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값어치는 어떤 것 인가? 사람 그대로를 세워 두면 바위덩어리나 똑같다.사람이 그냥 움직였을 때 짐승과 같은 것이고 움직이면서 생각하는 것이 진짜 사람이다.그러니까 일하면서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다.'
고재식아저씨가 서울로 일하러 간 유준이에게 쓴 편지 내용중 하나다.
고재식아저씨는 송마골 종갑이네 빈집에 들어가 살고 있는 인민군 포로출신으로 북한에 가지 않고 남한에 남은 사람이다.아이들에게는 너구리아저씨라고 부른다.왜 너구리야면 빈집의 초가가 반쯤 무너지고 벽이 허물어져 방안이 마치 굴처럼 되어버려 너구리가 자기 굴로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하여 아이들이 붙인 고재식아저씨의 별명이다.
종갑이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이렇게 셋이서 살았었다.아버지는 일제때 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 간 뒤 해방이 되어도 돌아 오지 못 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아 오겠다고 나간 후 소식이 끊겼다. 전쟁이 나고 금동이네와 문식이네와 같이 피난길에 나섰다가 할머니는 객사하고 말았다. 종갑이는 마을에 진을 치고 다리를 보수하는 미군트럭이 후진하는 바람에 바퀴에 눌려 즉사하였고 할아버지는 이를 비관하고 집앞 대추나무에 목 매달아 죽었다.이런 사연이 있는 집에 들어와 누군가가 들어와 산다는 것이 종갑이 동무들에게는 영 탐탁치 않았었다.
그러나 너구리 아저씨는 곧 아이들의 동무가 되었고 인민군 출신으로 전쟁에 참여하였으면서도 북으로 가지 않는 자신의 사연을 아이들에게 알듯 말듯하게 이야기해 준다.너구리아저씨는 이북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고학생이였으나 전쟁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어 북으로 가지 않았다.공산주의가 좋아서 인민군이 된 사람이 지금은 공산주의가 싫다고 남에 남은 것이 아이들에게는 도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아재씨 공산주의 나쁜 것이껴? 좋은 거이껴?’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제 나름대로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그 것을 사람들은 생활화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해”
” 그러나 그 주의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동족끼리 해서는 안돼,주의보다 사람을 더 소중하게 여기야지, 무슨무슨 주의에 사람을 가두지 않고 사람을 그 주의 위로 올려 놓는 거지.쉽게 말해서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보다 사람이 첫째라는 거야
”
또 서울에서 고된 삶을 살다가 특별한 성과없이 고향으로 돌아 온 유준에게 이야기한 내용중 이런 것이 있다.
'환경이나 여건에 얽매여 버리면 결국 그 인생은 실패한 거야.스스로 역경을 헤쳐 나가는 사람은 목적은 실패했더라도 인생만은 성공한 거야'
고재식아저씨는 땜방기계를 사서 장터에 나가 구멍나고 닳고 닳은 고무심을 땜방해주면서 돈을 벌고 농번기에는 마을 농사일을 도와주며 끼니를 해결하고 품삯을 챙겼다. 송마골에 들어 온지 10년이 지나 30초입이 된 아저씨는 어느 날 떠나기로 마음먹고 배낭을 싼다.지금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이 곳을 떠날 수 없을 것 같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