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슬로는 국토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노르웨이의 수도로 남부 해안에 위치해 있다. 1048년에 바이킹 왕 하랄 드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3세기에 한자동맹의 항구로 번영했다. 오슬로의 크기는 남북 약 40㎞, 동서 약 20㎞로 매우 크지만 실제 방문객들이 둘러보는 박물관과 미술관, 공원, 쇼핑시설 등은 오슬로 중앙역을 기점으로 트램이나 도보를 이용해 다닐 수 있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단미 [인테리어] 2015-02-10>
오슬로
단아한 품격의 디자인을 그리는 도시
최성호 한양사이버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빅맥지수 세계 1위는 어느 나라일까. 유럽 최초로 여성의 군복무가 의무화되고 남녀가 1년간 동일 복무를 해야 하는 국가는 어디일까. 유모차의 세계적 명품으로 손꼽히는 스토케는 어느 나라 제품일까. 1인당 GDP 기준으로 룩셈부르크, 카타르에 이어 세계 3위의 부국인 노르웨이의 이야기이다. 여러 음식을 늘어놓고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원하는 만큼 접시에 담아 먹는 뷔페 문화도 알고 보면 노르웨이의 선조, 바이킹들로부터 시작된 음식문화였다. 인구가 불과 5백만 명에 불과하지만, 세계 5대 원유수출국인 노르웨이는 풍부한 자원과 안정된 경제정책 및 복지시스템으로 유명하다. 매년 12월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시청사에서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거행된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회화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의 배경이된 도시도 바로 오슬로이다. 유럽 전기자동차의 수도로도 불리는 친환경 도시, 차분하면서도 격조 있고 기품 있는 삶의 느낌을 찾아 오슬로로 떠나 보자.
얼마 전, 2015년 2월부터 사용될 노르웨이의 새로운 여권 디자인이 세계적 화제였다. 국가이미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세련되고 품격 있는 훌륭한 디자인에 세계 주요 언론이 극찬을 쏟아낸 것이다. 이 작품은 오슬로의 디자인스튜디오 노이에(Neue)에서 디자인한 것으로, 국민들 정서에 깊게 깔린 자연과의 동화와 자신들의 역사적 정체성을 잘 표현했다고 평가되었다. 잘 알려진 피오르(fjord)를 누구나 첫 눈에 알 수 있도록 표현한 우수한 파스텔 톤의 묘사, 그리고 특히 자외선을 쬐면 오로라가 보이도록 디자인된 페이지 등을 통해 필요와 적용 기술을 어떻게 디자인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북유럽에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디자이너가 있다. 덴마크는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을, 스웨덴은 브루노 매트손(Bruno Mathsson)을, 핀란드는 알바 알토(Alvar Aalto)를 거론한다. 그러나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를 단번에 꼽기는 쉽지 않다. 디자인 역사를 살펴보면, 1930년 스톡홀름엑스포 이후 기존 서구세계의 기능적이고 차가운 모더니즘과 다른 일련의 흐름, 즉 기능적이면서도 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공예적 성격이 강한 디자인 양상이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이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으로 분류되었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스웨덴 디자인만을 부각하였고, 전후에는 덴마크 디자인, 1950년대 이후에는 핀란드 디자인, 그리고 1960년대에 이르러 노르웨이 디자인 부흥으로 이어졌다. 현재의 노르웨이 디자인위원회(Norwegian Design Council)도 1963년 창립되었는데, 뒤늦게 알려진 1950~60년대 노르웨이 디자인은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주요한 축이었지만 대중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취약했다.
유기적 모더니즘으로 대표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결과는 북유럽의 개별적 국가를 떠나 북유럽 전체의 이미지를 형성했고, 이케아(IKEA)는 그러한 이미지를 대중적 브랜드와 잘 결합시킨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이케아는 스웨덴의 국기 색채를 로고와 건축외피, 인테리어에 통합 적용해 국가이미지를 제품 이미지와 의도적으로 잘 연계시킨 결과를 보여주었다.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비해 국가이미지는 덜 확립되어 있지만 긍정적 이미지를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와 노력 덕분에, 노르웨이 디자인은 최근 자국의 디자인 산업을 미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정책과 맞물리면서 집중적 지원을 받고 있다. 2000년 대 중반 이후 국제적 디자인상을 대거 수상하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디자인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노르웨이 디자인은 제2의 부흥기를 준비 중이며, 그 중심에는 오슬로의 여러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있다. 1960년대 이후 주목받지 못했던 노르웨이 디자인은 1993년 디자인 관련 이슈에 대한 이해와 의식 촉진을 목적으로 노르스크 폼(Norsk Form)이라는 공공재단이 설립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이 재단은 노르웨이 디자인, 건축 및 건축환경 센터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위한 각종 디자인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고 대중의 관심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덕분에 올림픽 이후 노르웨이 산업의 대다수를 구축하고 있는 석유산업과 같은 디자인 비활용 분야에서의 디자인 필요성을 이해시키고 디자인을 도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짧은 시간에 노르웨이 디자인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르웨이 장식미술과 디자인 박물관(Kunstindustrimuseet, Norwegian Museum of DecorativeArts and Design)을 둘러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오슬로를 방문하는 거의 모든 여행자는 뭉크의 ‘절규’를 비롯해 20세기 초 인상파와 입체파 등의 회화작품이 풍부하게 소장되어 있는 국립미술관을 필수코스로 삼고 있는데, 이와 불과 500m 거리에 떨어져 있어 동시에 감상하기에 좋다. 이곳에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노르웨이 공예품과 디자인 제품이 시대 순으로 정렬되어 있고,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소개 코너 및 20세기의 패션 변천사와 가전제품 변천사 등도 소개되어 있어 흥미롭게 디자인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노르웨이의 유리공예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고, 이 박물관의컬렉션도 매우 눈길을 끈다. 또 덴마크와 스웨덴 등의 디자인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거장들의 작품을 거의 모두 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어서 국가별로 디자인박물관을 순회해 보지 못했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북유럽의 디자인박물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은 유독 의자와 조명기구, 수납가구가 많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실 백야와 흑야가 번갈아오는 기후조건이 이렇게 특정한 생활 제품의 발전을 가져 온 것인데, 간접조명도 부족한 광량을 인공조명에 의존해 보완해야 할 뿐 아니라 긴 조명시간에 따른 눈의 피로를 방지하기 위한 필요로부터 발달된 것이다. 또 의자의 발달도 척박한 환경 때문에 실내생활 시간이 길어지면서 장시간 앉아야 하는 생활양식에 기인한다. 북유럽의 주택은 대개 단열과 보온을 중시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크기의 공간이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이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수납공간의 효율성도 극대화되어야 했고, 이러한 필요가 수납의 다양성을 가능케 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생활상과 그것이 실내디자인에 미친 영향을 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 오슬로에 있다. 바로 노르웨이 민속 박물관(Norsk Folkemuseum)인데, 노르웨이 전역에서 170여채의 집과 상점, 교회, 병원 등 각종 건물을 옮겨서 시대적 변화와 생활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바이킹 시대의 흔적으로 보이는 용머리 지붕 장식으로 유명한 1200년대 목조 교회 스타브키르케(Stavkirke)와 같은 독특한 건물이 유명하지만,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끄는 곳은 오히려 입구를 기준으로 좌측에 형성되어 있는 올드타운과 오슬로의 아파트 재현 공간일 것이다. 여타의 북유럽 디자인박물관에서 보기 힘든 시대별 실제 건물, 특히 도심지 아파트 공간과 각 공간규모별 가구 배치, 그리고 실내 수납공간의 활용, 그에 따른 시대별 생활소품의 변천을 디스플레이 된 상태에서 보는 경험은 무척 인상적이다.
좁은 면적의 원룸에 적응하기 위해 개발된 가구와 각종 소품류는 오늘날 기능적 수납시스템 디자인의 훌륭한 소스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어떤 방에서는 1960년대 노르웨이 디자인이 주목받던 시기, 세계를 휩쓴 비틀즈의 음반과 함께 노르웨이에서 유행했었던 팝디자인을 유추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이곳은 또한 서민층과 중산층, 부유층의 경제력에 따른 평면구성의 차이와 생활소품의 차이 등도 비교해서 볼 수 있어 단순한 민속촌의 개념을 뛰어넘어 디자인박물관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이해하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오슬로를 방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를 둘러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오페라하우스는 시드니가 가장 기념비적이겠지만 최근에는 오슬로의 오페라하우스 역시 가장 주목받는 오페라하우스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힌다. 알려진 것처럼 수년 내에 부산 북항 재개발지구에는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듯한 ‘부산 오페라하우스’가 들어서게 되는데, 당선작이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를 설계했던 노르웨이의 대표적 건축회사 스뇌헤타(Snøhetta)의 디자인이기 때문에 일견 그런 느낌이 든다.
이 시설은 2020년 완성될 대규모 항만 재개발계획인 노르웨이 최대 규모의 현대적인 문화복합시설 ‘피오르 시티’의 대표적 프로젝트로 추진되어 오슬로 중앙역 앞 수변에 1999년 건립이 결정되었고, 2008년 개관했다. 총면적 38,500㎡ 규모로 1,364석의 대극장과 200석, 400석의 소공연장 2개를 갖고 있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해안가에 빙하가 떠 있는 느낌을 추구했고, 이를 위해 흰색 화강암과 대리석이 마감재로 채택되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옥상부까지 계단 없이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유니버설디자인 관점으로 조성한 건물 외부의 비스듬한 슬로프와, 사방으로의 조망이 가능한 훌륭한 옥상정원의 기능을 가진 옥상부 전체이다. 기후가 좋지 않은 오슬로에서 비교적 날씨가 좋은 여름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누구나 일광욕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계획했다는 사실은, 시설의 본래 기능을 떠나 복합문화공간의 기능을 확장하는 훌륭한 개념이다. 또 실내 역시 로비부에 높이가 15m나 되는 대형 유리창과 카페, 레스토랑 등의 편의시설을 통해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오슬로항과 바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건물의 진입부는 작고 단순해 진입과 동시에 대조적으로 더욱 큰 공간감과 웅장함을 느끼게 된다. 또 전체적으로 적층 목재로 표현된 유기적 곡선의 벽면과 조명처리가 된 기하학적 프랙탈 패턴의 작은 벽면들이 단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다. 오슬로로 가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크루즈를 이용하게 되는데, 이 오페라하우스의 존재는 확실히 오슬로의 경관과 어우러지고 밝게 빛나는 빙석 같은 느낌을 주면서 랜드마크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오슬로의 주요 문화시설은 ‘피오르 시티’ 프로젝트에 의해 수변공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쪽 해변이 아닌 시청사 앞 광장 쪽 페리선착장이 늘어선 해변으로부터 좌측으로 길게 연결된 아케르 브뤼게(Aker Brygge) 상업시설 지역과 여기에서 확장된 새로운 최신 복합문화시설지구인 튜브홀멘(Tjuvholmen)은 오슬로의 디자인 현재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핫 플레이스이다.
노벨평화상센터가 있어 유명한 아케르 브뤼게는 오슬로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지역 중 하나로, 항만지역을 개발하여 만든 영화관과 고급 레스토랑, 쇼핑센터의 밀집지역이다. 이 지역은 1982년까지 조선과 엔지니어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오래된 공장 건물의 철거를 통해 1998년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고급주택과 문화시설, 인테리어샵 등도 상당수이며, 주말이면 이 지역에 크고 작은 시장도 형성되기 때문에 오슬로 사람들의 생활 중심지이기도 하다. 튜브홀멘은 아케르 브뤼게와 작은 다리들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 두 지역은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된다.
새로운 도시재개발 측면에서 튜브홀멘 지역은 문자 그대로 ‘도둑의 섬’이라는 이름처럼 18세기 초의 허름하고 낡은 항만지역을 재개발하는 대규모 사업의 대상지이다. 오슬로 시정부는 튜브홀멘 프로젝트에 노르웨이의 크리스틴 야르문트(Kristin Jarmund), 덴마크의 슈미트 함메르라센(Schmidt Hammer Lassen), 핀란드의 굴리흐센 보르말라(Gullichsen Vormala) 등 북유럽의 뛰어난 인재들을 결집시키고 이탈리아 건축가인 렌조 피아노(Renzo Piano)까지 깊숙이 참여시키는 형태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튜브홀멘의 건축은 최신 디자인과 소재, 생태적 에너지절감 설계기법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거리에는 많은 예술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고, 공공디자인 측면에서도 놀랍도록 훌륭한 가로시설물 및 보행교량 디자인과 우수한 마감디테일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유료전망대 튜브티텐(Tujvtitten, The Sneak Peak)은 튜브홀멘 지역을 재미있게 관찰해 보는 하나의 시설이다. 튜브티텐은 아스트룹 피언리 현대미술관(Astrup Fearnley Museum of Art) 바로 옆 알베르트 노르덴겐스 플라스(Albert Nordengens Plass)에 위치하고 있는데, 5월부터 9월까지 주말 낮에만 운행되는 90m 높이의 유리엘리베이터를 타고 오슬로의 피오르와 바다, 시내를 모두 바라볼 수 있어 튜브홀멘 재개발지역을 한 눈에 조망하기에 좋다. 튜브홀멘의 대표적 문화시설인 아스트룹 피언리 현대미술관은 노르웨이 현대미술의 거점으로 1993년 처음 문을 열었고, 2012년 9월 튜브홀멘의 새 건물에 들어서게 되었다. 제프 쿤스(JeffKoons), 신디 셔먼(Cindy Sherman), 리차드 프린스(RichardPrince), 에론 영(Aaron Young) 등 유명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 렌조 피아노의 작품이라는 점도 이곳을 방문하고 싶게 하는 이유가될 것이다.
눈과 바람에 대응하면서 백야와 흑야의 조건을 수용하고 빛을 깊숙이 활용하는 설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는 것도 의미 있는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또 그가 함께 조성한 조각공원 역시 건축과 외부공간이 같은 개념 아래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오슬로를 찾아간 이들은 한결같이 풍요로운 편안함을 이야기한다. 초고층빌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압도적인 도시스케일의 엄청난 쇼핑몰 하나 없지만, 도시의 모든 곳에는 ‘느림의 미학’과 ‘단아한 품격’이 흐르고 있다. 오슬로는 옛것과 최신을 결합하되 기후에 적응하는 자신들만의 방식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현하는 북유럽 모던디자인의 소프트파워가 돋보이는 도시이다.
최성호
한양사이버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한양사이버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디자인기획 교수, 인테리어디자인과 전시디자인, 자동차디자인, 도시디자인에 이르는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한양사이버대학교에서 디자이너들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공간디자인 콘셉트와 기획을 중점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세종특별시와 혁신도시의 공공디자인 총괄, 하남미사주택지구의 총괄MP 등을 맡았고, 상업 공간 기획과 지하철역사 리모델링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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