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5권
5. 아귀품(餓鬼品)
46) 우다라(優多羅)의 어머니가 아귀에 떨어진 인연
부처님께서는 왕사성 가란타 죽림에 계시었다.
당시 성중에 한량없는 재보를 지닌 장자가 있었다. 그가 문벌 좋은 집의 딸과 결혼하여 기악(伎樂)을 일삼아 즐겨하다가, 그 부인이 태기가 있어 열 달 만에 한 남자 아이를 낳으니 그 단정하고도 수승함이 세간에 드물 정도였다.
부모가 기뻐하여 아들의 이름을 우다라(優多羅)로 정하였는데, 나이가 점차 들어 그 아버지가 죽자,
아이 스스로가 곧 생각하였다.
‘우리집이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판매업(販賣業)으로 가업을 이루었으나, 이제 나의 대에 와서는 이 업을 그만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는 불법을 깊이 믿고 존경하여 출가하고자 그 어머니 앞에 나아가 출가하기를 청하자,
그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 지킬 사람이 없고 자식이라곤 너 하나뿐이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고 출가하려 하느냐?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엔 네가 출가 수도하는 것을 끝까지 허락하지 않겠으니, 내가 죽은 뒤에 가서 너의 뜻대로 하여라.”
그러자 자식이 소원대로 허락을 받지 못해 고뇌하다가 그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께서 끝내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이제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거나 독약을 마시고 죽겠습니다.”
이에 어머니가 곧 대답하였다.
“그런 말 하지 말아라. 무엇 때문에 네가 꼭 출가하려 하느냐?
지금부터 네가 만약 여러 사문ㆍ바라문을 청하고자 한다면, 네 뜻에 따라 모든 공양을 준비해 주리라.”
아이가 이 말을 듣고는, 조금 스스로 위안이 되어 여러 사문ㆍ바라문을 청해 자주 집에 모시고서 공양하였는데, 그 어머니가 여러 도사들이 너무 자주 오는 것을 보고 매우 괴로워했으며 싫어하는 마음을 내었다.
그리고는 여러 사문ㆍ바라문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스스로가 생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남들에만 의존하니, 매우 보기 싫구나.’
마침 그 아이가 집에 있지 않을 때이므로, 어머니는 음식과 장수(漿水)를 다 땅에 뿌리며 버렸다.
아이가 돌아오자, 어머니는 곧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외출한 뒤에도 내가 음식을 베풀어 저 사문ㆍ바라문들을 청해 공양하였노라.”
그리고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그 음식과 장수를 버린 곳을 보인 다음,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잘 공양하였더니 곧 떠나가셨다.”
아이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였다.
어머니는 그 뒤 목숨이 끝나서 아귀에 떨어지고 말았고 아이는 후에 출가하여 힘껏 정진을 더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어 어떤 강 언덕 주변의 굴 속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한 아귀가 나타나 굶주림과 목마름에 허덕이는 모습으로 아들 비구 옆에 다가와서 말하였다.
“내가 바로 너의 어머니이니라.”
비구가 이상하게 여겨 말하였다.
“어머니께서는 생시에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셨거늘, 이제 어찌하여 도리어 아귀에 떨어지는 과보를 받았습니까?”
아귀가 대답하였다.
“내가 인색하고 탐욕하는 마음으로 그 당시 사문ㆍ바라문들을 정성껏 공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아귀의 몸을 받아 20년 동안 음식과 장수를 얻어먹지 못했다.
설사 강ㆍ샘ㆍ못 등 물이 있는 곳을 가 보아도 물이 다 마르고, 과일 나무가 있는 곳을 가 보아도 과일 나무가 다 시들어 버리므로, 지금 나의 이 기갈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노라.”
비구가 다시 물었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아귀가 대답하였다.
“내가 그 당시 보시하기는 했지만, 항상 인색하고 탐욕하는 마음이 있어서 여러 사문ㆍ바라문들에게 공양하지 않고 함부로 욕설을 퍼부은 탓으로 이제 이 과보를 받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네가 나를 위해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을 베풀어 보시하고 나를 위하여 참회한다면, 나는 반드시 아귀의 몸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이 말을 들은 아들 비구가 매우 가엾이 여겨 곧 권화(勸化)하기 위해 갖가지 맛난 음식을 준비하여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해 공양하였다.
공양을 마칠 무렵 아귀가 과연 그 몸을 나타내 모임에 나아와서 모든 사실을 드러내어 참회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도 저 아귀를 위해 갖가지 법을 설해 주시니, 아귀는 곧 마음 속으로 부끄럽게 여겨 그날 밤 목숨이 끝나 다시 몸을 받기는 했으나 날아 다니는 아귀가 되어 천관(天冠)을 쓰고 보배 영락을 달고서 그 몸을 장엄하고 비구의 처소에 내려와 다시 말하였다.
“내가 아직도 아귀의 몸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네가 나를 위해 권화하여 거듭 침상과 이부자리 등의 공양을 베풀어 사방 스님들게 보시해야만 내가 이 아귀의 몸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겠노라.”
이때 아들 비구가 이 말을 듣고 권화하기 위해 음식과 아울러 침상과 이부자리를 갖추어 사방 스님들에게 공양하였다.
그 공양을 마칠 무렵에 아귀가 또 대중 앞에 몸을 나타내어 참회함으로써 그날 밤 곧 목숨이 끝나 도리천(忉利天)에 왕생하여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무슨 복을 지었기에 여기에 태어났을까. 곧 관찰해 보건대 내 아들 비구가 나를 위해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베풀어 부처님과 스님들을 청하였기 때문에 아귀의 몸을 벗어나서 이 천상에 태어났으리라. 그렇다면 내가 이제 부처님과 비구의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생각한 끝에 천관을 쓰고 보배 영락을 달고 그 몸을 장엄함과 동시에 향ㆍ꽃을 갖고 내려와 부처님과 그 아들 비구에게 공양한 다음,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의 설법을 들음으로써 곧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수다원과를 얻었으며,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도로 천궁으로 올라갔다.
부처님께서 이 우다라(優多羅)의 인연을 말씀하실 때 그 모임에 있던 여러 비구들이 다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마음을 버리고 생사를 싫어함으로써 그 중에 혹은 수다원과를, 혹은 사다함과를, 혹은 아나함과를, 혹은 아라한과를 얻은 자도 있었으며, 혹은 벽지불의 마음을 내고, 혹은 위없는 보리심을 낸 자도 있었다.
다른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다 환희심을 내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