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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천서각공방 원문보기 글쓴이: 우광성
4. 강직 剛直
4.1. 김언신金彦辛
김언신金彦辛은 성조조成廟朝에 지평持平으로 있으면서,
이조판서吏曹判書 현석규玄錫圭를 소인小人이라 부르며 노기盧杞와 왕안석王安石에 견주었다.
이에 임금이 이렇게 말했다.
“의정부議政府와 전조銓曹의 관리에게 마땅히 두루 물어보겠다.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그대는 임금을 속였다는 죄를 받겠는가?”김언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마땅히 극형極刑을 받겠습니다.”
임금은 의정부와 전조의 관리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의정부와 전조의 관리들은 모두 “현석규가 소인인지는 모르겠습니다.”고 대답했다.
이에 임금은 화를 내며 의금부義禁府에명하여 김언신을 잡아다 국문하라고 했는데,
김언신은 국문을 받으면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임금은 김언신을 압송하여 궁궐로 끌어와 국문하라고 명령했다.
김언신이 궁궐의 뜰에 이르자, 임금은 김언신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임금을 속인 죄는 너무도 크니, 마땅히 너를 죽일 것이다.
아직도 현석규가 소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냐”?
김언신은 “신이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현석규는 진실로 소인입니다”라. 대답했다.
이에 임금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현석규를 노기盧杞와 왕안석王安石에게 비견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당唐 덕종德宗이나 송宋 신종神宗에다 견주겠느냐?”
김언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덕종德宗은 노기盧杞 한 명을 썼고, 신종神宗은 왕안석王安石 한 명을 썼을 뿐입니다.
지금 현석규는 두 사람의 간사함을 겸하고 있는데 전하께서 쓰셨으니,
신하를 쓰는 데 있어전하께서 앞의 두 군주보다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임금이 크게 노했지만, 이렇게 하교下敎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말을 바꾸지 않는 것은 신信이다”.
그러고는 김언신에게 술을 내려주고 직무를 보도록 명령하였다.
4.2. 박이창 朴以昌
박이창朴以昌이 평안감사平安監司로 있을 때에,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이에게 평안도고을에서 마른 양식을 많이 주어,
이것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박이창은그 폐단을 임금에게 진언進言하였다.
문종文宗 신미년辛未年에 박이창이 성절사聖節使신분으로 연경에 갈 때,
길이 멀어서 부득이 많은 양미糧米를 가지고 가다가 발각되었다.
돌아올 때 의주에서 잡혀 신안관新安館까지 왔는데,
밤중에 차고 있는 칼을 빼어 스스로목과 배를 찔러 거의 죽게 되었다.
서장관書狀官 이익李翊이 소식을 듣고 가서 보았다. 박이창은 이렇게 말했다.
“노신老臣이 본디 더러운 명성이 없었고 충성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처음에 양식을 다만정해진 수량만큼만 가지고 가려 했으나,
통역관들이 모두 ‘지금 마침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팔참八站에 들어서서 물난리를 만나 중도에 막혀서 양미가 떨어지면 굶어 죽을 것입니다.
더 가져가십시오.’라고 했다. 나도 옳게 여겨 드디어 쌀 40말을 더 갖고 갔다.
장차그 일의 전말顚末을 아뢰려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미 나라의 법에 걸렸으니, 무슨 면목面目으로 임금을 뵈며, 동료 대신들을 보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살하는 것이낫다. 의주義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이런 결심을 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을 호송하는 중국인이 많으므로 타국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겠기에
여기 와서 이렇게 죽는 것이”다.그러고는 마침내 죽었다.
임금은 이에 여러 사람들이 잡아오라고 한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을 후회하면서,
제사를 지내주고 쌀과 콩 및 관곽棺槨을 내려주라고 명령하였다.
종이 (종이의 옛글)
4.3. 목천임睦天任
목천임睦天任과 이필선李弼善은 같은 스승의 제자로 사귐이 두터웠다.
이필선이 먼저과거에 급제하여, 시험을 주관하는 고관考官이 되었다.
이필선은 개인적으로 표시한 답안지를 주어 그 답안지로 과거시험을 보라는
내용의 편지를 목천임에게 보냈다.
그런데목천임은 이를 받지 않고, 과거시험지에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經霜老樹花心少 서리 맞은 늙은 나무 꽃도 적은데
羞乞東皇分外春 봄바람에 분수밖에 봄 맞아 부끄럽네.
4.4. 전림 田霖
전림田霖은 미천한 사람이다. 포도부장捕盜部將 신분으로,
어느 날 조를 나누어 도적을잡으려고 재인암才人巖 곁에 잠복하고 있었는데,
홍윤성洪允成의 집과 거리가 그리 멀지않았다.
이 당시 홍윤성은 정난공신靖難勳으로 부원군府院君이 되어,
재상의 지위에 있었는데 성품이 너무 사나웠다.
자신의 공과 임금의 은총을 믿고 멋대로 사람을 죽이고 위엄을 부렸다.
문밖에는 긴 시내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이곳에서 말을 씻기면 곧바로 그 사람과 말을 죽여 버렸고, 말을 타고 자신의 문밖을 지나면 그 사람 신분의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고 모두 죽여 버렸다.
또 다른 사람의 밭을 빼앗아 미나리 논을 만드니, 늙은 할멈이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늙은 몸이 가난한데다 홀로 되어 이 밭만 믿고 겨우 살아가는데,
시키는 대로 따르면 굶어 죽을 것이오.
따르지 않고 저항하면 죽음을 당할 것이나 어차피 죽기는 마찬가지다.
차라리 그 집에 가서 하소연하여 만에 하나 희망이라도 있길 바랄 수밖에 없”다.
그러고는 마침내 땅 문서를 가지고 갔었는데,
홍윤성은 한 마디 말도 듣지 않은 채 바로그 할멈을 돌 위에 거꾸러뜨리고 모난 돌로 때려 죽였다.
그 시체를 길옆에 버려두었으나,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하였다.
이러므로 그의 종들이 멋대로 행패를 부렸으나 관에서도막지 못했다.
대여섯 사람이 어두운 밤중에 갑자기 덤벼들면서,
스스로 “우리는 아무개 집 사람인데 우리를 어떻게 할테냐?”고 말했다.
전림이 그들을 손수 잡아서 묶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홍윤성 공이 어찌 너희를 풀어 관법을 범하게 했겠느냐”?
그러고는 날이 밝자 그들을 몰고 가서 홍윤성을 뵙고 이렇게 말했다.
“이놈들이 세력을 믿고 망령된 행동을 한 것이지, 실제로 도둑질 한 것은 아닙니다.
바라건대 이후로는 잘 단속하여 주십시오. 공에게 누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
홍윤성은 크게 기뻐하며 전림을 데려다 윗자리에 앉히고서,
전림의 벼슬 행적에 대해 물었다. 그러고는 발탁하여 선전관宣傳官으로 삼았다.
하루는 전림이 홍윤성을 찾아갔는데, 홍윤성은 마침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어린 계집종을
뜰아래 나무에 거꾸로 묶어 놓고 활을 잔뜩 당기어 쏘려하고 있었다.
전림이 꿇어앉으며그 까닭을 물었더니, 홍윤성이 이렇게 말했다.
“한번 불러서 대답을 하지 않기에 쏘아 죽이려 하는 참이다” .
이에 전림은 이렇게 말했다.
“죽이는 것보다 소인에게 주시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홍윤성은 웃으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허락하고,
곧바로 계집종을 풀어주라 하고서는 전림에게 주었다.
전림이 종신토록 데리고 살면서, 많은 자식을 낳아, 뒷날 대단히 번창하게되었다.
붓 (붓의 옛글)
4.5. 성조조 좌승지 모 成廟朝左承旨某
성조조成廟朝 좌승지左承旨【좌승지의 성명姓名은 알지 못한다.】와 관련된 일화이다.
성종成宗이 어느 날 궁궐 후원後苑을 산보하고 있을 때,
까치가 종이 한 장을 물고 가다가우연히 성종 앞에 떨어뜨렸다.
성종이 이를 유심히 살펴보니, 해변 고을 수령이 좌승지에게 선사한 물목단자物目單子였다.
성종이 그 종이를 소매 속에 넣고 경연經筵에 나가서,
여섯 승지承旨를 불러 조용히 이렇게 물었다.
“지방의 수령들이 음식물을 그대들에게 선사한다면 예의를 돌아보지 않고 받겠는가” ?
이에 여섯 자리의 동부승지同副承旨로부터 네 번째, 세 번째 자리에 있는
관리들까지 같은 목소리로 “어찌 감히 받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두 번째 자리에 있던 좌승지만은 자리를 피하여 물러가서 땅에 엎드려,
이렇게 아뢰었다.“신은 그렇지 못합니다. 신에게는 90세가 된 늙은 어미가 있사온데,
어제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한 수령이 해산물을 신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래서 신이 그것을 그냥 받았습니다” .
성종은 웃으며 소매 속에서 그 종이를 꺼내어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옛날 정직한 사람의 유풍을 지녔다고 할 만하다”.
4.6. 여필선呂必善
여필선呂必善은 항오行伍에서 도감포수都監砲手로 발탁되어
집사교련관執事敎鍊官이 되었다. 판서判書 장붕익張鵬翼이 대장大將으로 있을 때,
몽둥이로 병사를 때리는데, 몽둥이를 잡고 치는 사람이 힘껏 치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그래서 자신의 지팡이로몽둥이를 잡고 때리고 있는 사람의 무릎을 때렸다.
이에 여필선이 이를 만류하며 “때리지마십시오.”라고 말했다.
장붕익은 크게 화를 내며 여필선을 뜰에 끌고 와서 질책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 같은 조무래기 군교軍校가 감히 대장의 명령을 막으려 하느냐”?
필선은 이렇게 대답했다.“군문에서의 형벌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작은 형벌은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요, 큰 형벌은효시梟示하는 것입니다.
본래 신문하는 사람에게 죄 주는 형벌은 없는데,
하물며 몽둥이로 다른 사람의 무릎을 치는 것은 형법에도 없는 형벌입니다.
또한 장군이 한 때의 분함을 참지 못하고 무릎을 때리다가 무릎이 깨지면,
어떻게 그 군졸을 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어찌 장군이 병사를 사랑하는 도리라 하겠습니까?
장군께서 법法에도 없는 형벌을시행하고자 하시니,
소인이 어찌 그 잘못됨을 알고서도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장군께서 반드시 이 형벌을 쓰고자 하신다면,
먼저 소인을 죽이셔서 간諫하는 자를 없게한 이후에 형벌을 시행하십시오.”
장붕익이 “네 말이 과연 옳다.”고 하고서는 마침내 형벌을 그쳤다.
4.7. 김수팽金壽彭
김수팽金壽彭은 성품이 본래 강직하여 거리낌 없이 말을 하곤 했다.
일찍이 호조戶曹의이당랑吏堂郞이 되었는데, 조금이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곧바로 법法에 의거하여 논쟁을 일삼았다.
영종英宗 무신戊申 연간에 면주綿紬를 궁궐로 들이라는 명령이 있었다.
숙직하고 있던낭관郞官이 창고 문을 열어 명주를 가져다가 드리려 했는데,
판서 권이진權以鎭이 마침밖에 있었기에, 김수팽은 낭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당首堂에게 알리고서 창고 문을 여는 것이 법식法式입니다.
지금 수당首堂이 밖에있는데, 낭관이 어찌 감히 창고 문을 여십니까?
만일 임금께서 차당次堂에게 대신하게 했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낭관은 결코 멋대로 창고 문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
낭관이 “만일 당신의 말대로 하여,
우리 관아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하니,
김수팽은 이렇게 말했다.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소인이 스스로 책임지겠습니다”.
마침내 궁궐로 들어가서 비록 임금의 명령이 있었지만,
창고 문을 열수 없다는 자신의 뜻을 승정원承政院에 알렸다.
그러자 궁중의 하인[掖隷]들이 서둘러 달려와서는 김수팽을발로 차면서 큰 소리로 고함치기를,
“어찌 우리를 이렇게 곤란하게 만드느냐?”라 했다.
그런데 이 소리가 임금이 거처하는 곳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임금은 괴이하게 여기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궁중의 하인들은 사실대로 고하였다.
이에 임금은 김수팽이 법을 잘지킨 것을 가상히 여겨 세 필의 베를 하사했다.
김수팽의 동생은 부유했고, 선혜청宣惠廳의 관리로 있었다.
하루는 김수팽이 동생의 집에 가 보니, 뜰에 수십 개의 항아리가 즐비하게 있는 것을 보고
“무엇이 이렇게 많으냐?”고 물었다.
동생은 “장차 이것을 팔아 생계수단으로 삼고자 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에김수팽은 동생을 야단치며 이렇게 말했다.
“네 집은 가난하지 않고 녹봉도 후하게 받고 있는데,
이처럼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고 있으니,
가난한 사람들은 장차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한단 말이냐”?
마침내 김수팽은 모든 항아리를 부수고 돌아갔다.
4.8. 박안신朴安信
박안신朴安信은 상주尙州 사람으로 태종조太宗朝에 간관諫官이 되었다.
언사言事에연루되어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데도, 얼굴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서 이렇게 읊조렸다.
數當千歲應河淸 천년 세월 지나면 강물 응당 맑아지리니
自謂君王至聖明 절로 군왕이 총명하다고 여길 것이네.
爾職不恭甘受死 네 직책 다 못했으니 죽음 달게 받겠지만
恐君得殺諫臣名 임금이 간신 죽였다는 이름 남게 될까 두렵네.
이 시를 기와 조각으로 땅에 그어서 글자를 쓰고,
눈을 부릅뜨며 옥리獄吏에게 말하기를,
“네가 이 시를 임금에게 아뢰지 않는다면,
내가 죽어 귀신이 되어 너희들의 씨를 말릴 것이다.”고 했다.
박안신의 말소리와 안색이 엄하여 사람들이 두려워하니,
옥리들은 그저“예, 예.”라고 대답하며 땅에 엎드렸다.
이 소식을 임금이 듣고서 특별히 풀어주었다.
그 뒤에 박안신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는데, 바다 위에서 해적을 만났다.
해적이 칼을 빼어들고 배 위로 뛰어들어서 약탈을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박안신은 편안히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지휘하니,
해적이 두려워하여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고 가버렸다.
함께 간 사람들은 박안신 때문에 모두 온전할 수 있었다.
.... 우하영의 천일록 - 잡록 상 중에서 ...
벼루 (벼루의 옛글)
첫댓글 광성님! 좋은 자료 잘보았습니다. 연일 후텁지근한 날씨에 어떻게 지내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