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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1966)
앙드레 로비네, 류종렬, 서광사, 1987. P. 139. [1977년 4판 완역]
- 로비네(André Robinet, 1922-2016),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 벩송의 전집과 잡문집 편집책임자.
* 저자 로비네는 프랑스 철학의 중세 부분이 잘 정리했다는 것을 이번에야 깨달았다. 그의 관점은 신앙과 이성의 대립으로 놓았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의 실용과학의 영향이나 로만 카톨릭의 종교에 관련된 부분을 거의 무시하고, 프랑스 내에서 인간으로서 철학적 사유의 발생과 고전(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영향이 표면 밑에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탈리아 교단이긴 하지만 두 교단(프란체스코 교단과 도미니크 교단) 사이의 교회권력을 싸움(투쟁)이 아니라, 철학적 관점에서 둘 사이가 거리가 먼 이유, 그리고 교단의 각각 계보가 철학사에 미친 영향들을 잘 정리하였다. 새로이 읽어 보니, 이렇게 간략하게 정리하면서도 이런 관점들을 가진 근 현대 (프랑스이든) 철학사가들의 관점도 알려주었다.
여기서 로비네가 언급하지 않은 중세 사상가로서는, 기호론을 언급했던 기욤 드 샹포(Guillaume de Champeaux, 1070-1211), 그리고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준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s, 1135-1204)가 있다. 마이모니데스에서 스피노자로 이른 길이 프랑스 철학과 직접연관이 없기는 하다. 저자는 근세철학에서도 스피노자를 비중있게 다루지 않고 무신앙자의 계열로서 잠시 다룰 뿐이다. 스피노자는 세파라드 유대계로서 네델란드인 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철학 부분의 마지막에 스피노자를 언급한 것은 1960대 스피노자에 대한 재조명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53OKB)
중세철학에서 신앙과 이성의 구분은 근세철학에서 시기적으로 사상 전선이 달리 이루어진다. 저자는 신앙과 이성의 구별이래로, 신앙의 변신론자에는 말브랑쉬와 라이프니츠를, 이 반대편에 파스칼과 아르노을 놓는다. 데카르트의 신은 후자의 편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 전자와 후자를 합리론과 비합리론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계몽기에서는 크리스트교도와 데카르트주의자들이 거부했던 감각과 경험을 기초로 삼는 사상가들이 있는데, 우선 볼테르가 있고, 다음으로 라메트리 등의 18세기 유물론자들이 있다. 이에 비해 기존의 형이상학을 배제하고 철학에서 인간 인식의 기원을 다룬 꽁디약도 있다. 역사의 개념을 다루면서, 사회 상태에 대한 관점이 도래하는데, 몽테스키외, 루소 등을 다룬다. 사유를 내부로 향한 멘 드 비랑과 외부로 향한 콩트를 거치는 시기에는 학문의 다양성이 성립한다. 화학에서 라브와지에, 생물학에서 비샤, 공동체의 인간학에서 생시몽 등이 있다. 근세철학 마지막에 칸트의 비판철학을 수용한 쿠르노와 르누비에를 다룬다. 저자는 뉴턴을 언급했던 것과 달리 라마르크와 다윈의 언급이 없다. 의학에서 베르나르는 제3장 현대철학에서 벩송과 더불어 언급될 것이다. (53OLA)
** 저자 로비네는 프랑스 근세철학을 데카르트로 시작해서 데카르트로 끝난다. 그럴만하며, 일반적으로 나중에는 후설까지도 데카르트 영향으로 넣어서 그렇게 설명한다. 벩송도 그의 저작들 속에서 고대철학 사유를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게 한 것은 물리학자 갈릴레이이지만, 하늘의 실체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실체를 논한 것은 데카르트부터이라 하고 근세를 거쳐서 19세기 중반이후에는 사물의 내부로 들어간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 지상에서 내부로 들어간 철학자는 벩송인 셈이다.
프랑스 철학사에서 데카르트 이후의 특징 중의 한 가지는 역시 꽁트의 등장이다. 꽁트의 실증주의는 그가 살았던 당시에 수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의학 등에서 새로운 경험적 방식의 도래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에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역사적 자료(data)를 바탕으로 기술하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꽁트 다음시대에는 문학에서도, 회화에서도, 역사에서 아날학파도 등장할 것이며, 생리학을 넘어서 의학에서 두뇌를 다루는 병리학도 등장할 것이다.
프랑스 철학을 넘어서 서구철학사에서도 실증주의의 도래는 더욱 흥미롭다. 사상사 전체가 ‘외부에서 내부로’ 사유의 전환 시기이기도 하다. 수학에서는 군론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천문학에서 빛의 속도에 대한 양화에서 우주의 무한정, 물리학에서 원자 속의 미립자들, 화학에서 원자의 구조에 따른 전자의 층위들과 결합방식, 생물학에서 라마르크의 변형형성론을 거쳐서 다윈의 진화론과 생명체 발생 논쟁, 의학에서 생체의 자기 동일성과 유기체의 독자성, 사회학에서 정적 사회학과 동적 사회학, 심리학에서 병리학과 두뇌 신경학, 그러고 나서 인류학과 민족학이 등장할 것이다. 이런 여러 과학의 변환 시기에 벩송이 학창시절을 보내고 난 뒤에. 그는 새로운 형이상학, 즉 질료형이상학 또는 아페이론(자연)의 자발성을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2:16 53OMD-F)
자연의 자발성은 유럽 사상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자연의 자기에 의한 자기 창조의 사유는 스피노자에 있었지만, 벩송이 실증과학을 통하여 전개한 새로운 형이상학에서 창조적 신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신과 무(無)과 같은 관념들에 대해 벩송의 표현으로는 그런 관념들은 착각이다. 무가 착각이면 창조설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벩송은 시대가 낳은 인물이다. 시대의 난문제를 보는 자가 그 난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가운데 새로운 학문이 등장한다. 현대 시대가 열릴 것이다. 우리 시대의 난제는 뭣일까? 분단의 아픔일 것이다. 바이러스19가 새로운 국면을 마련하여, 난제의 해결을 위해 준안정상태에서 또는 카오스모스에서 사유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2:25, 53OMF)
*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1966) 목차
제1장 중세 철학 11-58
제2장 근세 철학 59-106
제3장 현대 철학
결론
# 내용 중에서 ************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1966) [1977년 4판] [아래 ( ) 번역 쪽수이다]
* 제2장 근세 철학 59-106
* * * (59 [분류표로서 계통수(系統樹): 테오뒬프, 데카르트, 시르몽 / 데카르트]
여러 세기 동안에 알뀅이 분류[이성과 신앙] 했던 대로 ...
테오뒬프(Théodulfe, 755경-821)는 자신의 노래들 중의 하나에 지식의 계통수를 묘사하는 데 바친다. (59) [아마도 이 시집Carmina (« Poèmes »), s.d.을 말할 것이다.]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 “모든 철학은 한그루의 나무와 마찬가지이다. 그 뿌리는 형이상학을 이루고, 줄기는 자연학이고, 그 줄기로부터 나온 가지들은 세 개의 주요학문, 즉 의학, 역학, 도덕론에 이른다.” (60) [1644년 철학의 원리들 속에서]
[테오뒬프 이래로 데카르트를 거쳐서 셋째로] 시르몽(Jacques Sirmond, 1559-1651)이 [계통수를 말했다.] (60)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 1915년 베르그송은 프랑스 철학에 관한 간결한 논문을 작성했다. 1933년의 개정판을 내면서 덧붙이고 있다. “확실히, 어떤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데카르트의 저작은 분할선을 표시한다. 그 선분으로부터 쌍방으로 두 개의 국이 펼쳐지는데, 그 하나는 중세 전성기로 연장된다. 그러나 그의 저작은 가파른 절벽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실제로 정확하더라도, 데카르트가 제일 꼭대기에 있는 창조적 천재, 즉 새로운 정신의 원이라는 사실이다. ...” (62-63)
고대과학과 근대 과학 사이에, 즉 플로티노스((Plotin, Πλωτῖνος, 205-270)와 데카르트 사이에는 브룅슈비끄(Léon Brunschvicg, 1869-1944)가 그렇게 지적했던 대로 아무런 관련도 없다. .. 이 「프랑스 철학」에서 베르그송은 데카르트 속에 있는 다섯 가지의 특징을 인정했다. 즉 그것은 권위의 명증에 반대하는 명석 판명한 관념들의 철학, 기하학에 의해 영감을 받은 지성으로 일반적 진행 절차를 삼는 방법론, 기계론적 모델을 근거로 해서 수학적으로 지배되는 자연 일반 이론, 물질 연장과 정신 사유라는 두 개의 실체를 구분한 후에 사유를 단순한 요소들로 해결하려는 노력, 그리고 자유와 직관의 철학을 불러일으키는 의지의 밑바탕에 있는 영혼의 내적 관계를 말한다. (63)
우리들 시대는 스스로를 “데카르트 철학”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베르그송은 스스로 “데카르트적”이라고 판단한다. (64) [벩송의 활동시기에 데카르트적이라고 하면 브룅슈비끄를 지칭할 수 있다. 로비네는 벩송이 ‘데카르트적’이라 하지만, 나로서는 ‘스피노자적’이다.]
데카르의 신은 자신의 통치의 열쇠를 쉽게 내맡기지 않는다. 만일 17세기에 “변증법론자들”[변신론자]이 있다면, 말브랑쉬와 라이프니츠의 측면에서 그들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은 파스칼을 반변증법론자들의 계열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68)
.. [데카르트의 확신은] 신앙의 진리와 아무 관련이 없다. 나는 의심한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 ... 코기토의 뗄 수 없는 세 가지 의미(나는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존재하며, 내가 존재하므로 무엇을 행하는가)는 여기에서 삼위일체의 방식이 아니라 일원적 방식으로 된다. (68) [신앙과 계시와 무관하게 주체에서 출발한다. - 근대철학의 시조이다]
데카르트적 형이상학의 고고학은 코기토의 두 가지 측면을 전달하고 있다. 즉 그것은 존재와 진리이다. (69) [존재론과 인식론이 함께 들어 있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여기서 데카르트에 길게 서술할 만하다(59-73쪽).
* * * (73) [말브랑쉬]
말브랑쉬(Nicolas de Malebranche, 1638-1715)에 있어서 영원한 진리의 창조에 대한 의지주의적 주제는 “근거없는 상상”이다. (73)
무신앙자, 회의주의(Pyrrhonisme), 스피노자(Spinoza)의 무신론적 이론 ... (74) [말브랑쉬는 이들을 가치전도의 경향을 본다. / 저자는 네델란드인 스피노자를 깊게 다루지 않는다. ]
왜냐하면 이성과 신앙은 .... . 데카르트는 신앙과 은총에 관한 의문점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신이 인간 이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쟝세니즘(jansénisme)의 다양한 형식에 반대한 말브랑쉬는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의 의사를 무시하고 중세의 대 신학자들이 다른 상황에서 확립했던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주장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적인 지식으로부터 이루어 놓았던 것과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지식으로부터 실행했던 것을 말브랑쉬는 데카르트적인 지식의 도움으로 달성한다. (75)
말브랑쉬는 프랑스어로 철학을 저술한 최초의 사람이다. [또한] 라 라메(Pierre de La Ramée, 1515경-1572)도 프랑스어로 쓴 「변증론(Dialectique)」이라는 논문 한편 ... (75)[프랑스어로 쓴 철학자로서는 몽테뉴, 데카르트를 꼽지만 라 라메, 말브랑쉬를 덧붙인다면, 출판하지 못했지만 파스칼(1623-1662)도 꼽아야 할 것이다.]
이 [말브랑쉬의] 기회원인론은 라포르쥬(Louis de La Forge, 1632-1666), 코르드므와(Géraud de Cordemoy, 1626-1684), 로오(Jacques Rohault, 1618-1672)에 의해 일반화되었다. 라이프니츠는 단자들의 부차적 생명력, 단순한 모든 실체들 사이의 예정조화, 그리고 결합질서에 의한 철학으로 통과하는 입구들을 주장하는 기회원인론에 대항하면서 그 이론과 활발하게 논쟁했다. (77)
* * * (77) [쟝세니즘]
쟝세니스트들이 말브랑쉬에 대항하여 일으킨 맹렬한 사상적 폭력은 이해된다. 말브랑쉬는 그의 사상 형성 시기에 포르-르와얄(Port-Royal)의 집단이 아우구스티누스 철학과 데카르트 학파의 재 융성기에 대해 부여했던 철학 및 종교의 해석에 있어서는 관대했다. (77) [참조: 얀센(Cornelius Jansen, Jansénius, 1585-1638)]
생시랑(Saint-Cyran, 1581-1643), 바르코(Martin de Barcos (1600-1678), 니콜(Pierre Nicole, 1625-1695),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 께넬(Pasquier Quesnel, 1634-1719) 등은 사실상으로도 권리상으로도 쟝센(Cornelius Jansen, 1585-1638)의 저작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1640)를 옹호 하였다. (78)
철학적인 조류들의 여러 갈래 속에서 데카르트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상디(Pierre Gassendi, 1592-1655)와의 논쟁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 가상디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경험주의와 격렬하게 싸웠다. 그러나 그것은 데카르트의 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78-79)
예를 들면 메르센느(Marin Mersenne, 1588-1648)도 자기의 학문적 작업에서 실현한 경험이 있다. (79) [가상디와 메르센은 데카르트와 달리, 경험을 중요시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아니다. ]
* * * (79) [비합리주의자들, 그리고 볼테르 ]
한편으로 “합리주의자들”, 즉 말브랑쉬와 라이프니츠 등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비비합리주의자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인 벨(Pierre Bayle, 1647-1706)이 그 지도자이다. (79)
불가능하기 때문에 확신한다(certum quia impossibile)는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의 함성이 12세기부터부터 나오지 않았던가! (80-81)
[벨에게서] 지식은 신의 선물이다. 그래서 계시는 의식의 무기, 즉 모든 토론의 북극성이다. 벨은 파스칼처럼 철학자들의 신 없이도 믿는다. / 그것은 아베로에스주의와 관계가 있었는가? 벨과 폼포나치(Pietro Pomponazzi, 1462-1525)의 결합은 직설적이다. ... 벨이 보고하는 바에 따르면, 라 모트 르 바이예(La Motte Le Vayer, 1588-1672)는 폼포나치에 대하여 이교도이긴 하지만, 고결한 사람인 아베로에스와 전적으로 흡사하다고 이미 말했다. 반대로 사전에서 아베로에스 항목은 폼포나치를 통하여 독특한 이해력의 “오류”와 영혼불멸에도 증명할 수 없는 영혼의 “오류”를 도출하고 있다. (81) [폼포나치는 fr.Wiki에서 종교로서 카톨릭 신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사유를 유물론의 의미에서 발전시켰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에 따라 인간 영혼이 죽는다고 해서 –교회는 영혼이 불멸이라고 하는 데 – 교회와 논쟁도 있었고 박해도 받았다고 한다.]
만일 계시가 예고하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계시는 계시적일 수 없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17세기에 원상 복구된 그리스도교의 철학적 세계를 몰락시키는데 기여했다. .. 볼테르는 데카르트에 반대하여 뉴턴(Issac Newton)의 편이 되고, 말브랑쉬와 라이프니츠에 반대하여 가상디와 로크의 편이 되고, 모페르튀(Moreau de Maupertuis, 1698-1759)에 반대하여 퐁트넬(Fontenelle, 1657-1757)의 편이 된다. 그러나 “중력” 즉 “인력”은 얼마나 상상적인 측면인가! (82)
* * * (84) [백과전서파: 디드로]
볼테르는 인간의 지배에 대해서는 너무 군주적인 의견을 가졌고, 이성에 대해서는 너무 빈약한 평사를 했기 때문에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의 편에서 백과전서의 집필에 오래 가담하지 못했다. (84)
자연적이고 상향하는 이성은 디드로에게 창조자를 포기하는 자연의 모습을 부여한다. (85)
* * * (85) [유물론자들]
18세기에 가장 강력하게 주장된 조류들 중의 하나는 “유물론”이다. 사람들은 이 유물론에서 라 메트리(La Mettrie, 1709-1751), 돌바하(d'Holbach, 1723-1789), 엘베시우스(Helvétius, 1715-1771)와 더불어 모든 저작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마레샬(Sylvain Maréchal, 1750-1803)에서 사드(Sade, 1740-1814)에 이르기까지 영혼과 종교에 이의를 제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신에게도 이의를 제기한다. (85-86)
* * * (87) [형이상학]
꽁디약(Condillac, 1714-1780)은 자기 시대의 형이상학적 지표들을 제공해 주었다. “형이상학”을 무시하면서 “철학”을 주목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즉 그것은 잘못된 형이상학이다. 그런데 계몽주의를 정복하는 데 역할을 한 참된 형이상학도 이다. (87)
인간 인식의 기원에 관한 시론(Essai sur l’origine des connaissances humaines, 1746) 속에서 꽁디약은 단순한 감각의 상태로부터 정신적 삶의 기원을 설명한다. (87)
감각론(Traité des sensations, 1754)은 감각이 잘 표시된 개별성이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것은 의식의 잔여로부터 격리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의, 즉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다. (88) [어떤 것: 플라톤의 프라그마(pragama)]
꽁디약의 철학은 “철학”의 시대를 지배한다. (90) [꽁디약은, 백과전서파와 유물론의 지식(인식)과 달리, 전통적인 의미에서 “철학”을, 즉 신체와 영혼, 지성과 이성 등을 다룬다. ] * * * (90) [근대성: 과학 아카데미아 학파]
18세기[계몽주의]에는 다른 길도 열렸다. 17세기 말에 고대인과 근대인에 대한 논쟁 덕분에 퐁트넬(Fontenelle, 1657-1757)은 이론 및 사유의 역사에 새로운 역할을 하게 한 이성의 발생적 개념을 끌어낼 수 있었다. (90) [퐁뜨넬은 1691년 프랑스 아카데미/학술원(Académie française)회원이며, 1697-1740까지 ‘과학 아카데미’의 사무총장(Secrétaire perpétuel Académie des sciences)이었다.] .
그러나 데카르트는 또한 자신이 완전히 명석하게 파악할 수 없는 무한에 대항하여 싸웠다. .. 그는 수학 방정식의 해결 방식을 공격하는 것은 헛된 짓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세기의 마지막 사반기는 새로운 계산[미적분]의 기초 이론들이 나온 시기인데, 라이프니츠는 그것의 발명자이고, 말브랑쉬는 그것을 프랑스로 도입한 자이다. 로스피탈(L'Hôpital/L'Hospital, 1661-1704)의 무한소 분석(Analyse des infiniment petits, 1696)은 이성의 역사에서 [데카르트의] 방법서설(1637)와 [말브랑쉬의] 진리의 탐구(1674)가 한 역할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91)
1699년 과학아카데미를 “쇄신” 했을 때, 퐁뜨넬은 그들이 50년간 계속하여 지배하게 될 집단에 12명의 말브랑쉬 학파들을 모두 포함시켰다. (91)
과학아카데미에서 그의 뒤를 계승했던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1717-1783)는 그의 동료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퐁뜨넬과 같은 도식, 즉 데카르트와 말브랑쉬 철학과 무한주의자의 도식을 채택했다. (91-92)
과학아카데미에서 같은 사무국에 있는 콩도르세(Marie Jean Antoine Nicolas de Caritat, marquis de Condorcet 1743-1794)는 그의 선배들이 부각시켜 놓았던 역사적 개념들에 대한 빛나는 종합을 실행하였다. .. 역사를 아홉 개의 시기로 구별한다. .. 오늘날 우리는 계급 폐지와 인종과 성별과 종파에 대한 차별의 폐지를 향하면서 “사회 상태”의 열 번째 시기에 들어왔다. (92) [콩트(Comte, 1798-1857)는 콩도르세의 영향을 입을 것이다. 콩트의 사회학으로 전개 이전에 콩도르세의 과학들에 의한 “진보”의 개념이 먼저 있었다. 꽁도르세의 인간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관(Esquisse d'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ès de l'esprit humain(1795)]
* * * (92) [사회학의 태동]
사회에 대한 인식은, 관심이 이성의 역사에로 유도됨과 동시에 밝혀진다. 몽테스키외(Charles de Secondat, Montesquieu, 1689-1755)는 최초의 사회학자이다. ..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 1748)을 썼다. .. 그는 교육학적 성서, 즉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가 정력적으로 옹호할 베르나르 라미(Bernard Lamy, 1640-1715)의 학문들에 관한 대화(Entretiens sur les Sciences, 1684)를 실천에 옮겼다. 사람들은 부당하게 법의 정신의 내제(內題)를 스피노자의 내제라고 규정했다. 몽테스키외는 말브랑쉬 학파들이 자연, 은총, 역사의 지배에서 전개했던 “일반법칙”의 개념을 사회의 역사에 적용한다. (92-93)
보댕(1529-1596) 이후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 라이프니츠, 몽테스키외는 자유가 자연법에 기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브랑쉬 학파들에 대항하여 그는 종교 의식을 멀리하고, 종교의 모순을 강조하였으며, 교황을 우상으로 다루고, 부적과 호신부를 부인하고, 회교 승려와 환관에 의해 만들어진 성직자의 위계 제도를 파기 한다. (93)
그러나 18세기는 [에밀(Émile ou De l'éducation 1762)의 제4권에 속하는] 「사브와 지방의 보좌신부의 신앙 고백(La Profession de foi du vicaire savoyard)」과 더불어 자연과 은총을 다루었다. 루소는 이 세기 초기의 말브랑쉬처럼 다음 세기의 멘 드 비랑(Maine de Biran, 1766-1824)과 블롱델(Maurice Blondel, 1861-1949)처럼 이성주의의 신앙과 철학자의 신학을 가졌다. (93-94)
루소에 대한 유물론자들의 맹렬한 공격은 유물론자의 설명에 대한 그의 활발한 비판과 맞먹는 정도이다. 나는 존재하고 나는 감각을 갖고 있으며, 나는 그 감각에 의해 다양하게 영향을 받는다. (94) [루소에 대한 설명으로 좀 특별나다.]
말브랑쉬에 있어서 이브의 역할은 타락에 한정되어 있다. 루소는 지옥이 “타자”와 함께 온다고 생각한다. 시만 국가에서 여러 악들이 나타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만족하는 대신 자기와 비슷한 자들과 경쟁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보편과 원초적 통일에 따라서 사유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사회에 갇혀있는 인간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다. 여러 불평등이 근원적 평등에 뒤이어 온다. (96)
또한 과학, 문학, 예술 등은 불건전한 유혹인 동시에 필연적인 악이다. 그것은 자연을 번창 하게 하기는 커녕 자연을 타락시킨다. (96)
[사회에 자연에 대한] 두 논의 부정적 고찰을 상세히 설명해보면 [베네딕트 수도자, 이상주의자인] 데샹(Dom Deschamps, 1716-1774)은 헛되게도 백과전서파의 반대능력에 대항하여 법과 금지의 “개혁”을 부정하고, 그것의 단순하고 순수한 압력을 주장하는 근본적 평등의 이상향을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97) [데샹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저자가 긴 한 단락으로 소개한 것은 의미 있다.]
루소, 디드로, 엘베시우스, 볼테르 등은 부정적 신학에 영향을 받은 “무론(無論)”에 의해 “좌파 편에서” 자신들을 뛰어넘는 방해꾼[데샹]을 제거 한다. 왜냐하면 베네딕트 수도원이 그의 진실한 체계(Le Vrai Système, 미상)를 소화하는 것은 신화적 전통을 재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기도는 다르다 할지라도 “모든 것(le tout)”와 “전부”(tout)라는 표현을 구별하면서 우리 언어의 단순한 형식화의 분석에 기초를 두는 것은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형이상학”을 인식하기 위해서이다. 전부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언어 비판은, 데샹이 존재의 개념에 의해 대체한 신에 근거하면서, 즉 자연(sive natura)을 강조한다. (97) [신에 근거한 자연을 강조하는 것은 스피노자의 신 즉 자연과 다른 의미일 것이다. / 나의 추측인데, 데샹이 스피노자의 자연을 무신론적으로 받아들인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 * * (98) [형이상학]
멘 드 비랑(Maine de Biran, 1766-1824)은 철학자의 영속적인 불복종을 달리 표현한다. / 이 논쟁에 앞서 비랑은 형이상학자를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스에 비교한다. (98) [이 시지프스 표현은 매우 흥미롭다. 허구(상징)를 향해 올리는 사고는 주지주의 사고이다. 소련 과학아카데미에서 나온 어떤 책은 사회주의에서 노동자는 돌을 굴려 올리지 않고, 스스로 징과 망치를 들고 새로운 조각상을 만든다. 즉 문화를 창조하며 인간의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는다. 이런 발상은 질료형이상학과 같다.(53OMF)]
데카르트는 아우구스티누스와 꼭 마찬가지로 사유가 “원초적 사실”이라고 확고하게 대답한다. .. 데카르트는 존재가 “사유하는 실체” 즉 사물(chose)의 영원 속에 용해되어 있다고 이해하게 하는 “나는 사유한다”에 비추어서 그의 첫째 원리를 밝혔을 때 원초적 사실의 경험을 배신했다. 그[데카르트]는 그 원리로서 현존하는 힘의 중심이 아니라 문법적 주어를, 생득적 실체를 만들었다. (98)
[비랑에게서는] 함께 존재하는 것은 원초적 사실의 고유성이다. 그것은 그 사실을 행하는 것과 행하여지는 것, 그리고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과는 작용하는 원인을 드러내는 것이지 내적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아는 작용에 의해서 자신을 “표현할 뿐”이고, 그 작용은 창조적 관계일 뿐 생득적 연관(rapport)이 아니다. 자아는 의지이다. .. “나는 의욕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volo ergo sum)” (99)
베르그송과 마찬가지로 꾸쟁(Victor Cousin, 1792-1867)은 프랑스가 아벨라르, 데카르트, 말브랑쉬 이래로 태어나게 했던 위대한 형이상학자를 멘 드 비랑에서 보았다. .. 확실히 멘드 비랑은 관념론자들의 교훈과 의학적 관심사를 매우 많이 고려했다. 데스뛰 드 트라시(Destutt de Tracy 1754-1836), 카바니스(Pierre Jean Georges Cabanis, 1757-1808), 갈(Franz Joseph Gall, 1758-1828) 등이 실체[신체]의 메카니즘을 서술한 것은 당연하다. (99)
[멘 드 비랑의 학설에서] 첫째 단계의 생에서 인간은 자신 밖에 있으며, 소외되고, 메커니즘이자 기계 장치이다. 둘째 생에서 스토아학파의 영감을 받아들인 인간은 자기 자신 속으로 되돌아와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된다. 셋째 생에서 인간은 창조와 육화에 근거한 세계의 필연성, 즉 우주적이 아닌 개체적 필연성에서 다시 시작한다. “여러 전환”의 다양성에서 동일한 요구가 존속한다. (100) [베르그송이 멘 드 비랑을 이은 프랑스 유심론 계보로 보는 이들이 있다. 쟈니꼬(Dominique Janicaud, 1937-2002)의 프랑스 유심론의 계보학(Une Généalogie du spiritualisme français. Aux sources du bergsonisme: Ravaisson et la métaphysique, 1969) / 이에 비해 박홍규는 벩송이 플라톤의 계보인데 아페이론을 중심으로 사유한다고 한다.]
* * * (101) [실증철학: 꽁트]
만일 멘 드 비랑이 그 시대의 아우구스티누스라면, 꽁트(Auguste Comte, 1798-1857)는 그 당시의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혁명론자들의 헤라클레이토스주의는 관념론으로 변화하였다. 전통주의자들(보날, 드 메스트르, 고비노)은 파르메니데스 철학의 질서를 회복시켰다. 꽁트는 그의 시대의 과학적 학설들을 지배하고 사유를 외부로 전향시켰다. 회의와 코기토에서 출발하기는커녕, 그는 시초에서가 아니라 완성에서 주관성이 나타나게 하면서 알려지고 주어진 세계와 마주하여 추론한다. (101) [메스트르(comte Joseph de Maistre 1753-1821), 보날(Louis Bonald 1754-1840), 고비노(Arthur de Gobineau, le comte de Gobineau, 1816-1882)]
다양한 과학들은 “하나의 줄기에서 나온 여러 가지들”이다. 그 줄기가 지적 작업이다. 수학은 가장 단순한 대상이며, 가장 광범위한 일반성을 갖고 있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가 양적으로 환원했던 천문학은 수학이 충분하게 진보했다 하더라도 관찰이 그것으로부터 요약할 수 있기에는 불가능하였다. 물리학에 있어서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 화학에서 라브와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 1743-1794), 생물학에서 비샤(Marie François Xavier Bichat 1771-1802)는 앞선 세기의 과학을 해방시켰다. (101-102) [저자는 생물학에서 비샤(의학, 생리학이지만)를 언급하면서, 라마르크(Lamarck, 1744-1829), 퀴비에(Cuvier, 1769-1832), 조프루아 생틸레르(Geoffroy Saint-Hilaire, 1772-1844)는 언급하지 않았다. / 생물학 다음으로 의학으로 분류 정리했으면 좋을 텐데.. 게다가, 수학에는 라그랑쥬(Joseph-Louis Lagrange, 1736-1813)를, 천문학에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 1749-1827)를 언급했더라면... ]
꽁트는 생시몽(Claude Saint-Simon, 1760-1825)으로부터 인간성이란 특수한 대상, 즉 인간 노동의 상업단체, 인간 사회의 집단적 형체 등에서 결코 알려질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인간학의 대상은 가장 복잡하고 가장 개체적이다. 동적으로 파악된 사회학이 과학의 나무를 완성한다. (102)
과학의 진보는 각각의 가지가 세 개의 상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1] 신학적 상태에서 순전히 허구적인 제1원인에 대한 탐구에 몰두한다. .. 사람들은 이미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가 기대했던 것처럼 물신숭배에서 다신론으로, 그러고 나서 일신론으로 이행하고 있다. .. [2] 형이상학적 상태에서 정신은 허구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이행한다. .. 결국 [3] 실증적 상태에서 철학은 내적, 초자연적 또는 자연적 원인의 탐구를 포기하고서 인과적 설명 대신에 합법적 설명을 사용한다. 이 전환은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규범, 데카르트의 개념, 갈릴레이의 발견에 결부된 역할 덕분이다. (102-103)
그러나 꽁트는 뗀(Hippolyte Taine, 1828-1893)이 철학의 목적으로 삼은 “공리(axiome)”의 해방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정신의 유한성과 임무의 풍부함이 인식의 통합적인 열망을 제한한다. (103)
정적 사회학(sociologie statique)은 꽁트에게 “교조적 정신”을 부흥시키도록 이끌었다. 세 상태의 공준을 허용하는 그 사회학에서 도덕론이 침투하였다. “주관적 종합”은 그 사회학이 개인과 함께 개인의 영혼 불멸과 위대한 존재의 생존을 배재한 개인의 사고를 다시 부흥시켰다. (103) [fr.Wiki: 꽁트는 정태와 동태의 분배 방식을 동물학자인 블랑빌(Henri-Marie Ducrotay de Blainville, 1777-1850)에서 빌려왔다. 그에게서 사회정태론(la statique sociale)은 사회의 조직화의 법칙을 연구하는 사회해부학으로부터, 사회동태론(dynamique sociale)은 사회 진화를 연구하는 사회생리학으로부터 나왔다. (53OMD)]
리트레(Émile Littré (Maximilien Paul), 1801-1881)에 의해 전개된 실증주의 운동은 인류교를 재조직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꽁트를 거부하면서, 실증철학 강의(Cours de philosophie positive)(6권, 1830-1842)에 만족한다. 구이에(Henri Gouhier, 1898-1994)는 실증주의의 모태를 특징지우는 “12개의 명증성을 요약한다. (104)
게다라 르낭(Joseph-Ernest Renan, 1823-1892)이 그리스트교의 세계와 신없이 해낸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해석의 기억을 불러일으킨 것은 실증주의의 전성기에 자신만만한 일이 아닌가? (104) [르랑은 예수전을 쓰면서 나자렛을 찾아간 첫 서구 학자이다. 이글로 파문당했다가, 그리스도교 기원사, 7권, 1863~1883)로 복권되었다고 한다.] (104)
꽁트의 실제적인 계승자는 그의 종교[인류교]를 부인하면서, 과학 철학의 내재주의 경향을 다시 강화할 것이다. 만일 절충학파들, 즉 르와예 콜라르(Pierre-Paul Royer-Collard 1763-1845), 주프르와(Théodore Simon Jouffroy, 1796-1842), 쿠쟁(Victor Cousin, 1792-1867) 등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 (104)
* * * (105) [칸트의 영향]
[어느 프랑스 철학자는 칸트를 수용하고 헤겔을 연구하려는 시기에 프랑스-프러시아 전쟁과 파리꼬뮨으로 프랑스인은 독일 철학 연구를 접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다시 독일철학 헤겔도 연구하려다가 1차대전을 만나 독일철학 연구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또 2차대전을 치른 후, 프랑스 철학계가 독일철학을 연구해야 전쟁이 없을 것이라 하여 칸트, 헤겔, 후설, 하이덱거 등을 다룬다고 한다.]
프랑스 철학의 문맥에서 칸트의 사유는 칸트(Emmanuel Kant, 1724-1804)가 했던 대로 재발견되지 않는다. 쿠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는 칸트의 사상을 꽁트의 저작을 통해서 해석했다. 신비판주의[신칸트주의]는 “순수이성의 분석”(Analytique de la raison pure)과 더불어 확장된 관심사를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105)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 1815-1903)편에서 보면, 칸트는 데카르트 철학의 개혁을 근원적 방식으로 계속해 나갔다. 그러나 르누비에가 신비판주의를 규정하게 한 여섯 가지 명에는 더 정확히 데카르트주의가 다시 나타나길 바라는 그의 욕망을 저버렸다. (106)
칸트의 잘못이 있는데, 그 잘못은 선에의 욕구와 독립하여 고려된 정언명법의 형식주의에 관해서이다. 자유는 감각적 구속없이는 행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판주의는 그것이 [데카르트의] 성찰로부터 실체주의로 되돌아 갈 때만 의미가 있다. (106)
(53OMD)(10:25, 53OMF)
# 인물들 ** ** *** *** ***
427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ès, 기원전 427-347)(80살),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우주론을 이데아, 데미우르고스, 플라노메네 아이티아, 세 위상으로 전개한다. (소크라테스 나이 42살이었고) [그리고 18년 후에 배울 수 있을 있었다면, 소크라테스 나이 60살이었으며 10여년을 따라다니며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Aristoteles, 384-322 av. J.-C.)(62살) 플라톤의 제자, 마케도니아 출신 철학자. 사물의 탐구를 위한 네 가지 방식을 형상인, 목적인, 효과인, 질료인으로 구분한다.
O
205 플로티누스(Plotin, Πλωτῖνος, Plotinus, 205-270)(65살) 이집트에서 태어난 그리스철학자. 그의 철학은 아랍-이슬람 사상의근원을 이루고 서양 중세 철학에도 깊은 영감을 불어넣었다.
354 아우구스티누스(Hipponensis, 354-430) 북아프리카인 알제리 및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기독교 신학자이자 주교로, 개신교, 로마 가톨릭교회 등 서방 기독교에서 교부로 존경받는 인물이다.o
[프랑스 중세 철학]
316 성 마르땅(Saint Martin de Tours, Martin le Miséricordieux, 316-397) 로마 군인, 프랑스 크리스트교 성자. 그는 수비대장 시절에 자신의 망토의 반을 잘라서 거지에게 준 일화로서 알려졌다. 개종하여 주교를 지냈다. 투르의 성마르땅 성당은 프랑스 4대 성지 중의 하나이다.
538, 그레고와르 드 투르(Georges Florent Grégoire (Georgius Florentius Gregorius) de Tours, 538-594) 투르 주교, 교회 역사가, 프랑크족 역사가. Dix livres d’histoire (Decem libros historiarum), 574년경(Histoire des Francs)
735 알퀭/알쿠이누스(Alcuin, 735-804) 영국 요크셔 출신 프랑스 투르에서 졸. 라틴어를 사용한 영국 시인, 학식자, 신학자. 샤룰마뉴의 친구이자 자문관. 카롤링제국의 가장 큰 학파를 이끌었다.
755 테오뒬프(Théodulf d'Orléans, ou Théodulfe, 755-820 (plutôt que 821) 스페인(비지고트족)출생 앙제에서 몰했다. 교회인물이며, 카롤링거 시대 문인, 오를레앙 주교. 카롤링거 왕조 르네상스« Renaissance carolingienne »의 중심인물.
[768 샤를마뉴(Charlmagne, 742-814) [칼 대제(Karl der Groβe), 샤를 1세], 프랑크왕 재위 768-814, 로마황제 재위 800-814): 메로빙어(Merowinger) 왕조는 일종의 제정일치체제를 가진 카롤링어(Karolinger) 왕조로]
810 에리우게나(Jean Scot Érigène, Johannes Scotus Eriugena, 810경–877) 신부, 철학자, 번역가. / 아일랜드 신학자.(Irish theologian)
[980 아비세나/ 이븐 시나(Avicenna, Ibn Sina, Αβικέννας, 980-1037) 페르샤 철학자, 의사, 회교 종교인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연구자. 천문학, 연금술, 심리학에 해박하다. Canon de la médecine Livre de la guérison [des âmes],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플라톤을 가미한 철학으로 이슬람 신앙을 해석하였는데,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프란체스코파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990 고닐롱(Gaunilon ou Gaunilo, 990경-1083경) 투르의 마르무티에 수도원의 베네딕트 수도사, 그는 안셀무스의 신의 현존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비판으로 알려졌다. / 독일 중세 철학사가 플라쉬(Kurt Flasch, 1930-)가 고닐롱 연구.
998 베랑제(Bérenger de Tours (Beringerius Turonensis), 998-1088) 투르 출신 프랑스 신학자. 1050년 이탈리아 베르세이 공의회에서 랑프랑(Lanfranc, 1010경-1089)의 반박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1006 샤르트르 학파(L'École de Chartres ou École de la cathédrale de Chartres ou académie chartraine, 1006) 퓔베르 주교에 의해 창설.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보에티우스에 토대를 둔다. / 퓔베르(Fulbert de Chartres, 970경-1028) 1006-1028 샤르트르 주교. 참여자들로 이브 드 샤르트르(Yves de Chartres 1040경-1116), 베르나르 드 샤르트르(Bernard de Chartres, vers 1130-1160), 질베르 드 포레(Gilbert de la Porrée, 1076-1154), 띠에리 드 샤르트르(Thierry de Chartres, 1155년 사망), 기욤 드 콩쉬(Guillaume de Conches, 1088-1154), 장 드 살리스버리(Jean de Salisbury(1115-1180, 영국인 배우러 왔다), 베르나르 실베스트르(Bernard Silvestre(1100경-1165경)[베르나르 샤르트르와 오랫동안 혼동되었다],
[1007 다미아니(Pierre Damien (lat. Petrus Damianus, it. Pier Damiani), 1007경-1072) 이탈리아의 [은둔주의] 카말둘 수도원(L'ordre camaldule) 수도사, 대주교, 추기경. De divina omnipotentia, sur la puissance de Dieu, s.d. ]
1050 로스켈레누스(Jean Roscelin, Roscellinus, 1050경-1121경), 프랑스 스콜라 철학자, 유명론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1070 기욤 드 샹포(Guillaume de Champeaux, 1070-1211) 노트르담 대성당 학교의 교장, 파리 생-빅트와르 수도원 창설자. 신학자, 철학자. 보편논쟁에서 온건한 실재론자. 아벨라르의 스승. [로비네는 이 철학자를 언급하지 않았다. 기호론의 창시자 일 것인데.. 그는 아벨라르의 개념론에 반대했다고 한다.]
1079 아벨라르(Pierre Abélard, (Petrus Abaelardus), 1079-1142) 프랑스 철학자, 변증론자, 신학자. 개념주의 발명자(inventeur du conceptualisme). Epistolae duorum amantium (Lettres des deux amants), 1115 La romance d'Héloïse (1113-1115). 긍정과 부정(Sic et non, 1122), 불행한 이야기(Historia calamitatum 1132), L'Histoire de mes Malheurs), 편지 「Historia calamitatum. Epistola I) (« Histoire de mes malheurs. Lettre I », vers 1132)」
1090 베르나르(Bernard de Fontaine, abbé de Clairvaux, 1090-1153) 수도사, 카톨릭 종교적 삶의 개혁자. 시토파 수도원(l'ordre cistercien (ou ordre de Cîteaux) 창시자. 아벨라르와 투쟁했고, 카타르파를 이단으로 몰았다. 십자군 전쟁(la seconde croisade, 1146)을 설교했다.
1096 위그(Hugues de Saint-Victor, 1096-1141) 독일 삭스지방 출생 파리에서 몰. 중세 철학자, 신학자, 신비작가. 저술이 많다. 크리스트교 신앙의 성례(聖禮)(De sacramentis fidei chritianæ 1141 [Des sacrements de la foi chrétienne](미완성작) 교육론(Didascalicon ou Eruditio didascalica (vers 1135)
[1103 안셀무스(Anselme de Cantorbéry, lat. Anselmus Cantuariensis, 1033-1109), 이탈라이아 태생, 베네딕트 수도사. 영국 칸터베리의 대주교. Monologion de Divinitatis (Solilogue sur la Divinité), 1075-1076 Proslogion seu Alloquium de Dei existentia (Supplément ou Allocution sur l'existence de Dieu), 1077-1078]
1114 알랭 드 릴(Allain de Lille, 1114-1202), 프랑스 신학자, 시인. 자연의 한탄(La plainte de la Nature. De planctu naturae)(vers 1167-1173)
1126 아베로에즈(Averroes, Ibn Rushd, 1126-1198) 스페인의 아랍계 철학자, 알가잘리가 철학자의 부조리(تهافت الفلاسفة 타하풋 알팔라시파)를 쓴 데 대해 그 반론으로서 부조리의 부조리Incohérence de l'Incohérence)를 썼다. Grand Commentaire du De anima, Discours décisif. [에베로에스주의자들 / 브라방(Siger de Brabant, 1240-1284) 네델란드 태생으로 이탈리에서 몰하다. 에베로에스 주의자로 단죄 받았다. / 쟝 드 쟝됭(Jean de Jandun, 1280경-1328) 프랑스 아르덴지방 출신 이탈리아에서 몰했다. 아베로에스주의자. 정치 신학자.]
1175 로베르 그로스떼뜨(Robert Grossetete. 1175-1254) 영국 학자. 프란체스코파 재속 성직자, 주교를 지냈다.
1190 기욤 도베르뉴(Guillaume d'Auvergne, 1190-1249) 신학자, 생루이의 자문관, 파리주교. Il a participé en 1241 à Paris au procès du Talmud.
[1193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1193--1280) 독일 신학자, 철학자. 자연과학자. 일 스콜라 철학자로 도미니크(Dominique) 교단(敎團)의 수도사(修道士)였고,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을 전파하였다.]
1214 베이컨 (Roger Bacon, 1214-1294), (Doctor mirabilis, « Docteur admirable ») 영국 철학자, 과학자, 연금술사. 샤르트르학파와 연계되어 있다.
1221 보나벤투라(Bonaventure de Bagnoregio / Bonaventura de Bagnoregio, 1221-1274) 이탈리아출신, 리용 공의회(le IIe concile de Lyon) 준비중 사망(독살설), 카톨릭 신부, 프란체스코파, 신학자, 추기경(cardinal, 1221–1274), 플라톤주의자.
1227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d'Aquin, Thomas Aquinas 1227-1274) 이탈리아 중부 아키노 출생, 이탈리아 중부에서 몰. 파리 대학 수학(1245-1248), 강의(1268-1272), 동 로마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 도미니크 수도원으로 갔다. 아랍-이슬람 문화에 시달리던 서구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정리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
1230k 삐에르 드 마리꾸르 (Pierre de Maricourt, surnommé Petrus Peregrinus (« Pierre le Pèlerin »), 13세기 인물) 삐까르디 출생, 중세 과학자. 1269년에 자석의 성질을 다른 저술을 썼다. 다루었다. .
[1265 둔스 스코투스(John Duns Scot, Duns Scotus, 1265-1308)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프란체스코 수도원에 속하였으며, 변증법을 미묘하게 잘 다루었기 때문에 "정밀한(subtile) 박사"라 불린다. 토마스주의에 반대. [들뢰즈가 주목한다.]
[1265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 이탈리아 플로랑스 시인, 작가. 신곡(Divine Comédie (en italien Divina Commedia)(1303 et 1321 사이), - [대흑사병과 직접관련이 없다. 1346년-1353년 사이에 흑사병 전파.]
1285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Guillaume d'Ockham, 1270/85경-1349) 영국 태생 프랑스에서 활동, 유명론자. 프란체스코파,
1285 프랑스와 드 메이론(François de Meyronnes, 1285-1327), 프로방스 지방의 프란체스코파 작은 형제회(Frère mineur) 철학자, 신학자, 둔스 스코투스 제자.
1300 니콜라 도트레꾸르(Nicolas d'Autrécourt, 1300경-1350), 유명론자. 오캄주의자. 유명론 철학자. 1346년과 1347년 사이 이단으로 몰리고 그의 책이 불탔다. 그 후 메츠에서 교회 참사원으로 지냈다.
1300 쟝 드 미르쿠르(Jean de Mirecourt, alias Monachus Albus, 1300경-1349년 이후), 시토파 철학자. 오캄의 제자.
1300 뷔리당(Jean Buridan 1300-1358) (라)Joannes Buridanus. 파리대학에서 공부한 프랑스 철학자, 열렬한 오캄주의자. 광학, 역학 분야의 과학이론가. 1340년경 임페투스 이론(théorie de l'impetus, 충격론)을 재발견.
1316 알베르 드 삭스(Albert de Saxe, lat. Albertus de Saxonia, 1316경–1390) 독일 철학자, 파리에와서 공부, 뷔리당 제자.
1320 니꼴라 오레슴(Nicole Oresme, Nicolas Oresme, 1320/22-1382) 독일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음악학자, 물리학자. 신학자. 주교를 지냈다.
1351 삐에르 데이이(Pierre d'Ailly, lat. Petrus de Alliarco, 1351-1420) 프랑스 추기경, 신학, 우주학, 점성학을 다루어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1433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는 플라톤을 강조한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종합으로 되돌아 왔다.]
[1452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이탈리아출신, 1516년 프랑수아 1세의 요청으로 프랑스 루아르 강가의 앙부아즈 성에 기거하게 되고, 여기서 <모나리자>가 완성된다. 1519년 4월 23일 세상을 떠난다.]
[1462 폼포나치(Pietro Pomponazzi, 1462-1525) 이탈리아 만투 출신이며 볼로뉴에서 몰했다.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철학자. 파두아 대학에서 자연철학을 가르쳤다. 아베로에스 사상 옹호. 벨은 “사전”에서 그를 “그의 세기에 가장 탁월한 철학자”라 썼다.]
[1466 에라스무스(Erasme, 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 1466/1469-1536) 네델란드 인문주의자 신학자.]
1467 뷔데(Guillaume Budé, 1467-1540) 프랑스 인문주의자. Commentarii linquae graecae (Commentaires sur la langue grecque, en latin, Paris, 1529),
1509 돌레(Étienne Dolet, 1509-1546) 오를레앙 출신 파리활동. 프랑스 작가, 인문주의자, 문헌학자. 1526, 파두아에 가서, 스승겸 친구인 빌라노바(Simon de Villanova, s.d..)에게 배우다.
1510 포스텔(Guillaume Postel, 1510-1581) 프랑스 동방학자, 문헌학자, 신지학자(théosophe), 크리스트교적 카발라의 대표자.
1512 비코메르카토(Francesco Vimercati, ou Vimercato, fr. François Vicomercato, 1512-1571) 밀라노 소요학파 철학자. 한때 파두아에서 아베로에스를 배웠다. 프랑스에서 1542년 왕립 학교(Collège royal, Collège de France의 옛이름)교수 엮임,
1515 라 라메(Pierre de La Ramée, Petrus Ramus, 1515경-1572) 프랑스 논리학자 철학자. 개종한 캘빈주의자. 생-바르텔미 학살에서 암살당하다. 많은 저술을 라틴어로 썼는데, 프랑스어로 논문을 썼다. Grammaire Française (1562)프랑스어로 논문을 썼다.
1529 보댕(Jean Bodin, 1529-1596) 프랑스의 법학자, 사상가. 인간의 생존권과 생활체계를 신앙문제에서 분리하고, 정치에서의 덕과 신학에서의 덕을 구별, 종교로부터의 국가의 독립을 주장하였다. 국가론(Les Six livres de la République, 6권, 1576)
1533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 프랑스의 사상가, 모랄리스트. 프랑스의 르네상스기(期)를 대표하는 철학자, 문학자이며 수상록의 저자이다.
1541 샤롱(Pierre Charron, 1541–1603) 프랑스 신학자, 철학자, 연설가, 주로 옥시타니(Occitanie)지역에서 활동하고, 몽테뉴를 만나 좋은 친구가 되었다.
1556 기욤 뒤 베르(Guillaume du Vair, 1556-1621), 고위 성직자, 정치가, 도덕론 작가. 루이 13세의 법무부 장관(un Garde des sceaux) 1591는 에픽테투스의 지침서(Le Manuel)를 번역했다.
1559 시르몽(Jacques Sirmond, 1559-1651) 프랑스 제수이트 신부, 역사가, 교부학자(patrologue), 박학다식, 루이 13세의 고해신부. Historia Praedestinatiana, 1848
[1561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영국 철학자, 정치인. 경험론의 시조.]
[1564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 이탈리아 물리학자, 천문학자.] .
[1571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독일 천문학자, 수학자.]
1581 생시랑(Jean Duvergier de Hauranne, dit Saint-Cyran, 1581-1643), 카톨릭 신부, 신학자. 프랑스에 쟝세니즘의 도입자이며 지도자.
[1585 얀센(Cornelius Jansen, Jansénius, 1585-1638) 벨기에 이프르 주교. 사후 1653 로만카톨릭에서 단죄.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 1643 – 1651년까지 모후 안 도트리쉬 섭정 - 1715)의 박해(즉 얀센주의 박해).
1588 메르센(Marin Mersenne, 1588-1648) 미님 수도원(l'ordre des Minimes)의 신앙자. 프랑스의 물리학자, 수학자.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널리 서신 왕래를 하여 학문적인 의견을 교환했는데 당시 그를 중개자로 학자간의 의견교류와 연구결과 보고가 이루어졌다. 우주의 조화(Harmonie universelle, 1636-1637)
1588 라 모트 드 (François de La Mothe Le Vayer, 1588-1672) 프랑스 철학자, 문헌학자, 역사가. 자유 사상(la pensée libertine)의 대표자. 회의주의 경향에 속한다고 한다. 1980년대 이전에는 오랫동안 오해로 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이다. 리슐리에의 후원과 마자랭의 도움을 받았다.
1592 가상디(Pierre Gassend, 1592-1655) 프랑스 수학자, 철학자, 신학자, 천문학자. Disquisitio metaphysica seu dubitationes et instantiae adversus Renati Cartesii metaphysicam et responsa, (1644)
[프랑스 근대 철학]
1596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의학자 철학자이다. 그는 새로운 철학의 방법을 제시하고, 당시 카톨릭의 비판을 피하여 네델란드에서 지냈다. 방법서설(Le Discours de la méthode (1637)
1600 바르코 (Martin de Barcos (1600-1678) 프랑스 신학자. 쟝네시즘 학파. 오란(Jean Duvergier de Hauranne)과 아르노(Antoine Arnauld)와 우정,
1612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 프랑스 성직자, 수학자. 신학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는 쟝세니즘의 대표가 되었으며, 소르본 대학으로부터 배척당했고, 포르-르와얄로 은퇴했다. 그리고 박해가 다시 심해져서, 플랑드르와 네델란드로 추방되었다.
1618 로오(Jacques Rohault, 1618-1672) 프랑스 물리학자. 데카르트의 물리학을 실험으로 민중화하고,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몰락에 기여했다.
1623 파스칼 (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이다. 그는 공기의 기압을 실험하기도 하였다. 쟝세니스트로서 크리스트 신비주의에 빠졌다. 이상하게도 그의 글은 다른 철학자들의 글과 마찬가지로 로마 교황청의 금서목록에 계속 올랐었다.
1625 니꼴(Pierre Nicole, 1625-1695) 프랑스 신학자, 도덕론자 논리학자. 1649 신학 학사 학위를 받았으나, 그 다음 당시의 쟝세니즘의 다섯 명제의 소동 때문에 신학 석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1626 코르드무와(Louis Géraud de Cordemoy, 1626-1684) 프랑스 변호사, 철학자, 역사가. 데카르트 찬양자. 1675년 학술원 회원.
[1629 호이겐스(Christian Huygens, 1629-1695) 네델란드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1632 라 포르쥬(Louis de La Forge, 1632-1666)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친구이며 데카르트의 체계를 이용했다. 이원론의 토대위에 기회원인론을 정립했다.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네델란드 철학자.
1634 케넬 (Pasquier Quesnel, 1634-1719) 오라토리오 교단 신부. 프랑스 신학자, 쟝세니스트. 쟝세니스트 논쟁에 깊이 관여했고, 암스테르담에서 몰했다.
1638 말브랑쉬 (Nicolas de Malebranche, 1638-1715) 프랑스 카톨릭 중의 오라트와르의 신부로서 세계의 형성에 대한 기회원인론을 주장하였다.
[1640 얀센(Cornelius Jansen, 1585-1638)의 저술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1640)의 출간. 1653년 로만 카톨릭에서 책을 단죄.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 재위 1643 – 1651년까지 모후 안도트리쉬 섭정 - 1715)도 박해(즉 얀센주의 박해)하다.
1640 라미(Bernard Lamy, 1640-1715) 프랑스 수학자, 철학자, 물리학자. 말브랑쉬 친구. 학문들에 관한 대화(Entretiens sur les Sciences, 1684)
1646 라이프니쯔(Gottfrid Leibniz, 1646-1716) 이 다재다능한 철학자는 프랑스에 거주한 시간이 많아서 많은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그리고 그는 뉴턴과 서로 달리 미적분을 발명하였다.
1647 벨(Pierre Bayle, 1647-1706) 프랑스 철학자, 작가, 사전편찬자. 역사와 비평 사전(Dictionnaire historique et critique, 1697(초판 4권)
1657 퐁뜨넬(Bernard Le Bouyer (ou Le Bovier) de Fontenelle, 1657-1757) 퐁뜨넬 수도원 창설자. 프랑스 작가, 과학자. 시인. 1691년 학술원(Académie française)회원이며, 1697-1740까지 ‘과학 아카데미’의 사무총장(Secrétaire perpétuel Académie des sciences).
1661 로피딸/로스피딸(Guillaume François Antoine de L'Hôpital/L'Hospital, 1661-1704), 프랑스 수학자. 무한소의 분석(Analyse des infiniment petits pour l'intelligence des lignes courbes. 1696
1689 몽테스키외(Charles Louis de Secondat, Baron de Brède et de Montesquieu, 1689-1755) 보르도 지방 브레드에서 태어나, 그 지역 의회의 의장을 맡았다. 정치적 관심뿐만 아니라 문학적 관심의 작품도 있다.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 (1748)
1694 볼테르(Voltaire, 본명 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 계몽주의 사상가. 정의와 관용의 철학자. 민족들의 정신과 풍습에 관한 시론(Essai sur les mœurs et l'esprit des nations, 1756)
1698 모페르튀(Pierre Louis Moreau de Maupertuis, 1698-1759), 프랑스 수학자, 천문학자, 박물학자, 철학자. 유럽에 뉴턴 전파자.
1709 라메트리(Julien Offroy de La Mettrie, 1709-1751) 프랑스의 의학자, 철학자. 계몽시대의 대표적 유물론자로, 인간기계론(1747)
1712 룻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프랑스 17세기 절대왕정 시대에, 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지니고, 인민의 자아의식의 성장을 직감했던 계몽의 철학자이다.
1713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계몽주의시기 프랑스 백과전서파 철학자.
1714 꽁디약(Etienne Bonnot de Condillac, 1714-1780) 감각론자. 인간 인식의 기원에 관한 시론(Essai sur l’origine des connaissances humaines 1746)
1715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étius, 1715-1771) 프랑스 유물론자. 철학자. 프랑마송, 시인. 아버지(Jean-Claude-Adrien Helvétius, 1685-1755)는 의사이다. De l'esprit. 1759, De l’homme(posthume, 1773).
1716 동 데샹(Léger Marie Deschamps, 베네딕트파 명칭 Dom Deschamps, 1716-1774) 프랑스 철학자(형이상학), 이상주의자. 루소, 달랑베르, 엘베시우스, 디드로와 편지교환을 했다. 디드로는 그를 무신론 수도자("moine athée")라 칭했다. 그는 생애동안에 알려지지 않았고, 1862년 필사본이 발견되었고 1993년에 저술들이 출판되었다.
1717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1717-1783)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역학의 일반화의 기초를 닦아 해석역학으로의 전개를 마련함으로써 역학발전의 한 단계를 이룩하였다. 역학론(Traité de dynamique, 1743)
1723 올바흐(Paul Henri d'Holbach, 1723-1789) 백과전서파
1724 칸트(Emmanuel Kant, 1724-1804), 순수이성 비판Critique de la raison pure, 1781)
1740 사드 (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1740-1814) 프랑스 문인, 소설가, 철학자, 정치인, 작품의 폭력과 잔인성 때문에 오랫동안 파문당했다. 무신론과 반성직자 표현르로 금서목록에 올랐다.
1743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 1743-1794)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 정치가. 계몽주의 철학자, 교육개혁 옹호자. 인류가 무한히 완전해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진보 이념을 내세운 주요혁명가 중 한 사람이다. 인간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관 Esquisse d'un tableau historique des progrès de l'esprit humain(1795)
1743 라봐지에(Antoine Laurent Lavoisier, 1743-1794) 연금술에서 화학으로.
[1744 라마르크(Jean-Baptiste-Pierre Antoine de Monet, Chevalier de Lamarck, 1744-1829), 『동물철학, 1809』]
[1749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 1749-1827): 우주란 작은 부분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추적할 수만 있다면 미래 일은 예측 가능하다> Traité de mécanique céleste, 4권, 1799-1805, Théorie analytique des probabilités, 1812; Essai philosophique sur les probabilités, 1814. ]
1750 마레샬(Sylvain Maréchal, 1750-1803), 법학공부로 변호사. 프랑스 작가, 시인, 팜플렛작가. 공화파 운동가이며, 총파업과 아나키즘의 선구자이다. 혁명 동안에는 무신론자이다. 바뵈프와 더불어 “평등당” 참여자이다. 「Manifeste des égaux 1801」(avec Gracchus Babeuf)
1753 메스트르(comte Joseph de Maistre 1753-1821) 프랑스 정치가, 보날과 함께 프랑스혁명의 반대자였다.
1754 보날(Louis Bonald 1754-1840), 프랑스 철학자. 그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 루소처럼 계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했다.
1754 데스뛰 드 트라시(Destutt de Tracy 1754-1836) 프랑스 철학자 정치가.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
1757 카바니스(Pierre Jean Georges Cabanis, 1757-1808) 의사 철학자. 그는 본능 속에 유기적 세계와 지적 세계의 연결을 보았다. 그는 나중에 유심론으로 돌았다.
1758 갈(Franz Joseph Gall, 1758-1828) 독일(-프랑스) 의사, 신경해부학자. 골상학 토대자. 그의 조수인 스푸르쯔하임(Johann Gaspar Spurzheim, 1776-1832)에 의해 식민지 인민이 천성적으로 열등하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1760 생시몽(Comte de Saint-Simon, Claude Henri de Rouvroy de Saint-Simon, 1760-1825) 프랑스의 사회주의 사상가. 역사는 지속적으로 진보한다는 역사의 발전적 전개를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비산업 계급과 산업 계급이 투쟁하던 과거를 개선, 양자가 협력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하였다.
1763 르와예 콜라르(Pierre-Paul Royer-Collard 1763-1845) 프랑스의 정치가, 철학자. 부르봉 왕조에 의한 입헌군주제를 주장했으며, 전형적인 실재적 지각론자(知覺論者)이다.
1766 비랑(Pierre Maine de Biran, Marie François Pierre Gontier de Biran, 1766-1824), 프랑스 철학자, 수학자, 유심론의 흐름에 속하는 심리학의 선구자.
[1769 퀴비에(Georges Léopold Chrétien Fréderic Dagobert Cuvier 1769-1832) 프랑스의 동물학자. 비교해부학과 고생물학의 창시자이다.]
1771 비샤(Marie François Xavier Bichat 1771-1802) 프랑스 의사 생리학자.
[1772 조프루아 생틸레르(Etienne Geoffroy Saint-Hilaire 1772-1844) 프랑스의 동물학자. 모든 동물은 오직 하나의 기본형에서 형성되고 있으며 각 기관의 위치가 구조적으로 불변임을 주장하였다. 생물의 진화에 관해서는 환경의 직접작용을 주장하였다. 진화론사상 라마르크와 C.다윈을 중계하는 위치에 있으며, 퀴비에와 함께 비교 해부학의 확립에 공헌하였다.]
1772 샤를 푸리에(François Marie Charles Fourier, 1772-1837)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자유로운 생산자의 협동조합인 팔랑스테르(phalanstères, 공동생활체)를 실현할 것을 주장하였다.
[1777 블랑빌(Henri-Marie Ducrotay de Blainville, 1777-1850) 프랑스 동물학자, 해부학자. 의학박사, 연체동물 전공자. 자연사 자연박물관의 연체동물관장.]
1792 쿠쟁(Victor Cousin, 1792-1867) 프랑스의 철학자. 절충주의자이다.
1796 주프르와(Théodore Simon Jouffroy, 1796-1842) 프랑스 철학자. 절충주의자.
[1800 미뉴(Jacques-Paul Migne, 1800-1875) 프랑스 신부, 인쇄가, 종교서적 편집자. 교부저작 전집(Patrologia Latina, fr. Patrologie(1841-1855)(교부들 127권, 인덱스3권: 테르툴리아누스부터 이노센트 3세까지 10세기) / 르낭(E. Renan, 1823-1892)의 열전과 달리, 그 당대의 철학을 볼 수 있다. - 에띠엔 질송이 연구했다.]
1801 리트레(Émile Littré (Maximilien Paul), 1801-1881) 프랑스 의사, 사전편찬자, 철학자. Dictionnaire de la langue française(통칭 « le Littré »)
1801 꾸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 프랑스 수학자, 경제학자, 철학자. 수학에 조예가 깊은 그는 철학에서 본질과 우연과 다른 자연현상 속에서 요행과 우연에 대한 방식을 수학적으로 정립하고자 한다. 이 법칙 없는 현상이 합리적 사유로 불합리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률과 개연성의 개념을 설명한다.
1812 오레오(Jean-Barthélemy Hauréau, 1812-1896) 프랑스 역사가, 기자, 행정가.
1815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 1815-1903)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의 작품이 있다.
1816 고비노(Arthur de Gobineau, le comte de Gobineau, 1816-1882) 프랑스 외교관, 작가, 정치가. 인종 불평등에 관한 시론(Essai sur l'inégalité des races humaines (1853-1855)
1823 르낭(Joseph-Ernest Renan, 1823-1892) 프랑스의 사상가, 종교사가, 언어학자. 프랑스 실증주의 대표자의 한 사람. 그리스도교 기원사, 7권, 1863~1883).
1828 뗀(Hippolyte Taine, 1828-1893) 프랑스 철학자 역사가 비평가이다. (53OMD)
[프랑스 현대 철학]
1859 벩송(Henri Bergson, 1859-1941)
1861 뒤앙(Pierre Maurice Marie Duhem, 1861-1916) 물리학자, 화학자, 역사가, 과학철학, 세계의 체계: 플라톤에서 코페르니쿠스까지 우주론들의 역사(Le Système du Monde. Histoire des Doctrines cosmologiques de Platon à Copernic.(10 vol., 1913—1959).
1861 모리스 블롱델(Maurice Blondel, 1861-1949) 프랑스 철학자. 행동의 철학. 크리스트교 철학 맥락에서 L'action: essai d'une critique de la vie et d'une science de la pratique, 1893
1869 브룅슈비끄(Léon Brunschvicg, 1869-1944) 문학으로 에콜노르말에 입학, 철학교수자격시험 1등, 프랑스 과학철학자, 칸트와 스피노자 경향의 프랑스 관념론 철학사가, Les étapes de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1912.
[1876 샤를 블롱델(Charles Blondel, 1876-1939), 프랑스 철학자, 심리학자. ENS,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의 제자. 철학으로 교수자격, 의학박사, 문학박사. 아날학파 학자들은 그의 정신성(mentalité)개념을 빌려다 썼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자.]
1892 꼬이레(Alexandre Koyré 1892-1964)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인식론자이자 철학자이다.
1898 앙리 구이에(Henri Gouhier, 1898-1994)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 문예비평. 1941년부터 소르본 교수로 지내다가 1979년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블레즈 파칼 주석(1966)은 전문서이다. 벩송에 관한 단행본들도 있다.
1900 메나르(Pierre Mesnard, 1900-1969) ENS 대학교수, 프랑스 철학사가. L'essor de la philosophie politique au XVIe siècle, 1936. Essai sur la morale de Descartes, Paris, Boivin, 1936.
1922 로비네(André Robinet, 1922-2016),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 벩송 전집과 잡문집 편집책임자.
1932 트로티뇽(Pierre Trotignon, 1932-)의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Les philosophes français d’aujourd’hui, 1967), L'idée de vie chez Bergson et la critique de la métaphysique (1968) Les philosophes français de 1945 à 1965 (1994) (14:04, 53OKB)
(19:01, 53OMD) (18:26, 53OM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