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0:43 매우 번창하여
전화와 관련된 유머 좀 하겠습니다.
휴일에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켰는데 짜장면에서 바둑알이 나왔습니다. 황당하고 화가 나서 중국집에 전화해서 사장 바꾸라고 소리를 치고 짜장에서 바둑알 나왔다고 따지니 가만히 듣고 있던 중국집 사장님
"네~ 축하드립니다. 탕수육에 당첨되셨습니다!"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 주문하려는데 치킨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살 없는 치킨 있어요?"
주인이 당황하셨는지 한참 있다가
"뼈만 드시게요?”
여직원이 커피에 설탕을 넣다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설탕입니다~”
어느 교회에 김 집사님이 계셨는데 교회 일에 정말 열심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심방 가자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함께 심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김 집사님께 한 가지 고민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대표기도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도 목사님이 심방을 가자고 하셔서 함께 나섰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나자 목사님께서 김 집사님에게 대표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김 집사님이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시작하긴 했으나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아 진땀이 흐르고 있는데 마침 그 집 옆으로 나 있는 기찻길로 기차가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한동안 계속되자 김 집사님이 그냥 웅얼웅얼하다가 기차 소리가 거의 사라질 때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공리에 기도를 마친 김 집사님은 정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김 집사님, 기차 소리 때문에 잘 못 들었네요. 다시 기도하시지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알고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해야 합니다. 어떤 은혜를 받았습니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죄 용서를 받은 은혜,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고백하고 예배드리는 평화의 은혜, 질병에서 나음을 받은 은혜입니다. 또 하나는 부요의 은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예수님은 나의 죄를 위해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이는 나의 죗값을 지급하여 용서의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진노와 원수의 관계였습니다. 심판의 대상자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나 대신 징계를 받으셔서 평화의 관계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며 가까이 나와 예배하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나음을 위해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나의 건강과 치료를 위해 채찍에 맞는 값을 지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고 하나님의 뜻이니 나음을 받고 강건하시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난의 값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고 고침받고 부요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은혜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치유와 부요를 위해 생각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생각은 버리시고 말씀에 근거한 생각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爲人)도 그러한즉” (잠언 23:7)
내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냐에 따라 나의 됨됨이도 그러하다는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이 나니 내 생각이 부정적이면 내 됨됨이도 부정적이고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으면 내 됨됨이, 나 또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엡 3:20)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위에 역사하여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각’이라는 원재료를 쓰십니다.
그래서 마귀는 나쁜 생각을 넣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 13:2)
마귀는 ‘예수님을 팔아라’라는 나쁜 생각을 넣습니다. 잘못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생각을 넣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오면 다스려야 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내 생각의 주인은 나입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 4:23)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마귀가 넣어준 생각은 잘못되고 나쁜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걸러내고 버려야 합니다. 내 생각의 주인은 나임으로 내가 선택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무엇을 선택했든지 책임도 내가 져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생각을 줄까요?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하나님은 나쁜 생각, 잘못된 생각을 넣어주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 우리 안에 소원을 넣어두십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소원을 넣어 두고 우리로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각은 받아들이고 마귀가 넣어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내가 선택해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생각의 주인은 나임으로 내가 다스리고 책임도 내가 져야 합니다.
가난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가난하게 살아야 맞겠지요? 부요가 하나님의 뜻이고 예수님의 은혜라고 받아들이고 믿는다면 그 생각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부요 의식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말이 중요합니다. 가난한 말을 하면 가난하게 살고 부요한 말을 하면 부요하게 삽니다.
없다, 죽겠다. 복이 없다. 돈이 원수다. 원망과 불평, 짜증의 말은 가난한 말입니다. 부요의 말은 있다. 만족하다, 감사, 축복의 말입니다. 이해하셨으면 아멘 합시다. ♪감사송
믿음의 선조들의 부요함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믿은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확인하면서 큰 확신과 도전이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아브라함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시어 창성하게 하시되
소와 양과 은금과 종들과 낙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 (창 24:35)
크게 복을 받아 창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 집에서 기르는 사병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318명입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창 14:14)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신앙도 부자였고 물질도 부요했습니다.
이삭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 26:12-14)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상속도 많이 받았는데 하나님께 복을 크게 받아 거부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부자는 많아도 거부는 몇 없습니다. 이삭이 그 거부 안에 속했습니다. 믿음의 선조 이삭은 부요했습니다. 그에게 붙은 단어들은 굉장합니다. 백 배, 창대, 왕성, 거부, 심히 많음입니다.
야곱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창 30:43)
매우는 보통을 훨씬 넘는 정도를 말합니다. 야곱은 매우 번창했습니다. 부요했습니다. 말씀 더 보겠습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창 32:10)
하나님의 복과 은혜로 부요해졌습니다. 지팡이 하나 가기고 요단을 건넜는데 지금은 두 떼를 이루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은복으로 부자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동시대를 살았던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마귀가 시기할 정도로 하나님을 잘 섬긴 사람입니다. 그 역시 부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한 시험으로 다 잃었지만 결국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욥까지 공부하면서 몇 가지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첫째,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믿음의 선조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부요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은 컸습니다. 당대 부자요 거부가 될 정도의 복입니다. 인생은 노력과 부지런함, 성실, 최선 위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여 하나님의 은복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부요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버지가 부요하시니 자식이 부요해야 맞습니다. 금도 은도 땅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배운 대로 부요는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평생 붙잡아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우리는 다윗처럼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고백해야 합니다.
셋째, 나도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요가 하나님의 뜻이고 주 예수님의 은혜라면 예수님 믿는 나도 믿음의 선조들처럼 부요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복으로 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면 할수록 더 받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고후 9:6)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 19:17)
하나님께서 가장 큰손답게 크게 갚아 주실 줄 믿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4~25)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 6:38)
누가요? 복의 근원 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크게 갚아 주십니다. 이런 교회, 이런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찬송가 44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