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긍지의 날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나는 피로하였고
또 나는
영원히 피로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 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 개의 번개 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
청춘 물 구름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加)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
파도처럼 요동하며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 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 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 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
(1955. 2)
이 시는 모든 설움을 합쳐서 아름다운 몸을 자라게 하는 긍지가 내 꿈의 원천이며 최종점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고 모든 설움이 합쳐진 것을 피로로 해짐에도 긍지로 바꾸어 나의 몸을 한치 더 자라게 하는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영원히 힘쓸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 개의 번개 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환상은 나의 꿈이 될 수 없다. 나의 꿈의 최종점은 긍지이다. 한 치씩 항상 꽃으로 자라게 하는 긍지이다. 나의 꿈은 청춘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교훈을 준다.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설움을 긍지로 만들면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다. 오늘은 필경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 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 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
이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를 위하여
나는 피로하였고
또 나는
영원히 피로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 보다
나는 너무나 잘 아는 순환의 원리가 계속 작동하여 긍지로 전환되게 하려고 나는 피로하였고 또 나는 영원히 순환의 원리가 영원히 작동하게 해서 자라는 꽃이 되어 긍지가 되게 할 것이라서 영원히 피로할 것이다. 순환이 원리가 적용되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고 현재를 보기만 해도 된다.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나의 긍지가 있는 것을 보니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 보다.
‘순환의 원리’는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2연 19행)면 이것을 ‘긍지’로 만드는 일이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내가 ‘피로’한 것은 ‘설움과 아름다움을’ ‘긍지’ 만드는 과정에서 ‘피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2연 13행)에서 알 수 있다. ‘영원히 피로할 것’인 이유는 화자가 ‘영원히’ ‘긍지’를 만드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내가 ‘꽃’이기에 나의 속성이다. ‘나의 몸은’ ‘꽃이 아니더냐’(2연 15, 16행)이라 하여 ‘나’는 아름다운 ‘꽃’이라고 분명하게 서술했다. 내가 사는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2연 19행) 간다. 그래서 나의 모든 것은 설움이다. 나의 모든 ‘설움’과 이를 긍지로 만들면 나의 ‘아름다움’은 ‘한치를 더 자라’게 한다. ‘긍지’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는 나의 긍지’라는 시구를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 개의 번개 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
청춘 물 구름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加)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
파도처럼 요동하며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내가 살기 위하여 몇 개의 번개 같은 환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이 환상은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될 수 없다. 꿈은 교훈이다. 나를 가르친다. 청춘은 물처럼 흘러가고 구름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될 수 없다. 설움들을 긍지로 만드는 일에서 생긴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더해서 있을 때도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임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인 긍지는 설움과 피로가 파도처럼 요동쳐도 소리가 없고 설움과 피로가 비처럼 퍼부어도 젖지 않는 것이다.
‘몇 개의 번개 같은 환상’은 ‘내가 살기 위하여’ 필요한 필요조건이라고 하더라도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나의 ‘꿈’은 내가 이루려는 것이다. 이것은 ‘꽃’인 나를 ‘한치를 더 자라’게 하는 ‘긍지’이다. 그래서 ‘꿈’은 ‘긍지’이다. ‘청춘 물 구름’의 공통점은 영원하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면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꿈’은 나에게 이것들이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피로들이 몇 배의 아름다움을 가(加)하여 있’어 ‘아름다’울 때도’ ‘피로들’은 ‘설움’을 ‘긍지’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기에 ‘나의 원천과 더불어 / 나의 최종점’이 될 수 없다. ‘나의 원천과 더불어 / 나의 최종점은 긍지’이기에 ‘설움’이 ‘파도처럼 요동하며’도 ‘소리가 없고’ ‘피로’가 ‘비처럼 퍼부어’도 ‘젖지 않는’다.
그리하여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 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 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 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날인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하여 내가 긍지로 만드는 날이고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 보다. 이것이 나의 날이고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
‘꿈’을 이루기 위해 ‘피로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러할 때면은’ ‘피로’와 ‘긍지’를 만든 때이다. 나는 ‘나의 몸’을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항상 /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라고 믿는다. ‘항상 / 한치’가 ‘더 자라는’ 것은 ‘순환의 원리’가 작동 중이기 때문이다. ‘아니더냐’는 반문하는 것으로 당연히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은 필경’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로 생각하는 것은 ‘몸’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그래서 ‘피로’와 ‘긍지’를 만들어 ‘내가 자라는’ 것이 ‘순환의 원리’이다.20210325목전1053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