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1957년 4월 국민학교 입학하다
이영백
초등학교 다닐 때 이름은 분명 “국민”학교이었다. 그렇게 계속 불리던 이름이 갑자기 “황국신민(皇國新民)”의 준말이라고 때늦은 해석으로 “초등”으로 바뀌었다. 영어표현도 “primary school”에서 “elementary school”이라고 바꾸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1957년 나의 초교입학식은 운치 있는 추억이다. 시골학교 입학식이라 유지들이 모두 모이었다. 학교 사친회장, 출장소장, 지서주임, 역장, 병원장, 불국사 주지스님, 우체국장, 여러 마을이장 등 내빈석을 가득 채웠다.
초등학생이 되려면 집에서부터 코 닦이 손수건을 오른쪽 가슴에다 삐침으로 달아야 하였다. 왼 가슴에는 명찰을 달아야 하였다. 반 편성이 운 좋게도 세 반중에 1반이다. 담임은 남자선생님이다. 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식이 있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합창하였다.
교장선생님의 환영 훈시가 있었다. “에! 오늘 단기4,290년 4월 1일 월요일에 168명의 신입생을 환영합니다. 훌륭하신 선생님 따라 열심히 공부하여 나라의 기둥이 되기 바랍니다. 이상 환영훈시 끝.”이어 사친회장 인사말씀에 “에~! 여러분 학교 오갈 때는 자동차를 주의하고, 먹개구리는 잡지 맙시다. 이상 끝!”또 내빈축사로는 불국사주지스님이 하였다. “에~ 빈도, 자녀 여러분들! 이 어린 빈도들을 잘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불국사, 석굴암에 자주 들리고 청소도 잘하도록 합시다.”인사말씀들이 어이없고, 잘해 내려나 걱정뿐이다. 교무선생님은 신입생들에게 선생님께 일동인사를 시켰고, 재학생에게도 인사하도록 하였다. 입학식은 그렇게 끝났다.
우리는 교실도 없어 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때 아닌 제식훈련을 하였다. 선생님이 “하나, 둘!”하면 학생들은 한 수 더 떠 “셋, 넷!”하였다. 잘 들리지도 않은데 “학교 종”을 배웠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그 소리는 지금도 귀에 환청처럼 들린다.
입학식에 쉰둘 나의 엄마가 따라 왔는데 완전히 할머니이다. 친구들 엄마는 무척 젊었다. 난 열 번째 막내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문방구에서 노란 양철필통, 연필, 지우개, 공책 등 사서 보자기로 묶어들었다.
인생에서 첫 통과의례로 입학한 것은 분명 “불국사국민학교”를 다녔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