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주제: 허유의 행동에 대한 장자의 관점에 찬성하는가.
저는 허유의 행동에 대한 장자의 관점에 반대합니다. 장자는, 천하를 다스려 달라는 제안을 거절한 허유의 일화를 가져옵니다. 이는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인위적 지배로 보고, 인위적으로 지배하는 일에 몸을 담그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장자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이 인위나 작위로부터 해방되고 도를 찾는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위나 작위로부터의 해방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다른 인위가 요구됩니다. 장자의 철학은 이미 작동하고 있는 체제를 부정함으로써, 그 체제의 문제점을 밝히는 데 유의미합니다. 그러나 문제점을 밝힌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허유의 일화에 대한 관점에서 드러난 장자의 태도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아무런 책임감도 가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도가철학 토론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입고, 먹고, 마시고, 누리는 모든 것들이 타인의 노동을 거치지 않은 게 없습니다. 돈을 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에도 누군가의 노동이 들어있습니다. 물질적이지 않더라도, 항상 타인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영향의 주고받음에서 피해가 발생한다면, 국가가 개입해 조율합니다. 그러나 장자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인위이고, 도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장자』, 「추수」 편에 나오는 ‘예미도중(曳尾塗中)’ 일화에는 장자가 출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초나라의 왕이 장자에게 나랏일을 맡기고자 두 대부를 사자로 보냅니다. 낚시하던 중에 제안을 들은 장자는 돌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듣건대, 초나라에는 죽은 지 3000년이 된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있는데 왕이 이것을 상자에 넣고 비단보에 싸서 나라의 묘당 안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지요? 그런데 그 거북이는 죽어서 뼈를 남겨 소중하게 받들어지기를 원했을까요?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질질 끌고 다니기를 원했을까요?” 이에 두 사자가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기를 원했다고 답하니, 장자는 그렇다면 나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장자는 관직에 서거나 출세하는 것을 죽은 거북이에 빗대어 말합니다. 인위들이 넘쳐나는 권력의 중심에 자리하면 자유로움이 죽게 되어 도에서 멀어진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자는 아무리 좋은 대접을 받아도 권력에 몸을 담글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장자의 이러한 태도는 인위에서 벗어나 도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장자 철학의 개인적 실천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건강함을 위해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는 까닭도 있지만, 주고받음의 논리를 벗고 생각해도 똑같습니다. 능력이 된다면 자신이 속한 사회의 건강함을 위해 힘쓰는 것이 이롭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의 영향을 인위로 보고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벗겨내는 일은 인위이기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러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게 도가철학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도에 가까워지기 위해 인위를 덜어낼 뿐, 더하지 않습니다. ‘나’ 밖에 있는 인위들의 허점을 밝힐 뿐, 건드리지 않습니다. 바로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잡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자의 이런 관점에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