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에서 왕도정체가 가장 이상적이란 것을 참주정체와 비교하여 끝맺음을 한 소크라테스는
10권에 와서 다시 교육체제 중 시가교육에 대해 맹렬한 공격을 가한다.
철학적 입장에서 서사시나 비극 또는 희극의 교육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왜냐, 대개 서사작가가 희비극작가가 한다는 일이란 것이 진리(이데아)에서 세 번째나 멀어져 있는 모방에 불과하여 이것을 실재적으로 무엇을 생산하는 기술도 아니며 그것을 사용하는 기술도 아닌 가장 저차원의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침대를 예로 들면,
신이 침대 이데아를 만들고
장인이 침대를 만들고(이 단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침대가 나타날 수 있다)
화가가 침대를 그린다는 것인데, 시가 작가의 일이란 꼭 화가 차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시가 작품을 통해 사람들은 작품 속의 영웅들의 행적을 모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의 다툼에서 분노에 휩싸여 홀로 바닷가에서 고독을 씹을 때
현실에서는 아킬레우스와 같은 행동이 그리 탐탁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통해 보면 그 모습이 매우 감상적이고 심지어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적을 모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유익하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식의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굳이 시가교육을 해야 한다면 이는 반드시 내용이 검열받아 바람직한 것만 가르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혼이란 올바름의 정수이기 때문이란다. 혼은 사악함으로 인해 망할 수 없는 것이고, 더구나 육신의 병과 같은 것으로도 침해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혼의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에 혼에 접촉되는 모든 것들은 올바른 것들이어야 하며, 최소한 악한 데서 멀어질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시나 음악 그 자체로도 신에게 이를 수 있고, 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데서 플라톤의 이러한 사고는 닫힌 사고라는 것이 회원들의 일갈이었다. 공감한다!
이어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것은 이승에서도 물론이거니와 저승 아니 영원한 삶을 위해 몹시 필요한 것이란 것을 에르의 신화를 통해 강변한다. 에르는 죽은지 12일만에 깨어난 사람인데 그간 저승구경을 다녀왔다. 그는 저승에서 살아생전 바른 삶을 산 사람과 바르지 못한 삶을 산 사람의 형편을 전해 들었다. 무려 1000년간 보상 또는 벌을 받았는데, 1000년이 다 한 후 그들은 새로운 삶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여기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선택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큰 아이아스의 혼은 사자로, 아가멤논은 독수리로, 오뒷세우스는 아주 평범한 촌부로의 삶을 선택한다. 이들이 한번 살아본 생애에 대해 환멸을 느껴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 익숙한 이는 다시 철학하는 삶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철학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언제나’ ‘영원히’ 가장 훌륭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9권에서 매듭짓지 않고, 10권을 연장하여 다시 한번 올바른 삶과 혼의 불멸을 연결지은 이유가 뭘까?
<국가>란 결국 한 개인의 삶의 연속선에 있다. 거꾸로 말해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어느 정체에 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란 것이다. 철학이 고독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지향해야 할 바이지만 실제로 그런 국가는 없다는 것이 9권에서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개인에게 돌리면 문제는 달라진다. 다른 사람이 폄하하고 깔보고 욕을 하더라도, 또 육신이 병들고 찌들고 아프더라도 “올바름을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정의에 대한 헌신은 결국 신이 보상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이 대목에서 대단히 낭만적인 시각을 가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이나 자신이 스승으로 모셨던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실현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이상주의’에 불과하더라도 개인에게는 그것은 실현가능한 것이다. 만약 이것을 믿는다면 그런 개인이 결합된 사회는 왕도정치의 이상을 펼칠 수 있을지 모른다.
플라톤이 10권에서 말하고 있는 마지막 염원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첫댓글 음...!
어제 인도철학 전공하신 교수님과 윤회설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추가하자면 식물은 윤회에 포함되지 않는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영혼은 플라톤의 영혼과는 거리가 있더군요. '아트만'은 또한 단계가 있더라구요. 그 유효기간도 있구요. 그리고 변샘이 말하신 인구증가 부분에 관한 건 지구의 무게는 어떤 경우에도 변동하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항상 같은 질서를 유지한다는거죠. 체세포복제를 반대하는 이유도 이 질서의 강제적인 파괴에 대한 인류의 대재앙에 중심이 있답니다. 이월에 다시 한 번 더 짚을까요? ㅎㅎㅎ 재미있는 주젭니다.
잘은 모르겠으나, 체세포반대건에 대해서는 약간 짚이는 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주는 스스로 질서를 유지한다는 것이로군요. 만약 그에 대해 월권을 행사하려 하면 그 존재를 멸하는 것이로군요. 월권의 행사는 공룡처럼 스스로가 너무 커지면서 나머지를 멸하게 하던지, 인간처럼 온갖 것에 다 호기심을 발동하여 캐내려할 때도 적용되는 군요. 고대인들이 판도라 상자를 열지말라고 이야기를 남긴 현명함을 되새겨야겠습니다. 2월에 윤회설에 대해 꼭 이야기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