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2.0이 마련한 '올해의 포스터'가 3회째를 맞았다. 매년 놀랄 만큼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 온 한국영화의 포스터는 2003년, 변화하는 한국영화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독특한 흐름을 선보여 왔다. 2002년의 대세이기도 했던 키치적인 디자인의 포스터들이 여전히 유행한 한편, 스릴러와 공포영화들의 차분하고도 흡입력 있는 포스터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년과 달리 단순한 호기심 유발의 차원을 벗어나 관객의 발길을 극장까지 인도한 힘센 포스터들도 여러 편 등장했다. 올 한 해 한국영화 포스터의 흐름을 정리하며 심사 위원들의 열띤 토론을 통해 '올해의 포스터' 6편을 선정했다. 어느 해 못지않게 어려운 선택이었다.
심사위원
김민수(디자인문화비평 편집인, 전 서울대 교수)
김미희(영화제작사 ‘좋은 영화’ 대표)
김중만(사진 작가)
박웅현(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병원(FILM2.0 취재팀장)
2003 올해의 포스터
올해의 포스터 (가나다순)<똥개> <4인용 식탁>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실미도> <장화, 홍련> <품행제로>
베스트 포토 <장화, 홍련> 베스트 디자인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 여우계단> 베스트 카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실미도>
제작사 시네마서비스 | 디자인 자몽 안태희 | 사진 오형근 | 카피 정승혜
내가 블록버스터임을 알리지 말라
아직 촬영 중인 <실미도>의 정체를 드러낼 순 없었다. 더군다나 강우석 감독은 관객들의 선입견을 우려해 포스터 문구에서 ‘블록버스터’라는 말을 금지시켰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주연 배우로 알려진 설경구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티저 포스터를 만드는 것뿐이었다. 사진을 맡은 오형근 작가는 실미도에서 북파 공작원으로 훈련을 받는 동안 수차례 지옥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먼저 ‘감금’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감금’의 이미지는 철조망의 이미지로 연결됐고, 포스터상에서 설경구의 강한 눈빛을 받아주는 장치로 사용됐다. 설경구는 오랜만에 실제로 설치한 철조망을 움켜쥐고 정적이면서도 강렬한 연기를 보여 줬다. 사실상 이 포스터는 오형근 작가와 설경구의 독한 기 싸움으로 탄생했다. 당시의 피곤함이 카메라를 보는 설경구의 눈빛을 더욱 오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설경구의 턱 밑으로 보이는 '실미도' 로고는 디자인 회사 자몽의 안태희 실장이 30만 원짜리 붓을 구입해 직접 손으로 쓴 글씨다. 최근 많은 디자이너들이 포스터에 쓸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를 개발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보여 주는 한 예다. 촬영이 끝난 후 외부에서 재촬영을 하려던 계획을 접었을 만큼 만족스러웠던 흑백 사진은 거친 피부에서 귓가의 솜털까지 콘트라스트를 강조했다. 684 부대의 그늘진 삶을 꿰뚫는 듯한 깊은 심도의 이미지 앞에서 말은 필요 없었다. 포스터 위에 '2003년 초대형 극비 프로젝트'라는 단순한 문구만을 얹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장화, 홍련>
제작사 마술피리 | 디자인 나무디자인 | 사진 오형근 | 카피 영화사봄 마케팅팀
충격과 공포의 소용돌이
<장화, 홍련>의 포스터는 가히 충격이었다. 무심한 얼굴의 아버지, 요기가 흐르는 어머니의 웃음, 그리고 피범벅이 된 채 혼이 나간 얼굴을 한 두 소녀의 이미지는 가족 괴담 <장화, 홍련>을 십대들의 화두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 충격의 포스터는 구전되던 '장화, 홍련' 이야기가 현대적으로 어떻게 각색되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부풀렸다. 그것 외에 다른 어떤 비주얼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관객의 의식을 지배했던 이 피의 포스터는 거의 아름다운 괴물의 모습이다. 소녀들을 적신 혈흔이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다. 오형근 작가는 아이들이 앉아 있는 로코코풍의 소파조차 피로 흠뻑 적시고 싶었지만 촬영을 위해 빌려온 소파가 자그마치 8백만 원이었으니 피 한 방울도 묻혀서는 안 되는 아슬아슬함이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애써 절제의 미덕을 발휘한 것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 티저로 촬영된 이 포스터는 관객과 영화계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자 메인 포스터로 낙찰됐다. 나무디자인의 송은미 실장은 사진의 강렬함을 한껏 고조시키기 위해 타이포그래피를 평범하게 눌러주며 조화를 맞췄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라는 언뜻 보기에 불균형적인 카피는 귀신 들린 집에 사는 가족들의 비극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며 나직하고 은근하게 주문을 거는 역할을 했다. 김지운 감독은 "가족이 지닌 슬픔과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달라고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올 줄은 몰랐다"며 흡족해 했다는 후문이다.
<똥개>
제작사 진인사필름 | 디자인 그림커뮤니케이션 배광호 | 사진 김재영 | 카피 진인사필름 마케팅팀
왜 사냐고 물으면 웃지요
"웃음 속에 눈물이 있어야 하는데." <똥개>의 티저 포스터가 정우성의 장난기 어린 모습을 담았던 반면 메인 포스터는 드라마에 집중하기를 원했던 곽경택 감독의 주문이었다. 감독의 주문을 듣고 풀밭에 누워 있는 똥개를 연상한 김재영 작가는 곧 촬영 장소를 물색했다. 푸른 풀밭은 똥개에겐 부서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었던 까닭에 헌팅이 매우 중요했다. 다행히도 후배인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의 소개로 서울시 명륜동에 위치한 영화사 원필름의 앞마당을 빌릴 수 있었다. 김재영 작가는 단 한 컷으로 똥개의 고달픈 인생을 드러내기 위해 풀밭에 누운 정우성을 직부감으로 찍었다. 입은 환하게 웃고 있지만 눈은 촉촉하게 젖어 있는 '똥개' 철민의 모습이자 영화 <똥개>의 핵심 정서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포스터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디에선가 실컷 싸우고 돌아왔지만 그 서럽고 피곤한 속내를 감추고 변함없이 웃으며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똥개의 삶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세상살이의 피곤함, 그 아귀다툼 속에서도 피어나는 똥개의 낙천성을 살리기 위해 네 시간 동안 눈에 안약을 넣고 머리에 물을 맞아준 정우성의 인내심도 포스터를 완성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쏟아지는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 어렴풋이 뜬 눈은 똥개의 수더분한 웃음을 절묘하게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포스터 촬영 직전에 유치장 신을 찍느라 실제로 얻어맞고 온 정우성의 피멍 든 얼굴은 따로 분장이 필요 없었을 정도. 디자인 그림의 배광호 실장은 김재영 작가의 소박하고 간결한 사진을 해치지 않고 고스란히 포스터에 사용했다. 날씨와 배우의 연기, 스탭들의 정성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한 장의 포스터를 만들어 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제작사 영화사봄 | 디자인 나무디자인 | 사진 오형근 | 카피 영화사봄 기획실
화려한 얼굴로 '통하게' 하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포스터의 전제 조건은 간단했다. 10m 전방에서도 이미숙, 전도연, 배용준 세 배우의 얼굴이 보여야 한다는 것.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인 만큼 지당한 요구였다. 세 사람의 구도는 음모와 애증으로 뒤엉킨 이들의 관계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더더욱 중요했다. 이미숙과 배용준 사이에 전도연을 위치시켜 스토리와 영화의 분위기를 간명하게 드러낸 배치는 원작의 내용을 모르는 이들도 설득할 만큼 세심하다. 세 배우의 의상과 이미숙이 머리에 쓴 가체, 그리고 그들의 뒤로 잘 보이지 않는 가구들까지 모두 영화 촬영이 아니라 포스터 촬영을 위해 새로 제작한 것이다. 어두운 계열의 색이라 오히려 더 차분하고 고혹적으로 보이는 의상도 배우들의 얼굴을 환하게 살려 주었다.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도 자세히 보면 영화 본편보다 더 화려하기까지 하다. 관객에게 영화의 첫인상을 좌우할 포스터이니 아무리 공을 들여도 모자랄 리 없지만, 이 정도면 포스터가 아니라 광고를 제작해도 될 듯하다. 이유진 프로듀서와 정구호 아트 디렉터는 포스터의 컨셉을 잡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배우들의 얼굴을 키우느라 전신 크기로 찍은 이미숙과 전도연의 풍성한 치맛자락이 잘릴 수밖에 없었지만 조선 남녀들의 매혹적인 스캔들을 확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포스터였다.
<품행제로>
제작사 KM컬쳐 | 디자인 이관용 | 사진 권영호 | 카피 윤수정
불량한 청춘의 추억
20명이나 되는 <품행제로>의 출연진들이 한날한시에 양수리 근처의 대형 스튜디오에 모였다. 배우들은 권영호 사진 작가의 인도에 따라 고교 시절 체육 수업 시간을 추억하며 부지런히 움직여 개성 만점의 포즈를 취해 주었다. <품행제로>의 티저 포스터는 31명이 등장하는 <실미도>의 메인 포스터가 나오기 전까지 포스터 안에 가장 많은 수의 인물을 등장시키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이관용 디자이너가 찍은 사진을 놓고 <고교 얄개> 시리즈 등 청춘물이 많았던 70년대 한국영화 포스터를 참고해 디자인을 시작했다. 먼저 개봉했던 <몽정기> 포스터의 키치적인 디자인에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사진을 그림처럼 변환시키고 투박하고 정겨운 느낌을 살렸다. 이제 복고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바탕에 얹을 카피가 고민이었다. 제작사 KM컬쳐는 '날라리' '양아치' 보다는 더 명랑하고 상쾌한 주인공 중필의 캐릭터를 표현할 단어가 필요했다. 카피라이터 윤수정 씨가 써온 ‘모범 시대 불량 영웅’이라는 카피는 '모범'과 '불량' '영웅'이라는 세 단어가 충돌하면서 비딱한 느낌을 안겨줘 관계자들을 모두 흡족하게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기획실 직원들이 준비한 이소룡표 노란색 줄무늬 추리닝을 주연 배우 류승범이 끝끝내 입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류승범은 그 추리닝을 입었다간 영화가 지나치게 코믹해 보일 거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래도 티저 포스터가 뿌려진 후에는 류승범의 후줄근한 파란색 추리닝을 어디서 구할 수 있냐는 문의가 쇄도했다고. 주인공과 영화 제목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면서도 결코 조악하지 않았던 <품행제로>의 티저 포스터는 그렇게 제 몫을 다한 것이다.
<4인용 식탁>
제작사 영화사봄 | 디자인 나무디자인 | 사진 오형근 | 카피 영화사봄 기획실
기괴한 인공미
<4인용 식탁>의 포스터는 영화처럼 기이하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찍은 후 그 사진을 반전시켜 포스터의 하단에 합성한 것이다. <4인용 식탁>은 어느 날 죽은 사람이 눈에 보이게 된 주인공 정원이 타인의 과거를 읽을 수 있는 여인 연을 통해 과거를 깨닫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우리가 걷고 숨 쉬고 말하는 세상의 표면 뒤의 이면을 다루고 있는 까닭에 포스터도 자연히 그런 내용을 반영했다. 마치 수면 위에 떠 있는 것 같기도 한 포스터의 느낌은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는 두 주인공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다양한 포즈를 취하던 전지현의 숙여진 고개와 교차된 손,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박신양의 얼굴은 찰나의 한순간에 카메라에 잡힌 것이다. 원래 의도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단순한 사진을 찍을 작정이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포스터에 전혀 다른 호흡을 불어넣었다. 두 인물의 옆에 물결치듯이 보이는 붉은색의 배경은 타인들은 모르지만 둘만은 이해 가능한 불안한 감정의 기류인 양, 이들의 주변에 흐르고 있다. 붉은 톤의 배경을 선명하게 조절하고 단순한 사진을 합성의 묘미로 되살려낸 디자인이 <4인용 식탁> 포스터의 힘이다. 영화 후반의 반전은 다소 약하다는 평을 얻었지만 포스터의 반전은 그보다 강했다.
베스트 포토 <장화, 홍련>
포토그래퍼 오형근
소녀를 찾아서
오형근 사진 작가는 <장화, 홍련> 주연 배우 오디션의 심사위원이었다. 당시 여고생들을 모델로 찍은 사진만을 모아 '소녀 연기'라는 전시회를 준비 중이던 오작가는 좋은 모델도 찾고 포스터 작업도 할 겸, <장화, 홍련>의 오디션에 참여했다. 그는 이날 영화의 감성에 꼭 맞는 분위기를 지녔던 임수정에게 한 표를 던졌다. 포스터에 대한 힌트는 <장화, 홍련>의 세트장에서 얻었다. 화려하지만 폐쇄적이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는 집안의 가구와 벽지들이 이미 김지운 감독의 시각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미지에 대한 설계가 분명한 김지운 감독 영화의 포스터 작업은 앞으로도 도맡아 찍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그런 생각이 반영된 때문일까? 사진관에서 가족 사진을 찍을 때처럼 평범한 조명을 써서 찍은 <장화, 홍련> 포스터 사진의 위력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작가가 의외의 사실을 고백했다. "두 소녀의 다리 사이에 흐르는 피는 아주 우연히 칠한 것이다. 관객들이 그것을 사춘기 소녀들과 연결된 하혈의 이미지로 해석했다는 게 오히려 놀랍다." 작가도 미처 깨닫지 못한 수많은 해석들을 낳았기에 <장화, 홍련> 포스터의 사진이 더 특별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그는 지금까지 '올해의 포스터'에 유난히 여러 번 이름이 오르내린 인물이다. 1회 때는 그가 찍은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최고의 포스터로 선정됐고, 올해는 '베스트 6'와 '베스트 포토'에 다섯 차례나 이름을 올려놓았다. "올해는 특히 내 성향에 맞는 스릴러와 공포영화들이 많아서 다른 해보다 바빴다.” 내년에는 <태극기 휘날리며>와 <청연> <소금인형>의 포스터에서 그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인물과 정면 대결하는 사진이 좋다는 오형근의 카메라는 지금 한창 <청연>의 여류 비행사를 뒤쫓고 있다.
베스트 디자인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 계단>
디자이너 이관용
여고생들에게서 떨어지지 마
찬반이 엇갈렸다.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 계단>(이하 <여우 계단>)의 포스터에서 머리카락이 소용돌이치면서 괴성을 지르는 것 같은 타이포그래피를 놓고 제작사 씨네2000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씨네2000은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 이미 함께 작업해 본 이관용 실장을 믿고 있었지만, 이번엔 너무 과하지 않느냐, 가독성이 떨어진다, 괴기스럽다며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디자인 회사 스푸트닉의 이관용 실장은 <복수는 나의 것> <고양이를 부탁해> <지구를 지켜라!> <품행제로> 등 여러 포스터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타이포그래피만큼은 영화 내용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독창적인 컨셉을 원했다. 모두가 아니라고 말할 때 그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것은 <여우 계단>을 보러 올 관객들 중 대다수가 10대 여고생일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관용 실장은 '펫숍 오브 호러즈'와 같은 그로테스크하고 장식적인 만화에 10대 여고생들이 열광한다는 점에 착안, 공포를 극단으로 밀어붙여도 된다고 생각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와 달리 <여우 계단>은 공포영화의 관습에 철저한 영화였다는 점도, 뼛속까지 들러붙는 스산한 공포를 강조한다는 ‘결정’에 큰 몫을 했다. 이실장은 여고생들 간의 미묘한 감정을 잡아내는 공간이자 영화의 주인공인 계단을 가운데에 놓고, 대롱대롱 나무에 매달린 사람 인형을 두 친구 사이에 엿보이게 해 한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도록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밤에 보면 무서워 잠이 안 오는 <여우 계단> 포스터는 10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잠 못 들게 했다.
베스트 카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통하였느냐?'
영화사봄 기획실
기 세고 유혹적인 지식 검색어
아무렴. 확실히 통하였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메인 포스터에 쓰인 카피 '...통하였느냐?'는 만장일치로 올해의 '베스트 카피'에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모두 다른 카피는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만큼 ‘...통하였느냐?’가 기가 센 카피였다고 입을 모았다. 정면을 응시하는 이미숙, 전도연, 배용준 세 배우의 시선 속에서 유유히 솟아오르는 이 한마디는 기이한 물음을 품고 있다. 읽는 순간 영화 속 세 사람의 위험한 관계가 머릿속을 관통한다. 인물들의 관계 설정을 완벽하게 암시함과 동시에 무엇을? 어떻게? 정말? 등등 수많은 궁금증을 유발시키기까지 한다. 18세기 프랑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조선 시대라는 배경으로 한번 비튼 후에 그 시대적인 말투를 사용해 관객들에게 일직선으로 다가갔다는 점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영화 개봉 즈음에 이 카피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의 지식 검색창에 수도 없이 입력됐다. ‘...통하였느냐?’의 속뜻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야 가지가지였지만 '보고 싶다'는 반응은 한결같았다. 영화의 기획 의도와 감독의 연출 의도, 마케팅 컨셉을 한꺼번에 소통시킨 이 결정적 카피는 결국 조선 시대 남녀상열지사의 세계로 3백만 명의 관객을 유혹하며 2003년 최고의 농염한 카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