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글에 이어서 다음 카페 "잇빨 중사 카페"에서 퍼 온 글입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미 육군 공수부대의 긴박했던 상황을 당시 부대원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들려주는 글입니다.
82공수사단은 미국 역사상 가장 먼저 공수사단을 만들어져,
다른 공수사단들이 젖병을 빨고 있을 때 먼저 북아프리카로
날아간다. 그리고 북아프리카 튜니지에서 이륙하여 시실리
침공에 2차대전 사상 첫번째 전투강하를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비극과 전투를 경험한 뒤에,
이번에는 연합군의 이탈리아 본토 침공에 참가하여, 살레르노
에 전투강하를 다시 한번 하게 된다. 그리하여 수가 막혀 있던
전선에 올라가 독일군 기갑사단과 격돌하게 된다..
82공수사단 - 노르망디 침공 준비
살레르노 전투강하 후에, 해안에서 좌불안석하던 연합군은 결국
독일군의 압력을 이겨내고, 내륙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다시 '안지오'로 2차 북상 점프 상륙한 미군은 또 다시 수가 막히게
되어 전투 역사상 여러가지 논란을 낳게 된다.
이때 안지오 바로 위쪽의 산악에서는 미군 제5레인저대대가 950
고지군에서 독일군과 혈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SOS를 보냈고,
항상 기동타격군으로 노예처럼 봉사하던 82공수사단은 전상률 50%
로 분투하고 있는 제5레인저대대를 구출하기 위하여 예하의 504
공수연대를 상륙정으로 급파한다...
중부 이탈리아에서 연합군을 상대한 독일군은 정예부대였다. 가장
정예이면서 끈질긴 부대들은 바로 러시아의 동부전선에서 급파된
부대들이었다. 그로 인하여 추격을 해도 끈질긴 발악을 하는 독일군
베테랑들로 인해서 연합군은 '저런 새끼들이 어디서 나타났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동부전선에서 돌아온 독일군
부대들은 이탈리아 전선 정도는 껌값이었다. 물론, 연합군의 물적
인적 자원을 결국 이길 수는 없었지만...
살레르노에서 독일군 기갑부대와 격전을 치르고 난 후의 82공수사단 병사들...
보강되는 미 공수사단...
이탈리아 전선에서 연합군들이 이탈리아를 북상하면서 알프스
산맥 덩어리를 향해서 힘겹게 온갖 전진을 하고 있던... 1943년,
12월.... 미군 지휘부는 노르망디 침공에 필요한 병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본토에서 훈련을 끝내고 자대를 팔려가려고 대기중이던,
507과 508공수연대를 조용히 북아일랜드로 보낸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두 개의 공수연대 병력들은 모든 공수
부대를 나타내는 장비와 표식을 제거하고 대서양을 건넜다. 이어
11일 간의 항해를 끝내고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의 504연대...
82공수사단의 504연대는 본 사단과 떨어져서 다른 배속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나폴리로 이동하여 휴식을 취하면서 안지오 서쪽에 전투강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로마에서 15마일 지점의 해변이었다. 아무래도 미군은
이따리아노의 상징 로마를 빨리 점령하는 것이 심적으로 이탈리아 전선
을 붕괴시키는 관건이라고 보고 있었다.
나폴리 부근의 504공수연대. 북부 이탈리아로 갈
수록 이런 현상을 급격히 늘어나게 된다.
다 아시다시피, 연합군은 두 개의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독일군을
뒤쫓아 알프스를 넘서 프랑스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영국과 인접한
해안에서 바로 맨땅에 헤딩으로 프랑스로 침공하느냐였고... 그리이트
브리튼 아자씨들의 절대적인 주장으로 프랑스 해안 침공이 결정난 상태
였다. 영국 사람들은 덩케르크 이후 야마돌아 있었다. 물론 최종목적지는
독일 본토였다.
이에 리지웨이 장군과 오마이 뉴스 브레들리 장군의
협의 하에 몇가지 사항이 결정이 났다.
미군 공수사단은 두 개로 작전에 참가한다.
82와 101사단은 공수연대를 더 보강하여 오버로드한다.
(두 개의 공수사단은 침공부대중 낙하산연대를 3개로 구성한다)
안지오에서 분투하고 있는 최정예 504공수연대를 빼낸다.
401과 325글라이더 연대를 공수사단에 보강한다.
(결론적으로 이 두개 공수사단은 5개 연대급 사상 초유의 부대가 된다.)
(하여간 노르망디에 조낸 밀어넣겠다는 의지. 실패하면 줄줄이 모가지)
그런데 82공수사단 부사단장이 되는 가빈 장군은 504공수연대를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 (그 자신은 이탈리아에서 505연대장이었음)
결국 504연대가 이탈리아에서 바로 빠지기 힘들자, 82공수사단은
먼저 508공수연대를 받게 된다. 거꾸로 508연대는 82로의 전입을
조낸 반갑고 자랑스러워했다능...
미군 공수사단 역사상 시실리부터 참전했던 최고 베테랑 연대는
역시 504연대와 505연대였다. 결국 507과 508전입연대는 505연대
참전 베테랑 교관들로부터 침공훈련을 받게 된다.
그러나 1944년이 되도록 504공수연대는 안지오에서 무솔리니
수로의 교두보를 장악하라는 명령으로 분투하고 있어 전선에서
빠질 수가 없었다. 안지오는 1차세계대전과 비슷한 참호전이
되고 있었다.
침공의 준비...
504공수연대가 안지오에서 안질려고 노력하고 있던 당시, 82
공수사단은 명령에 의해서 함정을 타고 북아일랜드로 이동한다.
그것에서 82공수사단은 휴식과 정비, 신병보충, 그리고 이어서
침공훈련을 시작한다.
그러나 1년 정도 북아프리카에서 험한 시실리 지형, 그리고 본토
에서 전투를 치른 82공수사단 병력에게 북아일랜드는 천국과 다름
이 없었다.
"정말 최고였다. 위스키가 있었고, 생선과 과자들이 있고, 거기다
영어로 같이 떠들 수 있는 민간인들이 널려 있고, 정말 행복했다.
그런데 젠장 너무 추웠다. 지독히도 안개가 끼었다. 오후 2시까지
안개가 걷히지 않곤 했다..."
맨 처음의 노르망디 공수작전의 82공수사단의 전투계획은 정말로
공격적이었다. 101이 해안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동안, 82공수사단은
반도 전체를 동쪽으로부터 차단하라는 식의 계획이 세워졌다.
나중에 최연소 사단장이 되는 가빈 장군은, 미군 공수사단이 만들어
질 때부터 관여했던 공수작전의 핵심 참모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작전 구성에 리지웨이는 가빈에게 많은 작전계획을 맡기게 된다.
1944년 1월 13일, 82공수사단은 본격적인 침공훈련을 위해
북아일랜드에서 영국 본토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림과 같은
영국의 풍경에 병사들은 모두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전쟁터에
나간 남편들을 대신해서 영국의 여성들이 각종 공장 등에서
거친 노동을 하는 것에도 매우 놀라게 된다.
작전계획은 점차 혼란스러워졌다. 매일 아침 달라져 있었고,
매일 저녁 변경이 되는 식이었다. 504연대는 여전히 이탈리아
에서 전투하고 있었다. 결국 안지오에서 61일간 전투를 하던
504공수연대는 상부로부터 작전지역에서 빠져 영국으로 가라는
명령을 취득하게 된다.
영국에서의 훈련 시절. 아마도 사열을 받는 듯 하다.
영국에 도착한 82공수사단은 3월이 되면서
매우 거친 침공훈련을 시작하게 된다.
침공준비의 첫 단계는 패스파인더 팀의 구성이었다.
본대 점프 전에 들어가서 본대를 유도하는 전초대를
의미했고, 이는 별도로 있던 부대가 아니라 각 부대에서
자원자를 모집했다. 자원자 중에서 선발하여 각 연대 당
장교 6명 병사 54명이 선발되었다.
이들은 따로 모여서 자동식별장치와 유레카 레이다 비콘의
작동을 훈련받았다. 이들은 매우 무거운 장비를 들고 본대
보다 먼저 점프해서 들어가야 하는 병력이 되었다.
그리고 미군 최초로 글라이더 강습이 준비되었다. 글라이더는
병력과 탄약 물자의 수송과 함께 다른 이유도 있었다. 살레르노
에서 맨손으로 독일군 탱크와 싸웠던 공수부대원들은 자신들이
기갑 앞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깨달았고, 침공에 대전차반을 배속
시켰고, 이는 함정으로 상륙해서 돕기에는 효율이 떨어졌다.
그러므로 글라이더가 필요했다.
훈련은 강해졌다.
"우리의 훈련 행군 거리가 40킬로미터로 늘어났다. 전쟁을 겪은
우리가 또 다시 강력한 훈련을 받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그러
므로 아무 것도 모르는 장교가 전입을 오면 모두가 무시하는 경향
이 있었다. 우리와 같이 싸웠던 장교만이 우리를 통솔할 수 있었다."
그사이 1944년 4월 22일,
지치고 지친 504공수연대가 배를 타고 영국에 도착한다.
당시 504공수연대의 사상률은 끔찍한 상태였다. 쉽게 말하면
생존자들이 도착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국 504
연대는 침공을 위해서 재건되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병력
숫자가 너무 줄어 있었다. 그러나 504연대원들의 입장은 또한
달랐다.
"우리는 역사적인 유럽 침공에 명예롭게 참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연대를 보강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결국 고심 끝에
리지웨이 장군은 504연대를 침공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504연대원들은 크게 낙심한다. 가빈도 낙심한다.
"터거 연대장과 상의 끝에 그렇게 결정이 났다. 내가 아는 한
504공수연대는 최고 중의 최고였다. 504연대로 인해서 우리
82가 강한 사단이라는 힘을 가질수 있었던 것이다..."
82공수사단의 노르망디 작전센터에는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가
생긴다. 원래 타킷의 주변에 참호와 구축물들이 항공정찰사진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첩보에 의하여 독일군 91공중강습
사단(책의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원래 랜딩존의 바로 그
장소에 나타난 것이다. 독일군 91사단은 최근에 노르망디로 이동
해 왔고, 대-공수작전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리고
주 목표의 하나인 110고지 부근에 주로 주둔하고 있었다.
결국
수립되었던 모든 작전계획이 휴지통으로 들어가 버렸다.
82공수사단의 작전은 이렇게 명명된다.
"랜딩한 후에 랜딩존을 점거한다. 그리고 메데레트 강변을 확보
하고 이후, 생 메리 에글리제 (Ste. - Mere - Eglise)를 점령한다..."
가빈 장군. 나중에 생각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오르지는 못한다. 그러나 전후에 경전차
공수 등의 공수작전 전술에 많은 발전을
주고 사라진 인물.
생 메리 에글리제는 지역 주둔 독일군의 본부가 있던 곳이고,
또한 주변의 모든 도로가 모이는 마을이기에 연합군으로써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
당시 배속된 공수연대로 인해서 82공수사단의 침공은
505 노장연대와 507/508공수연대가 공수작전에 참가하게
된다. 507공수연대는 504연대가 빠짐으로써 노르망디에
참가하는 영예를 얻게 된다.
최고참 연대인 505연대가 이 생 메리 에글리제 마을 점거에
동원이 되고, 507/508은 보다 내륙으로 더 들어가 점프하게
된다.
82공수사단은 모든 제대를 3개로 구성했다.
A - 505. 507. 508 공수연대 점프
B - 325글라이더 연대를 포함한 글라이더 이동 포병 등
C - 해안으로 상륙하는 나머지 병력과 배속된 탱크 부대...
침공의 서막
훈련을 끝낸 82공수사단 제대들은 5월 말이 되면서 보안이
매우 강화된 비행장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중 철조망이 쳐져
있고, 헌병이 24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으며, 외부로 전화
나 우편이 모두 금지되었다. 병사들의 편지는 모두 모아졌다가
비행기가 노르망디로 향해 이륙하고 나서 발송되었다.
이곳에서 장사병들은 계속해서 사판으로 지역을 연구하고
매일매일 신선한 항공사진을 보았으며, 제대별로 지역연구를
계속했다.
여러가지 내용들이 인터넷 등에 많으므로, 병사들이 받았던
물품 중에서 소개가 덜 된 부분의 몇개만 추스려 본다.
1. 프랑스 화폐 - 소량이 지급되었는데, 만약에 프랑스 민간인
으로부터 어떤 물건을 취득하게 될 때 지급하라고 나누어줌.
2. 수상한 알약 두 정 - 이것은 Benzedrine라는 알약으로 이
약을 먹으면 며칠간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일종의
각성제다.
3. 개인당 두 개의 몰핀 - 너희는 험한 곳에 간다. 잘 써라.
505공수연대는82공수사단의 주력이었고, 또한 노르망디 침공
작전의 작전에서도 핵심이었다. 전입병을 제외하면 505공수연대
의 병력들은 노르망디가 세 번째 전투강하였다. (장수돌침대!)
505연대 패치
5045연대는 생 메리 에글리제를 공격해서 점령하고 독일군 본부
를 박살내는 아주 간단명료한 임무를 받았다. 언론에서 101사단을
많이 부각시켜서 그랬지. 82공수사단 대원들은 마음이 많이 틀렸다.
한 대원의 말
"우리는 충분한 힘과 능력이 있었고, 진심으로 사단의 지휘력을
모두 존중했다. 우리는 아무도 입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 어떤
부대보다도 우리 사단을 최고로 생각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작전이 실행되기 전에 사단과 연대의 고급장교들이 모여
작전 브리핑을 했다. 이때 사단 보급장교였던 클라우즈 소령이
성조기를 꺼내면서 인상 깊은 말을 했다.
"이 성조기는 처음으로 북아프리카에서 날아가 시실리에
걸렸던 깃발입니다. 나폴리에 계양되었던 깃발이기도 하죠.
내일 아침, 우리는 생 매리 에글리제 독일군 본부 건물 위에
이 성조기를 게양합시다!!!"
6월 5일이 침공일.
그리고 6월 4일 오후가 되자, 마지막 저녁식사가 나왔다.
"우리는 죽을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먹는 식사처럼 밥을
먹었다. 공군의 음식은 항상 좋았다. 적당히 구어진
스테이크와 저민 감자를 먹었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계란은 파우더 계란이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나서 날씨가 갑자기 나빠졌다..."
결국 침공일은 6월 6일로 하루 연기되었다.
그러자 보급장교가 병사들에게 물었다.
"내일은 무엇이 먹고 싶은가?"
그러자 병사들이 대답했다.
"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습니다!"
병사들은 똑같은 메뉴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죽는 마음으로 먹었었다.
병사들은 이것을 '최후의 만찬(last supper)'라고 불렀다.
그 당시 병사들이 경악하는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저녁 8시가 되자, 병사들은 '베를린의 창녀'란 별명의
여자 아나운서가 나오는 독일군 흑색방송을 들었는데,
그 여자가 난데 없이 이렇게 마이크에 대고 떠든 것이다.
"굿 이브닝. 82공수사단 여러분. 여러분들은, 내일 아침
기름칠이 잘 된 우리의 탱크 캐터필더에 깔려 피를 질질
흘리게 될 것입니다.."
장난인지 어림짐작인지는 몰라고, 이를 들은 병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병사들은 이미 큰 혈전이 될 것이라고 기본적으로 생각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의 모습. 101사단. 그러나 82에 비하면 처음 전투에 임하는 초보사단이었다.
부사단장이 글라이더에서 사망하는 사태는, 82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에피소드였다. 내
기억에 101사단은 사단장과 부사단장이 모두 전투강하를 하지 않았다. 101사단장 맥스웰
장군은 함정으로 노르망디에 상륙한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 한 병사의
군장결속에 관한 글을 옮겨 본다.
톰 포르셀라 일병
(기본적인 앞의 것은 생략)
"탄띠를 허리에 두르고, 호주머니에는 탄 클립 몇개를
넣는다. 수통은 물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비상의무킷과
나침반과 대검을 챙긴다. 그리고 4-5개의 수류탄을 챙긴다.
그리고 강하 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수류탄 핀에는
테이핑을 해 둔다. 그리고 일부 수류탄은 내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트렌치 나이프를 내 오른쪽 군화 발목에 잘
묶는다. (접지 방향 백프롬다.)
그리고 초코렛 바 몇 개를 상의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내 왼쪽 옆에 방독면를 결속한다. 그 방독면 위에 개인용
32구경 벨기에제 권총을 결속한다. 그리고 예비탄창 세 개
를 상의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소총을 결속한다.
낙하산을 착용하고, 예비낙하산 밑에 내 군장을 결속한다.
그 안에는 세 개의 K-레이션, 울로 된 모자, 내의, 화장지,
비타민 알약, 양말, 기타 잡다한 것을 넣는다. 그 아래에
10파운드짜리 M-4 대전차 지뢰를 결속한다.
철모 턱끈은 매우 강하게 당겨서 조인다. 느슨하면 낙하산
개방충격으로 철모 끝이 코를 때려서 코가 부러진 사람들
이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낙하산을 제외한 휴대품 군장이 175-180 파운드
정도로 기억한다. 낙하산과 다른 모든 물품을 포함하면 아마
300파운드까지 나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노르망디와 마켓가든에서 이것을 철모에 달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많이 보셨을
것이다. 저것을 왜 철모에 달까... 이유는 훈련에서 기인한다. 병사가 점프 후에
부상을 당해서 누워있으면 탄띠에 있는 폴더를 열어서 처리하기 힘들다. 누운
상태에서는 머리에 손이 더 쉽게 닿는다. 흩어진 상태에서 조력자가 없을 경우
개인이 바로 쓰기 위하여 철모에 달기도 했다. 압박붕대가 들어 있어서, 접지후에
발못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많이 사용했다.
나는 딱딱이... 딱딱하면 안 쏜다. 안 딱딱하면 쏴버린다.
당시 어깨에 부착한 기름칠 방수된 성조기.
그러자 전투가 시작되자 모두 떼었다. .(실물)
그리고 매우 냉정한 지시사항도 전달된다.
1. 독일군을 포로로 잡지 마라!? 진행이 느려진다
2.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교전을 피하라
3. 부상자를 데리고 가지 마라. 진행이 느려진다.
1944년 6월 5일 해가 저물고 있었다.
옆에서 준비하던 병력을 지켜보던 조종사가
이를 보고 이렇게 메모에 남겼다.
"그들은 508공수연대원들이다. 얼굴을 검게 칠하고
완전군장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고대의 노예를
보는 듯 하다. 마치 영화의 모습 같다. 이들을 보니 내가
미국인이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그들은 조용히 있기
도 하고 웃고 대화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많은 수가 되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맨 먼저 패스파인더 팀이 점프를 위해서
C-47 수송기로 가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치 치하의 프랑스로 가는 것이었다.
이때 다른 명예를 안은 사람들도 있었다.
침공에 참여하지 못하는 504공수연대원들 중
26명의 자원자가 508과 507연대의 패스파인더
팀에 들어간 것이다. 아무래도 참전경험이 있는
대원들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한다.
최초로 점프하는 본대는 505연대 2대대로
생 메리 에글리제 부근 01:15분이었다.
사단장 리지웨이 장군은 이어지는 1대대와
같이 점프를 하고, 가빈 장군은 3대대와 02:08분에
점프예정이었다. 이어 507연대는 새벽 2시 39분이었다.
그리고 대전차반을 실은 글라이더가 새벽 4시에
첫번째로 랜딩하게 된다.
82공수사단은,
총 378대의 수송기에,
6,418명이 점프를 하고,
52대의 와코 글라이더가 랜딩을 하고,
와코 글라이더에는 대전차반 포함 220명과
57밀리 대전차포 16문이 실리게 된다.
505연대 I중대 빌 터커 일병은 이렇게 기고했다.
"비행장에 셀 수도 없는 많은 수송기가 정렬해
있었다. 병사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수송기로
향했다. 해가 지면서 영화와 같은 배경을 연출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공기의 굉음이 비행장을
울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군장이 너무 무거워서, 누가 조력해 주지
않으면 비행기에 오를 수가 없었고, 그냥 그대로
서 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끔찍한 사고가 비행장에서 일어났다.
한 비행기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한 병사의 '개몬 수류탄'이 기내에서 폭발한
것이다. 이 폭발로 4명이 사망하고 비행기에
불이 났으며 나머지 모든 대원을 중상을 입었다.
영국 남부의
모든 비행장에는 수송기들로 가득찼다.
이들을 사용하고 노르망디로 날아가는 것은,
미 82공수사단, 101공수사단,
그리고 영국 제6공수사단이었다.
수백명의 비행장 사람들이 2~3열로 도열했다.
"미군, 영국공군, 영국군 여군, 취사병.. 등등.
모든 사람들이 활주로 옆에 도열했다. 그들은
모두 부동자세로 있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우리 비행기를 응시했다. 그들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행기가
출발을 하자 모두 거수경례를 했다.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1944년 6월 5일,
저녁 10시 30분,
82공수사단의 첫번째 패스파인터 팀을 태운
수송기가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
올랐다.
그들은 노르망디로 향하고 있었다....
노르망디 전투 강하 -1
82공수사단을 선도하는 것은 C-47 8대에 분승하여 가장
먼저 노르망디로 향하는 505연대 1대대 패스파인더였다.
101사단과 82공수사단의 노르망디 구역배분이 확실히 보이는 지도...
82공수사단은
1. 505
2. 508
3. 507 순서로 점프했다.
제임스 엘모 존스 병장
"수송기 내에 패스파인더 대원들은 대부분 얼굴을 검게
칠했다. 그러나 나는 얼굴에 아무 것도 바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런 검은
얼굴의 영정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난 그것이 세 번째
전투강하였다. 그 거대한 전투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508연대 H중대 톰 포셀라 일병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선임하사가 이렇게 말했다. 만약에
점프를 거부하는 놈이 생기면 그대로 총으로 쏴 버린다고.
계급에 상관 없이 쏴버린다고. 그리고 우리 또한 그런 놈은
쏴도 상관 없다고 말하며 그것은 명령이라고 했다. 그러자
모두 조용해졌다."
패스파인더를 태운 수송기를 필두로 82공수사단 점프병력을
태운 378대의 수송기는 상공에서 일대 장관이었다. 그리고
수송기들은 9대씩 공중에서 보여 승리를 의미하는 'V' 대형
을 형성했다. 수송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1개 대대는 총 36-45대의 수송기에 나누어 탑승했다.
505공수연대가 맨 처음으로 사단에서 강하를 했지만, 또한
여기에 순서가 따로 있었다. 2-3-1대대 순서였다.
(대대의 점프 순서는 연대장의 각 대대장 신뢰지수와 연관도 있다.
물론 가장 신뢰하는 대대장의 대대가 가장 위험함은 기본이다)
수송기마다 분위기가 달랐지만, 공통된 의견은 탑승한 공수부대원
들은 대부분 조용했고, 농담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며, 또한
대화도 서로 나누지 않는 편이었다. 수송기 엔진의 굉음 속에, 특히
수송기 문이나 창가에 있던 대원들은 바다에 보이는 엄청난 규모의
함선들을 보았다.
한 대원
"신경과민으로 복부가 조여왔다. 긴장과 신경예민 때문이었다.
난 속으로 다시 기도를 했다. 이 전에 두 번의 전투강하를 했었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기도를 시작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제가 죽어야 한다면, 사람답게 죽도록 해 주십시오.' 기도
를 올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내는 어두웠다. 기내에서 보이는 불빛은 대원들이 피우고 있는
몇 개의 담배불빛 뿐이었다.
당시 비행 경로는 아래의 그림과 같다.
위의 그림 왼쪽의 Guernsey와 Jersey섬이 참고점이었다.
본 잇빨중사의 추측이지만, 아마도 이 섬에 특수작전조들이 들어가서
항공기들의 참고하도록 일종의 불빛 신호를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의 505연대 패스파인더 제임스 엘모 존스 병장
"DZ에 가까워오자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그런데 그 구름을 뚫고
독일군 총탄의 천연색 트레이서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는 해안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기내에서 일어서 있었다. 장비는 정말로 엄청나게
무거웠다. 그로 인해 우리는 정말로 피곤했고, 빨리 비행기 밖으로
뛰어 나가고 싶었다."
존스 병장은 기체문 바로 앞에 있었고, 그런데 독일군의 대공사격이
심해지자 조종사가 갑자기 수송기의 속도를 높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88밀리 대공포나 20밀리 캐논포를 피하기 위하여 조종사는 수송기의
고도를 밑으로 떨어트리고 있었다.
이는 나중에 렉그백 등의 점프자 장비 손실로 이어진다. 속도가 높아
지면서 병력들은 낙하산 산개 충격이 훈련 때보다 2-3개가 강하게
받아야 했고, 약간만 느슨하게 결속된 장비는 공중에서 날아가 버렸다.
이때 그 육중한 레그백들이 하중을 못 버티고 점프자들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그린라이트가 결국 들어왔고 존스 병장은 수송기 밖으로 뛰어나갔다.
"체스터 중위가 1번이었고, 내가 바로 뒤였다. 산개충격은 매우 강했다.
그리고 잠시후 사방에서 엄청난 총소리들이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도를 낮추는 바람에 낙하산이 펴지자마자 내 발이 땅에 닿았다. 난
생각했다. '염병할 대서양 장벽에 이제 도착했군!'"
지상에서는 독일군의 모든 총기류들이 수송기들을 향해서 쏘고 있었다.
하얀색, 녹색 트레이서들이 총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난 접지할 때 내 머리를 감쌌다. 충격이 있고 나서 둘러보니, 세 개의
군복이 길을 따라오고 있었고, 곧 이어서 나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낙하산 해체뭉치가 풀려지지 않았다. 결국 트렌치 나이프로
잘라내고 총을 잡은 다음, 레이더 장비를 챙겼다. 안테나를 펴고 플러그
를 꼽았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6월 6일 아침이었다."
존스 병장의 제대는 레이더 장비를 작동시켜서 첫번째 전투 제대인
505공수연대 2대대를 받아야 했다. 2대대는 36대에 분승해서 곧바로
패스파인터 표식을 찾아 날아오고 있었다. DZ 'O'였다. 패스파인더와
본대의 점프 간격은 30분이었다.
"패스파인더 팀이 모였을 때, 한 명이 없었다. 그는 점프를 할 때 맨
마지막 대원이었다. 그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그가
노르망디에서의 첫번째 전사자로 생각한다. (애석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장비를 켜고 총 7명의 대원이 패널 형태로 서서 라이트를
T자 형으로 켜기로 되어 있었다. 나머지는 전자장비를 조작했다."
이때 비콘레이더 장비는 지상에서 '유레카'란 장비로, 또한 수송기
에는 이를 받아들이는 짝궁 장비 '레베카'가 실려 있었다.
얼마뒤
패스파인더 대원들은 첫번째 미군 수송기의 굉음을 들었다.
그 소송기 대열의 첫번째는 바로 505연대 2대대장인 (영화에서 존
웨인이 연기한) 밴더부트 중령이 타고 있었다. 밴더부트의 회상..
"공중에서 관찰을 하니, 지상에서 불이난 것이 보였다. 다른 수송기
가 추락한 것으로 연상되었다. 사실 그린라이트는 갑자기 들어왔다.
그때 나는 작전계획에서 숙지한 지형을 지상에서 찾으려고 내다보고
있었다."
선도 대열의 다른 수송기의 505 H중대장 배스 대위.
"난 구령을 해서 대원들을 일어서게 하고 고리를 걸고 문쪽으로 밀착
시켰다. 난 생각했다. '패스파인더의 불빛 패널이 어디 있는 거야?'
지상 패널은 녹색 불빛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멀리서 강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패스파인더의 불빛은 없었고, 내가 연구한 지상에서
강이 지나가면 안되었다. 잘못된 곳이었다."
(강을 건너기 전이 505드롭존이다. 맨 아래 지도가 있음)
"더 나아가자 어떤 마을이 보였고 그 마을에 불이 난 것이 보였다.
우리는 생 메리 에글리제 북쪽 위에 뛰어야 했다. 그리고 이어서
패스파인더의 T자 불빛 패널이 보였다. 정말 멋진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이미 독일군의 88밀리 대공포와 20밀리 캐논포
들이 불을 뿜고 있었다. 그리고 서치라이트들이 우리를 향해서
쏘고 있었다." (508연대 패스파인더를 본 것 같음/잇빨)
뛰어내린 505연대 2대대 선도기의 밴더부트 대대장은 엄청난
낙하산 산개충격을 받았다. 수송기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기
때문이다. 밴더부트 중령...
"엄청난 바람으로 내 군장백이 내 얼굴을 강타했고 나는 뭔가
내 눈 앞에서 번쩍했다. 고도는 3천 피트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지상에 45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로 떨어졌다. 결국 내
발목이 부러졌다.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난 공수부대용
비상의무낭에서 몰핀을 꺼내 다리에 찔렀다."
(당시 밴버부트 2대대장)
다음 장면은 '롱거스트 데이'에서 교회당에 매달렸던
505연대 F중대 박격포반 켄 러셀의 증언...
"공중에서 마을에 불이 난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마을의 교회당
에서 종을 계속 치고 있었다. 구식 펌프로 불을 끄려고 하고
있었다. 피하려고 했지만 결국 교회장 탑에 걸렸다. 그리고
그때 끔찍한 장면을 보았다. 옆에 떨어진 동료를 보았는데,
낙하산만 있고 사람의 형체가 없었다. 그는 독일군의 총을
맞았는데 그 총탄이 휴대하고 있던 개몬 수류탄을 맞추어
그대로 폭발해 몸이 날아간 것이다. 너무 끔찍했다."
"그리고 불이 난 곳으로 낙하산을 탄 대원이 그대로 떨어졌는
데, 그가 지른 비명은...."
"내가 떨어진 곳 바로 옆에 존 레이 병장이 떨어졌다. 그리고
동료 존 스틸도 내 바로 옆의 건물에 걸려 매달렸다. 난 아직도
그 빨간 머리의 독일군 병사를 기억한다. 그는 나와 스틸을 향해
총을 쏘았다. 레이 병장도 배에 총을 맞았고, 그는 쓰러져서 그의
45구경 콜트를 꺼냈다. 그는 나와 스틸을 향해 총을 쏘는 빨간머리
독일군 병사 바로 뒤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는 죽어가며서도 그
권총을 들어 병사의 머리통을 맞추어서 사살했다."
"난 죽음이 두려웠다. 동료 스틸은 죽은 것처럼 보였다. 다른 장면도
보았다. 브라이언트 중위가 거리의 통신용 전신주에 걸렸다. 그러자
그가 트렌치 나이프를 꺼내서 낙하산 결속을 자르고 있었다. 그러나
라이자 하나를 끊었을 때 그는 독일군 총격에 전사했다."
(당시 생- 메리 - 에글리제 마을 상공에 직격으로 떨어진 505연대 F중대를 그린 삽화...)
많은 병력들이 엄청난 낙하산 전개충격으로 장비를 유실했으며, 또한
낙하산의 셀에 구멍이 나는 것을 경험했다. 조종사들은 대공사격이
너무 무서워서 속도를 최고로 올려 버렸다. 점프 속력보다 엄청나게
빨라서 바람을 통한 충격이 엄청났다.
505연대 E중대원..
"장비는 날아가고 독일군 기관총이 밑에서 미친듯이 쏘고 있었다.
기관총좌는 바로 내 아래에 있었고, 나는 피하기 위하여 왼쪽
라이자를 힘껏 당겼다. 난 땅에 등으로 떨어졌고 무언가 내 눈을
때렸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이 왔다.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난
기어서 한 나무 밑으로 갔다. 독일군 서치라이트들이 우리 505
수송기들을 비추고 있었다."
505연대 E중대 소대장 제임스 코일 중위..
"내가 처음 만난 것은 2대대장 밴더부트 중령이었다. 그는
혼자 있었다. 그러나 의무킷이 열려 있고 그는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한 손에 조명권총을 쥐고 있었다. 장전되어 있었다.
그때 화물 낙하산이 하나 떨어졌는데, 지상에서 엄청난 굉음을
내며서 폭발했다. 낙하산은 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 폭발 폭풍
이 나에게 밀려왔다. 공중에서는 수송기에서 병력들이 계속 뛰어
내리고 있었다."
"한대의 수송기가 집중적으로 트레이서의 시냇물에 걸리고 있었다.
결국 수송기의 한쪽 프로펠러가 조각이 났다. 수송기가 어떻게든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수송기에 있던 D중대 일병
"정말 장관이었다. 마치 7월 4일 같았다. 상공에서 빅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트레이서들이 상공을 가득 채웠다. 멀리 보이는
마을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2대대의 강하가 끝나자가 505연대 3대대가 바로 뒤어어서
상공에 나타났다. 3대대의 한 소대장은 C-47 문 앞에 서 있었다.
"해안에서 아마도 3-4마일을 지났을 때, 앞의 구름이 걷히고 다른
수송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구름은 떠다니고 있었다. 그린
라이트가 들어왔을 때, 지상은 내가 연구한 곳과 다름이 없었다.
우리 16명은 뛰어내렸다."
"장비를 해체하고 나서 난 첫번째 클라켓 딸깍음을 들었다. 내가
다가가니 상대는 매우 심한 중상을 당한 상태였다. 당시 독일군은
벌판지대에 연합군 글라이더가 착륙하지 못하도록 기둥을 박고
전화선으로 연결해 놓았었는데, 그 대원은 내려오면서 그 박혀진
기둥에 충돌했다. 기둥은 3-4미터 높이였다. 그는 무릎에서 엉덩이
중간의 다리뼈가 함몰되어 있었다. 그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난 몰핀을 주사하고 그의 총을 회수해서 대검을 꼽고 그의 앞에
거꾸로 땅에 꼽고 철모를 얹어 주었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전투행위가
불가능한 사람이란 뜻으로 당시 통했다. 독일군이 그를 쏘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그 자리를 떴다."
505연대 3대대 75밀리 자주포 포반원...
"낙하산 해체가 되지 않아, 발목에서 트린치 나이프로 하체 결속끈을
끊을 당시 누가 다가왔다. 난 소리쳤다. '난 미국인이고 내 앞에 오면
죽여버리겠다...' 그러나 그는 카빈총을 든 젊은 101사단 대원이었다."
"우리는 5-6명이 모였다. 그런데 가까이 있는 독일군 기관총좌가 문제
였다. 그들은 계속 우리를 향해 쏘아댔다. 우리는 한 가옥의 뒤로 숨었
는데, 그 기관총으로 인해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그것을
잠재우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가옥 근처에서 후레쉬를 켜서 사격을
유도하고 다른 대원이 뒤로 가서 총좌를 없애기로 했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두 번의 폭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잠시후 그 101사단 대원이
오더니 '내가 잡았어!'라고 말했다. 두 발의 수류탄을 그가 던져 독일군
기관총좌를 완전히 침묵시켰다."
이어 505연대의 마지막 대대,
1대대가 노르망디 상공에 나타났다.
하빌 라젠비 병장은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는 M1을 소지했지만 점프를
하면서 따로 12발들이 샷건과 38구경권총을 소지했는데, 점프할 당시
그는 삿건을 손에 들고 점프했다. 그는 세번째 전투강하를 하고 있었고
아마도 과거 시실리나 이탈리아에서의 경험으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 들어가는 병력은 505에 이은, 새로 편입된 그리고 처음으로
전투강하를 하는 508공수연대였다. 505마지막 점프 뒤 10분 후였다.
이 508연대 선도부대에 가빈 장군과 참모들이 같이 낙하산을 매고
있었다. 가빈 장군의 회고...
"해안을 넘어서 7분 뒤에 점프를 예상하고 있었다.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오직 독일군의 기관총과 소총탄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서쪽에 큰 강이 하나 보였다. 강이 보여서는 안되었다. 나는 알아차렸다.
우리는 잘못된 상공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 일곱번째 점프였다. 난 결국 사과나무 과수원에 떨어졌고 장비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내 참모인 중위를 가장 먼저 만났다."
비극적인 케이스...
508 H중대 톰 포르셀라 일병의 회고
"기내에서 난 이상한 잡음을 들었다. 그때, 선임하사가 '독일놈들이
대공포를 쏘고 있어!'라고 말했다. 대공포와 기관총들이 사방에서
우리를 향해 쏘고 있었다. 난 몸이 오슬오슬 떨렸다. 그리고 일어나
고리를 걸었다. 장비 검사가 이어졌다. '16번 이상무!' '15번 이상무!'
.... 난 기도를 했고 하체가 부들부들 떨렸다. 난 공포를 이기기 위해
'몇시냐? 지금!'하고 소리쳤다. 그때 누군가 '2시 30분이야!'하고 소리
쳤다. 당시 병사들은 모두 앞사람더러 빨리 나가라고 밀어대고 있었다."
"선임하사가 소리쳤다. '준비됐나!' 우리는 모두 고함쳤다. '네! 빨리
나갑시다!!!' 난 수송기 밖으로 뛰어나가 고요 속으로 들어갔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칠흙같았다. 그런데 염병할 밑은 분명히 물이었다."
"난 먼저 메인벨트를 풀고, 예비낙하산을 풀고, 가슴끈을 풀었다. 그리고
한쪽 다리끈을 풀었다. 녹색과 적색 트레이서들이 사방에 날았다. 물이
얼마나 깊을까... 장비를 모두 해체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몸이 일자로
선 상태로 물속에 떨어졌다. 내 머리까지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물
바닥을 차고 올라와서 코로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장비는 나를
물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다리 끈이 안 풀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 하느님, 살아나게 해 주십시오.' 난 물속으로 끌려들어가 다리끈을
풀려고 노력했다. 아무 것도 안 보였다. 그런데 풀리지 않았다. 다시 발로
차고 수면으로 올라가 숨을 쉬고 다시 끌려내려갔다. 그때 난 생각했다.
내 발목에 트렌치 나이프가 있다! 난 기도했다. 내 나이프가 그 자리에
붙어 있기를..."
"숨을 참으면서 손을 더듬자 나이프가 군화 발목에 붙어 있었다. 난 정말
광난의 상태였다. 이미 발로 차서 숨을 쉬고 끌려내려오기를 4회 정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프로 다리끈을 아무리 잘라도 잘려지지
않았다. 난 오 마리아! 오 마리아!를 계속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때
난 문득 생각했다. 혹시 나이프의 날이 없는 쪽으로 자른 것이 아닐까?
손으로 더듬으니 반대였다. 다시 차고 올라 숨을 쉬고 끌려내려가면서
이제는 반대날로 다리끈을 썰었다."
"문제는 군장이었다. 그 중에도, 군장 속에 있던 대전차지뢰가 나를 물
속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난 먼저 군장을 잘라버렸다. 방독면도 버
리고, 철모도 벗어버렸다. 그리고 다리끈을 다시 썰었다... 잘려져 나
갔다.... 난 완전히 체력이 고갈되었다. 물가에 기절하듯이 뻗어버렸다."
(미군공수부대원들이 발목에 나이프를 차는 이유가 명백해졌죠?)
다른 경우,
508연대 H중대 중위
"난 진흙땅에 접지했다. 그런데 낙하산이 바람을 받아서 기동하기 시작
했고, 난 100미터도 넘게 질질 끌려갔다. 문제는 그 진흙땅의 표면은 물
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엎어진 상태로 끌려갔고 얼굴은 물속에 있었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끌려가다가 바람이 잦아질 무렵 나는 몸을
뒤집어서 미친듯이 숨을 내뿜었다. 결국 트렌치 나이프로 나이자를 잘라
그것에서 벗어났다. 난 완전히 고갈되었다..난 그대로 뻗어 있었다...."
대공포에 직격당한 경우...
H중대 댄 퍼롱 병장의 회고
"우리 수송기가 대공포탄에 세번 맞았다. 우리는 기내에 18명이 타고 있었다.
이 88밀리 대공포탄 세 개로 기내의 대원 3명이 죽고 4명이 부상당해 쓰러
졌다. 첫번째는 수송기 주날개 끝에 맞았고, 두번째는 기내문 옆에서 터져
옆이 뻥 뚫려 버렸다. 그런데 세번째가 가장 컸다. 세번째 탄은 수송기 바닥
에서 뚫고 들어와 천장에 구멍을 내면서 기내에서 폭발했다. 지연신관이었다.
수송기가 끊기지는 않았지만 세번째 탄은 수송기 반을 자른 것과 같았다."
"우리는 정신이 없었고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몰랐다. 세번째 탄은 수송기
중간에 사람이 빠질만한 구멍을 내고 있어 피하지 않으면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난 1번으로 서 있는 중위에게 빨리 나가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그러나 중위는 그린라이트가 안들어왔다고 고함쳤고, 문 옆에 터진 대공
포탄으로 충격을 먹은 상태였다. 내가 선 상태에서 문 옆 오른쪽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난 대열의 뒤에 있었다. 난 계속 고함을 쳤고 결국 앞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상을 당한 상태의 동료 세 명이 밖으로 뛰어
내렸다."
"그런데 네번째 강하자가 부상 당해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 중간을 막고 있었다.
그를 피해 가려다가 내 한쪽 다리가 바닥에 뚫린 구멍에 빠졌다. 난 필사적
으로 허우적거리면서 기어나왔고, 내 인생에서 정말 그렇게 무서운 적이
없었다. 수송기는 추락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조종사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비행기는 나무 높이로 날고 있었고, 독일군 대공포좌 바로 위를 날고 있었다.
난 쓰러진 동료들을 헤치고 사력을 다해 앞으로 나가서 기체문에 도달해서
그대로 뛰어나갔다. 상공에서 60미터가 되었을까 그렇다. 내 낙하산이 펴지고
바로 내 다리가 나무를 때렸다. 그리고 나무 속으로 들어갔다. 예비낙하산이
내 귀 부근에 와 있었다. 난 내 손과 발이 부러졌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무를
통과하면서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땅이 아니라 물이었다...."
"그때 독일군들이 내 낙하산을 보고 내쪽으로 뛰어왔다. 난 물가에서 허우적
거리면서 관목줄기로 숨었다. 난 낙하산을 해체해서 벗어났다. 난 물가의 끝
에서 숨을 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때 가까운 거리에서 이상한 불빛이
보였다. 그것은 계속 가까워져오고 있었고, 다름 아닌 불타고 있는 수송기
였다. 그리고 땅에 쳐박히기 전에 나는 조종석 안에서 총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병력들이 모두 타고 있던 수송기였다. 그런데 제리 새끼들이 그
추락해서 불타는 수송기에 기관총을 퍼부었다...."
인터넷에 등장하는 2차대전 점프 사진의 대부분이 101사단의 것이다.
당시 언론에 항상 조명을 받은 것도 101이다. 82는 101에 비하여
베테랑이면서 살짝 개털 대우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역시 부대
마크는 멋있게 만들어야 한다.
508연대의 다음 대대가
잠시후 날아와서 점프를 시작했다.
한 508연대원.
"우리는 낙하산이 아니라 사다리가 필요한 상태였다. 수송기 고도가
너무도 낮았다. 60-90미터 정도의 고도였다. 상공에는 핑크색, 오렌지
색, 붉은색 예광탄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일부는 내 낙하산 천을 뚫고
지나갔다. 그때 상공에서 불타는 마을을 보았다. 그게 생 메리 애글리제
인지는 당시 몰랐다..."
"저 멀리 하늘가가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것은 불덩어리였다.
우리 수송기가 분명했다. 난 혼자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이 프랑스인 것만은 확실했다..."
508연대 패스파인더 프랭크 블럼바우
"관목줄기를 따라가다가 인기척이 느껴져서 숨었다. 그런데 길을
따라 독일군 장교 두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내 마음은 매력적인
루거 권총 두 자루가 마음에 들어왔다. 우리는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 자기 방어가 아니면 먼저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가까이 통과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들에게 백린
수류탄을 까 던졌다. 그것이 터지고 나서 얼마후, 나는 내 전리품인
루거를 회수하러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백린에 몸이 타고 녹아
사람의 형체가 아닐 정도가 되어 죽어 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들
의 루거는 노획할 수 없었다. 권총 속 안의 탄창에 실탄이 터지면서
부숴져 있었다."
508에 이어,
역시 같은 첫번째 전투강하인 507연대가 날아들었다.
첫번째 제대는 1대대와 연대본부 일부였다.
B중대 크리스 캔사스 일병...
"난 수송기의 날개가 보이는 중간에 서 있었다. 나는 적의 예광탄들이
날개를 관통하는 것을 보았다. 내 모든 생각은 빨리 그린 라이트가 뜨
기를 바라는 바로 그것이었다. 비행기는 계속 밑으로 내려갔고 나무들이
보였다. 결국 나는 비행기 문을 이탈했다... 그때의 낙하산 산개 충격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했다. 조종사는 수송기 최고속도에서 그린라이트를
넣었다. 그때 공중에서 화물낙하산 하나가 폭발했다. 독일군 기관총이
그것을 맞췄고 번들 안의 폭약에 맞은 것 같았다. 독일군 기관총을 바로
내 발 밑에 있었다. 그러나 수송기를 쏘느라 나를 보지 못했다."
"난 낙하산을 트렌치 나이프로 끊고 도랑으로 숨었다. 그리고 도착해서
나머지 잔여 낙하산 연결부위를 완전히 풀었다. 난 나침반으로 지도정치
를 했다. 어렴풋이 15킬로미터 정도 목표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나
정확한 것을 알지 못했다."
"그 총알이 수송기 본체를 관통하는 소리는, 마치,
알루미늄 음료수 캔에 돌맹이를 넣고 흔드는 소리와 같았다..."
미군 군장 매니어들이 재현한 당시 C-47에서 병력과 같이 투하되던 화물낙하산 번들.
507연대 2대대의 선도기에는 507연대 부연대장인 아서 말로니 대령이
같이 타고 있었다. 그는 5번 강하자였다. 그때 독일군의 예광탄이 열린
수송기 문을 통해서 안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말로니 대령 앞에서 무언가
펑 하고 터지는 순간 "GO!"라는 구령이 나왔다. 말로니 대령 바로 뒤에
있던 병사의 기고...
"내가 1만 2만 세기 시작하여, 3만을 셀 때, 물속으로 풍덩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머리까지 물속에 잠겨버렸다. 난 발버둥치며 수면으로 올라갔다.
난 내 구명의(Mae West)의 당김줄을 당겼다. 그러자 개스가 들어가면서
부풀어졌다. 물가에 섬처럼 내가 떠다녔다. 근처에 독일군 기관총이 있
었으나 수송기를 쏘느라고 바빠서 나를 보지 못했다. 난 트렌치 나이프
로 낙하산을 끊고 물가로 나왔다. 대신 중요한 지도가방을 잃어버렸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 안에 보안에 중대한 것은 없었다고 강조하고 싶다..."
(아휴, 군인이란 정말... 수십년이 지났어도... / 잇빨중사)
(미군은 one thousand! two thousand... 이렇게 셉니다/잇빨중사)
이어서 앞의 병사의 기고 계속
"낙하산 산개 충격이 얼마나 컸는가 점프슈트 주머니에 있던
K-레이션이 주머니 밑을 뚫고 달아나 버렸다..."
82공수사단의 마지막 낙하산 점프제대는 507연대 3대대였다.
507공수연대의 대부분은 매우 심하게 흩어져서 점프했다.
어떤 제대는 101사단 정식 드롭존에 떨어지기도 했다.
507연대 한 3대대원...
"지상에 떨어졌을 때, 한 수송기가 부르릉...하다가 엔진음이 정지
했다가 다시 부르릉을 반복하면서 언덕 넘어로 사라졌다. 물론
수송기는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정말 신의 가호를 빌 뿐이었다..."
아래는 82공수사단 노르망디 점프 상태. 동그란 DZ -T-O-N이
82공수사단의 정해진 드롭존이고 점과 세모로 표시된 것이
실제 떨어진 위치다. 오른쪽 밑에 세 연대별 모양를 보시길...
DZ -O 밑에 82공수사단의 주 목표인 '생 메리 에글리제'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캐런탱 바로 옆에 떨어진 507연대 수송기도 한대 있다.
하도 많은 제대들이 흩어져서 점프를 하자, 근처의 독일군 사단 본부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이러한 미군 점프병력에 대한 보고를 모두
종합판단을 한 결과, 훨씬 더 많은 미군 공수사단이 점프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1944년 6월 6일 아침,
영국의 브리티쉬 더블 썸머 타임즈는
연합군의 프랑스 침공을 호외로 발간했다.
1950년대 미육군 공수부대원의 강하훈련 전 모습. 발목에 트렌치 나이프의 전통은 여전히...
잘 아시겠지만, 이 시절의 구형 대검은 총검 찌르기용으로 날이 그렇게 날카롭지 않았습니다.
|
|
첫댓글 위에 글에서는 낙하산으로 투입된 병사들의 상황만 언급되었지만 엄청난 숫자의 병사들은 수백대의 글라이더에 나뉘어 타고 낙하산 부대들과 같은 시간에 투입됩니다. 문제는 착륙 시에 글라이더들끼리 부딪혀서 그 안에 병사들이 사망하고 이미 착륙 지점을 예측한 매복한 독일군들의 집중 사격으로 글라이더에서 나와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게다가 글라이더에 짚차까지 실어서 날려보낸 탓에 착륙시 글라이더 밖으로 튕겨져 나온 짚차와 온갖 물자들은 그 안에 타고 있던 병사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하곤 했습니다.
영국 공수부대와 미군 공수부대의 피해를 비교했을때 미군이 피해가 훨씬 큰 이유가 낙하산 결속 벨트의 구조의 문제더군요. 영국 공수는 결속장치를 툭 치면 모드 풀리는 방식인데 미군은 마치 비행기 파일럿의 결속벨트와 마찬가지의 구조로 풀려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기때문에 숙련된 82공수는 트렌치 나이프로 잘라 버리는게 더 빠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 마을에 강하했던게 82공수였네요. 아주 오레전 메달오브 아너로 간접 체험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존자들의 경험담이 섬짓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메달 오브 아너말인가요?? 저도...... ^ ^ 낙하산 버클의 문제점은 저도 전쟁 다큐멘터리 기록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렇게 무거운 장비들을 온 몸에 치렁 치렁 묶은 셈인데 강물에 풍덩 빠진 경우 영국쪽 장비라고 하더라도 다시 수면으로 떠오르는 것이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오오.. 생생한 리뷰감사히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