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기들은 좀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지 예전보다 더 자기중심적인 면이 세지고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들은 얘기다. 나도 실제로 어린 저학년 친구들을 보는 일을 하고 있는데 몇몇 유별난 아이들을 보면 정말 이 말이 맞다고 느낀다.(오은영 박사님이 오셨으면 좋겠다.)
점점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게 드러나는 말이어서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사회가 점점 서로서로를 비교하는 저울에 올려놓고 댓글에서도 특정인을 비난하며 참된 공론장을 펼친다. 이것들을 본 개개인은 또 그 틀에 갇혀 남의 눈치를 살피고 그렇게 피곤해진다. 나는 웬만하면 타인의 사소한 것엔 관심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 사람의 옷이라든가 연애생활같이 사생활이 담겨있고 굳이 알아도 몰라도 손해 안 보는 정보들 말이다. 요즘에는 sns가 발달이 돼 안 궁금해도 다 보여주거나 트랜드를 따르지 않는 소수를 소위 '아싸', '찐따'로 낙인찍는 등의 행위를 하며 희락의 콘텐츠로도 소비되기도 한다. 또, 점점 개인화되는 사람들과 그러한 가치관의 논리적 합법성을 세상 천지에 알리고 있는 책도 보인다. 일본의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 대한민국은 과연 희망이 있을까? 개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 젊은 세대와 어린이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사회화를 연습하려면 부모의 도움, 학원 등 자발적인 노력과 외부의 노력이 없으면 안 되는 시대가 왔다. 난 어릴 때 놀이터만 가면 다 친구였고 걔네들과 서슴없이 놀며 나도 모르게 사회화 즉, 사람과 소통하고 같이 노는 법을 배웠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애기들보다 낫다는 말은 아니다. 나보다 말 잘하는 친구 참 많지만 중요한 건 디지털이 아이들의 예의범절을 가르칠 기회를 상실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송길영은 우리 사회가 핵개인화로 가고 있다고 말한다. 점점 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절되어 가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 속 개인은 익명의 가면을 쓰면 예의를 차리기보다 더 쉽게 내 감정의 노폐물을 배설한다. 남들은 거기에 좋아요로 호응하며 그곳에서 인정을 얻기도 한다. 문제는 현실과 인터넷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게 원색적인 감정을 배출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귀거나 특정 집단들과 어울릴 때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이황처럼 자신의 사단을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잘 발현하여 서로 연대해야 한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저마다의 투쟁을 하고 지쳐있는 모습으로 퇴근길에 오른다. 그때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웃는 사람을 마다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사기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으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대한의 친절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