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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보석 콜롬비아(Colombia)
콜롬비아 전도(全圖) / 콜롬비아 국기(國旗)
< 콜롬비아 국기(國旗) >
♦노란색: 금과 태양, 국민 ♦파란색: 물과 바다 ♦빨강색: 독립투쟁에서 흘린 피
♦줄무늬의 비율: 2:1:1 -노란색이 가장 넓다.
< 콜롬비아 개관(槪觀) >
<1> 위치
남미 대륙의 최북단에 위치한 콜롬비아(Colombia)는 남미에서 네 번째로 큰 나라로, 북쪽으로는 카리브 해, 서쪽으로는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품고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파나마, 동쪽으로는 베네수엘라, 남동쪽은 브라질, 남쪽은 에콰도르, 페루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2> 언어와 종교
콜롬비아의 공식 언어는 스페인어이고 아열대성 기후를 보이며, 종교는 로마가톨릭이 90%, 화폐는 콜롬비아 페소(cop)로 1달러가 약 2,800페소이다.
<3> 면적과 인종
국토면적은 약 115만㎢로 우리나라(남한면적)의 12배 정도로 큰 나라며, 인구는 약 4,700만 명, 수도는 보고타(Bogota)이고, 인종구성은 메스티소(인디오+백인 혼혈) 58%, 백인 20%, 물라토(흑인+백인 혼혈) 및 기타 인종이 22%라고 한다.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약 8,000달러로 가난한 나라이다.
<4> 콜롬비아 약사(略史)
콜롬비아는 1500년대 초 스페인 이주민이 정착하며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819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1821년에 비로소 독립을 쟁취한다. 그러나 정권을 잡으려는 각 정파 간의 끊임없는 알력(軋轢)으로 폭력이 난무했는데 1960년대부터 정부군과 좌익 반군, 우익 준군사조직 등의 충돌로 세계에서 살인율 1위라는 오명을 기록하였던 지역으로 아직까지도 여행 주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국명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 콜럼부스(Christopher Columbus)에서 따왔다고 한다.
1. 수도(首都) 보고타(Bogota)
보고타는 인구 800만 정도의 대도시로, 적도 부근에 위치하지만 고도가 해발 2,600m이고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盆地)로 연중 기후가 온화하고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스페인 식민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한 보고타는 식민시절에 지어진 건물들과 기념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끄는 관광도시지만 치안이 불안하다는 것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콜롬비아는 제2 도시인 메데진(Medellin)에는 지하철이 있지만 이곳 보고타는 지반이 약하여 지하철을 설치하지 못한다고 하며, 대신 시내버스인 트랜스밀레니오(TransMilenio/버스 두 대를 연결)가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버스를 타려면 차표를 사지 않고 먼저 교통카드를 구입하여 행선지를 말하고 요금을 내면 카드에 충전해 주고 정류장 들어가는 개찰구에 이 카드를 대면 게이트가 열린다.이 버스는 탈 때 마다 창구에 카드를 내밀고 행선지를 말하고 돈을 내면 카드에 충전해 주고, 카드를 받아서 개찰구에 대고 들어가고... 참 신기한 제도이다.(즉 교통카드 자체에는 돈이 들어있지 않다.)
<1> 보고타 시내 관광
보고타(Bogota)는 구시가지 역사지구(舊市街地 歷史地區)인 칸델라리아(La Candelaria)를 중심으로 볼리바르(Bolivar) 광장이 들어서 있다. 그 인근의 볼만한 곳들을 살펴보면 보테로미술관(Museo Botero), 현대미술관, 황금박물관(Museo del Oro)과 에메랄드박물관(Museo de la Esmeralda), 화폐박물관 등이 한 두 블록 거리를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콜롬비아의 현대 미술가로서 일명 콜롬비아의 피카소라 일컬어지는 보테로(Fernando Botero, 1932~)는 사람들을 지나칠 정도로 뚱뚱하게 과장해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황금유물 / 에메랄드 / 보테로 미술관의 모나리자 / 무희들 / 화폐박물관
<2> 몬세라테 언덕
보고타 시내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몬세라테(Monserrate) 언덕에 올라가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데 꼭대기에는 아름다운 성당도 유명하여 항상 관광객들이 바글거린다. 스페인 군대가 황금과 에메랄드가 넘쳐나는 전설의 도시 엘도라도(El Dorado)를 찾아 이곳을 헤맸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3> 황금 박물관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볼리바르 광장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황금박물관(Museo del Oro)이 있는데 이 박물관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수많은 황금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엄청난 양과 아름다운 세공기술(細工技術)을 보면 정말 이곳 어디쯤에 엘도라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추측컨대 정복자들이 멕시코,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엄청난 양의 금을 약탈해 유럽으로 가지고 가자 사람들이 어떻게 이 많은 금붙이와 보석을 구했는지 묻자 차마 약탈했다는 말은 못하고 밀림 속에 ‘엘도라도(El Dorado)라는 황금도시가 있는데 황금이 무진장이라 그냥 주워올 정도... 어쩌구’ 둘러대지 않았을까...
실제로 보고타 황금박물관(Museo del Oro)에는 이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 잉카인들의 황금 유물 5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고, 에메랄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석들의 엄청난 양(量)과 세공의 섬세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콜롬비아는 전 세계 에메랄드 수요량의 55%를 생산한다던가....
이곳 콜롬비아에 엘도라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허황된 얘기는 아니었던 듯... ㅎ
◉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
중세 유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황금도시 엘도라도(El Dorado)는 콜롬비아의 산간오지 어디가 아닌가하는 추측으로 수많은 탐험가들이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전설처럼 전해지던 엘도라도는 도시의 모든 건물이 황금으로 되어있으며 길바닥도 황금으로 깔려 있다고 했다. 축제 때가 되면 제사장들은 벌거벗은 온 몸에 금가루를 칠하고 황금 마스크를 쓰고 제사를 지낸 후 신전 앞 호수에 들어가 금가루를 씻어내는데 축제에 참가했던 다른 모든 사람들도 가지가지 금붙이를 가지고 왔다가 제물로 호수에 던진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황금도시로 꿈의 도시요, 이상향이었다.
<4> 볼리바르(Bolivar) 광장
볼리바르 광장(비둘기 광장) / 콜롬비아 대성당 / 볼리바르 동상
보고타 관광의 중심인 볼리바르 광장(Bolivar de Plaza)은 남아메리카의 혁명 영웅 볼리바르(Bolivar)의 동상이 광장 가운데 우뚝 서 있다. 광장의 동쪽에는 1823년에 지어져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콜롬비아 대성당(Catedral Primada de Colombia)이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웅장하게 들어서 있고, 그 뒤로는 몬세라테(Monserrate: 3,150m) 언덕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콜롬비아 대성당은 1538년 스페인 식민시기에 처음 세워졌는데 지진으로 수차례 파괴되었다가 현재의 건물은 1823년에 재건축된 것이라고 한다.
◉ 혁명 영웅 볼리바르
볼리바르(Simon Bolivar:1783~ 1830)는 베네수엘라 사람으로 스페인에 맞서 남아메리카의 해방운동을 이끌던 혁명영웅인데 쿠바를 비롯하여 남미 어디를 가나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광장과 동상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볼리비아(Bolivia)는 다른 나라 사람인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서 나라이름까지 지었으니...
황금박물관 안내양들 / 젊은이들 거리 / 늙은이들의 골목
콜롬비아 보고타의 볼리바르 광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특히 엄청나게 많은 비둘기들로도 유명하다. 비둘기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먹이를 달라고 졸졸 따라다녀서 이곳을 일명 비둘기의 광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광장 주변은 웅장한 정부청사들과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고, 광장 주변과 골목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룹을 지어 각종 퍼포먼스를 공연하고 있어 활기가 넘친다. 또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거리음식들도 많고 사람들도 순박하고 자유분방해 보여 듣던 것 보다 치안이 위험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무튼 현대 도시의 면모를 골고루 갖춘 활기찬 도시라는 인상이다.
<5> 몬세라테(Monserrate) 언덕
등산열차(푸니쿨라) / 언덕 위 풍경 / 언덕에서 본 보고타시
보고타시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몬세라테(Monserrate) 언덕은 케이블카나 등산열차(푸니쿨라)로 오를 수 있는데 명실 공히 보고타의 랜드마크(Landmark)라 할 수 있다.
산 정상에는 1640년에 지었다는 아름다운 성당이 있는데 걸어서 오를 경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네덜란드 아가씨 / 몬세라트 성당 / 성당 내부모습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 밑까지 30분 걸어가 등산열차(Funicular/모노레일)를 타고 올랐는데 몬세라테 정상은 해발 3,150m이 거의 수직으로 약 300m를 오른다. 요금은 왕복 12,000페소(약 4천 원)
등산열차 안에서 웬 젊은 아가씨가 웃으며 말을 거는데 어저께 볼리바르 광장과 황금 박물관에서 나를 보았다고 말을 건다. 스물여덟 살이라는 이 네덜란드 아가씨는 혼자서 남미를 여행 중이라는데 자신도 스페인어가 서툴러 고생을 하고 있다고 웃는다. 네덜란드를 홀랜드(Holland), 더치랜드(Dutchland)라고도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홀랜드는 맞는데 더치랜드라고는 하지 않고 네덜란드 사람을 더치(Dutch)라고 한단다.
몬세라테 정상은 이른 아침인데도 숨을 헐떡거리며 걸어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객은 물론 보고타 시민들도 많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몬세라테 성당은 언덕 위에 있는데 외부와 내부를 흰색으로 칠하여 무척 아름답고 경건하게 느껴진다. 성당 아래쪽은 푸른 숲이 울창하고 잘 가꾸어진 수목들 사이에는 예쁜 레스토랑도 있다.
꼬불꼬불 예쁘게 꾸며진 돌계단 사이사이로 꽃들도 탐스럽게 가꾸어져 있고 작고 귀여운 조형물들도 많다.
2. 씨파끼라(Zipaquira) 소금 성당
소금광산이었던 것을 지하성당으로 꾸민 작은 도시 씨파끼라(Zipaquira)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는데 호스딸 주인인 존(John)이 교통카드를 내주며 가는 방법을 일러주고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한다.
<1> 불안한 콜롬비아의 치안
도심을 벗어나면 위험해서 귀중품은 절대로 사람 눈에 띄지 않게 하라고 한다. 특히 카메라와 핸드폰은 특히 표적이 되기 쉬워 빼앗으려고 사람을 해친다고 한다. 가방도 뒤로 메지 말고 앞으로 메고 다니라 하며, 강도들은 여행객들 물건을 뺏으려고 물불을 안가리고 돌로 뒤통수를 치고, 칼로 찌르고 한단다.
시내버스 트랜스 밀레니오(TransMilenio) B75를 타고 보고타시 북부 종점인 북부정류장(Portal Norte/ 2,200페소/770원)으로 향하는데 내가 무심코 카메라를 메고 있었더니 백인 노인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영어로 가만히 내 귀에 대고 카메라를 조심하라고 한다. 마침 자리가 났기에 카메라를 안고 앉았더니 또 뒷좌석에 앉았던 젊은 백인 부인이 또 카메라를 조심하라고 귓속말.... 얼른 카메라를 점퍼 속에 감추고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도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갑자기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2> 아름다운 시골 풍경
북부정류장에 도착해서 다시 시골버스(차비 5,400페소/약 1,800원)를 갈아타고 2시간쯤 시골길을 달리면 씨파끼라(Zipaquira) 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는데 시골길을 달리면서 차창으로 스치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스럽다. 녹색 밀림으로 뒤덮인 산들이 연이어 지나가고 드넓은 산 밑 초원에는 목장이 많은데 말과 소,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목가적이고 이름 모를 열대지방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이런 지상천국처럼 보이는 곳이 가난에 허덕일 뿐만 아니라 세계 살인율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니....
마을에 도착하니 작은 광장이 보이는데 그 주변은 관광기념품을 파는 수십 개의 노점상 천막들이 가득 들어서 있는데 내가 가던 날만 그런지 항상 그런지, 관광객이나 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광장을 지나 20분쯤 언덕 골목을 걸어 오르면 산자락이 나타나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정비된 소금광산 진입로가 나타나는데 이 소금성당(소금광산)은 콜롬비아 식민시기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3> 씨파키라(Zipaquira) 소금광산
자그마한 마을 뒤에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있는데 이 산 이름이 씨파키라 소금산이다. 스페인 식민시절, 인디오 광부들의 피땀과 목숨을 건 노역의 현장이라고 한다. 광부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한탄하고 또 안전을 기원하며 틈틈이 소금이 박혀있는 암벽을 쪼아 십자가와 기도처를 조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금광산 입구
동굴 속에는 천연 암벽과 소금으로만 조각된 성당과 수많은 십자가들이 있는데 제일 큰 십자가는 높이만 16m라고 한다. 지하 200m 지점의 대성당으로 내려가는 통로에는 열네 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는데 이는 ‘십자가의 길’을 상징하고 ‘I처’부터 ‘ⅣⅩ처’까지의 숫자가 돌에 새겨져 있다.
소금 십자가(기도처) / 가브리엘 천사 / 소금 대성당
나선형으로 휘감기며 내려가는 지하 동굴은 총 길이가 2km에 달한다고 하는데 지하 200m 지점에 다다르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놀라운 건축물인 소금 대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높이 솟아오른 웅대한 지붕과 기둥, 세례를 주는 분수, 설교단, 그리스도 수난상을 갖추고 있다. 굴속에 처음으로 십자가와 성당을 조각한 것은 에메랄드를 채취하던 광부들이었다고 하는데 1954년에 첫 번째 성당이 완성됐지만 동굴의 구조적 안전성에 때문에 1991년부터 4년간의 재정비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소금성당은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 또 남미를 찾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지이자 순례지로 유명하게 되었다. 입장료는 1인당 55,000페소(약 19,000원)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가톨릭 신자인 내게는 큰 감동을 주는 성스러운 장소였다.
3. 치카케 국립공원(Parque Natural Chicaque)
우리 호스딸의 주인인 John의 제안으로 같은 숙소에 있던 한국인 5명과 나를 포함하여 7명이 경비를 각자 개별 분담하는 조건으로 대중교통편을 이용하여 치카케(Chicaque) 국립공원을 가기로 하였다.
시내버스(트랜스 밀레니오) / 치카케 산장
<1> 구름의 숲(Cloud Forest)
치카케 국립공원은 해발 3,000m 열대밀림으로 항상 안개가 끼어 구름의 숲(Cloud Forest)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우리가 갔을 때도 짙은 안개가 끼어 산 모습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는데 울창한 숲과 돌멩이 길이 젖어서 몹시 미끄러웠지만 등산로는 비교적 잘 갖춰진 곳이다.
버스는 산중턱의 공원입구에 내려주는데 거기서부터 4시간 동안 산을 내려오며 열대 밀림을 더듬는 코스이다. 울창한 숲은 물론 이름 모를 열대 꽃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인지 관광객도 별로 없고 자욱한 안개로 조금 서늘한데 섬뜩한 기분도 든다. 안내판에는 이곳에 서식하는 각종 동식물의 사진을 붙여놓았는데 세발가락 나무늘보(three-toed sloth), 큰 부리 앵무(Emerald Toucanet), 벌새(Humming Bird), 꼬리가 길고 화려한 색깔의 남미 찌르레기(Oriole) 등 20여 종의 신기한 동물이 있었지만 열대 꽃과 덕지덕지 붙은 이끼 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중간쯤 내려오면 바위 절벽 위에 전망대(View-Point)가 있는데 안개가 조금 걷혀서 그나마 산의 윤곽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공원 매표소(외국인 2만 페소) / 안개 낀 산 속으로 / 한국 젊은이들과 가이드
4시간 행군 끝에 깎아지른 바위절벽 밑 골짜기에 있는 멋진 산장(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산장 앞은 제법 넓은 잔디밭이 있는데 10여 마리의 라마(Llama)가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고, 관광객을 태우는 말들도 10여 마리 있다.
구름속의 산장(山莊) / 짚라인 출발대 / 밀림의 공원길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취향에 따라 각자 시켜 먹었는데 제법 먹을 만 했다. 식당에서 짚라인(Zipline)을 타는 티켓을 팔며 타라고 권한다. 1인당 12.000페소(4천원)로 한국 젊은 친구들은 돈이 아까워서인지 타지 않겠다고 한다. 나도 타지 않으려고 했는데 John은 꼭 한번 타 보고 싶었다며 나보고 같이 타자고 조른다. 할 수 없이 따라 나섰다가 절벽 중간쯤까지 기어오르는 통에 힘들어서 죽을 뻔 했다. 줄에 매달려 주루룩 2분도 채 걸리지 않는 것을... 그러나 푸른 밀림 위를 나르는 것이 시원하고 기분이 상쾌하기는 하다.
밀림을 행군하느라 지친 몸을 산장에서 잠시 쉬었는데 산장의 발코니 의자에 기대어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안개 속으로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산골짜기 밀림풍경이 형언할 수 없이 신비롭다. 이렇게 오늘의 국립공원 산책 일정이 모두 끝나고 등산입구로 되돌아 산을 올라가야 한다.
<2> 고난의 귀로
잠시 휴식을 끝내고 곧바로 버스를 타는 줄 알았더니 조금 걸어야 한단다. 산장에서 산을 다시 올라가야하니 말을 타고 가라고 하는데 말을 탈까 하다가 다른 일행도 모두 걸어간다기에 가까운 줄 알고 따라 나섰는데 차타는 곳까지 다시 1시간이나 오르막 돌멩이 길을 걷는다. 기진맥진하여 겨우 도착하니 뒤 짐칸에 포장을 씌운 조그만 트럭이 우리를 기다린다. 제기럴 말을 탈 껄....
거기서부터 산 정상까지 가파른 산길을 굉음을 울리며 덜커덩 거리고 올라가는데 딱딱한 나무의자에 엉덩이도 아픈 것은 물론이려니와 차가 흔들릴 때마다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절벽 밑으로 차가 굴러 떨어질까 걱정되어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렇게 30여 분, 손잡이를 부여잡고 얼마나 휘둘렸던지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매표소가 있는 정상에 내리니 온 몸이 쑤시고 다리에 쥐가 나서 일어설 수가 없다. 서둘러 가지고 간 수지침(手指鍼)을 꺼내 닥치는 대로 종아리를 찔러 피를 냈더니 조금 낫다. 젊은 친구들과 가이드 녀석은 그런 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4. 호스딸(Hostal) 타다이마(Tadaima)와 사이타(Sayta)
<1> 숙소 예약
콜롬비아를 여행하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보고타 시내 숙소를 먼저 예약했는데 보고타 관광의 중심지인 볼리바르 광장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가장 저렴한 숙소를 찾아보았는데 조건에 비슷한 호스딸이 있어 3박을 예약을 했고, 그곳이 바로 타다이마(Tadaima) 호스딸이었다. 1박에 2만 페소(7천 원)짜리로 도미토리(Dormitory) 형식인데 사진으로 보니 제법 깨끗해 보인다. 호스딸(Hostal)은 스페인어이고 영어로는 호스텔(Hostel)이다.
<2> 호스딸 타다이마(Tadaima)
2월 4일 보고타 엘도라도공항에 도착하니 4시쯤인데 택시를 타고 주소를 내밀었더니 바로 데려다 주는데 제법 멀다. 호스딸에는 머리가 허연 할머니와 영감이 함께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영어가 몹시 서툴다.
방 예약서를 보여주니 맞다고 하면서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내 여권을 보더니 오늘이 생일(2월 4일)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영감이 손을 내밀며 축하한다고...
나더러 나이도 적잖은데 어찌 혼자 여행을 다니느냐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자기는 80세, 할머니는 76세라고 소개를 한다. 내가 콜롬비아 여행이 내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고 했더니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세워 보인다.
<3> 호스딸 사이타(Sayta)
잠시 후 젊은 아가씨가 들어오는데 매끄럽게 영어를 잘한다. 할머니와 둘이 스페인어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더러 다른 호스딸이 있는데 거기에 한국 사람이 몇 명 있으니 그리로 옮기면 어떻겠냐고 한다.
흔쾌히 승낙하고 아가씨를 따라 나섰더니 바로 두 블록 떨어져 있는 사이타(Sayta) 호스딸로 데려가는데 주인 남자와 매우 가까운 사이인 듯 허물이 없어 보인다. 나중 알고 봤더니 사이타 호스딸의 주인인 존 후아(John Roa)가 타다이마 호스딸 할머니의 아들이고 젊은 아가씨는 여동생이었다.
<4> 호스딸 주인 존 후아(John Roa)
John은 나하고 자주 밖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와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매우 친절하고 인간미가 있어 좋았다. 내가 달러를 콜롬비아 페소로 환전하겠다고 했더니 존은 시중 은행보다 더 좋은 환율로 선선히 바꾸어 준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는 42세의 노총각 존은 누나가 둘이고 막내 여동생이 하나인데 프랑스인인 손위 매형의 권유로 사이타 호텔을 시작했고 얼마 후 부모님께 타다이마 호스딸을 열어드렸다고 한다. 존은 양쪽 호스딸을 번갈아 다니며 관리하는 것 같았다.
여동생은 27세로 아직 미혼인데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통하게 구사한다고.... 그런데 자신은 영어가 서툴다고 웃기에 나도 서툴다니까 둘이 비슷하겠다고... ㅎ 나는 딸이 42세로 자네와 동갑인데 손녀가 벌써 고등학교 1학년이다. 부모님이 걱정하신다. 빨리 결혼을 해라. 얼른 결혼해서 손자를 안겨 주는 것이 효도다..... 잔소리를 퍼부었다. ㅋ
<5> 마음에 드는 사이타 호스딸
존은 인터넷 홍보를 잘 해서 타다이마와 사이타가 제법 잘 운영되는데 특히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제법 한국말도 몇 마디 해서 재미있었다. 숙소에서 아침은 무료로 제공되는데 빵 2개, 바나나 1개, 삶은 계란 1개, 커피와 녹차, 잼과 버터... 내게는 충분한 아침식사였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서 그런지 주방이나 화장실 등에 한글로 쓴 주의사항도 보여서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단지 화장실(샤워실)이 너무 좁다는 것이 흠이랄까.... 사이타(Sayta)나 타다이마(Tadaima)나 시설은 비슷해 보였고 숙박비도 같은데 눈치로 보아 사이타가 더 인기가 좋은 것 같다. 타다이마(Tadaima)는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일본어인 것 같고(ただいま=지금 막), 사이타(Sayta)는 정지(Stop)라는 뜻이란다.
<6> 중남미의 불안한 치안
사이타 호스딸 우리 숙소의 카운터를 보는 20대 후반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신은 베네수엘라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잖아 나는 이번 여행계획에 베네수엘라 앙헤르(Angel) 폭포를 가려고 했었는데 치안이 불안하다고하여 망설여진다고 했더니 이 친구는 절대로 가지 말란다. 자신은 수시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 26개월 전에 베네수엘라를 탈출해서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세상에.... 자기 나라를 여행하지 말라니....
그러잖아 이 허름한 호스딸 조차 출입문을 아래, 위 두 곳을 항상 잠가놓고 초인종을 누르면 작은 구멍으로 내다보고 확인을 한 후에야 열어준다. 내가 담배를 피러 나갔다가 들어오며 문을 잠그지 않았더니 기겁을 하며 달려가 아래, 위 두 곳을 모두 단단히 걸어 잠그고는 나한테 꼭 잠가야 된다고 다짐을 한다.
생각보다 강도나 도둑이 많은 모양으로,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7> 잡지사 인터뷰
한 번은 혼자 숙소 문 앞에서 담배를 피는데 기자로 보이는 젊은이와 카메라맨 및 일행 몇몇이 느닷없이 카메라를 들어대며 인터뷰를 하자고 한다. 꼴이 무슨 잡지사 쯤 되는 모양인데 어디서 왔느냐, 콜롬비아의 첫 인상이 어떠냐는 둥 질문을 퍼붓는다. 어느 잡지사인지 내 사진이 실렸을 텐데.... ㅎㅎ
인터뷰 / 골목 벽면은 온통 괴상한 벽화 / 호스딸 앞 작은 광장
<8> 체육공원 산책
숙소에서 나와 괴상한 벽화들이 그려진 골목길을 2~3분 걸으면 아담한 체육공원이 있어 아침마다 산책을 즐겼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이 열심히 체육공원 둘레를 몇 바퀴씩인지 달리고는 운동장에 있는 선생님한테 가서 확인도장을 받는다. 동네 사람들인 듯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고.... 너무나 평화롭고 살기 좋은 나라로 보이는데 위험하다고 야단들이니 신기하다.
체육공원 / 2월초인데 꽃이 만발 / 구름과자
원래 3박을 할 예정으로 예약했지만 다니다보니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5박으로 늘렸다. 다행히 침대가 여유가 있어서....
<9> 활기 넘치는 보고타 거리
공연하는 앞에는 모금 통이 있다.
숙소에서 비스듬히 비탈 골목길을 5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바로 볼리바르 광장이 있고 연이어 번화가인 다운타운인데 고층건물은 물론 볼거리, 연주악단공연, 먹거리 가판대들이 널려있다.
상점도 많고 수퍼마켓도 있고 레스토랑도 많고.... 특히 스페인 식민시절의 풍취가 느껴지는 건물과 기념물들이 많은 것도 흥미 있다. 특히 거리 퍼포먼스가 많아 항상 사람들이 모여든다. 밴드도 있고 비보이(B-Boy) 공연도 있고 마술쇼도 있고 로봇 춤도 있고... 벼라 별 볼거리들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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