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바구니를 쉽사리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키오스크 식당
한희정
우연히 만난 첫사랑처럼 가슴 콩닥거렸지
쿨한 척, 태연한 척 머뭇머뭇 다가갔지
신개념,
한 끼니를 위해
떨리는 손 내밀었어
터치 터치 건드려도 통하지가 않나 봐
먹히지 않는 낌새에 다시 얼굴 붉어졌어
그래도
당당해야지
다시 또 유턴이다
옹이 진 손가락으로 실수 연발 하더라도
이 순간 진심을 다해 나도 널 알아야지
옳거니,
비빔밥 하나
장바구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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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아사餓死가 발생할 지경이다. 덜 극단적으로 말하면 비자발적 단식이 혹은 졸지에 다이어트 바람이 중장년 이상에게 흑사병처럼 번지고 있다. 자동번역기가 언어 장벽을 하나씩 허물고 있고 ChatGPT가 그 언어와 정보와 소통의 영토를 초고속으로 확장하고 AI 광풍이 부는 시대에 60이 넘어 가슴이 ‘콩닥콩닥’ 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때쯤이면 세상 풍파 다 겪어 웬만한 것은 초월하는데 가슴이 그리 뛴다는 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젊은 시절 연극무대에 서본 경험은 고사하고 얼굴에 다 쓰여있다고 할 정도로 연기력이 수준 미달인 사람이 장년이 돼서 ‘쿨한 척, 태연 한 척’ “연기”한다는 것은 분명 고역이다. 그 악명 높던 보릿고개마저 견디고 살았건만 밥 한번 먹자고 가슴이 뛰고 연기력이 필요하다면 이건 분명 “제2의 보릿고개”가 그들에게 닥친 것이 확실하다.
터치스크린 앞에서 갑자기 겸손해지고 문맹률마저 높아진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적하거나, 가르치거나, 가리킬 때 당당히 써오던 검지손가락의 동선은 자꾸만 ‘유턴’을 하고 시인은 돌연 소녀가 되어 예전의 유행가 가사처럼 “얼굴 빨개졌다네”, “가슴은 뛰었고”.
뒤에서 쳐다보고 있을 다른 손님들을 의식한다면 줄을 서는 키오스크라면 식은땀도 날 판이다. 다행히 개인 테이블에 있는 키오스크라면 그나마 마음이 놓이겠지만....,
시인 앞에 있는 사람을 ‘터치 터치’하면 그 사람은 그녀의 ‘바구니’에 밥을 줄까? 돈을 줄까? 마음을 줄까? 시 소재를 줄까? 아무리 터치해도 답이 없는 사람도 있고 대면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발 벗고 나서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사람도 있고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지 않도록 마음 높이를 조절해 주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바구니를 쉽사리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