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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_아비달마구사론_6. 분별현성품(賢聖品), 24-25권
아비달마구사론 제24권
1)
욕계 9품의 수혹 중 앞의 6품을 끊은 자는 1생만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일래과라고 하는데, 이는 현재 생에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는 앞의 3품만이 끊어지고, 또 어느 때에는 4품만이 끊어진다. 따라서 전자는 3생만을, 후자는 2생만을 남기고 있어, 극칠반생의 예류과와 1생의 일래과의 중간단계로서 3생 또는 2생의 가가(kulaṃkula)를 설정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가가’란 인ㆍ천의 집에서 집으로 옮겨 간다는 뜻이다.(후술)
2)
즉 본송에서 두 번째 인연(무루근의 성취)을 설하지 않은 것은 수혹을 끊었다는 사실로써 이미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세 번째 인연(세 번, 두 번의 생을 받는 것) 역시 그것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설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럼에도 굳이 그것을 설하게 된 것은, 이후 반드시 세 번이나 두 번의 생만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3ㆍ4품의 수혹을 끊고 나서 더욱 증진한 결과 일래과에 이를 수도 있고(적게 받음), 바로 반열반하여 생을 받지 않을 수도 있으며, 불환의 성자가 되어 상류반(上流般, 상계로 전생하여 반열반, 세 번을 초과함)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명시해야 하는 것이다.
3)
즉 5품(중중품)을 끊을 경우, 이 생에서 바로 6품을 끊고 일래과에 이르기 때문에(5ㆍ6품은 함께 1생을 초래함) 5품단(斷)의 ‘가가’는 인정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욕계 제6품의 수혹은 5품단의 성자를 장애하여 일래과를 획득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 없는데, 그것은 일래과가 되더라도 어차피 욕계를 초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계 최후의 1혹(그것에 의해 한 번의 생을 남긴 성자를 ‘一間’이라 함)은 불환과의 획득을 장애하는데, 불환과는 바로 욕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욕계 9품의 수혹을 두고서 설정된 일래와 불환의 향ㆍ과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제1상상품 (2생)
제2상중품 (1생)
일래향제3상하품 (1생) ………… 3생가가
제4중상품 (1생) ………… 2생가가
제5중중품 (1생)
일래과제6중하품
제7하상품 ………………… 일간(불환향)
불환향
제8하중품 (1생)
불환과제9하하품
4)
일간(ekavīcika)이란 일래과(6품斷)와 불환과(9품단)의 중간단계로서, 인취 또는 천취에서 한 번의 생을 받고 다음 생에 반열반한다. 따라서 현생과 열반 사이에 1생의 간격이 있기 때문에 ‘일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5)
본론 권제18(p.819~820) 참조. 즉 인선근위(忍善根位)를 획득할 때에는 악취를 초래하는 업이 지극한 장애가 되며, 불환과를 획득할 때에는 욕계에 계속(繫屬)되는 업이, 무학과(즉 아라한과)를 획득할 때에는 색ㆍ무색계에 계속되는 업이 지극한 장애가 된다.
6)
7ㆍ8품의 수혹을 끊었다는 점에서 불환향은 일간과 동일하지만, 일간을, 세 가지 인연을 갖춘 자라고 한다면 불환향은 다만 단혹에 근거한 명칭일 따름이다.
7)
이는 ‘5하분결을 영원히 끊은 자를 불환이라고 한다’는 경설에 대한 해석이다. 즉 이치상으로 볼 때 초월증의 성자는 이생위에서 탐ㆍ진의 두 가지를, 뒤의 견도에서 유신견ㆍ계금취ㆍ의(疑)의 세 결을 끊으며, 차제증의 성자는 견도에서 세 결을, 수도에서 탐ㆍ진의 두 결을 끊지만, 지금 불환과의 단계에서 이러한 다섯 결의 끊어짐이 모두 모아지기 때문에 이를 은밀히 ‘5하결단’이라고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8)
즉 어떤 보특가라가 일찍이 생결(生結)의 비택멸은 획득하였으나 기결(起結)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을 경우, 그는 욕계에서 그를 핍박하고 어지럽히는 인연을 만나 그것에 의해 핍박되고 어지럽혀지지만, 능히 스스로 그 밖의 다른 결을 끊는 수승한 가행을 부지런히 닦게 된다. 그러다 가행이 아직 원만하게 성취되지 않았으나 목숨을 버려야 하는 인연을 만나 마침내 목숨을 버리게 되면, 기결의 힘으로 말미암아 색계의 중유를 받게 되는데, 많은 괴로움을 싫어하기 때문에 앞에서 일으킨 도에 편승하여 더욱 힘써 나아감으로써 그 밖의 결을 끊고, 아라한을 성취하여 반열반하게 되는 것이다.(『현종론』 권제31, 한글대장경201, p.348)
9)
생반열반이란 근수(勤修)와 속진도(速進道)를 갖춤에 따라 색계에 태어나서 오래지 않아 아라한을 성취하고 명종하여 반열반(즉 유여의열반)하는 불환을 말한다. 즉 이 때는 자유자재로 목숨을 버리는 일이 없기 때문에 아라한과를 성취하고 곧바로 반열반하는 무여의열반이 아니다.
10)
유행반이나 무행반열반이라고 하는 말은, 이를테면 어떤 보특가라가 태어나 많은 시간을 거쳐 바야흐로 무학위를 성취하였다고 할 경우, 그 중의 어떤 이는 용맹정진하여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이는 타고난 성품이 완만하여 게으름에도 그렇게 된 경우가 있으니, 이를 순서대로 유행과 무행이라고 이름한다. 즉 어떤 보특가라가 일찍이 욕계에서 쉬지 않고 가행함에 따라 삼마지의 힘으로 5하분결을 끊고 불환과를 성취한 후 색계에 태어나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다시 앞에서 닦은 종류의 도를 더욱 열심히 닦아 아라한을 성취하는 것을 유행반열반이라고 이름한다면, 무행반열반은 이와 반대되는 것이다. 혹은 색계에 태어나 오랜 시간을 거치고 나서 고행(苦行)에 의지(依止)하여 그 밖의 다른 결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유행반열반이라고 이름하니, 그는 수습하여 공용(功用)의 도에 의해 반열반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되는 것(즉 樂行에 의지하여 해탈하는 것)을 무행반열반이라고 이름한다.(『현종론』, 앞의 책, p.358)
11)
유위법을 연으로 하는 무루법에 의해 반열반하는 것이 유행반, 무위법을 연으로 하는 무루법에 의해 반열반하는 것이 무행반이라는 뜻. 그러나 그럴 경우, 중반열반도 유위법과 무위법을 연으로 하여 무루도를 일으키기 때문에 그것 역시 유행반ㆍ무행반이라고 해야 하는 모순을 초래하게 된다.
12)
『잡아함경』 권제29 제821경(대정장2, p.211상). 여기서는 5하분결을 끊음으로써 중반열반을 획득하며, 거기서 깨닫지 못한 자는 생반열반을 획득하며, 거기서 깨닫지 못한 자는 무행반열반을 획득하며, 거기서 깨닫지 못한 자는 유행반열반을 획득하며, 거기서 깨닫지 못한 자는 상류반열반을 획득하니, 이것을 증상의 혜학(慧學)이라 한다고 설하고 있다.
13)
보광(普光)과 법보(法寶)는 다 같이 이를 경부의 해석으로 판석하고 있다. 즉 유부에서는 빠르지는 않지만 많은 노력에 의해 획득되는 유행반을 무행반보다 상위에 두고 있지만, 경량부에서는 빠르며 어떠한 인위적인 노력 없이 자연적으로 획득되는 열반도인 무행반을 보다 상위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중현(衆賢)은 경에 따라 무행반을 먼저 설하기도 하고 유행반을 먼저 설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성취하는 데 걸리는 시간상으로는 사실상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무엇을 먼저 설하더라도 어긋남이 없지만, 유행반이 보다 존중할 만한 것이기 때문에 비바사사(毘婆沙師)는 그것을 먼저 설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현종론』 권제31, 앞의 책, p.349)
14)
잡수란 두 찰나의 무루정려 중간에 유루정려를 닦는 것으로, 보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뒤에서 논설함. 곧 잡수의 정려는 능히 5정거천(淨居天, 즉 無繁ㆍ無熱ㆍ善現ㆍ善見ㆍ色究竟의 5천을 말함)의 과보를 초래하기 때문에 색구경천에서 반열반하는 것이다.
15)
‘전초’란 색계 중의 어떤 한 천에서 몰하고 나서 바로 단박에 모든 처소를 초월하여 색구경천으로 가는 것을 말하며, ‘반초’란 모든 처소를 단박에 바로 초월하지 않고 중간천 내지는 아래 정거천에 이르러 하나의 처소를 초월하여 색구경천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변몰’은 색계에 대한 애미(愛味)가 많아 모든 천에 한번씩 태어난 후 색구경천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후술)
16)
즉 범중천에서 몰하여 색구경천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14천이 있는데, 반초는 바로 1천(그럴 경우 색계 15생) 내지 13천(그럴 경우 색계 3생)을 초월하는 것을 말한다. 곧 유부 비바사사(毘婆沙師)는 대범천을 하나의 천처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16천이라 한 것이다.(次註 참조)
17)
가습미라 비바사사는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 대범천을 제외한 색계 16천설을 주장하는 것이다.(본론 권제8 주4 참조) 즉 색계에 대범천이 존재한다면 불환의 성자는 이곳에서도 생을 받아야 하겠지만, 범중천의 주인인 대범천은 스스로를 일체 세간의 원인이라고 하는 계금취견을 일으키고, 또한 자신이 일체 세간의 유일한 구제주라는 견해를 일으키기 때문에 불환의 변몰성자는 그곳에 태어나는 일이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색계의 별도의 처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18)
색계 5정거천은 바로 잡수정려에 의해 태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후술)
19)
두 가지 상류반 중에서 잡수에 의해 색구경천에서 반열반하는 자는 관행자로서 관(觀)이 뛰어나고, 무잡수에 의해 유정천에서 반열반하는 자는 지행자로서 지(止)가 뛰어나니, 전자는 혜(慧)를 즐기는 자이고, 후자는 정(定)을 즐기는 자이기 때문이다.
20)
무색계에는 중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색계의 반열반 중에 중반열반을 제외한 네 종류만이 있을 뿐이다.
21)
5종불환 가운데 유행반과 무행반은 생반열반에 포섭된다.
22)
본론 권제8(p.399)에서 이에 대한 비유가 논설되었다. 즉 “비유하자면 장작개비의 작은 불꽃이 흩어질 때에는 잠시 일어났다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바로 가까이서 소멸하는 것처럼 첫 번째 선사(善士)도 역시 그러하다. 또한 비유하자면 쇳덩어리의 작은 불꽃이 흩어질 때에는 불꽃이 일어나 중간쯤 지속하다가 소멸하는 것처럼 두 번째 선사도 역시 그러하다. 또한 비유하자면 쇳덩어리의 커다란 불꽃이 흩어질 때에는 멀리까지 이르도록 떨어지지 않고 있다가 소멸하는 것처럼 세 번째 선사도 역시 그러하다.” 참고로 『현종론』 권제31(한글대장경201, p.354)에서는 중유로 처음 생겨나자마자[初起], 혹은 멀거나 가까운 당래에 태어날 처소에 이르러 반열반을 획득하는 세 가지의 차별로 설하고 있다.
23)
여기서 ‘등’은 색계에 태어나 어떠한 가행 없이 반열반하는 무행반열반을 말한다.
24)
순기의 ‘기’는 중유의 다른 이름. 즉 순기업은 중반을, 순생업은 생반을, 순후업은 상류반을 인기한다. 다음의 번뇌와 근기의 경우도 이에 준하여 해석할 것.
25)
즉 중반과 생반을 각기 시간적으로 나눈 세 종류는 하ㆍ중ㆍ상품의 번뇌와 상ㆍ중ㆍ하품의 근기의 차별에 의한 것이고, 상류반을 전초ㆍ반초ㆍ변몰의 세 종류로 나눈 것은 번뇌와 근기, 그리고 순후수업의 차별에 따른 것이다.
26)
『중아함경』 권제2 「선인왕경(善人往經)」(대정장1, p.427). 7선사취란 중반과 생반의 각기 세 종류와 상류반의 불환을 말하는 것으로, 그는 이미 욕계의 번뇌를 끊어 더 이상 악을 행하지 않을 뿐더러 다시는 욕계에 태어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선사취’이다.
27)
중반과 생반은 각기 세 가지로 나누면서 어째서 상류반은 한 가지로 설정한 것인가 하면, 전초(全超)든 반초(半超)든 변몰(徧歿)이든 상류반의 세 가지는 다 같이 상지로 유전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즉 앞의 두 가지 불환도 역시 그 뜻이 동일하지만, 그것의 개별적인 상이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도록 각기 세 가지로 나누었지만, 상류반의 세 가지는 그 상의 차별이 알기 쉬워 한 가지로 건립하였다. 또는 앞의 두 불환의 차별은 그러한 바를 쉽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세 가지로 나누었지만, 상류반의 차별은 그 뜻이 복잡하여 한꺼번에 나타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만 한 가지로 건립하였다. 이를테면 중반과 생반의 경우 장차 생겨날 것[將生]과 이미 생겨난 것[已生]으로 존재하면서 근기와 번뇌의 품류가 다르기 때문에 세 종류로 나눈 것이지만, 상류반의 경우에는 장차 생겨나는 것과 이미 생겨난 것 모두와 통한다. 그리고 장차 생겨나는 상류반에는 다시 정려의 잡수와 무잡수에 따른 두 가지 종류가 있으며, 이미 생겨난 상류반이 둘로 나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논의의 편의상 한 가지로만 설하게 되었다.(자세한 내용은 『현종론』, 앞의 책, p.355 참조)
28)
예류과나 일래과의 성자도 선업을 행하지만 불선심으로써 비범행 등을 지어 욕계에 태어난다는 점에서 범부와 다르지 않다. 이에 반해 불환의 성자는 선행을 행하면서 불선심으로써 행하는 비범행 등을 떠났고, 또한 욕계를 초월하여 더 이상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선사취’로 설정하게 된 것이다.
29)
『중아함경』 권제2 「선인왕경(善人往經)」(대정장1, p.427상), “比丘行當如是. 我者無我亦無我所, 當來無我亦無我所. 已有便斷 已斷得捨, 有樂不染 合會不著. 如是行者無上息迹 慧之所見. 然未得證.” 즉 유학의 정견이란 4제를 관하여 고(苦)ㆍ비아(非我) 등의 행상을 관한 자(즉 경문상에서 ‘비구의 행이 이와 같은 자’)로서, 견도 고법지인 이후의 성자를 말한다. 따라서 7선사 이외 그 밖의 유학의 성자도 정견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선사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난문.
30)
즉 모든 유학은 더 이상 살생ㆍ투도ㆍ사음ㆍ망어ㆍ음주를 짓지 않는 율의를 획득하였으며, 견소단의 불선을 영원히 끊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선사’라고 일컬을 수 있다.
31)
중반과 생반과 상류반의 불환 이외의 유학의 성자도 ‘선사’로 일컬어지지만 중반 등의 성자만이 탐ㆍ진 등 욕계의 모든 번뇌를 끊어 더 이상 악을 행하지 않을 뿐더러 상계로 나아가고[趣], 다시는 욕계에 돌아오는 일이 없기 때문에 ‘선사취’이다. 즉 예류ㆍ일래의 성자는 욕계를 초월하지 않지만, 불환의 성자는 욕계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32)
일찍이 생을 거친 성자, 즉 경생(經生)의 성자란 타계에 가지 않고 항상 어떤 일계에서 태어나고 죽은 자를 말하는데, 이러한 경생의 성자가 불환과를 획득할 경우에도 앞에서 설한 바와 같은 중반ㆍ생반ㆍ상류반의 구별이 있는 것인가 하는 물음.
33)
욕계에서만 생을 거친 자는 욕계의 열등함과 더러움만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상계도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여 상계로 가지 않고 반열반하지만, 색계의 경생의 성자는 색계의 선미(善美)함을 알았기 때문에 무색계로 나아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다.
34)
『중아함경』 권제33 「석문경(釋問經)」(대정장1, p.638상), “나는 여기서 목숨을 마친 뒤 인간으로 태어나……지혜[智]를 배워 만약 지혜를 획득하면 바로 구경지(究竟智, 즉 아라한)를 획득하고 구경변(究竟邊)을 획득하겠지만, 지혜를 배워 만약 지혜를 획득하고서 구경지를 획득하지 못하면 색구경천이라 이름하는 최상의 묘천(妙天)에 태어나리니, 대선인(大仙人)이시여, 원컨대 응당 아나함(阿那含, 즉 불환)을 획득하게 될 것입니다. 대선인이시여, 나는 이제 결정코 수다원(須陀洹)을 획득하였습니다.(역자 抄譯)” 즉 천제석이 천 중에서 수다원을 획득하고서 인간으로 태어나 반열반한다고 말한 것은 성자로서 경생(經生)하는 자를 나타내며, 죽어 색구경천에 태어난다고 말한 것은 상계에 태어난다는 사실을 나타내므로, 이 경문은 욕계의 경생의 성자로서 상계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경증이 된다.
35)
『대비바사론』 권제53(한글대장경120, p.73). 즉 ‘천제석이 욕계 경생의 성자는 상계에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서 그같이 말한 것으로, 부처님께서는 그 같은 그릇된 앎이 도에는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꾸짖어 제지하지 않으신 것이며, 또한 훗날 스스로 법성을 알게 될 때 부끄러워할까 염려하여 일부러 꾸짖지 않으신 것이다.’
36)
일찍이 생을 거치면서 무루근의 성도(聖道)를 수습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지극히 견고하며, 아울러 그 소의신도 역시 성자의 그것으로 지극히 수승하기 때문이다.
37)
여기서 욕계의 온갖 법이란 아직 욕계를 떠나지 못한 자에게 성취된 번뇌와 업과 이숙과를 말한다.
38)
즉 아직 욕계법(번뇌와 업과 그에 따른 이숙과)을 떠나지 못한 성자는 욕계의 불선의 번뇌와 상계 무기의 번뇌를 끊지 않으면 안 되며, 불환과와 아라한과 혹은 여기에 일래과를 더한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사문과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리하여 마침내 3계의 법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된다.
39)
낙행이란 지관(止觀)이 균등하게 일어나 심사(尋伺) 등의 동란이 없어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본론 권제25(p.1151)의 ‘낙통행’을 참조 바람.
40)
욕계를 떠나지 않은 성자는 근본정에 들 수 없으며, 이욕의 이생은 비록 근본정에 들 수 있을지라도 무루정을 닦을 수 없기 때문이다.
41)
이는 공력(功力)에 의하지 않고 저절로[任運] 이루어지는 잡수이다.
42)
즉 앞의 두 찰나에서 불염무치(不染無癡)의 정장(定障)을 멸하고, 제3찰나에서 그것의 불성취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43)
미상응의 등지 즉 미정(味定, 정려에 대한 집착)은 어떤 과위로부터 물러나게 하는 인연이 되기 때문이다.
44)
불시해탈은 더 이상 물러남이 없이 어느 때라도 마음만 먹으면 반열반에 들 수 있는 부동법(不動法)의 아라한을 말하며, 시해탈은 적당한 시기를 만나야 비로소 반열반에 들 수 있는 5종의 아라한을 말한다.(본론 권제25, p.1125 참조)
45)
5정거천이란 색계 제4정려에 포섭되는 무번(無煩)ㆍ무열(無熱)ㆍ선현(善現)ㆍ선견(善見)ㆍ색구경천(色究竟天)으로, 불환의 성자가 태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5나함천(那含天)’이라고도 한다.
46)
중품의 잡수는 앞(하품)의 세 찰나를 가행으로 삼아 여기에 세 찰나를 더한 것이며, 나아가 극상품은 앞의 열두 찰나의 마음을 가행으로 삼아 세 찰나의 잡수를 더한 것이다. 즉 하품인 세 찰나의 잡수에 의해 무번천에, 중품인 여섯 찰나의 잡수에 의해 무열천에, 상품인 아홉 찰나의 잡수에 의해 선현천에, 상승품인 열두 찰나의 잡수에 의해 선견천에, 상극품인 열다섯 찰나의 잡수에 의해 색구경천에 태어나 반열반하게 된다.
47)
무루법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5정거천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유루법을 도와 그것으로 하여금 초래하게 한다는 뜻. 즉 무루법은 유(有)를 버리고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유루의 업력만이 그것(정거)의 이숙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48)
칭우에 의하면 이는 대덕 실리라다(室利羅多)의 설로서, 신(信)ㆍ근(勤)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5무루근이 증상하여 정려를 잡수하면 무번천 내지 색구경천에 태어나게 된다는 뜻이다.
49)
『중아함경』 권제51 「아습패경(阿濕貝經)」(대정장1, p.751중하).
50)
신증(kāyasākṣin)이란 멸진정을 획득한 불환의 성자를 별도로 일컫는 명칭으로, 멸진정은 심식(心識)이 멸한 상태이므로 심식이 존재하지 않는 소의신을 근거로 하여 생겨났기 때문에 ‘심증’이라 하지 않고 ‘신증’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51)
즉 신증이란 불환의 성자가 멸진정에 머물 때의 명칭이 아니라 출정(出定)하여 심식이 존재하는 소의신[有識身]에 일찍이 획득된 바가 없었던 적정을 증득하였을 때의 명칭이라는 뜻. 보광에 의하면 이는 논주 세친이 경부의 해석을 서술한 것으로, 멸진정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멸정 중 세심(細心)’ 내지 색심호훈설(色心互熏說)을 주장하는 경량부로서는 무식(無識)의 소의신에 근거한다는 유부의 해석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출정위(出定位)에 근거하여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52)
『중아함경』 권제30 「복전경(福田經)」(대정장1, p.616상) 참조. 복전에는 유학과 무학 두 가지가 있으며, 유학에는 예류향ㆍ예류과ㆍ일래향ㆍ일래과ㆍ불환향ㆍ불환과ㆍ아라한향ㆍ수신행ㆍ수법행ㆍ신해[信解脫]ㆍ견지[見到]ㆍ가가ㆍ일간[一種]ㆍ중반ㆍ생반ㆍ유행반ㆍ무행반ㆍ상류반의 열여덟 가지가 있고, 무학에는 퇴법(退法)ㆍ사법(思法)ㆍ호법(護法)ㆍ안주법(安住法)ㆍ감달법(堪達法)ㆍ부동법(不動法)ㆍ불퇴법(不退法)ㆍ혜(慧)해탈ㆍ구(俱)해탈의 아홉 가지가 있다.(이상 27현성) 그러나 이 「복전경」에서는 아라한향 대신 신증을 열거하고 있다.
53)
즉 유학은 무루의 3학(계ㆍ정ㆍ혜)과 택멸의 과보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신증불환의 경우 그가 획득한 멸진정은 유루이기 때문에 무루의 3학이 아니며, 유위이기 때문에 이계과가 아니다. 그래서 유학의 범주에서 제외한 것이다.
54)
여기서 6종성이란 5종불환이 반열반하게 될 때 획득하게 되는 아라한의 여섯종류. 즉 퇴법ㆍ사법ㆍ호법ㆍ안주법ㆍ감달법ㆍ부동법의 종성을 말한다. 본론 권제25 초두 참조.
55)
4정려 각각의 이염에 각기 아홉 가지 종류(구박으로부터 8품의 끊어짐까지)가 있기 때문이다.
56)
이를테면 욕계 9품의 혹을 끊은 이를 색계 구박의 성자라고 하듯이, 색계 4선정 각각에는 하지의 9품의 혹을 끊은 구박과 1품 내지 8품의 혹을 끊은 여덟 종류의 성자가 있는 것이다.
57)
그러나 엄격히 말해 실제로는 유정지 제9품(하하품)의 혹을 끊는 무간도까지를 아라한향이라고 한다.(후술)
58)
유정지 이하의 번뇌는 앞에서 이미 끊어졌기 때문에 금강유정에 의해 끊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사실상 일체의 번뇌를 끊는 공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단계의 선정과 상응하는 무간도는 일체의 무간도 중에서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금강’에 비유한 것이다.
59)
유정지 제9품의 혹을 끊는 무간도, 즉 금강유정은 미지ㆍ중간ㆍ4정려ㆍ아래 3무색 등의 무루정에 의지하여 생겨나는 것으로, 법ㆍ유지(智), 고(苦)ㆍ공(空) 등의 행상, 연(緣)이 되는 4제 등의 차별에 따라 동일지(地)에 포섭되는 금강유정이라 하더라도 다수의 종류가 있을 수 있다.
60)
상 2계의 8지를 능히 대치하는 도류지는 서로 동류인이 되기 때문에 8지의 도제를 소연으로 삼을 때에는, 그것을 별연(別緣)으로 삼지 않고 총연(總緣)으로 삼아 관찰한다. 그래서 그 때의 행상은 단지 도(道)ㆍ여(如)ㆍ행(行)ㆍ출(出) 네 가지뿐인 것이다.
61)
이를테면 앞에서 언급한 쉰두 가지 중에서 멸ㆍ도법지와 아래 4정려의 멸제를 소연으로 하는 멸류지 등 6지(智) 각각의 네 가지 행상(즉 스물네 가지)을 제외한 것으로, 무색계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에는 필시 법지가 없을 것이고, 아울러 하지의 멸제를 소연으로 하는 유지품(즉 멸류지)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의 도제를 소연으로 하여 관찰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남이 없으니, 앞에서 이미 해석한 대로 자지와 상ㆍ하지의 대치도를 모두 하나의 소연[總緣]으로 삼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32, 앞의 책, p.365)
62)
앞의 공무변처에 포섭되는 스물여덟 가지 금강유정 중에서 공무변처의 멸제를 소연으로 하는 멸류지의 네 행상을 제외한 스물네 가지.
63)
앞의 스물네 가지 중에서 식무변처의 멸제를 소연으로 하는 멸류지의 네 행상을 제외한 스무 가지.
64)
즉 도류지는 첫 번째 설과 마찬가지로 상 2계의 도제를 총연(總緣)으로 삼아 네 가지 행상만을 갖지만, 멸류지의 경우 8지의 멸제를 총연으로 삼기도 하고 혹은 별연으로 삼기도 하여 그 계산이 지극히 복잡한데, 이는 비바사사(毘婆沙師)의 정설이다.(자세한 설명은 『대비바사론』 권제28, 한글대장경119, p.62-64에서 如是說者의 설을 참조 바람)
65)
‘번뇌의 멸진[盡]’이란 택멸을 말하는 것으로, 번뇌를 소멸하고서 ‘생이 이미 다하였다’고 아는 것을 ‘진지’라고 한다. 본론 「지품(智品)」 권제26(p.1178) 참조.
66)
유정지 제9품의 해탈도는 모든 누(漏)의 단진(斷盡)의 득, 즉 3계 9지의 일체의 번뇌를 단진하여 획득하는 택멸의 득과 구생하는 최초의 법이기 때문에 ‘진지’라고 이름한 것으로, 그 밖의 무생지(無生智)나 무학의 정견과 같은 것은 비록 모든 누의 단진의 득과 구생할지라도 최초의 법이 아니기 때문에 진지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67)
여기서 ‘응과’는 응공(應供)의 과(果), 즉 아라한과를 말한다. 아라한은 마땅히 공양을 받을 만한 이[應供]로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기 때문에 ‘무학(無學, aśaikṣa)’이다.
68)
이에 대해 진지가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성자(예류향 내지 아라한향)는 또 다른 과위를 획득하기 위해 부지런히 학을 수습하기 때문에 유학(有學, śaikṣa)이라 한다. 즉 예류ㆍ일래ㆍ불환의 성자가 자신의 과위에 머물며, 물러나지도 않고 승과도로 나아가지도 않는 상태(본성, prakṛti)에 머무르는 것은, 마치 길가던 행인이 잠시 쉬는 것과 같아서 표면적으로는 평온할지라도 더욱 증진하려는 의업이 종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배우려는 의지[學意]가 충만되지 않아 학(계ㆍ정ㆍ혜학)의 ‘득’이 항상 소의신을 쫓아 일어나기 때문에 ‘유학’이라 이름한 것이다.(후술)
69)
『잡아함경』 권제35 제976경(대정장2, p.252하), “ 云何爲學?……佛告尸婆, 學其所學故名爲學.”
70)
여기서 본성은 예류과 등이 그 같은 과위에 머물면서 물러나지도, 승과도(勝果道)로 승진하지도 않는 상태를 말한다. 본권 주68) 참조.
71)
모든 무위법은 비록 무루일지라도 유학법이나 무학법이라고는 이름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유학과 무학이 획득한 택멸열반의 무위법은 이생도 역시 유류의 세속도(즉 6行觀, 후술)로써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획득하는 일이 없는 비택멸과 허공의 무위법은 그들에게 계속(繫屬)되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로지 무루의 유위법, 즉 성도(聖道)만이 유학과 무학의 법이다.
72)
유루의 세속도로써 욕계 6품 또는 9품의 수혹 등을 떠난 초월증자가 견도에 들 때는 예류과와 일래과를 초월하기 때문에(본론 권제23 주86 참조) 그것의 향도는 앞의 과위에 포섭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과는 별도의 존재로서 일래향(배리)ㆍ불환향(전리)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73)
즉 차제증자는 무루도로써 수혹을 끊지만, 초월증자는 유루도로써 끊는다.
74)
이하 다섯 단락의 본송은 방론(傍論)으로, 무학론과 관련하여 그 대치도의 제문제, 이를테면 유ㆍ무루도와 이염(離染)ㆍ이계득(離繫得) 관계, 유ㆍ무루도와 이염의 소의지(地) 문제, 근분정과 이염의 관계, 유루도의 소연과 행상에 대해 논설하고 있다.
75)
무루도는 유루에 대해 세력이 강력하여 자지나 상지 등의 혹을 능히 모두 대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루 세속도의 경우 오로지 상지 근분정(近分定) 중의 그것만이 바로 아래 지의 번뇌를 끊을 수 있는데, 유정지는 더 이상 상지도 상지의 근분정도 갖지 않기 때문에 유정지의 번뇌는 유루 세속도에 의해 끊어지는 일이 없다. 또한 자지의 유루도는 반대로 번뇌가 수증하는 자량이 되는 경우가 있어 자지의 혹을 능히 대치할 수 없기 때문에 유정지의 번뇌는 오로지 무루도에 의해서만 이계되는 것이다. 여기서 유루의 세속도란 예의 6행관(行觀)으로서, 상지는 정(靜)ㆍ묘(妙)ㆍ리(離)이고, 하지는 추(麤)ㆍ고(苦)ㆍ장(障)이라고 관하는 것을 말한다.(후술)
76)
이는 자지의 세속도가 자지의 번뇌를 대치할 수 없는 이유를 밝힌 것으로, 즉 어떤 지의 유루 세속도가 능히 그 지의 번뇌를 대치하는 경우라면, 그 같은 번뇌는 유루
77)
즉 아래 8지의 번뇌는 상지 근분정의 세속도와, 자지와 하지의 무루도에 의해 끊어질 수 있다.
78)
즉 유학의 성자가 무루도로써 하(下) 8지의 번뇌를 떠날 때, 색계의 4근본정에 의해 둔근의 불환으로부터 이근의 불환에 이르게 되면 앞서 성취한 둔근의 무루도는 모두 버리고 오로지 이근의 무루도만을 획득할 것이기 때문에 아래 3무색정에 존재하는 번뇌의 이계득은 획득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은 없기 때문에 무루의 이계득을 획득할 때 유루의 이계득도 함께 획득된다고 말한 것이다. 참고로 무루도는 퇴실(退失)ㆍ득과(得果)ㆍ전근(轉根) 시에 버려지고, 유루도는 퇴실ㆍ명종ㆍ월계지(越界地)ㆍ단선근 시에 버려진다.
79)
즉 유정지의 염오를 떠나고서 그 후 4정려에 의해 전근(轉根)을 획득하여 일찍이 획득한 둔근의 무루도를 버릴 때에도 역시 유루의 이계득은 존재하지 않지만 유정지의 유루의 혹은 성취되는 일이 없으며, 또한 이생이 미지정에 의해 욕계의 혹을 끊고 이계득을 일으켜 택멸을 획득하고, 다시 승진하여 초정려의 혹을 끊고 명종한 후 제2정려 등에 태어날 때 욕계 등의 이계득을 버렸을지라도 욕계 등의 번뇌를 성취하지 않듯이, 유루의 이계득을 획득하지 않을지라도 아래 3무색정의 번뇌를 성취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앞의 유여사의 주장은 올바른 논증이 아니다는 뜻. 유부의 정설은 이러하다. “유루ㆍ무루의 두 가지 도는 8지의 혹에 대해 작용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 중의 하나가 현기하여도 유루와 무루의 두 가지 이계득을 인기하는 것으로, 그것이 각각의 번뇌단을 성취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현종론』 권제32, p.372)
80)
이는 논주 세친의 보충설명으로, 성자는 하 8지의 수혹에 대해서는 이생처럼 유루도와 무루도에 의해 끊기 때문에 두 가지 이계득을 획득하지만, 견혹과 유정지의 수혹의 경우는 오로지 무루도에 의해서만 그것의 이계를 획득한다는 뜻.
81)
이미 하지의 염오를 떠나고 나서 무루의 근본정 등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직 하지의 염오를 떠나지 않았을 때에는 상지의 무루도가 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무루도는 4정려와 미지정과 정려중간과 3무색정의 9지(地) 모두에 의지하여 일어날 수 있다.
82)
유루도는 자지의 번뇌에 의해 수증된 것이기 때문에(주76 참조), 그 세력이 저열하기 때문에 자지와 상지의 번뇌를 끊지 못하는 것이며, 바로 아래 지를 제외한 그 밖의 하지의 번뇌를 끊지 못하는 것은 이미 그것을 떠났기 때문이다.
83)
근분정에 의해 염오를 떠날 때, 각 지의 제9품의 해탈도도 역시 근분정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인가, 근본정에 의해 일어나는 것인가 하는 물음. 초정려의 근분인 무루의 미지정은 욕계 내지 유정지의 혹을 끊기 때문에 여기서는 주로 유루의 근분정과 이염(離染)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84)
근분이란 4정려ㆍ4무색정(이를 ‘근본정’이라 함)의 예비적 단계로서, 근본정에 접근한 단계이기 때문에 ‘근분(近分)’이다. 그래서 여덟 가지가 있는 것으로(초정려의 근분은 미지정), 이것은 무간ㆍ해탈ㆍ유루ㆍ무루의 모든 도의 근거가 된다.(본론 「정품」 권제28, p.1307에서 상론됨)
85)
즉 미지정에 의해 욕계의 염오를 떠나며, 제2정려의 근분에 의해 초정려의 염오를, 제3정려의 근분에 의해 제2정려의 염오를 떠난다.
86)
아래 세 정려의 경우, 근분정은 모두 사수이지만, 근본정의 초ㆍ제2 정려는 희수, 제3정려는 낙수로서, ‘수’를 달리하기 때문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그러나 하지의 혹을 떠날 때는 반드시 상지를 욕구하기 때문에, ‘수’가 다르지만 않다면 반드시 근본정으로 들어간다.
87)
부동종성은 아라한의 6종성 중의 하나로, 더 이상 물러남이 없는 종성을 말한다.(본론 권제25, p.1125 참조). 진지와 무생지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6(p.1178)을 참조할 것.
88)
즉 퇴법(退法) 등 적당한 시기를 만나야 비로소 반열반에 들 수 있는 시(時)해탈의 아라한은 극과(極果)에 이르면 물러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금강유정이 바로 소멸하는 상태 중에서도 무생지를 획득하지 못하며, 오로지 진지 혹은 무학의 정견만을 획득할 뿐이다.
89)
『중아함경』 권제48 「마읍경(馬邑經)」 제1(대정장1, p.725하), “무엇을 사문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온갖 악과 불선의 법과 온갖 누(漏)의 더러움과, 미래 존재의 근본과 번뇌의 뜨겁고 괴로운 과보와 생로병사의 원인이 되는 것을 종식시키는 이러한 이를 사문이라고 한다.”
90)
즉 이생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여러 가지의 악과 불선법을 능히 종식시키고 제거하려는 것은 다름이 없지만, 무상정(無想定)을 진실의 열반이라 생각하여(이를 異趣涅槃이라 한다) 진실의 열반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
91)
여기서 유위란 유위의 무루 5온(즉 8聖道)을 말하며, 무위란 택멸을 말한다.
92)
『잡아함경』 권제29 제797경(대정장2, p.205중). 여기서는 사문법으로서 8성도(즉 正道)와 사문과로서 수다원 등의 4과를 설하고 있다.
93)
해탈도는 사문의 본성[沙門性]이면서 역시 또한 사문의 과보[沙門果]이다. 그러나 무간도는 번뇌를 끊고 해탈도를 인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지 청정의 무루도로서의 원인, 즉 사문성일 뿐 사문의 과보는 아니다.
94)
초월증자가 세속도로써 일래ㆍ불환과를 획득하였다고 할 때, 이러한 과는 세속도에 의해 획득된 택멸뿐만 아니라 견도 16심에 의해 획득된 택멸을 그 본질로 삼는다. 즉 세속도와 무루의 성도가 공동으로 하나의 사문과를 성취한 것이다.
95)
『잡아함경』 권제29 제797경(대정장2, p.205하). 여기서 견소단인 3결(신견ㆍ계금취ㆍ疑)을 끊고 수소단의 제6품을 끊은 이를 ‘탐ㆍ진ㆍ치가 희박해진 자’(일래과의 다른 이름, 본권 첫머리를 참조할 것)라고 하고, 견소단의 3결과 수소단의 탐ㆍ진을 끊은 자를 불환과라고 한 것은 바로 무루단(견도)과 유루단(수도)이 상잡하여 일래과와 불환과를 성취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96)
사문과에서 물러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대로 목숨을 마치지 않고, 반드시 다시 획득한 후 비로소 목숨을 마치게 된다.(『대비바사론』 권제61, 한글대장경120, p.256) 즉 죽은 자의 물건에 왕의 도장이 찍히면 더 이상 그것을 수집한 사람의 물건이라고 이름하지 않듯이 비록 유루단일지라도 무루단의 득이라는 도장이 찍힌 것이기 때문에 역시 ‘사문과’라고 이름할 수 있다.(『현종론』 권제32, 앞의 책, p.383)
97)
주89)의 「마읍경(馬邑經)」, “무엇을 범지(梵志)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온갖 악과 불선의 법과 온갖 누(漏)의 더러움과, 미래 존재의 근본과 번뇌의 뜨겁고 괴로운 과보와 생로병사의 원인이 되는 것에서 멀리 떠난 이러한 이를 범지라고 한다.”
98)
즉 말없이 고요[寂黙]하고 텅 비어 숙연한 이를 ‘범’이라고 이름하는데, 부처님은 바로 이러한 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범’이라는 명칭으로 설정하게 되었으며, 이미 스스로 깨닫고서 다른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이것(사문성)을 굴려 그들에게 베풀어 주었기 때문에 ‘범륜’이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현종론』 권제32, 앞의 책, p.385)
99)
『잡아함경』 권제15 제379경(대정장2, p.104상). 일명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교진여 등에게 4성제의 법륜을 세 번 굴리셨다.
100)
‘빠르게 작용한다’고 함은 15찰나에 4제를 현관하는 것을 말하며, ‘버리고 취한다’고 함은 4제ㆍ8부소단이나 무간도와 해탈도의 순서로 나아가는 것을, ‘아직 항복하지 않은 것을 항복시킨다’고 함은 무간도로써 번뇌를 끊는 것을, ‘이미 항복한 것을 진압한다’고 함이란 해탈도로써 번뇌를 끊는 것을, ‘위아래로 굴러가는 것’이란 욕계의 고제와 상 2계의 고제, 욕계의 집제 등의 관지(觀智)를 교대로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101)
주99)의 『잡아함경』 참조.
102)
즉 6근과 6경이 합해져 12처가 되지만 각기 여섯 가지의 근과 경이 상대하는 법이기 때문에 ‘2법’이라고도 한다. 또한 7처선이란 5온 각각을 고ㆍ집ㆍ멸ㆍ도ㆍ애미(愛味)ㆍ과환(過患)ㆍ출리(出離)로 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35처선이 되지만, 7이라는 수가 동일하기 때문에 다만 ‘7처선’이라고 한다. 이처럼 3전 12행상도 각각의 제에 적용할 경우 12전 48행상이 되지만, 그 수가 동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컫는다는 뜻.
103)
보광에 따르면 이상은 경부(經部)의 힐난과 해명이다. 즉 3전 12행상을 모두 설함에 따라 그것과 관계된 일체의 법문이 다른 상속신(즉 교진여 등)에 전이하여 그 뜻을 이해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교법의 굴림’을 줄여 ‘굴렸다[轉]’고 한 것이다. 혹은 견ㆍ수ㆍ무학의 성도가 모두 법륜으로, 교화될 유정의 상속신에 전생(轉生)하였기 때문에 ‘성도인 법륜이 굴러가 생겨났다’를 줄여 ‘굴렀다’고 한 것이다. 나아가 일체의 성도가 법륜인데, 어찌하여 계경에서는 오로지 교진여 등에게 견도가 생겨났을 때만을 ‘법륜이 굴렀다[轉法輪]’고 하였는가 하면, 그것은 견도가 다른 상속신으로의 전생의 시작이며, 법륜의 최초이기 때문에 다른 두 가지 도에 근거하지 않고 ‘처음[初]’의 도에 따라 그 명칭을 설정한 것일 뿐이다.(『구사론기』 권제24, 대정장41, p.371상)
104)
이는, 차제증자가 처음으로 욕계의 혹을 떠나 불환과를 획득하면 그것은 욕계의 몸에 의지한 것이지만, 초월증자는 일찍이 이생위에서 욕계의 혹을 단진하였기 때문에 색계의 몸으로도 불환과를 획득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다.
105)
즉 무색계에는 색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아’ 등의 가르침을 청문(聽聞)할 수 없으며, 이러한 가르침을 듣지 않고서는 결정코 견도에 들 수 없기 때문이다.
106)
즉 견도는 먼저 욕계의 고제를 소연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곳에서는 하지를 소연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무색계의 소의신은 견도의 소의가 되지 않는 것이다.
107)
이를테면 욕계 중에서는 온갖 고수(苦受)가 있어 조그마한 즐거움이라도 낳기 위해서는 그것을 싫어하고 배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색계에서는 뛰어난 선정의 즐거움에 탐착하며, 장수하고, 병이 없으며, 탐욕이 없고, 그것을 배반하여 떠나려고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능히 견도에 들지 못하는 것이다.
108)
‘통달’이란 4제에 통달하는 것으로서, 5종의 불환은 바로 욕계에서 그것을 통달하고, 색계에 이르러 구경의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다. 곧 계경에서 색계에서 통달한다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는 견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비달마구사론 제25권
1)
『중아함경』 권제30 「복전경(福田經)」(대정장1, p.616상). 여기서는 사법(思法)ㆍ승진법(昇進法, 즉 감달법)ㆍ부동법(不動法)ㆍ퇴법(退法)ㆍ불퇴법(不退法)ㆍ호법(護法)ㆍ실주법(實住法, 즉 안주법)ㆍ혜해탈(慧解脫)ㆍ구해탈(俱解脫)의 9무학을 설하고 있다. 이는 6종성에 불퇴법ㆍ혜해탈ㆍ구해탈을 더한 것으로, 불퇴법은 부동법에 포섭되고, 두 가지 해탈은 멸진정의 획득 여부에 근거한 것이므로 이러한 여섯 가지 종성에 포섭되기 때문에 아비달마에서는 아라한에는 오로지 여섯 종성만이 있다고 설하는 것이다.(『현종론』 권제33, 한글대장경201, p.390) 참고로 본론에서의 9무학은 앞의 5종성과 본득(本得)에 의한 부동종성과 연근(練根)에 의한 부동종성, 그리고 독각과 대각(大覺)이다.(후술)
2)
이미 획득한 공덕에서 퇴실하지 않기 위해 항상 애호하며, 마음으로 번뇌의 계박에서 해탈한 것이기 때문에 ‘시애심해탈’이다.
3)
‘시해탈’은 바로 ‘때를 기다려 해탈한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대시해탈(待時解脫)’이라고 해야지만, ‘타락죽을 담은 항아리[盛酥甁]’를 ‘타락죽 항아리[酥甁]’라고 하듯이 ‘대’자를 생략하였다는 뜻.
4)
『대비바사론』 권제101(한글대장경122, p.27-28)에 의하면, 좋은 옷과 음식과 와구와 처소와 설법과 보특가라를 획득할 때, 비로소 앞의 5종성 아라한을 낳게 된다.
5)
잠시 동안 해탈을 획득하여 퇴타(退墮)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해탈’이라고 이름한 것이며, 궁극적[畢竟]으로 해탈을 획득하여 이후 퇴타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불시해탈’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6)
아라한의 종성의 차별은 선천적인 것인가, 혹은 후천적인 수련에 의한 것인가 하는 물음.
7)
이와 마찬가지로 이전에 사법ㆍ호법ㆍ안주법ㆍ감달법이었던 자가 근기를 단련하여 호법ㆍ안주법ㆍ감달법ㆍ부동법이 되는 경우도 있고, 선천적으로 호법 등인 경우도 있다.
8)
퇴법이란 질병 등의 작은 인연을 만나더라도 수혹을 일으킴으로써 불환 등의 하위로 물러나 이미 획득한 과위를 상실하지만, 퇴실(退失)의 인연을 만나지 않으면 곧바로 반열반하게 되는 종성의 아라한을 말한다.
9)
즉 하위로 물러날까 두려워하여 자해해서라도 반열반에 들고자 하는 종성의 아라한을 말한다.
10)
부동법종성이란 근기의 성품이 수승하고 그 뜻이 겁약(怯弱)하지 않아 뛰어난 퇴실의 인연을 만나더라도 결코 물러나는 일이 없는 아라한을 말한다.
11)
여기서 ‘항시’란 항시에 가행을 닦는 것을 말하며, ‘존중’이란 가행을 낳을 때 법을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퇴법과 사법이 다 같이 이러한 두 가지 가행을 결여한 것임에도 별도의 종성으로 나누게 된 것은, 퇴법은 둔근이고, 사법은 퇴법보다 좀더 이근이기 때문이다.
12)
6종성의 아라한은 다만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에 근거하여 설정된 것으로, 퇴법의 아라한이라고 해서 반드시 물러나는 것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만약 퇴법은 반드시 물러나고, 감달법은 반드시 부동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극히 적정(寂靜)한 곳이어서 퇴실ㆍ자해ㆍ자기 방호ㆍ근기의 단련과 같은 변동이 없는 무색계에는 6종성이 아니라 안주와 부동법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별은 단지 가능성에 근거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6종성은 3계에 모두 존재한다는 것이다.
13)
예컨대 유학위에 있을 때 사법의 종성을 성취한 자가 승진하여 무학위에 이르러서도 계속하여 사법의 종성을 상속하고 있으면, 그 종성은 유학과 무학의 두 가지 도에 의해 성취된 것이어서 견고하므로 퇴실할 리가 없다는 뜻.
14)
이는 무학의 종성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사실을 유학의 경우에 적용시켜 논설한 것이다.
15)
예컨대 퇴법의 종성이 무학위에 머물면서 연근(練根)의 행을 닦아 사법 등의 네 종성(사ㆍ호ㆍ안주ㆍ감달법)을 성취하였을 경우, 새로이 획득된 종성은 이전의 무학과 과위로서는 차별이 없으며, 유ㆍ무학의 두 가지 도에 의해 성취된 것이 아니어서 견고하지 않기 때문에 종성과 과위 모두로부터 물러나는 일이 있다. 또한 온갖 유학위 중에 있으면서 연근의 행을 닦아 퇴법에서 사법 등의 종성을 성취하였거나 유학의 과위를 획득하였을 경우에도 종성과 과위 모두에서 물러날 수 있다.
16)
유학위(혹은 범부위)에 머물면서 사법 등의 종성을 성취한 자가 승진하여 무학위(혹은 유학위)에 이르러서도 계속하여 사법의 종성을 상속하고 있으면, 그 종성은 유학도와 무학도(혹은 세간도와 출세간도)에 의해 성취된 것이어서 견고하기 때문에 과위에서도 역시 물러나는 일이 없다. 그러나 퇴법의 경우는 종성의 최하위이기 때문에 종성상으로는 물러나는 일이 없지만, 과위에서는 물러나는 일이 있다.
17)
‘일찍이 획득된 과위’란 최초에 획득된 과위, 이를테면 예류과와 초월증의 일래ㆍ불환과를 말한다. 유부에 의하면, 예류과 등 최초로 획득된 과위는 견도에 의해 유신견 등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이지적 번뇌[迷理惑]를 끊은 자이기 때문에 한 번의 단멸로서 더 이상 하위로 물러나는 일이 없지만, 견도 이후 수도에 의해 정의적 번뇌[迷事惑]를 단멸하여 획득된 차제증의 일래ㆍ불환과와 아라한과의 경우는 물러나는 일이 있다. 즉 예류과 등은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한다고 하는 유신견 등의 추상적 번뇌[無事惑]를 끊기 위해 4제를 대상으로 하여 획득된 법이지만, 차제증의 일래과 등은 어떤 실재하는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집착ㆍ증오하고, 잘못 이해하여[不了] 일어나는 탐ㆍ진ㆍ만(慢) 등의 구체적 번뇌[有事惑]를 대상으로 하여 획득된 법이기 때문에 실념하여 악연이나 사연(邪緣)을 만날 경우 다시 물러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대중부와 경량부에서는 아라한 무퇴론을 주장한다.(후술)
18)
근기를 단련하여 사법종성 등이 되는 경우와 과위에서 물러나 유학위의 성자가 될 때와 퇴법에서 그대로 반열반에 들 때, 아라한은 퇴법종성에서 물러나게 된다.
19)
호법에는 호법에서 물러나 사법에 머무는 경우를 더한 다섯 가지, 안주법에는 여기에 안주법에서 물러나 호법에 머무는 경우를 더한 여섯 가지, 감달법에는 여기에 감달법에서 물러나 안주법에 머무는 경우를 더한 일곱 가지가 있다.
20)
즉 견혹은 실유의 소연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무실체인 자아, 즉 유신견 등의 무지로부터 비롯된 이지적 번뇌이기 때문에, 그러한 아(我)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앎으로써 견혹이 일단 타파되기만 하면 다시는 그것을 일으키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후술하듯이 이는 유소연심(有所緣心)을 주장하는 유부설에 어긋나지 않는가 하는 논란이 대중부(大衆部)로부터 제기되기도 한다.
21)
견혹은 비존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4제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다만 그것을 바로 관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견혹이다. 예컨대 5취온 등의 고과(苦果, 즉 고성제)는 무상하고 실재성이 없는 것임에도 항상[常]하고 아(我) 혹은 아소(我所) 등으로 여기는 것이 견혹이다.
22)
요컨대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법’에 근거한 번뇌(즉 無事惑)란, 색 등의 5온 자체에 근거하여 그것에 의해 직접 생겨난 번뇌가 아니라 그러한 색 등에 대해 비리(非理)의 작의(作意)를 시설(施設)하고, 그 같은 허구의 시설에 대해 일으킨 아견(我見) 등을 말한다. 따라서 견소단의 번뇌는 직접 색 등을 소연으로 삼지 않는다는 뜻에서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법’에 근거하여 일어난 번뇌라고 하였으며, 이에 대한 판단 결택의 단계(즉 견도위)에 이르면 더 이상 물러나는 일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에 반해 수소단의 번뇌는 직접적으로 실유의 색 등을 조건으로 하여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실체로서 존재하는 법’에 근거하여 일어난 번뇌, 즉 유사(有事)의 혹이라고 하였다.
23)
원문에는 ‘개정가의(揩定可依)’로 되어 있지만 『현종론』(고려대장경28, p.239중)에 따라 ‘이정가의(理定可依)’로 번역하였다. 참고로 『국역일체경』(비담부26하, p.1004)에서는 ‘해정가의(楷定可依)’, 즉 ‘본보기로서 결정코 의지할 만한 것이다’로 고쳐 번역하고 있다.
24)
『현종론』 권33(한글대장경201, p.396)에서는 “사(事, 현상을 구성하는 개별적 실체 즉 유위법)는 변하는 것이어서 의지하기 어려운 것이기에(事變難依)”로 논설하고 있다.
25)
경량부에서는 최초로 획득된 예류과뿐만 아니라 아라한과의 무퇴론(無退論)을 주장한다. 이에 반해 유부에서는 앞에서 논설한 것처럼 부동법을 제외한 5종성 아라한의 유퇴론(有退論)을 주장한다.
26)
『중아함경』 권제3 「청백연화유경(淸白蓮華喩經)」(대정장1, p.574하). 여기서는 증(增)ㆍ사(伺)ㆍ쟁송(諍訟)ㆍ에(恚)ㆍ한(恨)ㆍ진(瞋)ㆍ전(纏)ㆍ불어(不語)ㆍ결(結)ㆍ간(慳)ㆍ질(嫉)ㆍ사광(斯誑)ㆍ유첨(諛諂)ㆍ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악욕(惡欲)ㆍ악견(惡見)은 신(身)ㆍ구(口)에 의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혜견(慧見)에 의해 소멸된다고 설하고 있다. 곧 경량부에 있어서 진실된 번뇌의 끊어짐이란 성자가 무루혜로써 번뇌 종자를 끊어 다시는 현행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래와 불환은 유루도에 의해 획득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그 때 번뇌 종자는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복(隱伏)되기 때문에 물러남이 있지만, 예류와 아라한은 무루도로써 각각의 번뇌 종자를 끊은 성자이므로 더 이상 물러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27)
『중아함경』 권제51 「아습패경(阿濕貝經)」 (대정장1, p.752상) 『잡아함경』 권제8(대정장2, p.53하). 즉 유학은 물러남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지만, 아라한의 무학은 물러남이 없기 때문에 불방일을 설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
28)
『중아함경』 권제49 「대공경(大空經)」(대정장1, p.738) 참조. 이를테면 “만약 그들(비구ㆍ비구니……)이 부동(不動)의 심해탈을 작증하면 나는 그들에게 장애가 있다고 설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네 가지 증상심(增上心, 정려)의 현법락거(現法樂居)를 획득하였다면 본래 정근하고 방일함이 없이 유행하였기 때문으로, 여기에 혹 물러남이 있다면 [홀로 있지 않고] 제자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이다.”(동 p.740상중)
29)
같은 경. 혹은 『잡아함경』 권제8 제212경(대정장2, p.53하), “그러한 비구는……머지 않아 온갖 유루를 다하고 무루의 심해탈과 혜해탈을 획득하여 현법에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확립되었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다하였다’고 스스로 작증하였음을 알며, 더 이상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안다. 왜냐 하면 그의 안식은 애락하고 염착할 만한 색에 대해 기뻐하지 않고 찬탄하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계착(繫著)하여 머물지 않기 때문으로……그는 더 이상 안(眼)과 색(色)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즉 경량부에서는 일체의 아라한을 부동(不動)의 심해탈로 해석하여 더 이상 번뇌로 인해 물러남이 없기 때문에 ‘부동’이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30)
즉 경량부에서는 시애심해탈을 ‘적당한 때를 만나야 획득하는 해탈의 과위(시해탈아라한)에서 물러나지 않기 위해 그것을 항시 애호하는 아라한’으로 해석하지 않고, 유루인 근본정려의 현법락주에서 물러나는 아라한으로 해석하여 유부가 인용한 아라한 유퇴론(有退論)의 경증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31)
앞에서 논설한 대로 유부에서는 6종성의 아라한을 물러남에 근거하여 해석하고 있는 데 반해 경량부의 경우, 그것은 다만 현법락주(現法樂住, dṛṣṭadharma sukhavihāra)에 기초한 차별일 뿐 일체 종성의 아라한과 자체는 부동법이다. 즉 경량부에서는 유루정인 현법락주에서의 물러남만을 인정하여 그것에서 물러나는 일이 있는 둔근자를 앞의 다섯 종성의 아라한이라 하고, 물러남이 없는 이근자를 제6 부동법의 아라한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이미 획득한 4정려의 현법락주에서 물러나는 일이 있으면 퇴법, 물러나는 일이 없으면 불퇴법(즉 부동법)이며, 나아가 그것을 생각하거나 방호하는 것 등을 사법ㆍ호법이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후술)
32)
즉 이근자가 획득한 부동의 종성을 불퇴법이라고 하며, 둔근자가 근기를 닦아 획득하는 부동의 종성을 부동법이라고 한다.
33)
교저가(Gautika, 혹은 瞿低迦)의 기사는 『잡아함경』 권제39 제1091경(대정장2, p.286상)에 나온다. 그는 시수의해탈(時受意解脫, 즉 시애해탈)을 획득하였으나 여섯 번이나 물러나게 되자 더 이상 물러나지 않기 위해 자살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수기(授記)하였고, 그가 반열반하였음을 찬탄하였다. 이에 대해 경량부에서는 그 때의 물러남은 유학위의 유루정에서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즉 그는 시해탈에 대해 깊이 애미(愛味)하여 하지의 혹에 의해 자주 물러나게 되자 이를 싫어하여 자살하였고, 그 같은 찰나에 신명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아라한과를 획득하고 무여열반에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34)
이는, 시해탈은 아라한과가 아니라 유루정이라는 사실의 경증으로, 경에서 시해탈과 부동심해탈을 별도로 설한 것은 그 자체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증십경』은 『장아함경』 권제9 「십상경(十上經)」(대정장1, p.51상) 참조. “一生法謂有漏解脫, 一證法謂無礙心解脫.”
35)
『품류족론』 권제3(한글대장경117, p.66). 욕탐의 번뇌가 이 같은 이유에 의해 일어난다고 할 때, 아라한과는 욕탐을 이미 끊었고, 비리작의도 더 이상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수면을 일으켜 물러날 리가 없다는 것이다.
36)
『잡아함경』 권제43 제1173경(대정장2, p.314중). “혹 어느 때 다문의 성 제자는 정념(正念)을 잃고 악 불선의 생각을 낳아 욕(欲)을 장양하고 에(恚)를 장양하며 치(癡)를 장양하니, 이는 바로 둔근자이다. 다문의 성 제자가 비록 집(集)의 멸(滅)을 일으켰을지라도 ‘욕’이 마음을 덮고 있기 때문으로, 비유컨대 쇠구슬을 달구어 몹시 뜨거워졌을 때 물을 조금 뿌리면 바로 말라 없어지듯이, 다문의 성 제자로서 둔근자가 염을 낳을 때 바로 멸하는 것도 이와 같다.”
37)
같은 경. “그 같은 다문의 성 제자는 그 마음이 오랫동안 원리(遠離)를 향해, 이욕(離欲)을 향해 나아갔고 흘러들었으며 실려갔다. 그래서 열반에서 적정(寂靜) 사리(捨離)하였으며, 열반을 즐겼으며, 유루처를 적멸하여 청량(淸凉)하게 되었다.” 여기서 원리와 이욕은 바로 아라한의 특징이므로 앞에서 ‘실념하는 다문의 성 제자’는 바로 아라한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38)
즉 견도위는 매우 빠르게 전이하여 그 중간에 근기의 단련과 같은 다른 행을 닦을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39)
『중아함경』 권제49 「대공경」(대정장1, p.740상중), “若彼不移動心解脫作證, 我不說有障礙也. 若彼得增上心現法樂居, 本爲精勤無放逸遊行故. 此或可有失以弟子多集會.”(해석은 주28 참조)
40)
수용퇴란 말하자면 수승한 공덕을 이미 획득하였지만 수용하지 않는 것으로, 예컨대 금전을 획득하였으면서도 더 큰 공덕을 획득함에 따라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즉 앞의 두 가지가 비득(非得)을 본질로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오로지 현전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41)
부처가 갖는 온갖 공덕, 이를테면 그만이 갖는 공덕[不共法]과 다른 성자와 공통적으로 갖는 공덕[共法]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7(p.1223 이하)에서 상론한다.
42)
여기서 ‘스스로 수승한 공덕이라 여기는 뛰어난 법’이란 부처와 여러 성자 간에 공통되는 공덕인 무쟁(無諍)ㆍ원지(願智)ㆍ4무애해(無礙解) 등을 말한다. 본론 권제27 (p.1238 이하) 참조.
43)
즉 유루정인 현법락주에서 물러나고 물러나지 않는 등의 이유에 따라 아라한을 6종성으로 나눈 것이다. 주31) 참조.
44)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는 물러나는 단계에서 번뇌를 갖기 때문에 목숨을 마치고서 마땅히 다시 생을 받는다고 해야 할 것이며, 또한 그는 이미 혹을 일으켰으므로 마땅히 과위에 머물 때에는 짓지 않던 일을 다시 짓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현종론』 권제33, 앞의 책, p.400)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45)
『잡아함경』 권제43 제1173경(대정장2, p.314중하). 원리(遠離)를 향해 나아간 다문의 성 제자들은 과위에서 물러나 번뇌를 일으키더라도 신속하게 다시 과위를 획득하여 일어난 번뇌를 진몰(盡沒)하게 할 수 있으니, 비유하자면 동방으로 흘러가는 항하(恒河)를 많은 사람들이 막아 서방으로 흘러가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46)
여기서 범행이란 무간ㆍ해탈ㆍ승진의 세 도를 말하는 것으로, 청정행의 뜻이다. 즉 만약 아라한과에서 물러나 다시 획득할 수 없다고 한다면, 범행을 닦아 획득한 그 같은 과보는 안온하게 믿고 안주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
47)
근기의 단련 즉 연근(練根)이란 온갖 근기를 조련(調練)하여 증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도의 힘으로 인해 근기가 상속하게 되는 것으로, 하품의 근기를 버리고 중품의 근기를 획득하며, 중품의 근기를 버리고 상품의 근기를 획득하여 점차로 증가하고 뛰어나게 되는 것을 일컬어 ‘연근’이라고 한다. 따라서 연근이라고 하는 명칭은 ‘근기를 바꾼다’는 전근(轉根)의 뜻에 근거한 것이다. 비록 여덟 가지 해탈도는 점차로 뛰어난 근기를 획득하는 것일지라도 본심은 뛰어난 종성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뛰어난 종성을 획득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이전의 저열한 종성을 버리지 않으니, 이는 마치 뒤의 과위를 획득하여야 비로소 앞의 향(向)을 버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성자위에 존재하는 종성에 여섯 가지가 있어 능히 연근을 닦는 것과 마찬가지로 견도에 들기 전의 난법(煖法) 등의 가행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성자위 중에서는 뛰어난 종성을 획득하면 반드시 이전의 저열한 종성을 버리지만, 난법 등의 가행위에서 연근을 닦는 자는 단지 뛰어난 종성을 획득하여 저열한 종성이 작용하지 않는 것을 일컬어 ‘전근’이라고 하니, 저열한 종성의 ‘득’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현종론』 권제33, 앞의 책, p.408)
48)
개개의 종성을 장애하는 불염오무지에 9품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끊는 무간ㆍ해탈도에도 각기 9품이 있는 것으로, 이는 마치 9무간도와 9해탈도로써 유정(有頂)의 혹을 끊고 아라한이 되는 것과 같다.
49)
즉 유학의 둔근종성은 오랫동안 익혀 얻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근기를 바꾸기가 쉬운 것이다.
50)
가행도의 경우, 유학과 무학은 모두 한 가지 도만을 일으킨다. 따라서 유학의 성자가 근기의 단련을 닦는 데에는 각기 한 가지의 가행ㆍ무간ㆍ해탈도가 있으며, 무학의 경우에는 한 가지 가행도와 각기 아홉 가지의 무간ㆍ해탈도가 있다.
51)
세속의 유루도는 그 본질상 뛰어난 것이 아니어서 성자의 근기를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52)
색ㆍ무색계와 6욕천에는 무루도가 존재하지만 물러남이 없기 때문에 근기의 단련을 닦지 않는다. 오로지 북구로주를 제외한 인취의 세 주에만 물러남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하여 근기의 단련을 닦게 된다는 것이다.
53)
근기를 바꾸는 것[轉根]은 지금까지의 과도(果道)와 승과도(勝果道, 즉 向道)를 버리고 다만 보다 뛰어난 사문과의 획득만을 추구하기 때문으로, 유학위 증 예류ㆍ일래과는 욕계 미지정에 의지하고, 불환과는 미지ㆍ중간ㆍ4근본정의 6지에 의지하였듯이, 근기의 단련 역시 아래 3무색정을 제외한 6지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54)
선(先)의 부동이란 근기의 단련에 의하지 않고 선래(先來) 본득(本得)의 부동을 말하며, 후(後)의 부동이란 근기의 단련에 의해 부동이 된 아라한을 말한다. 주32) 참조.
55)
즉 견도 이전에 다른 이의 말을 믿고서 가행을 닦은 이를 수신행이라고 하며, 스스로 증득한 법[自證法]에 따라 가행을 닦은 이를 수법행이라고 한다. 본론 권제23을 참조 바람.
56)
둔근인 수신행의 성자가 수도에 이르러 신(信)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무루의 정해(正解)가 나타났기 때문에 ‘신해’라고 한 것이며, 이근인 수법행의 성자가 수도에 이르러 혜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무루 정견이 나타났기 때문에 ‘견지’라고 이름하였다. 본론 권제23(p.1068)을 참조 바람.
57)
신증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4(p.1098)를 참조 바람.
58)
해탈의 장애[解脫障]는 정장(定障)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해탈은 멸진정. 즉 멸진정에 들어가는 것을 장애하는 무부무기성인 저열한 무지인 불염오무지를 말한다. 차송(次頌) 참조.
59)
그리고 신해와 견지로서 멸진정을 획득한 성자를 ‘신증’이라고 한다.
60)
이생위에서 수혹을 끊지 않고 견도위에 든 구박의 성자와, 하(下) 8지의 9품의 수혹을 끊은 일흔두 종류의 성자를 말한다.
61)
즉 5하분결(下分結)을 끊고서 불환과를 성취하면 다시는 욕계의 혹업(惑業)에 견인되지 않는 불퇴위에 머물게 된다는 뜻.
62)
‘원만한 유학’이란 이근이 그러한 과위를 획득하고서 멸진정을 획득한 자를 말하는데,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견지의 불환신증을 ‘원만(圓滿)한 이’라 하고, 한두 가지 조건을 갖춘 견지 등을 ‘부분적으로 원만[分滿]한 이’라고 한다. 즉 신해로서 멸진정을 획득한 자는 근기를 결여한 유학이며, 견지의 불환으로 아직 멸진정을 획득하지 못한 자는 선정을 결여한 유학이며, 견지로서 아직 욕계를 떠나지 못한 자는 과보와 선정을 결여한 유학이며, 신해의 불환으로 멸진정을 획득하지 못한 자는 근기와 선정을 결여한 유학이다.(후술)
63)
무학위는 모두 아라한과를 획득한 자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최상의 과보이다.
64)
이는 가행ㆍ무간도와 마찬가지로 보다 향상된 단계로 향하는 것으로, 하품의 해탈ㆍ승진도는 중품의 가행ㆍ무간도를 낳기 때문이다.
65)
즉 통행을 이러한 네 가지로 구별하는 것은, 그것이 어떠한 지(地)와 근기에 근거한 것인가에 따른 것이다.
66)
근본정려에는 열여덟 가지의 정려지(支)를 갖추고 있으며(제1ㆍ제3정려의 각 5지와 제2ㆍ제4정려의 각 4지, 본론 권28, p.1281 참조), 관지(觀智)와 정심(定心)이 평등하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 생겨난 도는 마치 배를 타고 강을 내려가는 것처럼 인위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일어나기 때문에 ‘낙통행’이라 한다. 그러나 그 밖의 정려에 의해 일어난 도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고통행’이라고 하는 것이다.(후술)
67)
비록 도 자체는 괴로움이 아니지만, 이러한 등지는 희(喜)ㆍ낙(樂) 등의 5지와 4지를 섭수하지 않고 고수(苦受)와 상응하고, ‘지’와 ‘관’이 갖추어져 있을지라도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일이 있어 어렵고 힘들게 일어나기 때문에 역시 ‘고’라고 일컬은 것으로, 마치 육로를 걸어서 가는 것과 같다.
68)
『잡아함경』 권제26 제694경(대정장2, p.188중). 이러한 37도지(道支, 혹은 助道品)의 명칭은 같은 경 권제26~28에 상설된다. (1)4념주: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념주(본론 권제23, p.1033 참조). (2)4정단(또는 正勤):이미 일어난 악법을 끊는 단단(斷斷). 계율을 수지하여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법을 생겨나지 않게 하는 율의단(律儀斷). 바른 도를 닦아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법을 생겨나게 하는 수단(修斷). 이미 생겨난 선법을 지속하고 증장시키려고 노력하는 수호단(隨護斷). (3)4신족(또는 如意足):선정은 신통 미묘한 공덕을 획득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신족’이라 한 것으로, 뛰어난 삼매를 획득하려고 원하고[欲], 노력ㆍ정진하고[勤], 마음을 능히 잘 다스리고[心], 지혜로써 사유ㆍ관찰하는 것[觀]. (4)(5)5근ㆍ5력:신(信)ㆍ정진(精進)ㆍ염(念)ㆍ정(定)ㆍ혜근[慧]. (6)7각지:택법(擇法)ㆍ정진(精進)ㆍ희(喜)ㆍ경안(輕安)ㆍ염(念)ㆍ정(定)ㆍ사각지(捨覺支). (7)8성도지: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 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
69)
즉 신(信)ㆍ정진(精進)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5근이 경계의 차별에 따라 서른 가지로 나누어, 여기에 다시 희ㆍ사ㆍ경안ㆍ계(정어ㆍ정업ㆍ정명)ㆍ심을 더한 것이 37각분이다.
70)
『대비바사론』 권제96(한글대장경121, p.468-469)에 의하면, 37보리분법의 본질은 열한 가지 혹은 열두 가지이며, 열 가지라는 주장은 유설(有說)로 언급되고 있다.
71)
4념주ㆍ4정단ㆍ4신족 중에는 특별히 열 가지 실제적 본질에 소속될 만한 것이 없는데, 어째서 염주를 혜에 배당하고, 정근을 ‘근’에, 신족을 ‘정’에 배당한는 것인가 하는 물음.
72)
본론 권제23(p.1035) 참조.
73)
이생(已生)ㆍ미생(未生)의 악과 선을 힘써 끊고 닦을 때, 근(勤)의 심소가 뛰어난 힘을 갖고서 끊고 닦는 것을 게을리 하는 해태를 지금 바로 끊기 때문에 ‘정단’이라 이름하였다는 뜻.
74)
선정은 능히 변화하는 마음 등을 일으켜 온갖 신통한 불가사의한 경계[神]를 조작하는 근거[足]가 되기 때문에 ‘신족’이라 이름한 것이다.
75)
선정은 신통변화의 부사의한 묘용(妙用)을 나타내기 때문에 ‘신(神)’이라 일컬은 것이며, 뛰어난 삼매를 획득하려고 원하고[欲], 노력ㆍ정진하고[勤], 마음을 다스리고[心], 지혜로써 사유ㆍ관찰하는 것[觀]은 그러한 선정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족(足)’이라 일컬었다는 뜻. 즉 유부 비바사사는 선정이 신령스러운 공덕[能變化心]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이러한 네 가지 법을 ‘신족’이라고 한 데 반해 유여사는 신통변화인 선정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일컬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76)
신통의 경계, 즉 신경(神境)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7(p.1247)의 6통(通) 중 신경지증통(神境智證通)과 p.1255의 설명을 참조할 것.
77)
5근이나 5력은 다 같이 신(信)ㆍ근(勤)ㆍ염(念)ㆍ정(定)ㆍ혜(慧)이지만, 하품의 그것을 ‘근’이라 하고, 상품의 그것을 ‘역’이라 하였다. 혹은 굴복될 수 있을 정도로 저열한 그것을 ‘근’이라 하고, 굴복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그것을 ‘역’이라 이름하였다. 즉 하품의 ‘신’ 등은 그 세력이 저열하기 때문에 대치되는 것과 동류로서 굴복될 수 있는 것이며, 상품의 그것은 이와 반대되기 때문에 두 가지 도로 구분하게 된 것이다.
78)
처음으로 업을 닦는 단계[初修業位]란 순결택분(즉 4선근) 이전 단계인 별상념주와 총상념주로서, 신(身)ㆍ수(受)ㆍ심(心)ㆍ법(法)을 밝혀 그 자상과 공상을 요지(了知)하기 때문에 혜의 작용이 가장 뛰어난 염주가 현현한다.
79)
즉 난법위에서는 생사의 허물과 열반의 공덕을 관찰하여 마침내 용맹 정진함으로써 생사에 떨어지지 않고 신속하게 열반으로 나아가게 되므로 근(勤)의 작용이 뛰어나다고 한 것이다.
80)
『잡아함경』 권제24 제628경(대정장2, p.176하), 동 권제26 제648경(동p.186하)에서 37보리분법을 4념주ㆍ4정단ㆍ5근ㆍ7각지ㆍ8성도지의 순으로 설한 것은 법수(法數)의 증가에 따른 것으로, 만약 닦는 순서에 따라 설한 것이라면 견도에서 8성도지를 닦고 수도에서 7각지를 닦기 때문에 두 가지의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
81)
즉 8성도지 중 정견은 바로 견도인 동시에 견도위에서 닦는 8성도지 한 갈래[支]이며, 7각지 중 택법은 깨달음인 동시에 깨달음에 이르는 한 갈래이다.
82)
『중아함경』 권제52 「조어지경(調御地經)」(대정장1, p.758중). “이러한 4념처는 현성(賢聖)의 제자 마음속에 있으면서 세속[家]을 즐겁다고 하는 생각을 다스리고, 세속의 욕망을 제거하며, 세속의 피로함을 쉬게 하여 정법(正法)을 즐기게 하고 성계(聖戒)를 닦게 한다.”
83)
네 가지 일이란 이미 생겨난 악법은 끊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법은 생겨나지 않게 하며, 이미 생겨난 선법은 증장시키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법을 생겨나게 하는 것.
84)
『잡아함경』 권제13 제305경(대정장2, p.87하), “八聖道修習滿足已四念處修習滿足. 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修習滿足.”
85)
『잡아함경』 권제43 제1175경(대정장2, p.315하), “如實言者謂四眞諦, 復道還者以八聖道.” 여기서 ‘본래의 길’이란 모든 부처가 수행하였던 길이라는 뜻으로, 이는 곧 8성도지가 견ㆍ수 양도에 통한다는 사실의 교증이다.
86)
이러한 경우를 고려하여 『대비바사론』 권제95(한글대장경121, p.455)에서는 ‘7각지 뒤에 8도지를 분별하였으면, 그것은 오로지 무루이지만, 7각지 앞에 8도지를 분별하였으면 유루와 무루 모두와 통한다’고 논설하고 있다. 즉 37각분에서 8성도지는 언제나 7각지 뒤에 설해지고 있기 때문에 오로지 무루일 뿐이다.
87)
이는 논주 세친의 설(『현종론』 권제34에서는 有說)로서, 근분지에서는 힘을 다하여 도를 일으키기 때문에 희수(喜受)가 없으며, 미지정에는 하지와 인근하여 하지의 번뇌에 의해 장애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있기 때문에(즉 信을 갖지 않기 때문에), 힘을 다하여 도를 일으켜도 안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희각지가 없다는 것이다.
88)
계의 세 갈래[支]란 계를 본질로 하는 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으로, 아래 세 무색정에는 색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업도 없는 것이다.
89)
4제의 이치를 증득함으로써 불ㆍ법ㆍ승 3보와 계(戒)에 대한 청정한 무루의 믿음[信]을 낳게 되는데, 이를 증정(證淨, avetyaprasāda)이라고 한다.
90)
『잡아함경』 권제30 제833-836경(대정장2, p.214상중). 여기서는 불괴정(不壞淨)이라는 말로 설하고 있다. 구역어는 증해정신(證解淨信).
91)
견도위에서 고제ㆍ집제ㆍ멸제를 증득할 때는 무루심이 구기하여 그러한 3제의 이치를 믿게 되는데, 이러한 믿음을 법증정이라고 하며, 그러한 무루도에는 반드시 수심전의 도구계(道俱戒)가 구기(俱起)하니, 이를 계증정이라고 한다. 또한 도제를 관찰할 때, 그러한 무루혜는 불신(佛身) 중의 온갖 무루ㆍ무학법을 관찰하여 무루의 믿음을 일으키며, 승가 중의 유학ㆍ무학법을 관찰하여 그것을 독실히 믿기 때문에 앞의 두 증정에다 다시 불증정과 승증정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92)
법증정에 있어 법이란, 전체적으로 말하면 4제 전부이지만, 개별적으로 말하면 고ㆍ집ㆍ멸의 3제 전부와 네 번째 도제 중의 보살도(미지당지근과 이지근 등의 학법)와 독각도(미지근과 이지근의 학법과 구지근 등의 무학법)로서, 보살과 독각은 각기 독자적으로 출세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승증정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다. 참고로 승가의 최소한 구성 인원은 4인 이상이다.
93)
4증정은 4제의 현관(現觀)으로부터 출관할 때 행자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믿음의 순서에 의한 것으로, 먼저 불ㆍ세존이 정등각임을 믿고, 다음으로 정법과 비나야가 선설(善說)임을 믿으며, 성승(聖僧)이 미묘한 행자임을 믿을 때 마음이 청정해져 청정한 시라(즉 무루의 도공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94)
『중아함경』 권제49 「성도경(聖道經)」(대정장1, p.736중). 여기서 8지(支)란 8성도지를 말하며, 10지란 여기에 정해탈(正解脫)과 정지(正智, 유위와 무위의 두 해탈을 아는 진지와 무생지)를 더한 것을 말한다.
95)
여기서 두 가지 지(智)란 유위와 무위의 두 해탈을 아는 지로서, 진지와 무생지를 말한다. 이러한 두 가지 지가 바로 정지지(正智支)의 본질이다.
96)
무위해탈은 택멸을 본질로 하는 것으로, 불변부동이기 때문에 ‘무위’라고 한 것이며, 유위해탈은 그러한 무위해탈을 획득하게 하는 승해를 본질로 하는 것으로, 부동이 아니기 때문에 ‘유위’라고 한 것이다.
97)
유위해탈에는 유학과 무학의 두 가지가 있다. 즉 7성신(聖身, 예류향 내지 아라한향)의 유위해탈을 유학해탈이라고 하며, 제8 아라한과의 유위해탈을 무학해탈이라고 하는데, 일체의 번뇌를 소멸한 무위해탈에는 더 이상 갈래[支]의 작용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유위 중의 무학해탈에만 해탈의 갈래를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98)
무학에는 시(時)해탈과 불시(不時)해탈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99)
『잡아함경』 권제8 제211경(대정장2, p.53중), “……亦當不久得盡諸漏, 無漏心解脫慧解脫, 現法自知作證. ‘我生已盡 梵行而立 所作已作.’ 自知不受後有.” 여기서 심해탈은 심왕과 상응하는 승해를, 혜해탈은 혜와 상응하는 승해를 본질로 하는 것으로서, 이 두 가지 승해는 5분법신(分法身) 중의 해탈온에 포섭된다.
100)
『잡아함경』 권제21 제565경(대정장2, p.148하-149상), “如來應等正覺說四種淸淨. 戒淸淨心淸淨見淸淨解脫淸淨.……云何爲解脫淸淨斷? 謂聖弟子貪心無欲解脫, 瞋恚心無欲解脫. 如是解脫未滿者令滿, 已滿者隨順攝受, 欲精進乃至常攝受. 是名解脫淨斷苦種.”즉 경에서 해탈의 청정 수승함은 마음이 탐 등으로부터 이염 해탈한 것이라고 하였을 뿐 승해라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탈온의 본질은 승해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힐난으로, 이는 경부 혹은 경부여사(餘師)에 의해 제기된 힐난이다.
101)
여기서 유여사는 경부, 즉 유부가 무학의 정견(正見)ㆍ정지(正智)와 상응하는 승해를 유위해탈온의 본질이라고 한 데 반해 심소의 개별적 실재성을 부정하는 경부에서는 마음을 그것의 본질이라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102)
37각분에서 이를 보리(菩提)라고 이름하였으나, 여기서는 그것을 ‘정지’라고 이름한 것일 뿐이다.
103)
『발지론』 권제1(한글대장경176, p.23), “어떠한 마음이 해탈하는가? 과거의 것인가, 미래의 것인가, 현재의 것인가?…… 미래에 무학의 마음이 생겨날 때 모든 장애로부터 해탈한다.” 여기서 최초의 무학의 마음이란 무학의 첫 찰나의 진지(盡智)를 말한다. 즉 그것이 미래 생상위(生相位)에 있을 때 장애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일컬어 ‘정(正)해탈’이라고 한다는 뜻. 참고로 그것의 현재세를 ‘이(已)해탈’이라고 한다.
104)
번뇌의 득이 생상위(生相位)에 이르지 않는 것을 ‘바로 끊어졌다[正斷]’고 하는 것으로, 바로 끊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무학의 첫 찰나의 마음을 장애하지 않는다. 곧 번뇌의 득과 구유(俱有)하지 않는 것을 ‘정(正)해탈’이라고 한다.
105)
여기서 말하는 세속의 마음은 무학자가 미래에 낳을 세속의 선심을 말하는 것으로, 세속의 유루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06)
미생(未生)의 무학심도 세속심도 금강유정이 소멸하는 단계에 결정코 해탈할 것이지만, 그것은 아직 생상위에 이르지 않은 것이어서 결정적이지 못하다. 즉 미래 생상위에 이른 무학의 첫 찰나의 마음은 현재의 소의신과 시간에 드러나겠지만 그 밖의 마음은 생겨날 수도 있고 생겨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서 설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
107)
즉 무학심의 생기를 장애하는 번뇌의 득을 끊는 것은 도(즉 금강유정)의 어떠한 상태인가 하는 물음. 금강유정은 그것의 현재의 장애만을 끊으며, 과거ㆍ미래의 장애는 끊지 않는다. 다시 말해 도가 능히 장애를 끊는 것은 바로 멸상(滅相)에 있을 때로서, 그 때 현재 번뇌의 득(得, 즉 법구득)을 쇠퇴하게 하여 그것이 더 이상 후찰나의 번뇌의 득을 인기하여 생상(生相)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다.
108)
미래 생상위(生相位)에 이른 해탈이 바로 ‘정해탈’이다.
109)
어떻게 아직 생겨나지 않은 해탈이 장애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인가? ‘바로 생겨나는 것[正生]’과 ‘생겨난 것[已生]’의 장애가 동일하기 때문으로, 수로를 열 때 가까운 물이나 멀리 있는 물이나 모두 다 장애를 떠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능히 번뇌를 끊는 도가 소의신 중에 이미 생겨났다고 관찰하였으면, 역시 마땅히 가까운 마음이나 멀리 있는 마음이 모두 다 해탈을 획득한다고 설할 수 있는 것이다. 혹은 최초로 무학의 마음을 바로 일으켜 그것의 생상을 바로 획득하였을 때를 ‘정해탈(正解脫)’이라고 이름하듯이 미래에 수습될 무루심 등도 그 생기를 획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역시 해탈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현종론』 권제34, 앞의 책, p.449)
110)
『잡아함경』 권제17 제464경(대정장2, p.118중), 若斷界無欲界滅界, 是名諸解脫界.
111)
이(離)ㆍ단(斷)ㆍ멸(滅)의 3계는 모두 택멸(무위해탈)을 본질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속의 관점[假說]에서 본다면 서로 다르게 논설되겠지만, 승의의 관점[實事]에서 본다면 본질적으로 어떠한 차별도 없는 것으로, 각각의 택멸은 모두 ‘단’도 되고, ‘이’도 되며, ‘멸’도 되기도 한다.
112)
이는 앞의 4구(句)의 뜻을 거듭 해명한 논설이다. 즉 일찍이 욕계의 염오를 떠난 자가 그 후 견도에 들어 법인(法忍)을 획득하였을 경우, 만약 고제ㆍ집제를 소연으로 한 것이라면 싫어하는 것이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니, 이미 혹이 끊어졌기 때문이다.(제1구) 만약 멸제ㆍ도제를 소연으로 한 것이라면 떠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니, 좋아하는 경계를 소연으로 삼았기 때문이며, 이미 혹이 끊어졌기 때문이다.(제4구) 또한 온갖 지(智) 가운데 견도의 해탈도에 포섭되는 것과 수도의 가행ㆍ해탈ㆍ승진도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만약 고제ㆍ집제를 소연으로 한 것이라면 싫어하는 것이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니, 싫어하는 경계를 소연으로 삼았음에도 단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제1구) 만약 고제ㆍ집제를 소연으로 한 것이라면 떠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니, 좋아하는 경계를 소연으로 삼았으며 단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제4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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