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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4장
하늘의 대제사장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자
(찬송 405장)
2023-10-27, 금
맥락과 의미
4장은 3장의 “하나님의 안식의 약속과 성도의 믿음과 순종”에 대해 말합니다. 3장과 4장은 불순종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리를 경고/위로합니다.
불순종하면 하늘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이 경고는 믿음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재산을 빼앗기고 친구를 잃는 많은 고난을 당한 성도들에게 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히 10:32-34).
1. 우리에게 약속된 참 안식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자(1-13절)
2. 대제사장 그리스도 의지해 하늘의 은혜보좌(속죄소)로 나감(14-16절)
1. 우리에게 약속된 참 안식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자(1-13절)
1) 안식을 주신다는 약속은 있지만 들어가지 못할까 두려워하라(1-2절)
1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구약 백성의 출애굽 1세대에게 이루어진 일이 교훈이 됩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의 안식(수 1:13,15)에 들어갈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광야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약속된 안식의 복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2절: “그들”, 곧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들은 말씀과 믿음으로 “결부시키지” 않았습니다. “결부시키다”는 말은 술을 칵테일 하듯이 “섞는다”는 말에서 왔습니다(계 14:10, 18:6, 6).
하나님이 복음의 복된 약속을 선포해주실 때, 사람은 믿음을 그 말씀에 섞어야 합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들은 말씀이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언약의 복으로 관계를 맺으러 오시는 하나님께 우리도 믿음으로 나아갈 때 언약 관계가 성립되고 계속 유지됩니다. 교인들 중에 결국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있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자동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참 믿음이 없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2) 안식의 약속과 경고(3-5절)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1세대에게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3절, 시편 95:11) 하고 경고했습니다. 그 경고한 것을 나중에 시편 95편에서 다시 백성에게 반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들어갈 새 하늘과 새 땅의 안식은 이미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①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하나님 자신의 안식에 들어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②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근거해 있습니다(창세기 15:12-21, 17:1-8, 22:15-18).
③ 다윗과 언약을 맺고 안식의 약속은 더 강화되었습니다(사무엘하 7:5-16).
④ 이 약속은 메시아(그리스도)의 통치에서 마침내 이루어집니다(이사야 11:1-9, 65:17, 계시록 21:4).
하나님께서 이미 “제칠일에 그분의 모든 일을 쉬셨습니다”(4절). 이것은 창세기 2:2의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을 마친 후 하나님은 “내(하나님) 안식”을 누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에게는 6일동안 일하고 제7일에는 안식하라는 복된 명령을 주셨습니다. 성도에게 안식의 샘물을 공급합니다. 안식의 모범을 보이시면서 성도에게도 안식을 주십니다. 이 땅에서 안식을 누리면서 성도는 영원한 안식을 소망합니다.
3) 안식에 들어오도록 구약 백성을 초대(6-13절)
6-8절: 하나님은 구약 백성에게 시편 95편을 통해 안식에 들어오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이 초대는 신약 성도에게도 해당됩니다. 출애굽 1세대는 안식의 복음을 듣고도 불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을 경고로 삼습니다. 이제, “오늘날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여호수아(헬라어로는 예수)가 가나안을 정복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그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이스라엘 땅이 약속된 안식의 땅이라면 다윗이 “오늘날”이라고 하면서 안식을 기다려야 할 것을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약의 예수(여호수아)가 준 가나안 땅의 안식보다 더 좋은 하늘의 안식을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실 것을 기다립니다.
9-10절: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구약 백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 구약백성에게 하늘의 “하나님의 안식”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신약 성도들도 앞으로 들어갈 안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9절에서, 이미 그 안식에 들어간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이 세상을 떠난 성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안식을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가지신 안식이요,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하신 약속입니다.
11-13절: “그러므로” 앞에서 가르친 것을 통해 구체적으로 권면하고 격려합니다. “우리가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자.” 구약 백성이 순종하지 않았던 나쁜 “모범”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력이 있습니다.” “안에서-일하고” 있습니다. 엡 1:18에 “그 힘의 능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에 쓰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성도 안에서 일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쪽에 날이 있는 칼처럼 아주 예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고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을 마지막 날에 결산하십니다(마 18:23,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
이렇게 우리를 속속들이 알고 심판하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우리를 발가벗기십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 설 때마다 부끄럽습니다.
2. 대제사장 그리스도 의지해 하늘의 은혜보좌(속죄소)로 나감(14-16절)
14절: “그러므로” 죄인인 우리의 모습이 발가벗겨지므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부끄러움과 고통을 어찌해야 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큰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대제사장이 아니라 “큰 대제사장”입니다. 그분은 하늘을 “통과하여 들어가신 분”입니다. 이미 들어가셨고 그 들어가신 효과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큰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믿는 도리”,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을 굳게 잡읍시다. 그리스도를 잡는 길은 그리스도를 계시하신 말씀을 굳게 잡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의 부끄러움을 덮어주고 용서하셨습니다.
15절: 이 대제사장은 우리의 약함을 동정하십니다. “함께-고난을 받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에 굴복하지 않고 죄를 이겨서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시고(2:14),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2:18).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시험과 고난에 동참하여 힘을 주십니다.
16절: “그러므로,” 이런 대제사장에 대한 복음을 듣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으므로, 그분의 은혜를 누립시다. 때마다 적절하게 우리를 도우시는 대제사장의 은혜를 누립시다. 죄용서의 은혜뿐 아니라 고난받는 은혜도 있습니다(빌 1:29). 고난과 시험을 이기는 그 은혜를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갑시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갑시다. 구약 성전의 지성소 안 언약궤 뚜껑 속죄소를 하나님의 보좌라고 불렀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 휘장 사이로 들어가 이 보좌 위에 속죄의 피를 뿌렸습니다.
이 땅의 은혜의 보좌는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이며 “그림자”(9:23,24) 입니다. 큰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진짜 성전인 하늘 성전 사이로 들어가셨습니다(4:14). 하늘의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십니다”(9:24).
하늘에 있는 진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서 당신의 몸으로 드린 제사의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계속 중보자로서 기도하시고 있습니다. 계속 성도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그리스도께서는 초대하십니다. “너희들도 이 하늘의 성전 안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너라”(16절). 2천년 전 이 땅의 산 위로 제자들이 “나아와”(마 5:1)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이 히브리서의 말씀을 듣고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 찬양하며 나오라고 초청하십니다. 이 땅에서 구약의 성전 안에서 말씀하신 삼위 하나님, 산 위에서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하늘에서 이 히브리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아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 당신의 몸을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린 대제사장께 “당신 예수님은 나의 주님 여호와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하며 다시 죄용서를 받읍시다. 수많은 죄의 유혹, 바깥에서 오는 이 환난과 고난을 이길 은혜를 받읍시다. 바르게 신앙 고백하면서 하늘로부터 받읍시다.
믿고 복종할 일
말씀 앞에서 죄인인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서 부끄러워하는 성도는 참으로 복됩니다. 부끄러운 가운데 죄용서를 구하는 성도를 아버지 하나님은 기쁘게 용서하십니다. 마지막 날 심판을 피하게 하십니다.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오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 말씀의 법률 조항으로 자신을 비추어봅시다. 하나님의 양심 법정에서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를 믿음으로 회개하도록 힘씁시다. 그리고 말씀의 조항을 우리 삶의 지침으로 삼아 성령님을 의지하여 순종합시다.
우리 일생은 하늘의 영광의 보좌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말씀을 의지하여 죄를 용서받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 이 순간도 하늘 나라에 계신 대제사장을 통해 하늘의 영광으로 나갑니다.
그 안식의 나라를 향해 그리스도 앞으로 나가고 있는 성도는 지금 이미 그 안식을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말씀 앞에서 자기 죄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우리 성도들은 이 영광으로 덮여집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2절,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음
”결부시키다”(순-케란니미)라는 말은 술을 칵테일 하듯이 섞는다(케란니미)는 말에서 왔습니다(계 14:10, 18:6, 6).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은혜와 믿음이 섞입니다. 물론 그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은혜와 믿음이 함께 하는 것이 언약의 관계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화합한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서 “고르게”(순-케란니미, 고전 12:24) 됩니다. 세상적으로나 영적으로 약한 자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어서 각 성도가 교회 안에서 평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에 믿음으로 섞인 성도는 다른 성도들에게 좋은 것들을 공급하여 그들과 또 섞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는 성도는 참 공동체를 이루어갑니다.
<참고> 10절,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음
그리스도를 믿고 이 세상을 떠난 성도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안식을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카타-파우오). 계시록 14:13, “하늘에서 음성이 … 이제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아나-파우오)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참고> 12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활력이 있다”(엔-에르게오)에서 “있다”는 “안에서-일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역사”(일한다는 뜻의 “역”)라고 표현합니다.
엡 1:98, “그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
엡 3:30,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능력,”
엡 4:16, 사도와 목사가 전하는 말씀을 들은 성도들 가운데서 “각 지체의 분량 대로 역사”하여 교회가 세워지는 능력.
<참고> 14절, 큰 대제사장, 승천
여기서 “승천”은 보통 쓰는 단어(‘아나-람바노’의 수동태, 사도행전 1:2)가 아닙니다. ‘하늘을 통과하여 들어왔다’(디아-에이스-에르코마이)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들어가셨고 그 들어가신 효과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큰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참고> 14절, 믿는 도리(신앙고백: 호모-로기아)
이 말은 3:1과 4:14에 반복됩니다. 3-4장의 처음과 끝에 같은 말을 쓰면서 한 주제로 만듭니다(수미쌍관법).
<참고> 15절,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 약함을 “동정하십니다”. 말 그대로는 “함께-고난받으신다”(심-파테오) 입니다. 여기서 영어의 ‘심파티’(sympathy)라는 단어가 왔습니다.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시는 것은 우리와 함께 고난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참고>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신 하늘의 성전에 성도들도 들어감
3,4장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먼저 들어가신 그 하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자”고 합니다. “안식에 들어간다”는 말이 계속 반복됩니다 (3:11,18, 19, 4:1,3,3,5,6,6,11).
우리가 들어갈 안식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들어가신 하늘의 성전 안 휘장 뒤에 있는 지성소(6:19,20)입니다.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있는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9:12). “손으로 만든 성소가 아니라 참 하늘”(9:24), 하늘의 “성소”(9:25)에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도 그 하늘 성전의 안식에 들어가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늘 성전과 하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하시려고 대제사장님이 “세상에 들어오셨습니다”(임하심, 10:1).
<참고>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이 비슷한 점: 고난받는 성도에게 하늘의 성전과 영광을 보여주고 경고
히브리서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던 성도를 위로하는 점에서 요한계시록과 아주 비슷합니다. 두 책 다, 하늘 성전의 모습과 그곳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통해 성도를 위로하십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대제사장’, 계시록은 ‘어린 양’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계속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이 땅의 성도와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도 하늘에 들어가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으로 위로합니다.
계시록은 1-3장에서는 교회에 대해 불신앙과 불순종을 경고합니다. 하늘의 성전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조금씩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위로합니다.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에 참여함”(계 3:13). “내–그리스도–가 (성도들에게)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는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
계시록 4,5장 에서는 하늘의 성전과 성전 안에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시는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계4:6)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후 계시록 6-19장(혹은 20장까지)은 하늘의 성전 보좌가 이 땅의 모든 일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센터임을 보여줍니다. 계시록 20장(혹은 21장)부터 22장까지는 마지막 하늘의 성전과 하늘의 성이 이 땅에 내려와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히브리서 3-4장도 불신앙과 불순종을 경고하면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돕고 계신다는 것을 조금씩 소개하기 시작합니다(2:17-18, 3:1-5, 4:14-16).
그리고 히브리서 5-10장은 이 대제사장이 하늘의 성전에서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받으시고, 피 뿌림을 통해 우리 죄를 사하시며, 하늘의 성전, 하늘 나라로 들어가심에 대해 집중적으로 가르칩니다.
히브리서 11-13장은 우리도 이 대제사장을 믿고 고난 가운데 인내하고 감사 찬양하면서 하늘을 향해 나가자고 격려합니다. 우리가 들어갈 히브리서의 하늘 성전과 삼위 하나님은 계시록에서 땅으로 내려오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와 함께 거할 것입니다.
믿는 우리는 이미 하늘을 향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소망 때문에 기뻐하며 고난의 인생을 인내하고 감사하며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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