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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다락방
상처받은 내면 아이 마주하기
김은아
누구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품고 삽니다. 그 내면 아이는 울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상처받아 울고 있는 내면 아이를 위로하고 달래어서 성장시켜 주는 것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므로 정답이 있는 것처럼 얘기할 수는 없겠지요. 혹자는 생각을 바꾸면 행복해진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욕심과 집착을 버리면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모두 맞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심리상담사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조금 다릅니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달래주는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아갈 것을 권합니다. 어린 시절에 해결하지 못했던 슬픔, 어린 시절에 충족시키지 못했던 욕구들을 돌이켜 보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존 브래드 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이 일은 가장 힘든 일임이 틀림없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 자신의 자원을 통해 필요를 충족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배우자나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다른 중요한 사람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는 당신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치료해야 한다.
내면 아이가 아직도 상처받은 상태로 있다면 당신은 겁에 질려 상처받고 이기적인 내면 아이와 함께 자녀를 돌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부모가 당신한테 했던 대로 당신 아이에게 똑같이 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하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당신은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가 꿈꾸던 완벽한 부모 노릇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설령 정반대로 한다 해도 당신의 아이에게 똑같은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낳는다.
병든 상태에서 180도 돌려봐도 결국 제자리일 뿐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 지금까지 어떤 부모도 완벽하지 않았고 어떤 부모도 완벽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치료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 상처받은 내면 아이(John Bradshow, 학지사) 중에서 -
존 브래드 쇼의 말처럼 아이였을 때 채우지 못한 욕구들의 상실을 슬퍼하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입니다. 울고 있는 내면 아이,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달래주지 않으면 어린 시절에 받지 못한 사랑이나 가치 등을 찾아 끝없이 헤매게 되지요. 그러한 방황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하여 결혼 생활이 고통스럽고 부모가 되었을 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에게 과잉자극을 제공하거나 과잉보호를 하게 되고 자녀를 대리 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과거 어느 시기에 어떤 일로 상처를 받았는지, 그 상처 때문에 지금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울고 있는 내면 아이를 위로하고 달래주어 성장시켜 떠나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내면 아이를 달래 주는 방법의 하나로 그림책 보기를 권합니다.
『너 왜 울어?』(북하우스)는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만나게 해주는 그림책입니다. 빨갛게 칠한 손톱이 아이를 향합니다. 위협적인 손톱 아래 드리워진 회색 손 그림자는 엄마의 야단과 질책의 크기에 비례하는 듯합니다. 잔뜩 주눅이 든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손도, 발도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습니다.
혼자 잘 놀고 있는 아이한테 다짜고짜 코트를 입으라고 하는 빨간 손톱 엄마. 장화 못 찾으면 엉덩이 한 대 맞고 집에 있을 줄 알아 하고 협박합니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고 날씨도 엉망이고 집에서 해야 할 일도 잔뜩 있는데 하면서 불만을 쏟아냅니다. 그러면서 ‘집에 있는 건 당연히 싫겠지.’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엄마 손에 이끌려 억지로 밖으로 나가는 아이. 길을 걷는 내내, 놀이터에서도 엄마는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타박합니다. 찬바람 들어가지 않게 입을 다물라고 하고 빨리 걸으라고 재촉합니다.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만져서도 안 되고 놀이터에서 오래 놀아서도 안 됩니다. 바닥에 떨어진 끈을 주웠다고 혼납니다. 모래에서 뒹굴다 혼나고 다른 아이 공을 가지고 논다고 혼나고 지렁이를 주웠다고 혼납니다. 옷이 더러워졌다고 혼나고 징징거린다고 혼나고 엘리베이터 버튼 누른다고 혼나고 장화 늦게 벗는다고 혼납니다. 결국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네가 나가서 놀고 싶대서 밖에도 나갔다 왔고 또 엄마가 슈크림 빵도 사줬는데 기분이 좋아서 웃어야지, 오히려 울어? 얘가 사람 돌게 만드네. 너 왜 울어?
자란 아이들은 무력합니다. 그림책에 나온 아이가 시종일관 우울하고 무력하게 묘사되어 아이는 억울하고 두렵습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들도 기분이 개운치 않습니다. 아이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감옥을 연상케 하는 엄마의 세로줄 무늬 치마와 그 안에 서 있는 우울한 아이. 한 페이지의 상징적인 그림에 엄마들은 할 말을 잊고 맙니다. 엄마라는 감옥. 그 안에서 자란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부모 교육을 할 때마다 보여주는 『너 왜 울어?』는 엄마들로 하여금 작은 술렁임을 일게 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표지 그림에 미간을 찌푸리다가 히스테릭한 엄마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 웃기도 합니다. 빨간 손톱 엄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 공감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하지만 엄마의 치마폭 속에 힘없이 서 있는 아이에게 보내는 시선에는 애처로움이 묻어납니다.
부모 교육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한 엄마는 이 그림책을 보고 나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며 그림책이 자신에게 준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 왜 울어? 라는 그림책을 보았다. 가볍게 들어 읽은 이 한 권의 책은 나에게 강한 펀치를 한 대 날려 보내는 듯하여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아이들만의 그림책으로 생각했던 것이, 나의 착각이었다. 어른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축된 한 컷의 일러스트! 나를 변화시켰다.
언젠가 40대 후반의 여성에게 『너 왜 울어?』를 읽어 보게 했는데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 놓고는 “더는 못 읽겠다”며 그림책을 내려놓고는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페이지를 제가 마무리하고 상처받은 내면 아이, 그림책 속 엄마의 양육 태도와 아이의 발달 심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빨간 손톱 엄마는 잔소리가 많은 강압적인 부모 유형입니다. 이런 유형의 엄마 밑에서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무엇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늘 엄마 눈에는 모자라고 답답해 보이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이는 공상에 젖거나 굼뜨게 행동합니다. 내면에서 잔소리하고 야단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현상도 일어납니다. 그림책 속 아이는 엄마의 강압적인 태도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반항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반항하는 아이가 차라리 건강한 편에 속합니다.
억압적이고 강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엄마들의 마음속에는 불안함이 자리하고 있어 양육에도 자신 없어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나는 절대 내 아버지 ․ 엄마처럼 아이를 안 키워야지.’ 다짐하면서도 어느덧 부모와 닮아 있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아이한테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극도로 불안하고 예민해집니다.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는지 수업이 끝난 후 그 엄마가 제게 와서 속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범생에다 언제나 숨죽인 듯 부모님께 복종한 언니와 공부도 잘 못하고 꼼꼼하지 못해 늘 실수투성이인 자신을 비교하는 엄마는 “어쩌다 내가 너 같이 엉성한 자식을 낳았는지 모르겠다” 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일류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둘째딸을 집안의 수치로 생각한 엄마한테 반항하듯 꿈을 접고 결혼했는데 지금은 무척 후회된다면서요.
그제야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읽는 내내 어릴 적 아픔이 떠올라 힘들었던 겁니다. 그 엄마의 가장 큰 두려움은 둘째 딸이 어릴 적의 자신을 닮아 야무지지 못하고 의욕이 없어서 자꾸 첫째와 비교하게 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다 둘째가 무슨 말을 하면 이상하게 삐딱하게 들리고 못마땅해서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이제는 말대꾸에 반항까지 해서 더 밉다고 했습니다.
둘째딸을 자꾸 야단치는 이유에 대해 자신은 엄마가 아무리 모진 말을 해도 듣고만 있었는데 둘째딸은 순종적이지 않고 엄마의 권위에 도전하듯 반항해서 더욱 용서가 안 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엄마로부터 받았던 멸시와 무시를 딸한테서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통제가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는데 울고 있는 내면 아이가 있어서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엄마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시죠? 친정 엄마와 화해하는 것이 내면 아이를 달래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는 혼자서 엄마를 용서했다고 합니다. 연로한 엄마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엄마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나니 한결 기분이 가벼워지더라고 했습니다. 엄마를 주제로 한 그림책들을 골라 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그림책 속의 애정이 넘치는 엄마들처럼 둘째딸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어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반성했나 봅니다. 칭찬과 격려의 말을 자주 했더니 딸 또한 행동이 달라지더라며 12주 동안 이어진 부모 교육 끝자락에서 그림책에 감사하게 됐다며 참여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 보겠습니다. 미카엘 듀독 드 빗의 『아버지와 딸』(새터)은 엄마들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작품을 미카엘 듀독 드 빗 감독이 그림책으로 만들었지요. 네덜란드의 평평한 대지와 대비시켜 어릴 적에 자신을 제방에 남겨 두고 떠난 아버지를 일생 동안 그리워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대지를 가르며 난 길로 아버지와 딸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듯한 표지 그림은 무척 평화롭습니다. 아빠와 딸은 폴더(간척지를 개간해 만든 평지)에서 자전거를 타며 추억을 만듭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이별을 예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방 위에서 내리자 아빠는 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수평선으로 노를 저어 떠납니다.
왜 떠났는지 영문도 모른 채 딸은 아버지를 기다립니다. 아버지는 해가 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가고 시간은 흘렀지만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기다리던 아이는 소녀에서 숙녀로, 중년의 부인으로,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삶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딸은 제방을 걸었습니다. 물이었던 곳이 지금은 갈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탁 트인 풍경이 보일 때까지 앞으로 더 걸어 나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누웠습니다.
그녀는 무언가 변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그녀가 달리는 동안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 아버지와 딸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독자들은 잔뜩 긴장하며 마지막 페이지를 펼칩니다. 딸은 숙녀 시절의 모습으로 변해 아버지를 만납니다. 혹자는 딸의 간절한 바람이 꿈속에서 이루어진 거라고 해석합니다. 또 어떤 독자는 할머니가 아버지를 만나는 상상을 하며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어떠한 쪽이든 그것은 독자의 상상에 맡겨 두어야겠지요.
그림책으로 부모 교육을 할 때마다 참여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왜 할머니는 숙녀의 모습으로 변해 아버지를 만났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버지에게 가장 예뻤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결혼할 남자 친구를 아버지께 보여주고 싶어 한 딸의 심리가 반영된 것 같다, 아버지가 가장 그립고 필요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는 대답으로 압축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다정한 딸이 되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자식에게 무심했던 아버지를 향한 원망, 아버지의 폭언과 폭력으로 인한 어릴 적 상처를 떠올리며 용기 내어 속 이야기를 털어 놓습니다. 한 참여자는 『아버지와 딸』 때문에 병상에 누워 계신 아버지를 정성껏 보살펴드릴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젊어서는 가족에게 불친절했고 지금은 노환에 우울증까지 겹쳐 가족을 힘들게 하는 아버지가 얼른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못된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 있어줘서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는 것이었지요.
아버지 병간호에 지쳐 곧잘 어린 딸에게 내던 짜증을 멈추게 된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 그림책 읽어 드리는 엄마의 모습을 딸이 무척 좋아하더라는 얘기와 함께요. 이제는 딸이 외할아버지께 그림책을 읽어준다고 하더군요. 세월이 흘러 엄마와 딸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누구나 외면하고 싶은 상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 한 가지쯤은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억압하면 할수록 더 큰 상처가 되어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또 어떤 상황에서는 스프링처럼 강하게 튀어 올라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너 왜 울어?』와 『아버지와 딸』은 성장기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지만 화해와 용서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내면 아이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됩니다. 두 그림책 모두 가족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도 주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상처 주고 원망하면서도 끊임없이 가족과 화해를 시도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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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영남대학교 유아교육과 겸임 교수. 유치원 교사가 될 학생들에게 아동문학과 아동 상담을 가르치고 있으며, 마음문학치료연구소에서 문학이 지닌 치유적인 힘을 활용한 상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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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버지와 딸 책표지 그림이 다른 것 같아요. 지평선 끝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그림이던데..
아..맞아요. 같은 제목이라 자꾸 혼동을 하네요. 바꿔 놓았습니다.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