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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To be or not to be...
1998-1999년 3차 오일쇼크와 세계 경제위기로 촉발된 동유럽에서의 공산당 몰락 및 급진우익정당의 성장은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의 국내정치체제에 꽤 큰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법과 정의(폴란드), 피데스(헝가리) 등의 철저한 친소노선이 그리 나쁘지 않았고, CIS 국가들의 내부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성향이 겹쳐 이에 대해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제 테러리즘의 영향이 동구권을 직격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는 카토비체 협약을 통해 테러 용의자(또는 반국가주의자)에 대한 '공동 추적 및 감시'를 확약했고, 이는 사실상 세 나라가 극우 독재국가로 전락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날아온 급성호흡기증후군 변종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이 세 나라의 통제 역시 약화되었고, 이는 폴란드와 헝가리에서의 정국 불안,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준내전 사태를 만들어냈습니다.
폴란드의 카친스키 정권과 헝가리의 오르반 정권은 시위대를 가혹하게 진압하고 있지만 아직 대대적인 유혈진압의 단계까지 향하지는 않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바비슈 정권은 2004년 여름께 이미 계엄령을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정권 교체로 끝날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였습니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의 반정부 세력은 상당히 선명한 반소련 기조를 띄고 있으며, 상당수 인민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 민주정부의 수장 카렐 슈바르첸베르크 전 의원은 서방 각국을 돌며 유럽연합과 NATO의 지원을 요청하는 중이라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되었죠. 더구나 미국의 잭슨 정권이 동유럽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성명을 낸 이상 이를 단순히 국내정치 문제로 처리할 수는 없는 상황.
2004년 9월, 소련 수뇌부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1968년을 재현해 단 한 올 남아있었던 이상의 편린마저 배신할 지, 아니면 국가의 이익을 저버리면서까지 양심을 지킬 지의 기로 말이죠. 미국에서는 SARS-2 바이러스의 대유행과 전세계적 방역 봉쇄정책으로 인한 경제침체, 실업률 증가 등으로 위기에 몰린 잭슨 정권이 모험적인 수를 준비하고 있었고,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한 마이크 허커비 아칸소 주지사는 대놓고 대소 강경책과 보호무역주의, 미국우선주의를 주장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소련이 잘못된 수를 둔다면, 미국인들은 이를 놓치지 않을 터였죠. 신중하고도 과감한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있던 그 때, 블라디미르 푸틴 특별정보통신국(스페츠뱌즈) 장관이 마이크 앞으로 몸을 살짝 숙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타협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체코슬로바키아는 그렇지 않으며, 따라서 적극적인 정보공작과 준군사조직 등의 투입을 통해서라도 미국의 '쐐기'가 중부 유럽에 박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외교적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정규군 병력이 아닌 민간군사기업이 동원될 예정이었습니다. 트로츠키주의자, 스탈린주의자 등 각종 극단주의자들이 즐비한 '게바라 그룹'이 그 예시였습니다. 이들은 2003년 테러와의 전쟁 등에서 소련 정부가 직접 감행하기 꺼려지는 일들을 수행하던 '뒷처리 부대'였기에,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레베드 총리를 포함한 모두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공산당 출신의 크바시닌 국방위원장이 맨 먼저 푸틴의 계획을 전면 찬성하고 나섰습니다. 메스너 부총리 및 사사노프 우크라이나 공화국 총리 역시 고심 끝에 찬성입장을 표명했죠. 알렉세이 메스너는 '그 안드레이 사사노프'가 이런 계획에 찬성했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랐으나, 안드레이는 마치 그런 의문을 예상이라도 한듯 1.19 테러와 수호법 파동, 시리아 사태 등에서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 지를 설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레베드 총리 역시 잠시 고민하더니 푸틴의 제안을 승인하려는 뉘앙스를 취했습니다.
그 때,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경제협력을 논의하던 아미나트 나가이 금융경제원 장관이 회의장 문을 열어젖히고 급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무도 진지하게 믿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본인이 '친서방주의자'라고 강력히 주장하던 나가이 장관은 푸틴의 의견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전쟁범죄나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준군사조직을 파병하느니 차라리 정규군을 투입하는 편이 나으며, 게다가 중부유럽에 대한 군사개입은 '인민들의 증오를 받는 정권'을 세움으로써 두고두고 연방의 국력을 빨아먹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죠. 푸틴은 자신의 '빽'이라 믿었던 아미나트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것에 매우 놀랐지만, 그의 권력은 당내 정치인들과의 유착관계로부터 나오고 있었기에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장시간 논의 끝에, 예브게니 람스도르프 전 총리와 체코 민주정부 수반 카렐 슈바르첸베르크 간의 특사회담을 준비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협상이 타결된다면 그대로 좋은 것이었고, 부결된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죠. 그러나 결론적으로 람스도르프는 슈바르첸베르크의 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모두 대단히 소중하고,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들이지요. 물론 저는 귀하께서 그 신념을 굽혀야 한다고 이야기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소위 '균형 외교'라는 것 말입니다... 여러 국가들을 많이 방문하셨더군요. 미국, 독일, 영국, 노르웨이, 프랑스... 그런데 극동에서 비슷한 행보를 보이려던 국가가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이지요. 엄혹한 제국주의 시절 그들은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많은 강대국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며 활로를 모색했습니다.
허나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러한 행보는 열강의 개입만을 불렀고, 결국 그들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으며, 식민화와 분단의 굴레를 풀기까지는 자그마치 10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귀하께서 하시는 행동은 오히려 체코슬로바키아의 주권을 소련과 미국에게 넘기려는 행동에 불과합니다. 이제 그만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떨는지요? 즉, 소비에트 주권공화국연맹이 바비슈 정권이 아닌 귀하의 정부를 승인한다면... 말입니다."
"하하... 재밌는 연상법이십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체코슬로바키아는 미국이나 소련, 중국과 같은 강대국이 아닙니다. 약소국으로서 필연적으로 주변의 강한 세력에게 휘둘릴 운명에 처한 나라이지요. 람스도르프 씨께서 가장 잘 알 겁니다. 1968년 봄, 그 자리에 계셨을테니까요. 체코슬로바키아 인민들은 그 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모스크바를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모스크바는 바비슈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제2의 구스타우 후사크를 만들고 말았습니다. 결국 세력을 잃을 위기에 봉착하니 그제서야 바비슈를 내치고 우리 정부를 승인한다는 것도 결국에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술책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이래저래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우리는 모스크바보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에 대해 우호적이고 보다 주권을 존중해줄 만한 세력에 붙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람스도르프 씨는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결국 모스크바는 당신의 이상을 모욕하고 당신의 사회적 명성에 먹칠하지 않았습니까? 연방의 기틀을 잡은 당신이 그렇게 당했을 정도면, 훨씬 업적이 미약한 저의 이상은 어떤 취급을 받겠습니까?"
"슈바르첸베르크 씨, 우선 이 자료를 보고 말씀하시죠. 애초에 미국이 원하는 건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저 재선을 위한 치적을 원할 뿐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전면 시장개방을 강요받는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공화당 정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를 외치는 허커비 같은 정치인이 정권을 잡는다면 체코슬로바키아는 도시락 반찬 취급만 받게 될 겁니다. 중부 유럽의 후진국이자 약소국으로 굴러떨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역시 현실주의를 택했습니다. 저는 그 기조를 잠시나마 누그러뜨리려고 파견된 야인에 불과하고요. 이 기회를 놓치면 저에게나, 당신에게나 불행한 일만 닥칠 겁니다.
저는 모스크바가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게 하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만약 이 시도가 불발에 그친다면 모스크바에서 어떤 수를 쓰게 될 지 모르겠군요. 어쩌면 폴란드와 헝가리의 신정권을 돕겠다는 명목으로 체코 압박에 동참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 이제 선택입니다. 한번 더 믿어보시겠습니까?"
"호의는 고맙지만,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개척해보려 합니다."
타협이 실패로 돌아가고 나서, 군 및 정보부처는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군사개입안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체코에 대한 영향력 상실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는 아미나트의 폭탄발언, 그리고 "중부 유럽에서의 영향력 상실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를 넘었다"는 안드레이의 반론이 회의장을 지배하면서 SVR과 국방위의 안건은 저 멀리 밀려버렸습니다. 이들은 신념과 실리를 모두 추구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다만, 어디까지를 실리의 범위에 놓는지, 그리고 신념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 지가 달랐을 뿐이었죠. 레베드 총리까지 논쟁에 가세하면서 체코 건의 처리방안은 다시 마라톤 회의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결론의 방향이 정해진 것은 부쿠레슈티에서 알렉세이 메스너 부총리가 "폴란드 카친스키 대통령의 자진 하야를 받아냈다"는 전문을 보내고 난 뒤였습니다. 민주화운동의 가장 큰 배후지였던 폴란드에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이 물러나고 야당 당수 도날트 투스크가 친소 CIS노선을 뒤집지 않겠다는 확약을 준 이상, 체코에서 더 이상 극단적인 수까지 써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 것입니다. 물론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자진 퇴임을 한사코 거부하고 주르차니 페렌츠가 이끄는 사회당 세력과 쟁투를 벌이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지만, 이미 전세는 기운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레베드, 사사노프, 그리고 크바시닌 국방위원장은 아미나트의 '온건한 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적절한 정보공작을 통해 민주세력을 좌파와 우파로 분리시키고 체코슬로바키아 사민당의 지리 파로우벡(Jiří Paroubek)을 지원하는 한편 안드레이 바비슈 대통령에게는 자진 하야를 종용해 결론적으로 체코슬로바키아를 '정상화'시키자는 제안이었죠. 그리고 연방은 이 공작을 아주 멋지게 성공해냈습니다. 바비슈의 국민주의전선 측이 슈바르첸베르크의 자유당과 파로우벡의 사민당에게 연정 제안을 날렸다는 사실은 양측이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었고, 자유당의 집권은 복지체제의 해체를 의미한다는 흑색선전이 '어디선가' 날아와 슈바르첸베르크의 지지율을 급감시키는 동시에 파로우벡의 지지율을 올렸습니다.
알렉세이 메스너의 2시간에 걸친 설득에 안드레이 바비슈 대통령은 중립국으로의 망명을 조건으로 하야에 동의했고, 곧 자유총선이 실시되었습니다. 선거 결과 사민당은 녹색당, 공산당 등을 끌어들여 좌파내각을 꾸릴 수 있었죠. 체코슬로바키아 신정부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2.0'을 지지자들에게 약속하며 몇 가지 지원과 자율성 재보장을 조건으로 CIS 잔류와 친소노선 복귀를 약속했습니다. 한편 헝가리의 오르반은 갖가지 소요사태를 거친 끝에 사회당 측과 접선한 군 및 경찰 병력에 의해 체포되는 추한 말로를 겪었습니다. 독재자에게 어울리는 결말이었죠.
사태가 빠르게 정상화되고 동유럽이 민주화되면서도 소련의 세력권에 남는 결말로 일단락되자, 개입을 준비하던 미국의 잭슨 행정부는 다급하게 "우리가 바라던 바가 달성되었다"며 자화자찬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은 이미 그들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였습니다. 오히려 소련의 배만 불려줬다며 잭슨의 이미지만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죠. 곧바로 이어진 2004년 대선에서 마이크 허커비는 선거인단 408개를 가져가며 압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허커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대중무역 정상화를 위한 세이프가드 조치, 위안화 절상 압력 행사,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대소 경제제재 등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미국의 하강, 그리고 소련의 완벽한 부활의 신호탄을 알리는 일이었죠.
2005년 2월, 레베드 총리, 메스너 부총리, 사사노프 우크라이나 총리, 나가이 장관 등은 허커비 대통령의 공세가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는 점에 한 목소리를 내며 굳건한 다짐을 다졌습니다. 연방은 극동부터 동남아시아, 인도, 이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중부 유럽에 걸친 막대한 세력을 구축한 '제국'이었습니다. 더 이상 적의 자비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초강대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성공했습니다.
아마도요.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알렉세이 메스너 내각총리가 인민두마 해산과 조기총선을 선포했습니다. 2007년 총선으로 공산당-전진당 연립내각이 수립된 지 2년 10개월만의 일인데요, 전문가들은 작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의결된 '코펜하겐 협정' 비준 여부를 두고 양 연립여당이 극한 충돌을 이어간 결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을 다시 정상궤도로 올리겠다'고 선언한 마이크 블룸버그 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어떠한 논평도 내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새 총리 후보로는 10여년간 금융경제원 장관으로 재임하면서 실무경력을 증명한 아미나트 나가이 장관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치직-
"유럽연합이 터키-시리아 난민 수용정책을 공식 폐기했습니다. 주르차니 페렌츠 헝가리 총리는 'CIS 역시 자국민들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하면서 나가이 내각의 입장에 초미의 관심사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공정사회당과 녹색당은 이 문제를 두고 지루한 싸움을 전개해 나가고 있지만, 외무위원회는 중동 지역의 상황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입니다. 메스너 공화국소비에트 의원은 이에 대해..."
치지직-
"중국 소식입니다. 보시라이 국무원 총리가 메콩 강 상류의 11개 댐 건설사업을 강행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ASEAN은 긴급총회를 개최에 중국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중인 국경분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남아시아에까지 무리한 공세를 펼치는 것은 잘못된 행보라는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파벨 벨리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중국에 '엄중한 우려'를 표했는데요, 이 사태는 1달 앞으로 다가온 미국 하원 중간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스콧 워커 대통령은..."
칙-
"사회당 전당대회에서 신 강령이 채택되었습니다. '미래를 향한 우리의 길'이라고 명명된 이 강령은 완전고용 목표제의 철폐와 금융 활성화, 자동화 추진, 그리고 기본소득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나가이 내각의 미래 또한 불투명해졌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2016년 총선의 방향은 사실상 결정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통합연방당과 전진당이 사회당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정권교체에 청신호가 켜지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나가이 총리는 방을 빼야 할 겁니다."
"예브게니 람스도르프 전 총리가 공식적으로 사회당 당적을 정리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역시 사회당이 엘리트주의 정치로 편향되는 것을....."
지지직-
"초유의 결과입니다. 급진좌익 성향의 인민혁명당, 우파 대중주의 성향의 전진당, 강경우익 성향의 조국당이 모두 약진하는 결과입니다. 이로써 이들을 배제한 채 내각을 꾸리는 것이 어려워지고 말았습니다. 넴초프 총리가 재선하려면 녹색당, 사회당, 공정사회당을 모두 끌어들이거나, 공산당과의 대연정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나가이 전 총리는 포퓰리즘과 극단주의의 발흥을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는 발언을, 메스너 공화국소비에트 부의장과 사사노프 우크라이나공화국 대통령은 논평을 거절했습니다. 경제난과 반이민 정서, 세대 갈등, 성별 갈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
우리는 분명 성공했습니다. 미국은 정치적 혼란기에 빠져 4년마다 대통령을 갈아치우며 좌익과 우익,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상태에 이르렀고, 유럽과 아프리카마저 중립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신냉전의 우위는 우리 연방이 가져가고 있지요. 그러나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요? 우리가 추구하는 건 무엇입니까? 인민의 자유? 경제적 번영? 그것도 아니라면... 세계 패권?
...
무엇이 되었든, 우리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이 고민은 세대를 이어서, 영원히 계속되겠지요. 어떻습니까?
당신은,
이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십니까?
Fin.
드디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번에는 더욱 흥미진진한 플롯과 설정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일단 독일 제국에서 등장할 인물들이....
- 비스마르크의 제자이자 융커 출신 라이히의 건축가
- 반융커 자유주의자
- 융커출신 프로이센 군국주의자의 모범답안
- 라인란트 기업국가주의자(불확실)
이정도인가요?
전 성별따라 포지션이 정치인이냐 운동가냐지만 점진적 자유주의자는 확정이네요
투표 진행하면서 네이버쪽에서 저번에 언급한 투표글 보니까 일정 인원이 차면 자동 종료되게 하거나 알아서 종료 가능하게 하는 기능에.
심지어 종료전까진 결과를 알수 없게 하는(글쓴이 제외) 기능도 있는것 같은데.
시방 여긴...
늦었지만 내중문없도 슈퍼이벤트가 생각나 한번 만들어봤는데 한번 올려볼까요?
상관 없을걸요?
저도 후보만들면서 예전 연대기 이스터 넣는데.ㅋㅋㅋ
그건 그렇고 진행이 오랜기간 없었다지만 2.3일간 투표인원 6명...저빼면 5명...
이념 중에 맞지 않는게 있다면 말해주세요.
<팍스 시니카>
나는 반역을 좋아하지만 반역자는 싫어한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영원히 지속되기 위해]
류메이란(부하린주의(공산주의)) 루트로 엔딩시 발생.
나오는 음악은 하늘의 태양은 붉다
<팍스 시니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 마오쩌둥
[힘과 질서]
후종밍(군정 공산주의(공산주의)) 루트로 엔딩시 발생.
나오는 음악은 나는 베이징 천안문을 사랑해
<팍스 시니카>
모든 공산주의자가 다 인민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내 생명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겠다.
- 너지 임레
[베이징의 봄]
샤오나이(진보적 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 루트로 엔딩시 발생.
나오는 음악은 드라마 내하보스요취하의 OST인 첨밀발효
<팍스 시니카>
잠자는 사자를 깨우지 마라. 사자가 깨어나면 온 세상이 뒤흔들릴테니.
- 나폴레옹 1세
[사자가 깨어나다]
위안차이나(좌익 내셔널리즘(사회주의)) 루트로 엔딩시 발생.
나오는 음악은 의용군행진곡
<팍스 시니카>
국민적 열망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제 오직 국민 자신들의 동의에 의해서만이 국민들을 통치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다. 자결은 단순한 구절이 아니다. 이러한 행동의 필수 원칙을 무시하는 정치가들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 우드로 윌슨
[하나이며 다양한]
톰페티 라마(국민자유주의(자유민주주의)) 루트로 엔딩시 발생.
나오는 음악은 1920~30년대에 활동한 중국 맹인 음악가 아빙의 이천영월
@카라멜 마끼아또 전 참여 안해서 모르겠으니 당시 참여자들이 봐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