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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사론 제14권
42) 사생처(四生處)
사생(四生)이라 하는 것은,
태생(胎生)ㆍ난생(卵生)ㆍ습생(濕生)ㆍ화생(化生)을 말한다.
[문] 난생(卵生)이란 어떤 것인가?
[답] 중생이 태어날 때 알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알 속에 들어가 알에 감기고 알에 싸였다가 알의 껍질을 쪼아 개서 태어나는 것이니, 그 생기인(生起因)에 연(緣)하여 유(有)를 이룬다.
가령 기러기ㆍ원앙새ㆍ공작ㆍ앵무새ㆍ비둘기ㆍ천추작(千秋雀)이나, 혹 용알이나 혹 금시조(金翅鳥)나, 혹 사람, 이와 같은 즐비한 중생들이 알에서 태어나며, 알 속에 들어가 앞 껍질에 감기고 알 속에 싸여 있다가 부리로 알을 쪼아 깬 다음에 태어나는 것이니, 그 생기인에 연하여 유를 이루는, 이것을 난생이라 한다.
[문] 태생(胎生)은 어떤 것인가?
[답] 중생이 태의 그물에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즉 태의 그물 속에 들어가서 그물에 감기고 그물에 싸여 있다가 그물이 갈라지면 태어나는 것이니, 그 생기인에 연하여 유를 이룬다.
[문] 어떤 것이 여기에 속하는가?
[답] 코끼리ㆍ말ㆍ돼지ㆍ소ㆍ노새ㆍ당나귀ㆍ낙타ㆍ물소ㆍ노루ㆍ사슴이나 혹 용과 금시조(金翅鳥)와 혹 사람, 이와 같은 무리의 중생들은 태의 그물을 통해서 태어난다.
태의 그물 속에 들어가서 그물에 감기고 태의 그물에 싸여 있다가 그물이 갈라지고 허물어지면서 태어나는 것이니, 그 생기인에 연하여 유를 이룬다.
이것을 태생이라 한다.
[문] 습생(濕生)은 어떤 것인가?
[답] 중생이 대나무 구멍이나 갈대 구멍 썩은 나무 구멍에서 썩은 물고기 썩어 냄새 나는 고기, 더러운 음식물과 인연하고 혹 뒷간, 더러운 진혼과 인연하고 또 혹 모든 더러운 물건과 인연하고 또 혹 뜨거운 기운과 답답하게 찌는 듯한 기후와 인연하여 혹 각기 서로 가까워지지나 혹 각기 서로 핍박해서 태어나는 것이니, 그 생기인에 연하여 유를 이룬다.
[문] 어떤 것이 여기에 해당하는가?
[답] 구더기ㆍ송충이ㆍ모기ㆍ똥파리ㆍ하루살이ㆍ파리ㆍ벌레ㆍ개미나, 혹 용과 금시조나, 혹 사람 이와 같은 무리의 중생들은 대나무 구멍이나 갈대 구멍 썩은 나무 구멍에 연하지나, 썩은 물고기 썩은 고기에 연하거나, 혹 더러운 음식에 연하기도 하고, 혹 똥통과 더러운 진혼에 연하기도 하고, 혹 더러운 거름더미에 연하기도 하고, 혹 뜨거운 기운 답답한 찌는 김에 연하여, 혹 각기 서로 가까워지기도 하고 혹 각기 서로 핍박하여 태어나는 것이니, 그 생기인에 연하여 유를 이룬다.
이것을 습생이라 한다.
[문] 화생(化生)은 어떤 것인가?
[답] 중생이 모든 근(根)이 성취되어 몸의 마디가 구족하게 태어나는 것이니 그 생기인에 연하여 유를 이룬다.
[문] 어떤 것이 이에 해당하는가?
[답] 모든 지옥의 생명체ㆍ모든 아귀ㆍ모든 중음의 생명체ㆍ모든 천신(天神),과 혹 용과 금시조와, 혹 사람, 이와 같은 무리의 중생들이 모든 근이 성취되어 몸의 마디가 구족되어 같은 시기에 태어나는 것이니, 그 생기인에 연하여 유를 이룬다.
이것을 화생이라 한다.
[문] 사생(四生)에 어떤 성품이 있는가?
[답] 사음(四陰)과 오음(五陰)을 지니는 성품이 있다. 욕계와 색계에서는 오음의 성품이 있고 무색계는 사음을 지니는 성품이 있다. 이것을 사음의 성품이라 한다.
이미 종류와 모습과 본래의 성품을 설명하였으니, 마땅히 그 행(行)을 설명하여야 하겠다.
[문] 왜 생(生)이라 하는가? 생(生)에 어떤 이치가 있는가?
[답] 중생이란 이미 태어나는 것에 매여 있는 까닭에 생이라 표현한다.
[문] 만약 중생이 태어나는 것에 매여 있기 때문에 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경계와 다음 태어날 세계도 역시 중생을 매어 놓는 세계인데, 왜 그것은 생이라 말하지 않는가?
[답] 오직 한 중생을 매어 놓은 경우와 모든 중생을 매어 놓는 경우가 있다.
경계라 하는 것은 모든 중생을 매어 놓는 세계다. 다만 중생의 수효에 들지 아니하는 것도 있을 따름이다.
또 다음 태어날 세계[趣]라 하는 것은 비록 중생을 매어 놓는 세계라 하더라도 모든 중생을 매어 놓는 세계는 아니다. 중음에서 떠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생(生)이란 오직 한 중생을 끼고 도는 세계인 동시에 모든 중생을 끼고 도는 세계다. 그런 까닭에 사생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문] 사생의 경계에는 몇 가지의 생(生)이 있는가?
[답] 욕계에서는 사생 모두가 그 경계를 얻을 수 있고,
색계와 무색계에서는 오직 하나 화생(化生)만이 그의 경계를 얻을 수 있다.
[문] 이 사생은 태어날 세계마다 몇 가지 생이 존재하게 되는가?
[답] 지옥과 아귀와 하늘의 세계는 오직 화생 하나뿐이다.
또 이와 다르게 말하는 사람은 이르기를,
“아귀는 태생도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귀가 된 어자가 목건련 존자를 향해서 게송으로 읊은 것과 같다.
낮에 열 사람의 아들 있었고
밤 사이에도 역시 열 사람의 아들을
태어나는 대로 나는 이미 먹었으나
내 생각엔 아직도 배부르지 아니하네.
그러니 축생과 인간의 세계는 모든 사생이 다 얻을 수 있는 세계다”라고 하였다.
[문] 어떻게 사람 가운데도 알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가?
[답] 경의 설명에 따르면 염부제주(閻浮提洲)의 땅에 많은 장사꾼이 있었는데 바다에 들어가서 보물을 채취하다가 두 마리의 황새를 얻었는데 형상과 빛깔이 극히 좋고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마리는 잃고 한 마리만 남아 있었는데 남아 있는 황새와 더불어 함께 놀면서 한 방에서 엎드려 누웠다.
그들이 합쳐져서 교접(交接)을 하였을 때 마침내 점차 두 개의 알이 생겨났고 알이 된 후에 점점 성숙하자 문득 두 사람의 동자(童子)가 태어났으며 모습이 극히 묘하고 단정하였다.
후에 커서 그들은 출가하여 도를 배워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기시피라(耆尸披羅) 존자며 또 한 사람의 이름은 부발시피라(復鉢尸披羅)라 하였는데 소문에 의하면 오랫동안 남산사(南山寺)의 주지로 있었다고 한다.
[문] 어떻게 사람 가운데도 습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가?
[답] 경의 설명에 따르면 유정천(有頂天)에 태어난 임금인 존자 차라(遮羅)와 존자 우바차라리녀(優波遮羅利女)가 그 사람이다.
[문] 어떻게 사람 가운데 화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가?
[답] 겁초(劫初)의 사람들이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설명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사생에서 태어나며 모두가 성인의 법으로 성인이 될 수 있으며 성인의 법을 이미 얻은 사람은 나시는 난생(卵生)ㆍ습생(濕生)이 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문] 무슨 이유로 성인이 되어 성인의 법을 얻게 되면 나시는 난생ㆍ습생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는가?
[답] 난생과 습생은 축생의 세계에 속하는 생명체다. 성인이라 하는 것은 이미 축생의 세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두 가지 생명체는 어리석음이 많다. 그러나 성인은 이미 관(觀)을 얻은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난생과 습생의 세계는 좁고 핍박받는 세계다. 성인이란 생각이 넓은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난생과 습생은 믿고 의지할 곳이 없으나 성인의 경지가 성취되면 법을 믿고 법에 의지하게 된다. 만약 누더기를 걸친 여자라 하더라도 의지할 곳이 있으면, 그 여자가 신분이 낮고 천하더라도 가볍게 보고 업신여길 수 없게 된다.
천제(闡提) 바라문의 성씨도 없는 여자 하인이라도 감히 가볍게 보고 업신여기는 사람이 없는 것은, 그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성인이라 하는 것은 습생ㆍ난생의 이생(二生)이다.
만약 알이 어미의 태에서 나와서 그 알을 쪼아 내고 태어났다면 이 일 때문에 그 새를 이생(二生)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문과 외도의 경우에 이생(二生)이라 부르는 것은 어머니의 태로부터 태어나 다시 출가하여 도론 배우기에 성인이라 말한다”라고 하였다.
존자 구사는 설명하기를,
“‘왜 성인이 되어 이미 성인의 법을 얻게 되면 다시는 난생ㆍ습생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아비가 가는 길을 아들도 따라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어찌하여 아비가 가는 길을 아들도 따라 가게 되는가?’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가령 이미 보살의 경지를 이루게 되면 난생과 습생이 되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성인도 성법을 얻게 되면 난생과 습생이 되지 아니한다. 그런 까닭에 아비가 가는 길을 아들도 따라간다’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성인이 이미 성법(聖法)을 얻게 되면 난생(卵生)과 습생(濕生)이 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문] 사생(四生) 가운데 어느 생(生)이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가?
[답] 일설에 의하면 난생이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한다고 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나라 밖의 사방 바다의 가장자리와 산허리 바위허리에 평평한 연못이 있어 알이 그 속에 가득하나, 노새ㆍ당나귀ㆍ낙타ㆍ코끼리ㆍ말ㆍ돼지ㆍ염소ㆍ물소ㆍ사슴들이 모두 밟아 깨트린다고 한다. 이와 같이 난생이 가장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와는 다르게 설명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태생(胎生)이 가장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한다면, 한 마리의 물고기, 한 마리의 개구리가 새끼를 낳으면 일곱 곳의 논과 일곱 강물에 가득하다. 이와 같이 태생이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라고 하였다.
다른 사람은 말하기를,
“습생이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그 이유를 설명한다면, 여름이 되면 소금기 있는 해변의 흙과 잿더미[灰], 쇠똥, 고깃간 및 모든 습기 있는 곳에 생명체가 모이고 쌓여서 욕계에서 범천(梵天)에 이르기까지 잠깐 한 시각 사이에 벌레가 그 속에 가득해진다. 이와 같이 습생인 가장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말하면 된다.
즉 “화생이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라고.
왜냐 하면 화생이라 하는 것은 세 곳의 태어날 세계[趣]가 모두 이에 속하고 두 곳의 태어날 곳도 그 일부분이 여기에 들어온다.
세 곳의 태어날 곳이라 하는 것은 지옥과 아귀와 하늘의 세계며,
두 곳의 태어날 곳의 일부분이라 하는 것은 축생과 인간의 세계를 말한다.
또한 욕계와 색계는 모든 중생들이 모두 중음에 태어난다.
중음이라 하는 것은 다른 생명체의 몸을 받는 생명체다.
그런 까닭에 화생이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문] 사생 중에 어느 생이 가장 묘한가?
[답] 화생이 가장 묘하다.
[문] 만약 화생이 가장 묘하다면 부처님은 왜 화생으로 태어나시지 아니하였는가?
[답] 화합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생으로 태어난 사람이 있을 때 그 때 부처님은 없었다.
부처님이 계실 때 그 때는 화생으로 태어난 사람이 없었다.
그것을 두고 같은 조건의 화합이 아니기 때문에 부처님은 화생으로 태어나시지 아니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화생으로 태어난 사람은 힘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의 십력(十力)을 이기지 못하고 사무외력(四無畏力)을 이기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화생은 부드럽고 연해서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는 오로지 지극히 사랑하는 생각이 친한 사람과 더불어 서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보살은 오로지 지극하게 선업(善業)을 닦는 것을 사랑한다. 그
런 까닭에 부처님은 태생으로 태어나시고 화생으로 태어나시지 아니하셨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보살은 긴 밤 동안 행을 하여 존경하는 부모를 구하였고 부모도 긴긴 밤 동안 행을 쌓아 효도하고 순종하는 아들을 구하였기 때문에 태생으로 태어나신 것이다.
만약 화생으로 태어났다면 서원(誓願)의 행에는 과보도 없어지고 보응도 없어진다. 그런 까닭에 보살은 태생으로 태어나셨고 화생으로 태어나시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설법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다.
만약 부처님께서 화생으로 태어나셨다면 태어나시자마자 곧 여러 사람이 모여 토론하는 곳을 찾아가 꾸짖으셨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곳의 비구들은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부모도 없고 형제 자매와 여러 친척도 없는 사람인데 단지 와서 우리들을 꾸짖기만 한다’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염부제주(閻浮提洲)의 땅의 경우 호족ㆍ귀족의 친족과 집안이 수없이 많은 곳이고 가유라위성(迦維羅衛城)의 사람들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사람들이다.
부처님은 그 곳에서 태어나셨으나 입에 침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오래 그곳에 머무르시기를 즐기지 않으셨고 집을 나와서 도를 배워 한 숲 속에 머무시니 온 숲 속 사람들이 칭찬하고 자랑하였다.
이것 때문에 설법하셨을 때는 교화를 받은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이런 사연 때문에 설법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은 태생으로 태어나시고 화생으로 태어나시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비방하는 말을 끊기 위하여 부처님은 태생으로 태어나시고 화생으로 태어나시지 아니하였다.
가령 부처님께서 대중 가운데 계시게 되면 모든 사람이 부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부처님은 도솔천(兜率天)에서의 생애를 끝내시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어머니의 태 안에서 열 달이 찬 다음 임비원(林毘園)에서 태어나셨다.
태어나셔서는 곧 일곱 발자국을 걸어가셨으며 두 용이 목욕시켰고 스물아홉 살에 출가하시어 서른다섯 살에 득도하셨으며 그 동안 6년을 고행하시면서 두 여인이 바친 우유죽을 먹었으며 마(魔)의 관속(官屬)들을 항복 받아 위없는 도를 이루셨다.
그러나 그래도 오히려 외도들이 찾아와서 비방하는 사람이 있었다.
백 겁이 지난 뒤에는 큰 바다 가운데 어떤 환술사(幻術師)가 나타나 모든 보시를 챙길 것인데 하물며 부처님께서 화생으로 태어나신 분이었다면 외도들이 어찌 더욱더 비방하지 않았겠는가?
이런 사연 때문에 부처님은 비방을 끊기 위하여 태생으로 태어나시고 화생으로 태어나시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다른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부처님은 태생으로 태어나시고 화생으로 태어나시지 아니하였다.
만약 부처님께서 화생으로 태어나셨다면 열반에 드셨을 때 몸에 사리가 나타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만약 사리가 나타나지 아니하였다면 지금 열반에 드신 지 천 년이 되도록 깨알 같은 사리를 백천의 중생들이 모두 공양하고 공경하며, 부처ㆍ벽지불ㆍ성문(聲聞)의 도를 구하기를 원하고, 호족과 귀족 하늘 위와 인간 세계 가운데서 비할 데 없이 그 용모가 단정해지거나 또는 무여열반에 드셨겠는가?
만약 부처님이 화생으로 태어나셨다면 그러한 공덕은 모두 단멸되고 나타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은 태생으로 태어나시고 화생으로 태어나시지 아니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 왜 화생으로 태어나면 목숨이 끝날 때 몸에 사리가 나타나지 아니하는가?
[답] 화생의 몸은 일시에 태어나고 일시에 멸한다.
마치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서 한 때 물속에 사라졌다가 한 때 물 위로 나오고 나온 다음에 또 사라지면 다시는 나타나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화생으로 태어나는 몸은 한 때 태어났다가 한 때 곧 사라지기 때문에 신제를 남기지 않기에 볼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화생으로 태어난 몸에는 소조색(所造色)이 많고 사대(四大)는 적다.
태생으로 태어나는 몸은 사대가 많기 때문에 그 신체가 남아 있어 볼 수가 있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화생으로 태어난 몸은 근이 많고 비근(非根)이 적다.
태생으로 태어난 몸은 비근이 많기 때문에 목숨이 끝날 때 사리가 나타날 수 있다.
또 화생으로 태어나는 몸은 머리카락ㆍ털ㆍ손톱ㆍ발톱ㆍ치아ㆍ뼈가 적다.
그런 까닭에 화생으로 태어난 몸은 목숨이 끝날 때 치 신체가 남지 않기에 볼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문] 만약 화생으로 태어나는 몸은 목숨이 끝날 때 볼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경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과 어떻게 상통될 수 있는가?
경전에 이르기를,
“화생으로 태어난 금시조(金翅鳥)는 화생으로 태어나는 용을 쳐서 움켜잡고 잡아먹는다”라고 하였다.
만약 화생으로 태어나는 몸은 나타나지 아니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먹거리로 삼겠는가?
[답] 생각으로 먹고자 하기 때문에 이를 취하는 것이다.
다만 이것으로 목마르고 배고픈 것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화생으로 태어나는 몸은 묘하게 연해서 뱃속에 들어가면 곧 먹는 것에 해당된다.
마치 기름이나 초가 뱃속에 들어가면 곧 음식으로 충당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화생으로 태어난 몸은 묘하게 연해서 뱃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음식으로 충당된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한꺼번에 삼켜 버리는 까닭에 음식에 충당된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 금시조라 하는 새는 방편을 쓴다.
먼저 그 꼬리를 삼킨 다음에 점차 머리까지 삼키기에 이른다.
목숨이 미처 다하지 아니하였을 때도 이것으로 먹거리에 충당된다.
그런 까닭에 화생으로 태어난 몸도 먹거리에 충당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 만약 화생으로 태어나는 몸은 목숨이 끝날 때 형체가 나타나지 아니한다면, 그것은 다른 경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과 어떻게 상통될 수 있는가?
경에 이르기를,
“지옥의 옥졸(獄卒)이 그의 죄인을 잡아 오면 다리부터 껍질을 벗겨서 목까지 벗기고 목에서부터 껍질을 벗겨 발까지 벗긴다”라고 하였는데, 이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었는가?
[답] 몸에 달라붙은 까닭에 볼 수 있었는데 몸에서 떨어졌다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겹친 구름은 번갯불이 나오면 나타났다가 번갯불이 사라지면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지옥의 옥졸이 몸에 달라붙은 까닭에 볼 수 있었지만 몸에서 떨어져 있었다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문] 천상의 새들은 난생인가, 화생인가?
만약 난생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죽을 때 몸이 보일 것인데 모든 천신(天神)들은 왜 그것을 보고 나서도 증오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가?
모든 천신들에게는 여섯 가지의 즐거움이 있다.
눈에 보이는 비가 즐거운 색뿐이라 즐겁지 않은 색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고,
언제나 기뻐서 기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고,
언제나 기억하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없고,
언제나 좋은 색뿐이라 좋지 못한 것이 없는 것이고,
언제나 상쾌한 색뿐이라 상쾌하지 않은 것이 없고,
묘한 것만 있되 묘하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근(意根)에 이르기까지도 이렇게 된다고 한다.
[답] 이런 논리가 제기되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하늘 위의 새는 난생이다”라고 하였다.
[문] 만약 난생이라 한다면 응당 목숨이 끝날 때 그 몸을 볼 수 있을 것인데, 모든 천신(天神)들은 어떻게 그 모습을 보고도 증오(憎惡)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가?
[답] 하늘 위의 새도 죽었을 때 볼 수 있다. 다만 바람이 불어서 떠나는 것이 빠를 뿐이다.
이와 같이 하늘 위의 새는 화생인가 하는 문제를 설명해 준다.
사생처(四生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