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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가정현실과 가정성화를 위한 사목적 배려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국장 이 창영(바오로) 신부-
1. 들어가는 말
인간이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공동체는 ‘가정’이다. 가정은 인간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필요한 여러 조직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조직이자 근본 세포이다. 이 근본 세포인 가정에서부터 다른 모든 세포가 출발되고 조직될 수 있다. 한마디로 가정은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자 수렴점인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또한 ‘생명’을 잉태시키는 거룩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게 가정과 생명은, ‘생명과 가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가정이 무너지면 곧 생명도 무너지게 된다. 가정의 해체, 가정의 붕괴는 곧바로 생명의 파괴, 생명의 붕괴를 가져오게 된다. 이것은 전 세계가 두려워하고 있는 핵무기보다도 더 무서운 인류의 파멸을 초래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가정이 심각할 정도로 해체되고 붕괴되어 가고 있다. 이혼율은 세계 제2위를 자랑할 정도로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하고 398쌍이 이혼하고 있어서 해마다 최고의 기록을 갱신할 정도로 심각하다. 뿐만 아니라 1973년 2월 8일 모자보건법 제정 이후 우리나라의 낙태는 1985년 이후 연간 150만-200만 건으로 추정될 정도로 일반화되어 있으며, 이와 함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1.17명으로 급락하였다. 또한 혼인제도 자체의 의미 상실과 성(性) 개방 풍조의 확산으로 인한 동거 급증 현상과 독신 선호 현상, 동성 결혼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밖에도 노령 인구, 이혼 고아, 소년소녀 가장, 결식아동 등의 급증 그리고 가정 폭력 문제와 청소년들의 일탈 문제 등 가정과 관련된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매우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가정 위기와 해체현상 저변에는 무엇보다도 물질주의와 이기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 우선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왔다. 그래서 인간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은 정부의 오랜 인구정책은 사회 윤리도덕의 약화를 가져왔고, 이로써 부각된 개인주의와 쾌락주의는 학교 인성교육 약화와 가정교육 부재현상 속에 생명경시, 폭력, 대화단절, 이혼, 청소년 비행 등 각종 병리현상을 낳고 있다. 이러한 병리현상의 첫 번째 피해자는 가정이고, 상처 받고 해체된 가정은 사회에 또 다른 형태의 문제를 야기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 처한 우리의 가정을 살리는 길은 무엇보다도 ‘가정 복음화’일 것이다. 가정의 복음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우선적으로 ‘가정 복음화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나아가 가정 복음화를 위한 구체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가정의 문제는 바로 교회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가정의 미래는 곧 교회의 미래이자 우리 모두의 미래이다. 말을 바꾸면, 가정의 위기는 곧 나라의 위기요 교회의 위기라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는 “인류의 미래가 달린 가정”(가정공동체 86항)이요, ‘세계와 교회의 장래’(가정공동체 75항)가 달린 가정으로 인식해 왔다. 왜냐하면 교회와 사회의 미래는 가정에 달려있고, 교회와 사회의 제반 문제는 모두 가정에서 파급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교회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의 파괴와 붕괴라는 심각한 사회적 현상 앞에 우리의 미래, 나라의 미래, 교회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 가정을 살리는데 힘써야 하겠다.
2. 오늘날 한국 가정의 문제점
1) 가정의 변화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하고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체험하였다. 개인은 생존을 위해서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정 역시 변화하는 사회 안에서 그 역할과 기능상의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분업화와 노동 인력의 가정으로부터의 일탈, 많은 도시나 시골 사람들이 기존의 생활 터전을 떠나 각기 다른 생활 방식을 접하게 되었다. 의사 결정에 있어서 과거 대가족 제도에서 가족들의 동의가 요청되었던 것과는 달리 오늘의 핵가족화 시대에는 개별적인 의사 결정의 형태로 바뀌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가족 관계에 있어서 과거보다 책임감을 덜 느끼고 있다.1)
(1) 가정의 외형적 변화
가정의 외형적 변화는 우선, 가족 제도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족 제도는 인구학적 요인, 사회․문화의 변화, 경기 침체나 불경기와 같은 경제적 요인, 남녀평등의 요구 및 여성의 기회 증진 등 여러 요인들이 상호 작용을 하여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또한 사회 전체의 가치관의 변화도 가족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예컨대 집단의 가치보다 개인의 가치를 우선으로 하여 자기표현, 자아 인식, 자아 성취, 자치권 및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개인주의의 팽배가 그러하다.2) 이러한 요인의 작용 아래 가족은 그 외형면에 있어서 소수화, 핵가족화, 고립화3) 현상을 보이고 있다.
(2) 가정의 내적 변화
(a) 가족주의 개념의 변화4)
전통적인 가족주의 개념은 첫째,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가족 집단에 소속되었다고 느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외부인이다. 둘째, 개인의 활동은 가족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완전히 통합된다. 셋째, 토지와 그 밖의 재산은 가족의 재산이다. 넷째, 가족 구성원이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는 모두 그를 돕는다. 다섯째, 가족의 영속성에 관심을 갖는다. 이 같은 전통적 가족주의 개념에 따르면, 가족은 사람들의 공동체, 기능의 공동체, 경제적 공동체, 책임과 의무의 공동체, 권리의 공동체이다. 물론 이는 다세대 가족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가정의 외형적 형태의 변화를 겪으면서 이러한 가족주의 개념은 변화되었다. 가족이 지녀온 사람들의 공동체적 성격은 가족 밖의 사람들과의 상호의존적인 유기적인 관계로, 기능의 공동체적 성격은 분업의 형태로, 경제 공동체적 성격은 교환 경제 체제에 편입되고, 책임과 의무의 공동체적 성격은 가족 밖의 사회관계로 전이되었으며 권리의 공동체적 성격 또한 개인주의적 이해관계로 변질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b) 가족 관계의 변화5)
가족의 변화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가족 관계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우선 부부간의 관계를 보면, 군림과 복종의 관계에서 평등한 관계로 변화하였다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권 사상의 실현과 여성이 경제 활동을 할 기회의 확대, 여성 교육의 보편화에 따른 여성의 자각 등이 부부 관계에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또 다른 가족 관계의 큰 변화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이다. 전통적인 가족 관계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부자유친으로 철저한 상하 관계였다. 그러나 현대의 이 관계는 합리성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는 인격 대 인격의 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모는 더 이상 노후를 자녀에게 의탁할 기대를 버리게 되었으며, 자식들 또한 부모를 봉양할 의무에서 자유스러워지려 한다. 그 결과 경제적 독립을 토대로 다세대 가족은 2세대 가족으로 분가하여 상호 간섭이나 통제를 배제하게 되었다.
(c) 기능적 변화6)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가정의 기능은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기능, 경제적 기능, 심리적 기능이 있다. 오늘날 특히 변화한 기능은 경제적 기능이다. 전통적 가정은 생산과 소비의 공동체였다. 그러나 오늘날 가정은 소비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가정은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의 불안은 가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가정에서의 심리적 기능(정서적 기능)이 더 강조되고 있다.
2) 오늘날 한국 가정의 위기7)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많은 가정이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 전통주의적 가족 제도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화가 단절된 가정, 일종의 여인숙으로 전락한 가정, 식탁 공동체로서의 면모가 퇴색된 가정, 가정교육과 종교 교육이 도외시되고 있는 가정, 소외된 노인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늑한 가정의 분위기를 누리지 못하고 ‘길에 내던져진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외식 산업과 유흥업이 번성하게 되고 사람들은 더욱 더 돈을 필요로 하게 된다.
(1) 원인
(a) 사회적 원인
우선 가족 제도의 변화를 가져온 궁극적 원인인 산업화와 핵가족화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산업화와 핵가족화는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대가족 제도 아래에서 축적되어 온 가치관에 젖어 있으면서도 생활은 산업 사회의 핵가족화에 바탕을 두고 있어 그 사이의 갈등을 겪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물질 만능주의와 경쟁 위주의 사회를 야기하였고 개인주의와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가정 역시 이러한 가치관에 휩싸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정은 경쟁 사회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해 에너지를 공급하는 곳으로 전락되었다.
(b) 가족 내 원인
가족 내적 원인은 가족 결속도의 불안정과 우리의 독특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가족 내에 뿌리박힌 불평등한 가족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이혼의 증가, 특히 오늘날의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고연령층의 이혼 증가와 그로 인한 가족 해체는 우리나라의 가족 결속도의 불안정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c) 잘못된 인구 조절 방식과 성 문란
‘아들, 딸 구별하지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인구 정책은 인구 증가율을 억제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인구 감소(심각한 성비 불균형)와 자식에 대한 과보호를 초래했고, 성 문란은 오늘날 한국을 세계 낙태 선진국으로 부상시켜 놓았다.
(d) 대중 매체의 영향
대중 매체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 어떤 것보다 대단하다. 심지어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神이 되어버린 연예인은 TV가 만들어 놓은 우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선정성 광고나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 폭력을 미화한 드라마 등이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영화처럼 살고 싶다”고 범죄 비디오를 모방한 사건8) 이 늘고 있으며, 또한 오늘날에 와서는 인터넷9) 역시 가정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2) 위기의 현상들-문제점들
(a)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가정”의 위기
“사랑은 모든 인간의 기본 소명이고 타고난 소명이다.”10)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불가해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하다.”11)
이 사랑의 소명이 실현되는 한 가지 구체적 방법은 바로 혼인이다. 혼인은 가정의 토대가 된다. 그래서 “가정은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해야 할 사명을 지닌다.”12) 가정은 사랑을 출발점으로 하여 사랑의 인간 공동체를 형성하고, 생명에 봉사하며, 사회 발전과 교회의 생활과 사명에 참여하는 것이다.13)
그러나 오늘날 한국 가정은 가정의 가장 원초적 소명을 거부하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혼인, 이혼 통계 결과’에 따르면, 서른 살을 넘긴 후 결혼하는 만혼화 현상이 가속화 되고 있는 추세이며, 2002년 총 혼인건수는 306.6천건(쌍)으로 2001년 320.1천건 보다 13.5천건 (4.2%)감소하였고, 조혼인율(인구천명당)은 10년전 92년 9.6건을 기록한 후, 2001년 6.7건으로 꾸준히 낮아져 2002년은 6.4건으로 나타냈다. 이에 반해 2002년 총 이혼건수는 145.3천건(쌍)으로 2001년 135.0천건에 비하여 10.3천건(7.6%)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가족 결손도는 부부간의 갈등을 넘어서 가족 해체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족 해체는 노인 문제, 생고아 발생, 결손 가정 등과 같은 많은 문제가 동반된다.
또한 자녀는 더 이상 결혼 생활의 성취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현세대는 피임술의 발달로 생명의 전달을 거부하고 있다. 피임에 실패한 경우 낙태를 하기도 한다. 잘못된 인구 조절 방식과 성의 문란으로 연간 150만-200만건에 달하는 낙태를 초래했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또한 독신을 즐기고 직업을 확고히 하기 위해 결혼을 미루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리고 설사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최근 여성들이 가정보다 직업을 더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부부간의 역할 갈등을 일으키며 가족 제도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여성들의 사회 진출로 동거와 계약 결혼, 혹은 독신을 선호하는 여성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자아실현을 위한 이혼의 증가 등 가족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사례들의 증대는 더욱 우려할 만하다.14)
이러한 부양 관계의 와해,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 가정 파괴 현상의 원인으로 개인주의, 교육 과정에서의 가정적 가치에 대한 교육의 부족, 사회 활동과 자아실현을 연계하는 교육의 치중, 또한 여권 운동에 대한 이해의 부족, 매스 매디어의 영향 등을 들 수 있다.15)
성의 문란은 이러한 현상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매스 매디어, 성을 상품화하고 있는 상술, 인터넷 등 현대 상업주의의 물결 속에서 성은 이제 사랑과 생명을 위한 창조주의 선물이기 보다 단지 즐기기 위한 게임의 일종16), 가정 파괴의 주범으로 등장했다.
(b)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로서의 가정”의 위기
가정은 사회적 삶을 위한 첫 번째이고 기본적인 학교이며, 그 성장의 법칙은 ‘자기 봉헌’ 또는 ‘거저 줌’17)에서 발견된다. 곧 “남편과 아내 상호 간의 사랑을 고무하는 자기 봉헌은 형제자매의 관계와 가정에 함께 살고 있는 여러 세대간의 관계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자기 봉헌의 본보기이고 규범인 것이다.18) 가정은 보다 풍요한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교육이란 알파벳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눈길과 아버지의 인정의 표시로 시작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19) 따라서 교육에 있어서 개인의 출생시부터 시작되는 가정교육을 도외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강요하고 물질 만능 사상과 출세욕을 갖도록 강요한다. 한국인은 교육열이 높다고 하지만 학구열은 매우 낮고 매우 근시적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이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거의 맹목적으로 이기기를 바라며 인격 교육을 무시한다. 20) 청소년들의 자살 원인 중 대부분이 바로 이러한 것에 있음은 현 한국 가정의 교육적 위기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 제도와 부모들의 잘못된 교육열, 기능 위주의 학습 강요 등으로 인성 교육의 최초의 장인 가정은 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c) “교회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초적 세포로서의 가정”의 위기21)
가정은 사회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로서의 가정”, “교육 공동체로서의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으며, 이러한 위기는 탈가족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현상으로 인해 한국 가정은 “교회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초적 세포로서의 가정”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여겨진다.
① 새로운 생명 경시 현상
1960년대부터 경제 성장을 이유로 인구 억제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태어날 아기들의 생명권이 침해당하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낙태가 법으로 일부 허용되거나 방조되었다. 이러한 생명 경시 풍조는 이제 안락사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실례로, 최근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에 의하면 안락사의 법적 허용을 전적(18.4%)으로 또는 부분적(62.7%)으로 허용하기를 바란다고 응답하였고, 신자들도 70.4%가 전적(15.2%)으로 또는 부분적(55.2%)으로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② 혼전 동거의 증가
최근 혼전 동거를 코믹하게 그린 드라마(“옥탑방 고양이”)가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천리안이 네티즌 13,8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전체의 87%가 찬성하는 등 혼전 동거에 대한 의식이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혼전 동거에 찬성하는 남녀간 비율도 여성(89.3%)이 남성(85.3%)보다 높게 나타나 여성이 혼전 동거에 대해 더욱 개방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사랑하면 곧 결혼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75% 정도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달라진 결혼관을 보여주고 있다. 혼전 동거를 주선하는 사이트도 성업중에 있으며, 대학가 주택에서는 동거할 이성을 구하는 전단 광고를 흔히 볼 수 있을 정도이다.
③ 이혼 증가
1970년에는 이혼율이 인구 천명에 0.4건 정도였던 것이 2001년에 들어서는 천명에 2.8건으로 7배 정도 늘어났으며, 2002년에는 3.0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며, 일본, 대만 등 중 아시아 국가 중 최고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중에 가장 큰 이유로는 성격차이(40.1%), 가족간 불화(21.9%), 경제 문제(10.7%) 등 이다. 1990년만 해도 이혼 사유 중 경제 문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했으나 2002년에 들어서는 10.7%를 차지할 만큼 크게 증가하였다.
(d) 그리스도인 가정의 현 상황22)
그리스도인 가정은 오늘날 위기에 처한 가정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인 가정의 현 상황을 살펴보자.
① 그리스도인 가정 역시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의 정체성이 낙태와 이혼 증가로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낙태 문제에 있어서 신자 가정과 비신자 가정 사이의 차이는 근소할 뿐이다. 실제로 2000년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의 조사에 따르면 천주교 신자 중에서 낙태를 경험한 사람이 44.0%나 되어 천주교 신자 10명 중 4명이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23) 또한 신자 가정의 이혼 역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② 기도 생활 역시 대부분이 혼자하며, 가정 기도를 전혀 바치지 않는다는 대답이 54.7%로 나왔으며, 1개월에 1번 이상 가정 기도를 하고 있는 가정은 2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24)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가정 교회라는 의식의 결여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③ 교리교육에 있어서도 많은 경우에 경쟁적인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하여 소위 인성 교육, 삶의 교육이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다.
④ 혼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단계적 준비가 부족하다. 사회혼만 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연간 32%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2001년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관면 혼인이 전체 가톨릭 혼인 중 62.3%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교 가정이라고 해서 비신자 가정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가정은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봉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회가 지닌 초자연적 출산력의 결실이요 징표가 되는 동시에 교회의 모성의 상징, 증인,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25) 그러나 그리스도인 가정 역시 그 정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가정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정체성 상실’이란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의 신원을 늘 확인하고 그 신원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존에 위험을 느끼지 않는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가정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 경쟁 사회, 가족 이기주의 속에서 가정은 더 이상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 “교회와 사회의 기초 세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은 더 이상 한 개인의 생명과 성장을 위한 좋은 토양을 가진 밭이 아니라, 길가나 돌밭, 가시덤불과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오직 가정 내에만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이다. 특히 경제적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한국의 실정으로는 가정의 문제는 가정 내에만 머무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정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변화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주의를 넘어서 공동체적 정신으로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공동체적 정신 안에서 우리 모두가 자신의 위치를 찾아갈 때 가정의 정체성은 발견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가정의 복음화를 이룩할 수 있다.
3. 가정 복음화와 가정 사목의 중요성
1) 변함없는 가정 복음화의 중요성
현대 사회에서 가정의 위기와 많은 가정 문제들을 겪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을 포기할 수도, 간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른바 가정의 중요성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변함없는 가정의 중요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드러난다.
먼저 가정은 국가와 사회의 세포이며 기초로서 국가와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인격 형성의 기초를 제공한다. 또한 가정은 복음이 전달되고 아울러 그 복음이 빛을 발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복음화의 장래는 가정 교회에 달려 있다.26) 따라서 가정에 “세계와 교회의 장래”와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27). 교회 문헌에 나타난 가정의 주요 역할은 “생명의 성역”과 “사랑의 문화의 중심이요 핵심” 역할이요, “더욱 풍요한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요, “사회적 미덕”과 “제 덕행을 가르치는 최초의 학교”로 표현한다.28) 따라서 오늘날 가정과 가정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시되기에, 성가정을 통해 복음 안에서의 가정 성화, 가정 복음화는 국가와 사회뿐 아니라 교회와 복음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 안에서 훌륭한 교회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가정의 복음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사실 가정이 복음화 되지 않는다면 사회의 복음화 역시 요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거룩한 복음화의 소명은 우리 모든 가정의 소명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복음화에 부름을 받았고29), 복음화의 소명은 가정을 통해서 오기 때문이다.30) 이 소명을 위하여 가톨릭 신자 부부는 혼인성사로 축성되는 것이다. 이 성사의 힘으로 가톨릭 신자 부부는 혼인과 가정의 임무를 수행하며, 그들의 전 생애를 신망애(信望愛) 삼덕으로 날로 더욱 자기완성과 상호 성화에 전진하는 것이다.31) 그래서 가정 복음화는 행복한 가정으로, 가정이 하느님 구원 사업 안에서 열매 맺는 것을32) 뜻하며 복음화의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과 사목자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2) 가정 복음화의 의미
(1) 가정 복음화의 근원
혼인성사로 그리스도의 은총이 부부의 전 생애에 부여되고,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가정생활 전체를 “영신적 희생”으로 바꾸어 놓는 은혜와 도덕적 의무를 부부에게 부과한다는 점에서 혼인성사는 가정 복음화의 원천이며 수단이다.33) 혼인성사로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를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 자체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기초로 일치와 친교의 장인 가정 공동체의 형성으로 불리었기 때문이다. 곧, 가정의 정체와 사명 그리고 그 존엄성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게서 발견된다.
가정 복음화의 또 다른 근원으로는 나자렛의 성가정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인간 가정이 하느님과 결합되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그 가정 안에서 가정을 통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가정의 본질은 가정을 통해서 구현하려고 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상적 그리스도교 가정은 사랑의 공동체이며, 인격 공동체이고, 신앙의 공동체, 생명의 공동체로서 하느님의 뜻을 구현하는 기초적인 교회이다.
(2) 이상적 그리스도인 가정
① 사랑의 공동체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교회는 사랑의 성사이므로 ‘작은’ 교회인 가정도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이 되려면 부부간의 사랑과 부모 자녀 간의 사랑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 사랑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있어 그리스도의 ‘기꺼이 내어줌’을 그 원형으로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만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34) 그러므로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봉헌과 사랑의 파스카 신비는 가정의 출발점이다.
② 신앙의 공동체
인간은 가정으로부터 나와 새로운 가정 안에서 자기 인생의 구체적인 소명을 실현한다.35) 이런 관점에서 가정은 무엇보다 신앙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 정신으로 충만하여 더욱 자기완성과 상호 성화에 전진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때문이다.3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가정은 신앙의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신앙을 키우는 공동체요 신앙을 전파하는 공동체다.
③ 인격의 공동체
가정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남자와 여자가 자기 자신을 서로에게 주고 서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계약”으로 기술되는37) 혼인의 친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38) 그러므로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인격적 공헌에 좌우되는 인격 공동체이며, 그 실존과 공동생활의 고유한 방법은 친교 곧 인격들의 친교(communio personarum)이다.39) 가정에서 ‘친교’는 ‘나’와 ‘너’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에 관련되며 가정 공동체는 이러한 친교를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초월해 ‘우리’라는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그러므로 부부의 ‘친교’가 가정 ‘공동체’를 생겨나게 하며 가정 ‘공동체’는 ‘친교’의 본질 그 자체로 충만 되어 있다. 부부의 친교는 그 열매인 자녀라는 새로운 생명․인격체를 향하여 개방된다. 이러한 가정 공동체의 인격적 관계는40)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우리’의 신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④ 생명의 공동체
하느님께서는 친히 당신 창조 사업에 인간을 특별히 참여시키고자 인간의 생명을 전달하고 교육하는 것을 부부의 고유한 사명으로 세우셨기에41) 부부들은 분명히 창조주께서 인간을 원하시는 것과 똑같이 “그 자체를 위하여” 새로운 인간을 원해야만 한다.42) 따라서 가정의 기본 임무는 생명에 봉사하는 것 곧, 하느님의 가장 고귀한 선물인 자녀 출산이고 이를 통해 가정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덕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43) 그러므로 가정은 생명의 전수에서 하느님과 협력하도록 부름 받은 생명의 공동체이다.44)
⑤ 기도하는 공동체
신앙은 매일의 기도 생활을 통하여 성숙된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이 자랄 수 없으며 이러한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다할 수는 없다. 기도는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도록 만들어주는 것으로서 이는 부모들과 자녀들이 사는 가정 안에 그리스도께서 머무르시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가정이 하느님의 힘을 나누어 받도록 도와줌으로써 가정의 힘과 정신적 일치를 증대시켜 준다.45)
3) 가정 사목의 의의와 중요성
가정은 본질적으로 구원을 위한 공동체이다. 그리고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에 반하는 죽음의 문화가 짙게 깔려 있는 오늘날 가정에 대한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정 공동체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46)
그리스도인 가정은 신앙의 조명을 받으며 희망을 갖고서, 교회와 일치하는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완전한 계시와 표출을 목표로 현세적 순례의 체험을 나눈다. 그러므로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강화하고 개발하는 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미래의 복음화는 대체로 가정 교회에 달려 있다는 확신 아래 가정은 최우선 순위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47) 왜냐하면 가정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구성원들의 전 생애를 통해서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는 참으로 생명의 성역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을 통하여 개인의 구원과 일반 사회와 그리스도교 사회의 안녕은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한 상태에 직결되어 있다48)고 밝히면서 혼인과 가정의 복음화를 도모하는 것은 만민의 특히 그리스도 신자들과 사제들의 의무라고 강조한다.49) 뿐만 아니라 가정 공동체에서도 가정 사목에 대한 교회의 분명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이를 위하여 교구와 본당에 사목 조직을 갖출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모든 이들이 이 중요한 사업에 참여할 것을 간곡히 권고하고 있다.
4. 가정 성화를 위한 사목적 배려의 구체적 제안
1) 가족 구성원의 노력
가정 성화는 곧 가정이 열매 맺는 것을 뜻하기에 우선적으로 가족 구성원 간에 어떠한 것들이 실재해야만 가능하다. 이른바 가정은 가족 구성원 간의 애정과 협동을 통해 공감대를 같이하고 부족한 것은 서로 보완하고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서로가 용서, 이해, 위로, 충고하는 것, 신의를 지키고, 선을 행하며, 솔직한 것 등을 통해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상대방의 의견과 자질, 역할을 인정하는 사랑의 가족 관계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의 고리가 잘 맺어져야만 서로의 헌신과 노력으로 거룩한 가정 공동체로 변모시킬 수 있다. 특별히 이혼율이 증가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부부와 부모-자녀간의 사랑으로 쌓아진 강인한 사랑의 가정 공동체야 말로 미래 가정을 지탱할 힘이 될 것이다.
또한 부모들은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인 생활을 실천하면서 말과 모범으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고, 이로써 복음화 임무에 참여하는 것이다. 복음화의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례의 참석, 가정 기도, 참회 고행의 실천, 가정 교리교육 등의 다양한 방법을 실천할 수 있다. 여기서 가정 복음화 임무의 핵심으로 특별히 가정 기도가 중요시되며 무엇보다 부부간 부모와 자녀 간의 친교가 원활하고 대화가 활발해야 한다.
가정 구성원이 자신의 가정과 다른 가정의 성화를 위해서는 가정이 가정을 더 나은 공동체로 변화시켜 나가는 가정 사도직이 절실히 요청된다. 곧 가정의 예언직, 가정의 사제직, 가정의 왕직의 실천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이는 곧 가정의 소명이기도 하다.
2) 지역 교회의 역할
(1) 오늘날과 같은 큰 변혁이 가정이나 개인에게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성윤리 교육과 함께 혼인이나 출산에 대해서 또한 남녀의 올바른 애정 문제와 자기표현 등을 심리학적 의학적 신학적 견지에서 설명하는 강연회나 세미나 같은 것을 준비하고 실시하여야 한다. 특히 미래의 가정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에 대한 실질적 교육과 그들이 토론하고 의견을 서로 나눌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교육적 측면에서 홍보 매체의 무분별한 프로그램을 통제해야 하고, 양심 형성 교육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2) 사목자50) 중심이 아니라 깨어 있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성취하고자 하는 진지한 부부들이 중심이 되어 가정 사목이 현실화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게 공감대를 가지고 가장 실제적인 조언과 도움을 현실적으로 가장 잘 줄 수 있는 주체는 바로 부부 생활과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부와 가정생활에 관한 교도권의 많은 훌륭한 문서들, 전문적인 연구 자료들이 실제로 부부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배제된 가운데 작성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3) 혼인성사의 은총은 특정한 부부들만 맛보는 특권이 아니라 모든 부부에게 맡겨진 선물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혼인성사의 참된 의미를 깨우치고자 시도하는 여러 가지 가정 운동51)을 통해 새로운 체험을 한 소수 부부의 삶에 다른 부부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필요한 교육적 배려도 아끼지 않아야 하겠다. 또 관면혼이라도 신자와 비신자 양편은 “혼인의 목적과 본질적 특성에 대하여 교육을 받아야 하고 어느 편 당사자도 이를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고 교회법 제1125조 3항에서 명시하고 있다.
(4) 본당에서의 가정 사목은 가정 문제와 관련된 전문 기관 및 가정 운동 관련 단체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교회 안팎으로부터 조언과 협력을 받을 수 있는 상설 기구가 본당 사목 협의회 안에 결성되면 더욱 바람직하다.
(5) 설교와 전례 거행은 부부와 가정의 요청이 무엇인지를 좀더 세심하게 고려하면서 거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는 사례집과 같은 자료들이 많이 발굴되어야겠다. 또한 여러 가정들이 함께 모여 신앙을 활성화시키는 생활 교리를 연구, 토의하고 체험을 나눌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6) 한 가정이 본당 내의 다른 가정들과 함께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여러 가정들이 친교를 통해 서로 연대성을 확인하는 절차가 되기도 한다. 또 여러 가정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스스로 자기 가정을 알게 되고, 다른 가정을 봄으로써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해 가야 한다는 신앙적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7) 각 가정은 출산과 교육이라는 사회의 기초적 역할을 넘어서 단독으로나 다른 가정과 연합하여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에, 특히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도록 배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정의 권리와 존엄성을 해치는 반생명적, 비도덕적 사회 분위기나 정책에 대해 거부하고 비판하며 결혼과 가정의 가치가 존중되고 보호되며 신장되는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도록 각종 운동과 협의체를 통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가정들은 스스로 “가정 정치”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의식하고, 사회 개혁에서 소중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3) 본당 사제들의 사목적 배려
(1) 가족 단위 프로그램 개발
가정에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의 신비가 드러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가정 사목을 전개함에 있어서 가족 관계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가족 관계에 대한 사목적 배려로서 가정 공동체 단위의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앞으로 개발되어야 할 가족 단위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가정 단위로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부부 주말 피정처럼 부부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산간 학교처럼 자녀들만이 참가해서도 안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등 온 가족이 함께 신앙 때문에 동시에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가족 단위 프로그램은 온 가족이 함께 일정한 기간 동안 본당 내의 다른 가정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가정 단위 프로그램은 신앙 때문에 함께 모이게 되었다는 기본 정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화나 친목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가정의 신앙적 성숙을 위해 온 가족이 함께 모인 것이고, 일정 기간 가정의 신앙적 정황(情況)에 직면하자는 애정을 가지고 함께 사는 것이다.
넷째, 가족 단위 프로그램은 한 가정을 교육 대상으로 할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개개인에 대해서도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초중고, 대학부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 내용과 부모와 부부들, 노인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온 가족이 그들의 신앙적 정황을 감지할 수 있는 전례와 행사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다섯째, 가족 단위 프로그램은 교육 과정에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한 가정은 프로그램 참여자이지만 동시에 프로그램 운영자가 되어야 하고,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요청되는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해서는 본당 차원에서나 교구 차원에서 충분한 사목적 배려를 해야 하겠다.
여섯째, 가족 단위 프로그램은 본당 연합으로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가족 단위 프로그램의 개발은 인접 본당이 연합해서 진행시켜 나가게 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일곱째, 가족 단위 프로그램은 본당 사목과 연계되어 운영되어야 한다. 본당의 연간 사목 계획안에 이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본당 사목과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정착되어야 하겠다.
이상과 같은 가족 단위 프로그램의 의미는 가정 안에서 그리고 다른 가정 공동체와 유기적인 관련을 이루는 훌륭한 체험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신자 계층이 일정 기간 동안 함께 생활함으로써 새삼스레 그들 자신을 발현하는 기회가 되며, 아울러 전 신자 계층이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를 대표하여 하느님 나라의 선포자로 나서는 데 있어 그 전인적인 영성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가정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가정으로서의 품위를 올바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2) 재혼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사목적 관심과 노력을 최대로 기울여 가정이 해체되지 않도록 해야겠으나, 여러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가정이 해체되어 재혼을 하고 있다. 이들도 그들의 세례로써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므로 사랑과 배려로써 그들 역시 교회로부터 배제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선 사업과 정의 구현을 위한 활동에도 참여하며, 자녀들의 세례와 종교 교육을 위한 소명은 그들에게도 중요한 사명이다. 그러므로 사목자는 무효 되는 혼인 장애들을 더 잘 이해하는 것과 교회법을 합당하게 적용시키기 위해 교회법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무효 결혼을 현행 교회법에 따라 근본적으로 유효화 할 수 있는 예들도 많지만 사제의 무관심이나 교회법에 대한 무지로 해결될 수 있었던 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예들도 있기 때문이다.52)
그런데 첫 번째 결혼이 확실히 유효한데 헤어진 부부들에 대한 문제는 참으로 어렵다. 교회는 둘째 결혼이 정착된 경우에는 교회의 윤리 신학 안에서만 해결점을 찾을 뿐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낸다. 교회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격려하며 인자한 어머니답게 행동함으로써 그들이 신앙과 희망을 유지하도록53) 특별히 사목적으로나 교회법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간구해야 하며, 둘째 결혼에 대한 어떤 대답이 있기 전에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반성과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54) 아울러 사목자 홀로 지극히 어려운 경우에는 주교에 의해 임명된 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문제의 취급을 맡길 수 있게 해야 한다.55)
(3) 특수 환경의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가정들이 있다. 특수 환경의 가정 사목으로는 이민 노동자의 가정, 군인과 선원과 기타 모든 유동인들처럼 장기간 떨어져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가정, 죄수와 피난민과 망명자의 가정, 철거민 가정, 불완전하거나 편부모인 가정, 불구자나 약물 중독자 자녀를 둔 가정,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자의 가정, 정치적 이유로 차별 대우를 받는 가정, 이념적으로 갈라진 가정, 본당과의 접촉을 쉽게 가질 수 없는 가정, 종교 때문에 폭력이나 부당한 처우를 받는 가정, 10대 기혼 부부,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인 가정 등이다. 이들을 위해 관대하고 현명한 사목 활동이 요청된다. 이들 가정은 보조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그들의 결핍의 심층적 원인을 가능한 제거하기 위해서 여론과 특히 문화적, 경제적, 사법 구조에 대하여도 좀더 결단성 있는 조치를 필요로 하는 집단들이다.56) 특별히 오늘날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자녀의 무관심에서 발생하는 소외로 고뇌하는 노인 가정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이들에게는 복음화와 일상생활의 깊은 원천이 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위대한 종말론적 현실에 비추어서 이해하고 생활하도록 돕는 것은 용이할 수 있다.
(4) 교회 안에서 가족 복지의 중요성과 정부의 정책적 역할과의 조화
교회는 사회 복지 사업뿐만 아니라 가족 복지를 위해서도 많은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사실 가족 복지라는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사목적 배려는 매우 드물다. 가족 복지는 사회 복지의 분야인 아동 복지나 노인 복지의 개념과는 그 관점을 달리한다. 곧 가족의 한 구성원의 당면 문제에 대한 해결이나 발달의 촉진을 위한 대책이 아니라 가족 성원 전체(family as a whole)를 지향하는 복지인 것이며, 이를 위해 가족 중의 일부 또는 전체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대책이 강구되어진다.57) 따라서 교회는 가족 전체의 안녕과 가족생활을 강화하고, 가족 구성원의 사회 적응상의 문제를 원조해 주어,58) 가정을 보호하고 창조주이고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그 정체와 사명을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59) 또한 정부의 가족 복지 정책의 올바른 시행을 위해서 조언하며, 정부와의 조화를 통해서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와 교회가 당면한 과제는 막중하다.
가족 복지의 대상 영역은 다양하나 무엇보다 빈곤 가족과 편부모 가족,60) 미혼모 가족, 노인 가족, 장애 가족, 자녀 방임 및 학대 가족,61) 맞벌이 가족, 소년․소녀 가장 가족을 위한 복지 대책이 요구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이혼과 별거가 증가하고 핵가족화 현상이 두드러진 상황에서 가족의 불안정성이 점차 증가하는 실정이므로 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62) 이들 가족을 지원하는 서비스와(소득 보장, 주택, 교육, 보건, 레크리에이션, 정보 제공), 보충 서비스(가족 상담, 학년 전 아동의 탁아, 이웃 놀이 집단, 방과 전후 보호 프로그램, 이외 가족의 결함을 보충할 수 있는 배려), 가족 대리 서비스(입양, 가족 위탁 보호, 휴일의 가정 위탁 보호, 가족 집단 보호, 집단 시설 보호) 등이 필요하다.63) 이와 함께 교회는 이러한 가족 변화의 특성을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사목적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며, 정부와의 협조를 통한 정책적 방향을 설정하고, 경제적 지원과 심리적 서비스의 적절한 배분, 관련 조직 간의 상호 협조 체제 등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같은 문제를 지닌 복지 대상자들 스스로 서로 협력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사목적, 정책적으로 보조하고 격려하는 방법 역시 꾸준히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5) 교회 안에서 가족 치료와 상담을 위한 전문인과 기관의 육성
오늘날의 가족 변화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교회 안에서 가정 복음화를 위해 비금전적인 서비스, 곧 가족 치료와 상담이 절실히 요구된다. 가족 치료는 개인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기보다는 환경과 상호 작용 하는 연대적 맥락 안에서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며, 이를 뒷받침해 주는 이론으로 일반 체계 이론, 구조 이론, 상호 작용 이론, 발달 이론, 의사소통 이론 등이 있다.
가족 치료는 가족 체계에 초점을 두는 모든 상담 방법이라고 정의되고 있으므로 개인 상담에 비해 인간의 문제를 좀더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관계와 상황을 중시함으로써 다양한 접근법이 가능하다.
5. 나오면서
날이 갈수록 사회와 교회의 기초 공동체인 가정은 ‘죽음의 문화’로 병들고 파괴되고 가치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가정이 지닌 본래의 가치와 고귀함을 회복하고 성가정을 이룬 예수님의 뜻에 따라 가정 제도를 보호하고 가정을 복음화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노력해야 할 사명이다. 왜냐하면 가정은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가정이 거룩하게 복음화 되어 행복한 기초 공동체와 가정 교회로 거듭날 때 각 개인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정 성화를 위한 교회의 사목적인 방안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끊임없이 연구되고 새로운 접근 방안을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불가해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하다.
사랑으로 세워지고 생명을 받는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 곧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친척들의 공동체이다. 가정의 첫째 임무는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끊임없는 노력을 쏟으면서 일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 임무의 내적 원리, 영원한 원동력, 최종적 목표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 없이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 완성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