에 6회초까지 스코어는 4-4. 선두타자가 출루하자 김용희 감독은 ‘자갈치’ 김민호를 빼고 대타 임수혁을 내보낸다. 임수혁은 볼카운트 투스트라이크로 몰린 상황에서 침착하게 볼 두 개를 골라낸 뒤, 승부하러 들어온 권명철의 공을 놓치지 않고 받아친다. 깨끗한 우전 안타. 이어지는 주자 1-3루에서 공필성이 적시타를 터뜨리며 롯데는 5-4로 역전에 성공했다. 이에 OB는 권명철을 내리고 박철순을 구원투수로 투입한다.
다시 연장 10회초 6-6 동점 상황. 선두타자 볼넷이 나오자 OB 벤치는 김경원을 내리고 당시 최고의 컨디션을 보인 이용호를 마운드에 올린다. 희생번트와 폭투로 만들어진 1사 3루에서 타석에는 임수혁. 임수혁은 선수 생활 내내 결코 이런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큼지막한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스코어는 7-6. 경기는 그대로 롯데의 승리로 끝났다. 플레이오프에서의 체력 소모만 아니었다면, 시리즈의 승자는 롯데가 될 수도 있었다.
*이 해 임수혁은 시즌성적 15홈런 68타점으로 신인 마해영(18홈런 87타점)에 이어 두 부문 모두 팀내 2위를 차지했다.
끝내주는 사나이
1997년 4월 17일 사직에서 열린 현대전. 팽팽하던 경기는 현대가 연장 11회초 4-3 역전에 성공하며 급격하게 기우는 듯 했다. 현대는 곧장 특급마무리 정명원을 투입했다. 주자 두 명이 나간 상황에서 임수혁의 타석. ‘과연’과 ‘설마’가 교차하는 시점. ‘딱’하는 소리와 함께 사직 관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내기 좌월 3점홈런. 프로야구 통산 5호 역전 끝내기 홈런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공포의 대타
이번에는 1998년 8월 28일 사직 한화전. 벤치에 있던 임수혁은 6회말 만루 찬스가 나자 곧장 대타로 투입됐다. 벼락같은 스윙과 담장 너머로 빨랫줄처럼 넘어가는 타구. 프로야구 통산 16호 대타 만루홈런. 임수혁의 홈런 한 방에 그때까지 호투하던 한용덕은 무너져 내렸다. 롯데는 10-2 대승.
한편 임수혁은 통산 7개의 대타 홈런을 기록하며 이 부문 공동 4위에 랭크되어 있다. 대타 홈런 부문 1위는 20개를 기록한 KIA 이재주.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2002년까지만 해도 이재주의 대타 홈런은 6개로 임수혁보다 오히려 적었다는 것. 만약 임수혁이 건강하게 몇 년을 더 활약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대타 홈런을 쳐냈을까.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19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 관중 난동과 호세 퇴장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8회까지 스코어는 3-2. 5차전부터 이어진 롯데의 상승세를 감안하면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믿었던 박석진이 김종훈에 2점 홈런, 이승엽에 솔로 홈런을 내주며 점수는 5-3으로 뒤집힌다. 삼성 투수는 특급 마무리 임창용. 누가 봐도 패색이 짙어 보이는 상황.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공필성의 좌전안타로 만든 1사 1루 찬스. 대타로 나선 임수혁은 구위가 크게 떨어진 임창용의 2구째를 통타, 담장 너머로 날려 보냈다. 거짓말 같은 동점 2점 홈런. 결국 롯데는 연장 끝에 삼성을 6-5로 누르고 3연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다. 5, 6, 7차전에서 양 팀의 스코어는 전부 6-5였다.
전조
2000년 4월 11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롯데-한화전. 롯데는 에이스 주형광을, 한화도 한용덕을 선발로 내세웠다. 딱 한 장면만 제외하고는 완벽한 투수전이 펼쳐졌다. 문제의 2회초 롯데 공격. 박정태의 볼넷과 우드의 안타로 만들어진 2사 1, 2루에서 8번 임수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2-2에서 승부구로 들어온 5구째를 임수혁은 놓치지 않고 잡아당겼다. 경기 끝날 때까지 스코어는 3-0, 그대로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비극이 찾아왔다.
*마지막 시즌이 된 2000년. 시즌 초반 임수혁은 1996년 이래 최고의 페이스를 보였다. 10경기 출전에 19타수 5안타 중 홈런만 무려 3개. 만일 시즌을 계속 치렀다면 어떻게 됐을까. 타석당 홈런 수로 단순하게 따져보면, 아마도 임수혁은 홈런에서만큼은 자신의 한 시즌 최다 기록(1995년 15개)을 넘어섰을지 모른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부질없는 가정일 뿐이지만.
고인이 된 임수혁 선수가 부디 더 이상은 고통 없이 편안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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